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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 줄리아 애버크롬비

Bawoo 2015. 6. 26. 23:45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는 메리의 초상화 말고도 ‘상복을 입은 여왕의 초상화’를 또 하나 찾아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1세와 함께 영국의 위대한 여왕으로 손꼽히는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의 초상화다. 빅토리아 여왕은 장장 64년간 재위하며 대영제국의 영광을 이끈 군주다. 그녀가 영국을 다스리는 동안, 아프리카와 인도,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에 걸친 영국의 해외 식민지는 본국 영토의 100배가 넘었다. 그러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는 당연한 것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의 황제, 그리고 영국이 다스리는 수많은 나라의 군주였으므로 당시 세계의 절반 가까운 나라들의 군주였다.

그렇지만 이 모든 영광이 빅토리아 여왕 개인의 탁월함으로 이룩된 것은 아니었다. 빅토리아 여왕 이전에 영국의 권력은 이미 군주에게서 의회로 이동한 상태였고 영국의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할 수는 없는’ 상징적인 자리에 불과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을 이끈 것은 피트(William Pitt the Younger), 글래드스턴(William Ewart Gladstone),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등 탁월한 수상들이었다.

그렇다면 빅토리아 여왕은 대체 무엇을 했을까? 그녀가 영국인에게 보인 것은 ‘군주의 위엄과 자애로움’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1840년에 자신의 동갑내기 외사촌이자 독일 작센의 왕족인 앨버트 공과 결혼해서 무려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았다. 물론 이 결혼은 왕실의 중매로 이뤄진 결혼이었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 공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과학 기술과 산업의 신봉자여서 1851년에 열린 런던 만국박람회를 직접 총지휘하기도 했던 앨버트 공은 1861년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슬픔에 잠긴 여왕은 이때부터 자신이 타계하던 1901년까지 40년 동안 상복만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앨버트 공의 유지를 받들어서 빈민과 어린이 등을 구호하는 데 힘을 쏟았다.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는 런던의 자선병원을 찾은 젊은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있다.

무려 40년 이상을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아홉 명의 자녀를 키우는 데 정성을 쏟는 여왕의 모습은 영국인들에게는 곧 이상적인 어머니로 비춰졌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아야 하는’ 당시 영국의 군주제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그야말로 최고의 군주였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늘 중립을 지켰고 정치에 간섭하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았다. ‘보아도 입을 열지 마라’가 모토였다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처럼, 빅토리아 여왕 역시 신중한 여성이었고, 그 신중함이 대영제국의 영광을 이끈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줄리아 애버크롬비(Julia Abercromby)가 1883년에 그린 이 초상화를 보면, 한눈에 보기에도 빅토리아 여왕이 사치스럽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세계의 절반을 다스리는 여왕답지 않게 그녀는 아무 장식 없는 상복을 입고, 최소한의 보석으로만 자신을 치장했다. 여왕이라기보다는 수녀원장 같은 차림새다. 이 초상화는 빅토리아 여왕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1875년에 하인리히 폰 안젤리(Heinrich von Angeli)가 그린 여왕의 초상화를 참조해서 그린 것이라고 한다. 1875년이면 여왕의 나이 56세일 때다. 소박하지만 위엄이 엿보이는 초상화다.

같은 상복을 입고 있지만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메리 여왕의 초상화에 비해,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던 빅토리아 여왕은 아직까지도 영국의 어머니로 많은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승리’를 의미하는 ‘빅토리아’라는 이름 자체가 대영제국의 영광을 추억하는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오늘날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빅토리아 여왕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여왕이 낳은 4남 5녀의 자손들은 영국, 독일, 러시아, 에스파냐 등 유럽 각지의 왕족들과 혼인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럽 왕실들은 대부분 약간의 혈연 관계가 있는데, 이 관계는 ‘유럽의 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브리태니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