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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리를 거둔 "신각" 처형을 주도한 우의정>유홍(兪泓)

Bawoo 2015. 7. 13. 22:45

유홍(兪泓, 1524년 ~ 159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지숙(止叔), 호는 송당(松塘).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기창(起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여림(汝霖)이고, 아버지는 생원 관(綰)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宜寧南氏)로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충세(忠世)의 딸이다.

 

 1549년 (명종 4)사마시에 합격하고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 주서, 전적, 지평, 장령 등 청요직을 역임했다. 1563년 정국을 주도하던 권신 이량을 탄핵했고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산릉도감의 도제조로 발탁되었다.

이듬해 시관(試官)으로 이이(李珥)를 뽑았으며, 1565년문정왕후(文定王后) 상사 때에는 산릉도감(山陵都監)으로 치산의 일을 맡았고, 춘천부사가 되어서는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이후 호조참의와 충청도관찰사, 전라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거쳐 1587년 명나라로 가서 종계변무에 성공했다. 1589년 의금부판사로 정여립의 옥사를 다스려 1590년 광국공신 1등과 평난공신 2등에 책록되고 기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이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했다. 1594년 좌의정으로  해주에 있는 왕비를 호종하다가 객사하였다. 이때 시사에 관한 10조의 시무책을 올리기도 했다.

성품이 중후관대하고, 의리를 위해 기개를 굽히지 않았으며, 시문에 뛰어났고 장서가 많았다. 유저로는

≪송당집≫ 송당집 / 유홍4권이 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시문이 뛰어나 선조가 그의 시를 보고 직접 화운하기도 했고 독서를 좋아해 가장한 책이 1만 권에 달했다고 한다.

 

* 출처; 정보-책;징비록/ 자료-위키백과 및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