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歷史) 마당 ♣/- 인물, 단체

<임진왜란 당시 경기감사>심대沈岱

Bawoo 2015. 7. 11. 21:41

심대(沈岱)

1546(명종 1)∼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墩)이다. 영의정 심온(沈溫)의 5대손이며, 경력(經歷) 심의검(沈義儉)의 아들이다.

유학(幼學)으로 1572년(선조 5) 문과에 급제,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박사·수찬을 지내고, 1584년 지평에 이르렀다. 이때 동서의 붕당이 생기려 하자, 언관으로서 붕당의 폐단을 논하였으며, 이어서 사인·사간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덕으로서 근왕병 모집에 힘썼다. 그 공로로 왕의 신임을 받아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지내며 승정원에서 왕을 가까이 호종하였다. 왜군의 기세가 심해지면서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에서 다시 의주로 수행하였다.

 

동년 9월에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서울 수복작전을 계획하고, 삭녕(朔寧)에서 때를 기다리던 중 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왜군은 그의 수급(首級)을 참하여 서울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경기도 사람들은 그충의를 애석하게 여겨 서로 재물을 모아 가지고 파수보는 왜적에게 뇌물을 주고 그 머리를 찾아내어 강화도로 보냈다가 왜적이 물러간 뒤에 그 시체와 함게 고향으로 보내 장사를 지냈다.-징비록 내용을  보충>

 

1592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1610년에는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산119-1번지[처인성로827번길 116-5]에 있다. 경기도 기념물 3호이다.

묘역은 완장리의 야산에 위치하며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床石)이 있을 뿐이고, 문인석과 망주석(望柱石)은 훼손되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1972년에 지방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1975년 묘 아래에 있던 낡은 사당을 해체하여 복원하였으며 신도비도 건립하였다.


 

심대 장군 묘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한국계항보(韓國系行譜)』(보고사, 1992)
『용인시사』(용인시사편찬위원회, 2006)

 


 

[출처] 정보-책;징비록/ 자료수집;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