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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노비 출신 풍수가>목효지(睦孝智)

Bawoo 2015. 7. 11. 00:36

노비출신 풍수사 목효지의 생애(?-1455)

목효지(睦孝智)의 출신에 대해서는 전농시 소속의 노비로 한 눈이 먼 것만 알려졌다.

목씨는 사천을 본관으로 하는 단일 성씨로서 고려말부터 중앙정계 진출이 두드려 명문 세가를 이룬다.

특히 재신 목신우의 아들 목인해(睦仁海)같은 이는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기여를 한다.

그러나 태종 임금 때 역모사건에 걸려 자신과 자식들이 처형되기도 한다.

목효지는 목인해의 일족으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부모가 노비로 몰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다.

 

 이와 같은 추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서 젊은 목효지가 세종 23년에

올린 상소문을 보면 한문에 능했으며 그를 바탕으로 여러 풍수서적들을 읽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태어나서부터 노비였다면 한문을 익힐 여유가 없었을 것이고 더구나 당시에 구하기 힘든 풍수서적을

다양하게 읽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목효지가 처음부터 노비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문종과 단종 때 그는 나름대로

권력다툼에 줄을 대려다 세조의 미움을 받아 세조가 즉위하자마자 세조에 저항하였던 다른 대신들과

함께 교수형을 당한 사실이다.

지관으로서 왕릉선정에 잘못하였다는 이유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처형 원인을 밝히라는

사헌부 장령 이승소의 상소에 다른 '무인들과 마찬가지'였다는 애매한 답변이 있을 뿐이었다.

단순한 노비였다면 이와 같은 단종과 세조 사이의 권력 쟁탈전에 도박을 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비 목효지는 운이 없었던지 세종 23년 임금에 의해 전농시 노비에서 풀려나 풍수학으로 잠깐 말단

벼슬을 하는 행운을 누렸으나 다시금 세종의 노여움을 사 세종 30년 다시 전농시 노비가 되었다가

세조가 즉위하자마자 처형당하고 만다.< 1455년(세조1년)>.

 

*300년이 지난 정조 15년(1791.2.21)세조대의 여러 희생자들과 함께 여월에 있는 단종릉(장릉)에 배향하여 억울함을 다소나마 풀어주었다.(출처: 책- 노비열전)

 


소릉(昭陵) 논쟁

1441년 세종23년 세자(훗날 문종)의 부인 권씨가 아들을 낳고 3일 만에 죽는다.

이때 태어난 왕자가 단종이다.

 

훗날 부왕 문종의 뒤를 이어 어린 왕자가 임금이 되었지만 왕위를 숙부에게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원인 가운에 하나는 단종의 어머니가 자신을 낳자마자 죽었다는데 있었다.

 

대개 임금이 성년이 안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 궁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후비가

수렴청정을 하여 임금을 보좌하는데 단종이 즉위하였을 때에는 수렴청정을 해줄만한 대비나

왕비가 없어 권력을 제대로 장악할 수 없었다.

단종의 어머니이자 문종 세자의 부인(세자빈)이었던 권씨가 죽자 안산 고읍(古邑)에 장지를 정한다.

이때 이곳을 소점한 지관은 최양선이었다.

 

그러나 전농시 소속의 노비가 임금에게 올린 한 장의 글은 이 결정을 번복시킨다.

젊은 노비 목효지가 다음과 같은 상언을 올리고서이다.

“무릇 상지법은 조종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이오니, 조산이 높고 준수한 연후에야 생기가 왕성하고,

생기가 왕성한 연후에야 음덕을 내리는 것이 연면(連綿)하게 멀리 가는 것입니다.

 

대개 산천의 영령한 기는 제 스스로 행하지 못하고 산을 따라서 운행합니다.

잘 결합되어 판국이 된 것은 반드시 내룡(來龍)이 있어서 높이 솟고, 청룡과 백호가 둘러싸고

조회(朝會)해 보이는 안산이 분명합니다.

 

주변 산들이 공읍하고 수맥이 굴곡하여, 물이 깊고 맑으며 휘돌아 굽이쳐 흐르되, 오는 데에

그 근원이 안 보이고 가는 데에 그 흐르는 곳이 안 보여서, 마땅히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마땅히

나갈 때에 나간다면, 좋은 땅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조종이 얕고 연약하며, 내룡이 미소하여 끊어진 데도 있고 파인 데도 있어서 기맥이 연속되지

아니하고, 산과 물이 서로 등지고 나가서 산란하여 돌아간 데가 없고, 흐르는 길이 곧게 나서 마땅히

들어갈 때에 나가고, 마땅히 나갈 때에 들어오면, 흉지라고 말 할 것입니다.


이제 빈궁의 능소인 안산 옛 읍 땅을 보니, 그 산의 내룡이 얕고 약하며, 길로 끊어진 곳이 많아서

10여 군데나 됩니다. [동림조담]에‘내룡이 악하고 약하면 낳은 아이가 녹아버린다’하였고,

[곤감가]에‘끊어진 산에 가로 파였으면 기가 이어지기 어렵다’하였고, [지리신서]에‘도로가 가로 파인 것은

기맥을 끊어지게 하는 것이라’하였고, 또 [신서]에 이전이 말하기를, ‘만리장성을 쌓느라고 산을 끊어서

진나라가 망하였고, 기수와 변수를 뚫느라고 지맥을 끊어서 수나라가 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크고 작은 것은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입니다. 또 건해산(乾亥山)이 변하여 계좌정향(癸坐丁向)이 되었고,

사지(巳地)에 수파(水破)되고 계산(癸山)이 토(土)에 속하여, 이미 태(胎)가 끊어졌사오니 진실로 가소롭습니다.

 

비록 흙을 모아서 그 장생(長生)이라는 말은 면하겠으나, 반드시 적지 않은 해가 있을 것입니다.

이 산은 건해(乾亥)방이 주장이 되었고, 사방(巳方)이 수파(水破)가 되었는데, 건해방은 금(金)에 속하여

사방에 나오니, 이것이 장생이라는 것입니다.

 

[의룡경]에‘생왕방(生旺方)을 유파(流破)하면 모두 절멸한다’하였고, [호수경]에‘주산(主山)이 감방(坎方)에

있다가 계축(癸丑)으로 전보(轉步)해서 머리를 숙여 간방(艮方)이 되었고, 수행(水行)은 더욱 앞으로 나오고

산행(山行)은 더욱 뒤져서, 먼저 목기(木氣)를 받고 다음에 토기(土氣)를 받아, 그제야 수기(水氣)를 받으면,

3년에 1보(步)요, 10년에 일세(一世)라’하였습니다.

 

[동림조담]에‘건산(乾山)의 온 것이 짧아서 산절(山節)로 오는 것이 해(亥)라’하였는데, 이제 속사(俗師)들이

건(乾)방에 앉은 산이 짧은 것을 본 것으로 곧 해산(亥山)이 주장이 되었다 하였고, 다시 건산(乾山)을 가져서

물을 꺾지[折水] 아니하니, 이것이 한 가지 병입니다.

 

[호수경]에‘의당 나아가야 할 것이 들어오면 괴려(乖戾)의 모임이요, 의당 들어올 것이 나아가면

상파(傷破)의 실상이라’하였고, 또 이르기를, ‘물의 나가는 것이 보이면 이름하기를 단기(短氣)라’하였고,

또 혈(穴)이 천관(天關)에 있는데,

 

[지리문정]에 이르기를,‘천관혈은 범하지 못할 것이니, 범하면 사내을 죽이고 어른을 죽인다’하였습니다.

이순풍의 소권 천관혈주에 이르기를,‘천관이라는 것은 물의 근원이라’하였으며, 또 청룡이 물을 띄고서 곧게

달아났는데, 청룡이라는 것은 남자의 위치입니다.

 

 [문정]에 이르기를, ‘좌산(左山)·좌수(左水)가 곧은 것은 어른을 죽인다’하였고,

[낙도가]에 이르기를, ‘동궁이 달려가서 서궁을 지나면, 장자·장손이 일찍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고현(古縣)은 풍수사들이 역시 꺼리는 것입니다.

 

[동림조담]에 이르기를,‘장터나 고현은 부녀자가 미천하다’하였는데, 그 길흉의 감응은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장서]의 이른바,‘구리 광산이 무너지면 (그 광산의 쇠로 만든) 종이 울며,

(봄이 되어) 나무꽃이 피면, (방안에 있던) 밤송이에도 싹이 튼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명산론]에 이르기를, ‘주장하는 바의 길흉이 응(應)하기를 영향(影響)과 같다’하였고,

[장서]에 이르기를,‘화와 복이 해[日]를 돌이키지 않는 것으로, 군자는 신이 하는 일을 빼앗아 천명을 고치나니,

[장서]의 법칙은 골짜기에서 부르는 것 같다’하였습니다. 이것으로서 보건대, 바로 그것이 흉악한 땅입니다.”

목효지가 인용한 풍수서적을 열거하면 [동림조담], [곤감가], [지리신서], [의룡경], [호수경], [지리문정],

이순풍의 [소권], [낙도가], [장서], [명산론] 등이다. 단순히 한 젊은 노비가 읽었으리라고 보기 어려운

책들이며 그가 전개한 풍수이론 역시 다른 술사들이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목효지가 지적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 왕후의 능 자리의 문제점은 크게 4가지이다.

첫째, 주산에서 혈장으로 이어지는 내룡이 약하고 끊어진 곳이 많아 장차 후손이 없을까 두렵다.

둘째 재혈이 잘못되었다. 목효지는 '건해입수, 계좌 정향에 사(巳)방이 수파로서 사방은 장생에 해당하여

불길하다'고 한 반면 대신들은 '임자입수, 임좌병향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 교수가 고전 강독 [지리신법] 참고)

셋째, 청룡이 물길과 반듯하게 달렸다(山水同去)는 것으로 즉 좌측 산이 혈장을 감싸지 못하였다.

술사들은 청룡은 남자와 관련시켜 해석하는데 청룡이 안 좋으면 아들에게 불행히 생긴다고 해석하는데

목효지 역시 이 점을 지적한다.

네 번째, 폐허가 된 옛 읍터나 장터는 무덤자리로 적당하지 못하다. 이 점 역시 현대풍수에서도 통용되는 부분이다.

세종이 목효지의 글을 읽고 당일로 우의정 신개·풍수학제조 이정녕·예조 판서 민의생·지중추원사 정인지·첨지중추원사

유순도와 도승지 조서강 등에 명하여 며느리의 무덤 자리를 다시 한번 살펴보되 문제점이 드러나면 다른 곳을 찾으라고

명한다.

다음날인 8월 26일 민의생, 조서강, 안평대군 이용 등이 목효지와 다른 지관들을 대동하고 안산의 능 자리를 살핀다.

그 결과를 토대로 8월 27일 세종에게 목효지의 주장이 틀렸다고 보고한다. 그 내용을 사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중략)

목효지의 예언 적중

결국 대신들은 목효지의 주장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못했고, 그 과정에서 재혈에 있어서 처음 정했던

임좌병향이 아니라 자좌오향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세종대왕은 목효지의 말은 취할 바가 없으나 그 극진한 마음이 가상하다 하여 목효지가 글을 올린 3일만에

파격적으로 면천을 시켜주며 풍수공부에 전념케 한다.

세종의 이와 같은 파격적 대우를 조정 대신들이 그대로 수긍할 리 없었다. 며칠 후인 9월 2일 장령 김맹헌이

'목효지가 천한 노비로서, 만일 장지의 그른 것을 알았다면 마땅히 풍수학이나 예조에 고할 것이지,

마음대로 임금에게 글을 올린 것은 죄가 됨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면천을 해준 것은 옳지 않다'며

 

목효지를 벌줄 것을 청한다. 이에 세종은 '목효지가 공이 있어서 상을 준 것이 아니라 젊어서 풍수지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면천하여 독서하게 한 것 뿐이다'라고 하여 목효지에 관한 더 이상의 논의를 금지시킨다.

결국 대신들과 당시 지관 최양선이 잡았던 자리에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는 묻힌다.

그러나 훗날 목효지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한다. 현덕왕후가 이곳에 묻힌 뒤 아들 단종은 죽임을 당해 절손되었다.

뿐만 아니라 1457년(세조3년) 세조는 안산에 묻힌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쳐 버린다.

 

흉지였음이 증명된 셈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서 중종 때 다시 현덕왕후의 유골은 수습되어 남편인

문종이 묻혀 있는 현릉(구리시 동구릉)에 안장된다.

 

* 출처:근곡풍수지리연구원http://cafe.daum.net/syltkim

 

<양주 마전현의 풍수를 논한 목효지의 상서>


목효지(睦孝智)가 상서(上書)하기를,

“지리(地理)의 술(術)이 사람의 길흉 화복에 가장 큰 것인데, 혹자들은 그 이치는 연구하지 않고 도리어 음양서(陰陽書)를 가지고 허탄하다 하여 조금도 유의하지 않으니, 참으로 웃을 만한 일입니다. 그 법이 적송자(赤松子)의 《청랑경(靑囊經)》에 근원하였는데, 지금은 그 경(經)이 없어져 세상에 전하지 않으오나, 삼대(三代) 이전의 경서에 보인 것에, ‘그 음양(陰陽)을 상본다.’ ‘집을 상보아 낙양(洛陽)을 정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성현(聖賢)의 저서(著書)에서 입언(立言)한 깊은 뜻입니다. 한(漢) 나라 때에 미쳐서 회음후(淮陰侯)가 그 어머니를 장사하는데, 높고 건조한 땅옆에 만 집을 둘 만한 곳을 경영하려 하였으니, 여기에서 산천의 형승(形勝)과 지리의 학술이 유래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魏)나라에는 관로(管輅)가 있었고, 진(晉)나라에는 곽박(郭璞)이 있었고, 수(隋) 나라에는 소길(蕭吉)이 있었고, 당(唐)나라에는 일행(一行)과 이순풍(李淳風)이 있었고, 오대(五代) 때에는 범월봉(范越鳳)이 있었고, 대송(大宋)에는 진희이(陳希夷)가 있었는데, 모두 옛사람의 전하는 것을 얻어서 세상에 이름났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땅을 상보는 술을 더욱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신(微臣)은 이 술(術)을 배운 지도 여러 해 되었습니다. 신유년에 특별히 성상(聖上)의 은혜를 입사와 여항(閭巷)에 편안히 있으면서 아침 저녁으로 조심하여 여러 글을 섭렵하여 대강 그 이치를 안 지 지금 8년이 되었습니다. 그 연원(淵源)과 정의(精義)의 묘한 것을 능히 알 수 없지마는, 그러나 그 대략만은 산수(山水)의 향배(向背)와 기맥(氣脈)의 취산(聚散)에 불과한 것입니다. 《곽씨장서(郭氏葬書)》에 이르기를, ‘전기(全氣)의 땅은 구불구불하여 자유로 왔다갔다 하고 빙 둘러서 겹겹하고 싼다.’ 하고, 또 말하기를, ‘와서 쌓이고 그쳐 모이어 양(陽)과 음(陰)이 조화된다.’ 하였으니, 세상 사람이 혹 기운이 모인 땅을 만나면 신령이 편안하고 자손이 번성하옵지만, 만일 기운이 흩어진 땅을 만나면 신령이 편안하지 못하고 자손이 쇠잔하여지니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주문공(朱文公)의 《경제문형(經濟文衡)》에 이르기를, ‘장(葬)이라고 말하는 것은 감춘다는 말이니, 그 조고(祖考)의 체(體)를 감추는 것이다. 자손으로서 그 조고의 체(體)를 감추려면 반드시 신중하고 정성스럽고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여, 견고하고 편안하고 장구한 계교를 하여 형체가 온전하고 신령이 편안하게 하면 자손이 번성하여 제사가 끊어지지 않음은 자연한 이치이다. 근세 이래로 복서(卜筮)의 법은 폐하여졌으나, 땅을 선택하는 말은 아직 남아서 사서(士庶)가 조금 사력(事力)이 있는 집에서는 그 조선(祖先)을 장사하려 하는 자가 술사(術士)를 널리 초빙(招聘)하고 명산(名山)을 널리 찾지 않는 이가 없어서 가장 좋은 곳을 택한 연후에 쓰느데, 혹 택하기를 정하게 하지 못하여 땅이 길하지 못하면 반드시 수천(水泉)·누의(螻蟻)·지풍(地風) 등속이 있어 안에 해하여 형신(形神)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고 자손도 또한 사망하고 멸절하는 근심이 있으니 두려운 일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그 술법을 대단히 좋아하여 차마 손에서 놓지를 못합니다.

지난해 병인년 겨울에 양주(楊州)로부터 마전현(麻田縣) 북쪽에 이르러 그 강산의 형승(形勝)이 웅위(雄偉)하여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 한 산(山)을 찾아 얻었는데, 대리(大利)한 남향에 계좌정향(癸坐丁向)인데, 그 땅이 심히 옛사람의 말에 합하였습니다. 조산(祖山)의 내맥(來脈)이 고양산(孤陽山)으로부터 굴곡되고 뇌뇌 낙락(磊磊落落)하여 혹은 크고 혹은 작고 혹은 일어나고 혹은 엎드리고 천을(天乙)·태을(太乙)이 좌우에 따라 끼이어 여러 산이 옹위하였으니, 《장서(葬書)》에 말한, ‘형세가 만마(萬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으면 거기에는 왕자(王者)를 장사한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형(形)으로 들어가는 곳에 이르러서는 주산(主山)이 높이 서고, 혈판[穴道]이 풍후(豐厚)하고 명당(明堂)이 넓으며, 평탄하고도 깊고 긴밀하고, 청룡·백호가 구불구불하여 둘러싸고 가로놓인 안산이 중중(重重)하고, 조대(朝對)가 첩첩으로 되어 있고, 수구(水口)와 한문(捍門)에 놓은 봉우리가 우뚝 서 있고, 양편 산이 빗장 지르듯 하여 하늘 밖을 범하지 않았으니, 《장서(葬書)》에 말한, ‘형상이 병풍을 진 것 같고 높직한 가운데에 서 있으면, 법에 그친 곳에 장사하면 왕후(王侯)가 굴기(崛起)한다.’ 한 것과 같고, 시내 물은 모여 들어 명당 안에 둘러 안고 대강은 유유하게 안산 밖에 둘렸으니, 《장서(葬書)》에 말한 ‘유유(悠悠)하고 양양(洋洋)하여 나를 돌아보고 머무르려고 한다. 그 오는 것은 근원이 보이지 않고, 그 가는 것은 흐르는 것이 보이지 않아서 산이 오고 물이 돌아오면 귀하고 수하고 재물이 있다.’ 한 것과 같았습니다. 도간(陶侃)의 착맥부(捉脈賦)에는, ‘자취를 발한 것이 멀고 멀고 형용이 단정하다. 좌우가 완전하게 굳고 산수가 모이고 응하면 젖가슴 사이에 혈법이 일정하여 있다. 신혼(神魂)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편안하고 자손이 길이 길이 창성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여러 말을 참고하여 이 산에 질정하여 보니, 옛사람의 말에 어긋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특별히 지리에 정통한 자를 명하여 다시 그 형세를 상고한 뒤에 수목을 심어서 미리 산 기운을 기르시면, 이것이 신의 지극한 소원입니다. 그러나 신이 비루하고 그릇된 술(術)을 가지고 우러러 천총을 번독하였으니, 황송하고 두려운 것이 마음에 얽히었습니다. 만번 죽을 죄를 범하였으니 몸 둘 곳을 알지 못합니다.”

하니, 풍수학(風水學)에 내리었다.

 

* 출처:다서원http://blog.daum.net/hankers/15920178

 

 

<목효지 상서문/청랑경 원본>

 

《靑囊經(청낭경)》-1건

世宗 120卷,

30年(1448 戊辰 / 명 정통(正統) 13年)

4月 19日(甲戌) 1번째기사
양주 마전현의 풍수를 논한 목효지의 상서

【태백산사고본】 38책 120권 6장 A면

【영인본】 5책 60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甲戌/睦孝智上書曰:

地理之術於人, 吉凶禍福最大也, 而或者不究其理, 反以陰陽書爲誣誕, 略不加意, 誠可笑也。 其法源於赤松子《靑囊之經》, 今其經旣亡, 不傳於世。 三代而上, 其見於經者, 曰相其陰陽, 曰相宅卜, 此皆聖賢著書立言之深意也。

降及於, 淮陰侯之葬其母也, 欲營高燥之地, 令旁可置萬家。 於是山川之勝、地理之學, 有自來矣。 管輅, 郭璞, 蕭吉, 一行李淳風, 五代有范越鳳, 大陳希夷, 皆得古人之傳, 以名于世。 由玆觀之, 相地之術, 尤不可不察也。

微臣之學此術, 蓋亦有年矣。 歲在辛酉, 特蒙上恩, 安居閭巷, 夙夜戰兢, 而涉獵諸書而粗知其理, 于今八年矣, 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之所能知也。 然其大略, 不過山水之向背、氣脈之聚散耳。

郭氏《葬書》云: “全氣之地, 宛委自復, 回環重復。” 又云: “來積止聚, 沖陽和陰。” 世之人或遇氣聚之地, 則神靈安而子孫盛, 若遇氣散之地, 則神靈不安而子孫凌替, 其可忽諸! 朱文公《經濟文衡》云: “葬之爲言, 藏也, 所以藏其祖考之體也。” 以子孫而藏其祖考之體, 則必致勤重誠敬之心, 以爲固安久遠之計, 使其形體全而神靈得安, 則其子孫盛而祭祀不絶, 此自然之理也。

近世以來, 卜筮之法雖廢, 擇地之說猶存, 士庶稍有事力之家, 欲藏其先者, 無不廣招術士, 博訪名山, 擇其善之尤者, 然後用之。 其或擇之不精, 地之不吉, 則必有水樂螻蟻地風之屬, 以賊乎內, 使其形神不安, 而子孫亦有死亡滅絶之憂, 其可畏也。 以是微臣(酤)〔酷〕嗜此術, 不忍釋手, 而去歲丙寅冬, 自楊州至于麻田縣北, 見其江山之勝, 雄偉非常, 尋得一山, 大利南向, 坐癸向丁, 其地甚合古人之說。

祖山之來脈, 自孤陽山委蛇曲折, 磊磊落落, 或大或小, 或起或伏, 天一太乙夾從左右, 群山擁衛, 如《葬書》所謂勢如萬馬自天而下, 其葬王者也。 至於入形入處, 主山高峙, 穴道豐厚, 明堂寬平而邃密, 龍虎蜿蜒而回抱, 橫案重重, 朝對疊疊, 水口捍門, 高峯卓立, 兩山關鎖, 不犯天外, 如《葬書》所謂形如負扆, 有隴中峙, 法葬其止, 王侯崛起者也。 溪澗朝集而環抱於明堂之內, 大江悠洋而繞纏橫案之外, 如《葬書》所謂悠悠洋洋, 顧我欲留, 其來無源, 其去無流, 山來水回, 貴壽而財也。

陶侃《捉脈賦》: “發跡迢迢, 形容端正。 左右交固, 山水朝應。 胸乳之間, 穴法一定。 神魂由是安(馬)〔焉〕, 子孫綿緜昌盛。” 臣參考衆說而質諸此山, 則似不違於古人之說, 伏望特命精於地理者, 更考其形勢, 而後栽植樹木, 預養山氣, 此臣之至願也。 然而微臣以鄙繆之術, 仰塵天聰, 悚悸交心, 輒昧萬死, 罔知攸措。

下風水學。

목효지(睦孝智)가 상서(上書)하기를,

“지리(地理)의 술(術)이 사람의 길흉화복에 가장 큰 것인데, 혹자들은 그 이치는 연구하지 않고 도리어 음양서(陰陽書)를 가지고 허탄하다 하여 조금도 유의하지 않으니, 참으로 웃을 만한 일입니다. 그 법이 적송자(赤松子)《청랑경(靑囊經)》에 근원하였는데, 지금은 그 경(經)이 없어져 세상에 전하지 않으오나, 삼대(三代) 이전의 경서에 보인 것에, ‘그 음양(陰陽)을 상본다.’ ‘집을 상보아 낙양(洛陽)을 정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성현(聖賢)의 저서(著書)에서 입언(立言)한 깊은 뜻입니다.

한(漢)나라 때에 미쳐서 회음후(淮陰侯)가 그 어머니를 장사하는데, 높고 건조한 땅 옆에 만 집을 둘 만한 곳을 경영하려 하였으니, 여기에서 산천의 형승(形勝)과 지리의 학술이 유래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魏)나라에는 관로(管輅)가 있었고, 진(晉)나라에는 곽박(郭璞)이 있었고, 수(隋)나라에는 소길(蕭吉)이 있었고, 당(唐)나라에는 일행(一行)이순풍(李淳風)이 있었고, 오대(五代) 때에는 범월봉(范越鳳)이 있었고, 대송(大宋)에는 진희이(陳希夷)가 있었는데, 모두 옛사람의 전하는 것을 얻어서 세상에 이름났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땅을 상보는 술을 더욱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신(微臣)은 이 술(術)을 배운 지도 여러 해 되었습니다. 신유년에 특별히 성상(聖上)의 은혜를 입사와 여항(閭巷)에 편안히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조심하여 여러 글을 섭렵하여 대강 그 이치를 안 지 지금 8년이 되었습니다. 그 연원(淵源)과 정의(精義)의 묘한 것을 능히 알 수 없지마는, 그러나 그 대략만은 산수(山水)의 향배(向背)와 기맥(氣脈)의 취산(聚散)에 불과한 것입니다.

곽씨(郭氏) 《장서(葬書)》에 이르기를, ‘전기(全氣)의 땅은 구불구불하여 자유로 왔다 갔다 하고 빙 둘러서 겹겹하고 싼다.’ 하고, 또 말하기를, ‘와서 쌓이고 그쳐 모이어 양(陽)과 음(陰)이 조화된다.’ 하였으니, 세상 사람이 혹 기운이 모인 땅을 만나면 신령이 편안하고 자손이 번성하옵지만, 만일 기운이 흩어진 땅을 만나면 신령이 편안하지 못하고 자손이 쇠잔하여지니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주문공(朱文公)《경제문형(經濟文衡)》에 이르기를, ‘장(葬)이라고 말하는 것은 감춘다는 말이니, 그 조고(祖考)의 체(體)를 감추는 것이다. 자손으로서 그 조고의 체(體)를 감추려면 반드시 신중하고 정성스럽고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여, 견고하고 편안하고 장구한 계교를 하여 형체가 온전하고 신령이 편안하게 하면 자손이 번성하여 제사가 끊어지지 않음은 자연한 이치이다.

근세 이래로 복서(卜筮)의 법은 폐하여졌으나, 땅을 선택하는 말은 아직 남아서 사서(士庶)가 조금 사력(事力)이 있는 집에서는 그 조선(祖先)을 장사하려 하는 자가 술사(術士)를 널리 초빙(招聘)하고 명산(名山)을 널리 찾지 않는 이가 없어서 가장 좋은 곳을 택한 연후에 쓰는데, 혹 택하기를 정하게 하지 못하여 땅이 길하지 못하면 반드시 수천(水泉)·누의(螻蟻)·지풍(地風) 등속이 있어 안에 해하여 형신(形神)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고 자손도 또한 사망하고 멸절하는 근심이 있으니 두려운 일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그 술법을 대단히 좋아하여 차마 손에서 놓지를 못합니다.

지난해 병인년 겨울에 양주(楊州)로부터 마전현(麻田縣) 북쪽에 이르러 그 강산의 형승(形勝)이 웅위(雄偉)하여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 한 산(山)을 찾아 얻었는데, 대리(大利)한 남향에 계좌정향(癸坐丁向)인데, 그 땅이 심히 옛사람의 말에 합하였습니다.

조산(祖山)의 내맥(來脈)이 고양산(孤陽山)으로부터 굴곡되고 뇌뇌 낙락(磊磊落落)하여 혹은 크고 혹은 작고 혹은 일어나고 혹은 엎드리고 천을(天乙)·태을(太乙)이 좌우에 따라 끼이어 여러 산이 옹위하였으니, 《장서(葬書)》에 말한, ‘형세가 만마(萬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으면 거기에는 왕자(王者)를 장사한다. ’는 것과 같았습니다. 형(形)으로 들어가는 곳에 이르러서는 주산(主山)이 높이 서고, 혈판[穴道]이 풍후(豐厚)하고 명당(明堂)이 넓으며, 평탄하고도 깊고 긴밀하고, 청룡·백호가 구불구불하여 둘러싸고 가로놓인 안산이 중중(重重)하고, 조대(朝對)가 첩첩으로 되어 있고, 수구(水口)와 한문(捍門)에 놓은 봉우리가 우뚝 서 있고, 양편 산이 빗장 지르듯 하여 하늘 밖을 범하지 않았으니, 《장서(葬書)》에 말한, ‘형상이 병풍을 진 것 같고 높직한 가운데에 서 있으면, 법에 그친 곳에 장사하면 왕후(王侯)가 굴기(崛起)한다.’ 한 것과 같고, 시내 물은 모여 들어 명당 안에 둘러 안고 대강은 유유하게 안산 밖에 둘렸으니, 《장서(葬書)》에 말한 ‘유유(悠悠)하고 양양(洋洋)하여 나를 돌아보고 머무르려고 한다. 그 오는 것은 근원이 보이지 않고, 그 가는 것은 흐르는 것이 보이지 않아서 산이 오고 물이 돌아오면 귀하고 수하고 재물이 있다. ’ 한 것과 같았습니다.

도간(陶侃)착맥부(捉脈賦)에는, ‘자취를 발한 것이 멀고멀고 형용이 단정하다. 좌우가 완전하게 굳고 산수가 모이고 응하면 젖가슴 사이에 혈법이 일정하여 있다. 신혼(神魂)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편안하고 자손이 길이길이 창성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여러 말을 참고하여 이 산에 질정하여 보니, 옛사람의 말에 어긋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특별히 지리에 정통한 자를 명하여 다시 그 형세를 상고한 뒤에 수목을 심어서 미리 산 기운을 기르시면, 이것이 신의 지극한 소원입니다. 그러나 신이 비루하고 그릇된 술(術)을 가지고 우러러 천총을 번독하였으니, 황송하고 두려운 것이 마음에 얽히었습니다. 만번 죽을 죄를 범하였으니 몸 둘 곳을 알지 못합니다. ”

하니, 풍수학(風水學)에 내리었다.

 

靑囊經

上卷

天尊地卑, 陽奇陰偶, 一六共宗, 二七同道, 三八爲朋, 四九爲友,

五十同途, 闢闔奇偶, 五兆生成, 流行終始。

八體宏佈, 子母分施,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中五立極, 制臨四方, 背一面九, 三七居旁, 二八四六, 縱橫紀網。

陽以相陰, 陰以含陽, 陽生於陰, 柔生始剛, 陰德宏濟, 陽德順昌。

是故陽本陰, 陰育陽, 天依形, 地附氣, 此之謂化始。

[蔣注]

此篇은 以無形之氣가, 爲/天地之始, 而推原道之所從來也, 夫陽氣屬天, 而實兆於地之中, 聖人作易, 以明天地之道, 皆言陰陽之互爲其根而已, 天高而尊, 地下而卑, 然尊者有下濟之德, 卑者有上行之義, 一陰一陽, 一奇一偶, 其數參伍, 所以齊一, 其形對待, 所以往來, 天地之匡廓, 由此而成, 四時之代謝, 由此而運, 萬物之化育, 由此而胚, 夫此陰陽奇偶之道, 隨舉一物, 無不有之, 天地無心, 聖人無意, 自然流露, 而顥其象於河圖, 遂有一六共宗, 二七同道, 三八爲朋, 四九爲友, 五十同途之象, 聖人因其象而求其義, 以奇者屬陽, 有天一天三天五天七天九之名, 以偶者爲陰, 而有地二地四地六地八地十之名, 蓋有一必有二, 有三必有四, 有五必有六, 有七必有六, 有七必有八, 有九必有十, 所謂參伍之數也, 此一彼二, 此三彼四, 此五彼六, 此七彼八, 此九彼十, 此所謂對待之形也, 天數與地數各得其五, 此所謂一成之數, 而百千萬億無窮之數, 由此而推之也, 天數地數, 各得其五, 合二五而成十, 蓋有五即有十, 猶有一即有二, 陰陽自然之道也, 故有天之一, 即有地之六, 有地之二, 即有天之七, 有天之三, 即有地之八, 有地之四, 即有天之九, 有天之五, 即有地之十, 此陰陽之數, 以參伍而齊一者也, 易曰, 五位相得, 蓋謂此也, 而一六在下, 則二七必在上, 三八在左, 則四九必在右, 五居中, 則十亦居中, 此陰陽之數, 對待而往來者也, 易曰, 五位相得, 而各有合, 蓋謂此也, 以其參伍而齊一, 故一奇一偶燦然而不棼, 以其對待而往來, 故奇偶之間, 而一闔一闢, 潜然而自應, 此生成之所從也, 天一生水, 而地六成之, 地二生火, 而天七成之, 天三生木, 而地八成之, 地四生金, 而天九成之, 天五生土, 而地十成之, 一生一成, 皆陰陽交媾之妙, 二氣相交, 而五行兆焉, 降於九天之上, 升於九地之下, 周流六虛, 無有休息, 始而終, 終而復始, 無一息流行, 則無一息不交媾, 當其無而其體渾然已成, 當其有而其體秩然有象, 聖人因河圖之象數, 而卦體立焉, 夫河圖止有四象, 而卦上成八體十何也, 蓋一畫成爻, 爻者交也, 太始之氣, 止有一陽, 是名太陽, 太陽一交, 而成太陰, 是曰兩儀, 太陽太陰再交, 而成少陰少陽, 並太陽太陰, 是曰四象, 此河圖之顯象也, 蓋即河圖每方二數, 析之則有八, 此河圖之象隱而顯者也, 故卦之八, 由於四象, 爻之三, 由於三交, 乾坤二卦爲母, 六卦爲子, 此八卦之子母也, 諸卦自爲母, 三爻爲子, 此一卦之子母也, 以此分施造化, 布滿宇宙之間, 於是舉陽之乾爲天, 對以陰之坤爲地, 謂之天地定位, 天覆於上, 則地載於下也, 此陰陽之一交, 而成天地者也, 舉陽之艮爲山, 對以陰之兌爲澤, 謂之山澤通氣, 山載於下, 則澤受於上也, 舉陽之震爲雷, 對以陰之巽爲風, 謂之雷風相薄, 雷發於下, 則風動於上也, 舉陽之坎爲水, 對以陰之離爲火, 謂之水火不相射, 水火平衡, 形常相隔, 而情常相親也, 此三陰三陽之各自爲交, 而生萬物者也, 先賢以此爲先天之卦, 伏羲所定, 本於龍馬負圖而作, 實則渾沌初分, 天地開闢之象也, 四象虛中, 而成五位, 此中五者, 即四象之交位, 乾之眞陽, 坤之眞陰, 皆無形而爲土之形, 此土之下爲黃泉, 皆坤地積陰之氣, 此土之上爲清虛, 皆乾天積陽之氣, 而土膚之際, 平鋪如掌, 乃至陰至陽, 乾坤交媾之處, 水火雷風山澤, 諸凡天地之化機, 皆露於此, 故中五者, 八卦托體儲精, 成形顯用之所也, 故河圖洛書, 同此中五以立極也, 河圖雖有四象, 而先天陽升陰降, 上下初分, 未可謂之四方, 自中五立極, 而後四極劃然, 各正其方矣, 有四方之正位, 而四維介於其間, 於是八方立焉, 統中五皇極而爲九, 分而布之, 一起正北, 二居西南, 三居正東, 四居東南, 五復居中, 六居西北, 七居正西, 八居東北, 九居正南, 謂之九疇, 此雖出於洛書, 而實與河圖之數符合, 天地之理, 自然發現, 無不同也, 布其位曰, 戴九履一, 左三右七, 二四爲肩, 六八爲足, 其八方之位, 適與八方之數均齊, 聖人即以八卦隷之, 而其次序曰, 坎一, 坤二, 震三, 巽四, 中五, 乾六, 兌七, 艮八, 離九, 此則四正四維, 不易之定位也, 數雖起一, 而用實首震, 蓋成位之後, 少陽用事, 先天主天, 而後天主日, 元子繼體代父爲政也, 易曰, 帝出乎震, 齊乎巽, 相見乎離, 致役乎坤, 說言乎兌, 戰乎乾, 勞乎坎, 成言乎艮, 一二三四五六七八九者, 古今之禪代推移, 周而復始者也, 震巽離坤兌乾坎艮者, 日月之出沒, 四時之氣機, 運行遷謝, 循環無端者也, 先賢以此爲後天之卦, 昔者大禹治水, 神龜出洛, 文王因之作後天之卦, 豈伏羲畫卦之時, 未有洛書, 而大禹衍疇之時, 未有後天卦位耶, 竊以爲圖書, 必出於一時, 而先天後天卦位, 亦定於一日, 伏羲但有卦爻, 而文王始繫之辭耳, 河圖洛書非有二數, 先天後天非有二義也, 特先天之卦以陰陽之對待者言, 有彼此而無方隅, 後天之卦以陰陽之流行者言, 則有方隅矣, 至其作卦之旨, 要在於陰陽之亙根則一也, 夫易之道, 貴陽賤陰, 則陽當爲主, 而陰當爲輔, 而此云陽以相陰者何也?蓋陽之妙, 不在於陽, 而在於陰, 陰中之陽, 乃眞陽也, 故陰爲之感, 而陽來應之, 似乎陰反爲君, 而陽反爲相, 此經言神明之旨也, 然陽之所以來應乎陰者, 以陰中本自有之, 以類相從, 故來應耳, 豈非陰含陽乎, 陰含陽則能生陽矣, 一切發生之氣, 皆陽司之, 則皆自陰出之者也, 剛柔即陰陽, 陰陽以氣言, 剛柔以質言, 易曰:乾剛坤柔, 又曰:剛柔相摩, 八卦相盪, 八卦之中, 皆有陰陽, 則皆有剛柔, 若以陽爲剛, 以陰爲柔, 則宜乎剛生於柔矣, 而乃云柔生於剛者何也;無形之氣, 陽剛而陰柔, 有形之質, 陰剛而陽柔, 於有形之剛質, 又生無形之柔氣, 質生氣, 氣還生質, 故曰柔生於剛也。凡其所以能爲相助, 能爲包含生生不息, 如是者, 則以陰之與陽, 蓋自有其德也。惟陰之德, 能弘大夫陽, 以濟陽之施, 故陽之德, 能親順夫陰, 以昌陰之化, 此陰陽之妙, 以氣目感, 見於河圖洛書, 先後天之卦象者如是, 由是則可以知天地之道矣。天地之道, 陽常本於陰, 而陰常育於陽, 故天非廓然空虛者爲天也, 其氣常依於有形, 而無時不下濟, 地非塊然不動者爲地也, 其形常附於元氣, 而無時不上升, 然則天之氣, 常在地下, 而地之氣, 皆天之氣, 陰陽雖曰二氣, 止一氣耳, 所以生天地者此氣, 所以生萬物者此氣, 故曰化始也。


中卷
天有五星, 地有五行, 天分星宿, 地列山川,

氣行於地, 形麗於天, 因形察氣, 以立人紀。

紫微天極, 太乙之御, 君臨四正, 南面而治,

天市東宮, 少微西掖, 太極南垣, 旁照四極。

四七爲經, 五德爲緯, 運斡坤輿, 垂光乾紀,

七政樞機, 流通終始。

地德上載, 天光下臨, 陰用陽朝, 陽用陰應,

陰陽相見, 福祿永貞, 陰陽相乘, 禍咎踵門。

天之所臨, 地之所盛, 形止氣蓄, 萬物化生, 氣感而應, 鬼福及人,

是故天有象, 地有形, 上下相須而成一體, 此之謂化機。

[蔣注]此篇以有形之象, 爲天地之化機, 而指示氣之所從受也, 上文既明河圖洛書, 先天後天八卦之理, 聖人作易之旨盡於此, 天地陰陽之道亦盡於此矣, 然聖人不自作易, 其四象八卦, 皆仰法於天, 故此篇專指天象以爲言, 夫易之八卦, 取象於地之五行, 實因天有五曜, 五曜凝精上, 而五行流氣於下, 天之星宿, 五曜之分光列象者也, 地之山川, 五行之成體結撰者也, 故山川非列宿, 而常具列宿之形, 觀其形之所呈, 即以知其氣之所禀, 夫有是形, 御是氣, 物化自然, 初未及乎人事, 而聖人仰觀俯察, 人紀從此立焉, 木爲歲星, 其方爲東, 其方爲中央, 其令爲季夏, 其德爲信, 金爲太白, 其方爲西, 其令爲秋, 其德爲義, 水爲辰星, 其方爲北, 其令爲冬, 其德爲智, 洪御世宰物, 一天地之道也, 備言天體, 則有七政以司元化, 日月五星是也, 有四垣以鎮四方, 紫微天巿太微少微是也, 有二十八宿以分布周天, 蒼龍七宿, 角亢氏房心尾萁, 朱鳥七宿, 井鬼柳星張翼軫, 白虎七宿, 奎婁胃昂畢觜參, 玄武七宿, 斗牛女虛危室璧是也, 四垣即四象, 七政即陰陽五宿之根本, 其樞在北斗, 分之四方, 而爲二十八宿, 故房虛昂星應日, 心危畢張應月, 角斗奎井應歲星, 尾室觜翼應熒惑, 亢失婁鬼應太白, 箕璧參軫應辰星, 氏女胃柳應鎮星, 臨制其方, 各一七政也, 渾天周匝雖云四方, 而已備八卦二十四爻之象矣, 非經無以立極, 非緯無以嬗化, 一經一緯, 眞陰眞陽之交道也, 交道維絡, 而後天之體, 環周而固於外, 地之體, 結束而安於中, 此元氣之流行, 自然而成器者也, 其始無始, 其終無終, 包羅六合, 入於無間, 雖名陰陽, 一氣而已, 人能得此一氣, 則生者, 可以善其生, 而死者可以善其死, 地理之道, 蓋人紀之一端, 此端既立, 則諸政以次應之, 故聖人重其事, 其用在地, 而必求端於天, 本其氣之所自來也, 然氣不可見, 而形可見, 不可見之氣, 即寓於有可見之形, 形者氣之所成, 而即以載氣, 氣發於天, 而載之者地, 氣本屬陽, 而載之者陰, 故有陰即有陽, 地得其所, 則天氣歸之, 天地無時不交會, 陰陽無時不相見, 相見而得其沖和之正, 則爲福德之門, 相見而不得其沖和之正, 即爲相乘, 而名禍咎之根, 禍福殊途, 所爭一間, 良足畏也, 且亦知星宿之所以麗於天, 山川之所以列於地者乎, 天之氣, 無往不在, 而日得天之陽精, 而恒爲日, 而月得天之陰精, 而恒爲月, 五曜得天五氣之精, 而恒爲緯, 至於四垣二十八宿, 眾星環列, 又得日月五星之精, 而恒爲經, 此則在天之有形者, 有以載天之氣也, 地之氣無往不在, 而山得日月五星之氣, 而恒爲山, 川得日月五星之氣, 而恒爲川, 此則在地之有形者, 有以載地之氣也, 列宿得天之氣, 而生於天, 列宿與天爲一體也, 山川得地之氣, 而生於地, 山川與地爲一體也, 萬物之生於天地, 何獨不然, 夫萬物非能自生, 借天地之氣以生, 然天地非有意生萬物, 萬物各自有地焉, 適與天地之氣, 相遇於窅冥恍惚之中, 夫有所沾濡焉, 夫有所綢繆焉, 夫有所苞孕焉, 遂使天地之氣, 止而不去, 積之累之, 與物爲一, 乃勃然以生耳, 地理之道, 必使我所取之形, 足以納氣, 而氣不我, 去則形與氣交而爲一, 必使我所據之地, 足以承天, 而天不我隔, 則地與天交而爲一, 夫天地形氣既合而爲一, 則所葬之骨, 亦與天地之氣爲一, 而死魄生人, 氣脈灌輸, 亦與爲一, 福應之來, 若機張審括, 所謂化機也, 不然, 蓄之無門, 止之無術, 雖周天列宿, 炳燿中天, 而我不蒙其照, 雖大地陽和, 滂流八表, 而我不沽其澤, 天爲匡廓, 地爲稿壤, 骨爲速朽, 子孫爲寄生, 我未見其獲福也, 可不慎哉, 可不慎哉。


下卷
無極而太極也, 理寓於氣, 氣囿於地, 日月星宿, 剛氣上騰, 山川草木,

柔氣下凝, 資陽以昌, 用陰以成。

陽德有象, 陰德有位, 地有四勢, 氣從八方, 外氣行形, 內氣止生, 乘風則散, 界水則止。

是故順五兆, 用八卦, 排六甲, 佈八門, 推五運, 定六氣, 明地德, 立人道, 因變化, 原終始, 此謂之化成。

[蔣注]

此篇申言形氣雖殊, 而其理則一, 示人以因形求氣, 爲地理入用之準繩也, 易曰:易有太極, 是生兩儀, 太極者, 所謂象帝之先, 先天地生, 能生天地萬他之祖根也, 本無有物, 無象無數, 無方隅, 無往不在, 言太極, 而無極可知, 後賢立說, 慮學者以太極爲有物, 故申言以明之曰, 無極而太極也, 大而天地, 細而萬物, 莫不各有太極, 物物一太極, 各一物全具一天地之理, 人知太極物物皆具, 則地理之道, 思過半矣, 理寓於氣, 氣一太極也, 氣囿於形, 形一太極也, 以至中有太極, 故能下凝, 資陽以昌, 資之以太極也, 用陰以成, 用之以太極也, 太極之所顯露者, 謂之象, 而所宣布者, 謂之位, 地無四勢, 以太極乘之, 而命之爲四勢, 氣無八方, 以太極御之, 而命之爲八方, 勢與方者, 其象其氣, 而命之爲勢爲方者, 其極, 極豈有定耶, 則勢與方, 亦豈有定耶, 四勢之中, 各自有象, 則八方之中, 亦各自有氣, 然此諸方之氣, 然此諸方之氣, 皆流行之氣, 因方成形, 只謂之外氣, 苟任其流行而無止蓄, 則從八方而來者, 還從八方而去, 千山萬水, 僅供耳目之玩, 如傳舍, 如過客, 總不足以濬發靈機, 滋荄元化, 必有爲之內氣者焉, 所謂內氣, 非內所自有, 即外來流行之氣, 於此乎止, 有此一止, 則八方之行形者, 皆招攝翕聚乎此, 是一止而無所不止, 於此而言太極, 乃爲眞太極矣, 無所不止, 則陽無所不資, 陰無所不用, 而生生不息之道在其中, 太極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萬事萬物, 皆胚胎乎此, 前篇形止氣蓄, 萬物化生, 蓋謂此也, 然但言止, 而不申明所以止之義, 恐世之審氣者, 茫然所措手, 故舉氣之最大而流行無間者, 曰風曰水, 夫風有氣而無形, 禀乎陽者也, 水有形而兼有氣, 二者皆行氣之物, 氣之陽者, 從風而行, 氣之陰者從水而行, 而行陽氣者, 反能散陽, 以陽中有陰也, 行陰氣者, 反能止陽, 以陰中有陽也, 大塊之間, 何處無風, 何處無水, 風原不能散氣, 所以噓之使散者, 病在乎乘, 水原不能止氣, 所以吸之使止者, 妙在乎界, 苟能明乎乘與界之爲義, 審氣以推太極之法, 概可知矣, 上文反覆推詳, 皆泛言形氣之理, 至是乃實指地理之用, 於是總括其全焉, 順五兆, 以五星之正變審象也, 用八卦, 以八方之旺衰審位也, 排六甲, 以六甲之紀年審運也, 布八門, 以八風之開闔審氣也, 地理之矩矱盡於此矣, 推五運, 以五紀之盈虛審歲也, 定六氣, 以六氣之代謝審令也, 謹歲時以扶地理之橐籥, 盡於此矣, 如是則太極不失其正, 而地德可明, 然聖人之明地德也, 非徒邀福而已, 蓋地之五行, 得其順, 則人之生也, 五德備其全, 而五常若其性, 聖賢豪傑, 接踵而出, 而禮樂政刑, 無不就理, 豈非人道自此立乎, 然此亦陰陽變化, 自然之妙, 雖有智者, 不能以私意妄作, 夫亦爲知其所以然, 因之而已, 夫卜地葬親, 乃慎終之事, 而子孫之世澤, 皆出其中, 則人道之所以終, 即爲人道之所以始, 然則斯道也者, 聖人開物成務, 無有大於此者也, 謂之化成宜哉。

 

*출처:명품벽강철학연구소http://cafe.daum.net/bg0115

 

몽유도원풍수를 통해 벌어지는 권력암투의 세계!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몽유도원』. 안평대군이 꿈에 보았다는 도원을 <몽유도원도>로 남긴 화가 안견, 해박한 풍수지식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노비 목효지, 안견의 그림과 목효지의 풍수를 권력투쟁의 도구로 이용한 안평대군과 수양대군. 각자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의 허망함과 인생의 의미를 돌아본다. 풍수의 힘을 빌려려는 권력자들과 그들을 이용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이 벌이는 권모술수의 세계가 펼쳐진다

 

*인물 정보-책:조선노비열전[조선노비열전] 노력·실력으로 노비 벗어난 사람들/위 자료들은 이 책을 통해 얻은 정보를 검색을 통하여 수집해 논 것입니다.  좋은 자료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http://cafe.daum.net/sylt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