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우리가 한문문명권의 역사를 깊이 살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중국의 문자언어인 한문을 공용해온 중국·일본·월남 및 조선을 포함하는 이 지역은 인종과 문화에서 아주 동질적이다. 유가(儒家)를 사회철학으로 삼아 그것에 정통한 학자-관리 계층이 군주정치를 떠받쳤다. 대승불교가 널리 퍼져서 종교적으로 어느 문명보다 너그러웠다.
한문문명은 중국 당(唐) 왕조에 극성했다. 당은 높은 문화를 누렸을 뿐 아니라 교역과 외교로 국제 질서를 세웠다. 빈공과(賓貢科)는 이런 노력을 상징한다. 주변부의 나라들도 열심히 당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당시 유럽은 서로마제국이 망하고 분열되어 ‘암흑기’라 불린 시기였다.
불행하게도 한문문명은 끝내 과학혁명을 이루지 못했고,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이룬 유럽 문명에 압도되었다. 자연히 우세한 문명을 받아들여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이 일에서 일본이 경이적으로 성공해 단 한 세대 만에 근대국가로 변모했다. 다른 나라들이 일본을 본받자 일본은 유럽 문명이 들어오는 도관(導管)이 되었다.
20세기 초엽 일본은 동북아를 위협하던 강대국 러시아와 싸워 이겼다. 근대에선 처음으로 비백인 국가가 백인 국가에 이긴 것이다. 당연히 유럽의 식민지들은 일본의 승리에 고무되었고 인도·이집트·월남의 지식인들은 일본에서 배우려 했다. 전사가 존 풀러는 1905년의 여순항 함락을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비겼다. 러일전쟁을 문명권 사이의 충돌로 본 것이다.
일본은 이런 기대를 저버렸다. 유럽 세력으로부터 한문문명권을 수호하는 대신, 그들을 본받아 침략에 나섰고 그들보다 더 악랄하게 침탈했다. 한문문명권의 수호자라는 위업을 이루기엔 일본의 도덕 수준이 너무 낮았다. 지금 한문문명권이 성찰하고 교훈을 얻어야 할 대목은 이렇게 일본이 놓친 기회다. 일본의 만행들이야, 일본의 인정이나 사과와 관계없이 역사에 기록되었다.
패배한 일본이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나자 프랑스가 다시 월남을 통치하려 했다. 공산주의 월맹은 프랑스와 싸워 이기고 독립을 되찾았다. 이것은 식민지가 스스로 유럽 종주국을 물리치고 독립한 첫 사례다. 불행하게도 월맹은 이미 정당성을 갖춘 자유 월남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강요해서 주민들에게 엄청난 괴로움을 주었다.
한국은 미국의 군정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한 행운을 바탕으로 건강하게 자라났다. 특히 외부지향적 정책으로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그 자체로 큰 성취이면서 ‘종속이론’에 끌리던 뒤진 사회들에 올바른 발전 모형을 제공했다. 이 사실이 우리 자긍심의 바탕이다.
반면에 더할 나위 없이 억압적인 공산당 정권이 북한을 지배해온 것은 같은 민족인 우리로선 참으로 괴롭다. 조선의 전통에 있던 어떤 병적 요소가 그런 지옥을 만들었나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묘하게도 한문문명의 중심인 중국만이 현대 역사에 대한 기여가 없다. 1840년대에 아편전쟁으로 유럽 세력과 부딪친 뒤, 중국은 바뀐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끝내는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일본 육군의 태반이 중국에 묶였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태평양전쟁에 대한 중국의 공헌은 컸지만, 궁극적으로 일본을 패배시킨 것은 미국이다.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하자 중국의 역할은 아예 부정적이 되었다. 명령경제의 도입으로 국민들은 극도로 억압되었고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한국전쟁에선 침략국인 북한을 도와서 국제연합으로부터 ‘침략자’로 규정되었다. 변경의 소수민족들을 억압하고 둘레의 거의 모든 나라들과 국경 분쟁을 일으켰다.
그런 역사가 이번 중국 ‘전승절’ 행사에 그늘을 드리웠다. 용전분투한 국민당군의 공헌을 중공군이 가로챈 데다가 함께 싸운 미국·영국·네덜란드 및 호주는 축하하지도 않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화사한 모습은 다른 자유국가의 지도자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드라지게 했다.
초강대국이 된 뒤 중국은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 질서의 모습을 밝히지 않았다. 실은 나라가 커지면 책임도 커진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한 세기 전 일본이 한문문명을 수호할 기회를 놓쳤듯이, 지금 중국은 인류 문명의 진화에 기여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높은 도덕 수준이 떠받쳐야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제 이웃들이 중국에 도덕적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 도덕심은 사람의 천성이므로,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책이다. 모두 힘과 전략을 얘기하지만, 중국이 도덕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의 근본은 도덕이다. 국제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 중앙일보 -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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