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이다. 나는 지금 가장으로서 애비를 죽이려고 한 자식을 처분하는 것이야.”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대처분’을 내리며 만류하는 신하들에게 일갈한다. 세자의 생모가 청하고 가장인 자신이 결정한 집안일인데 왜 간섭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1762년 여름에 일어난 임오화변, 즉 사도세자의 비극을 과연 집안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왕가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쩌면 집안일과 나랏일의 경계를 긋는 것조차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 ‘사도’에서는 굳이 영조의 입을 빌어 이 비극이 집안일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인과관계를 고심한 징표로 보인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사도세자를 붕당정치의 희생양으로 여긴다. 집권당인 노론의 전횡에 맞서다가 그들에게 약점 잡힌 영조에 의해 최후를 맞은 비운의 왕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인과관계의 정점에 노론이나 임금이 아닌 아버지를 자리매김 시켰다.
이와 관련해 ‘사극 속 역사인물’에서도 작년에 경종,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 영조를 연거푸 다루며 ‘비밀의 문’을 열고자 한 바 있다. 처음에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게 비정한 정치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중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누적된 갈등을 주목하게 되었다. <영조실록>, <한중록>, <대천록> 등 다양한 입장에서 ‘대처분’을 기록한 사료들을 검토한 결과 인과관계의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다.
재위기간 내내 ‘경종 독살설’, ‘무수리 소생’이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완벽한 임금의 자질을 기대하고 다그쳤다. “저리 한 일은 이리 아니 하였다 꾸중하셨고, 이리 한 일은 저리 아니 하였다 꾸중하셨다.”(한중록) “임금이 매양 엄한 하교로 절실하게 책망하니, 세자가 의구심에서 질병이 더하게 되었다.”(영조실록)
아버지의 다정한 말 한 마디에 목말랐을 아들은 대리청정을 거치며 혹독한 질책 속에 미쳐갔다. “세자가 내관, 계집종 등을 죽여 100여 명에 이르렀고, 단근질은 참혹하고 잔인하여 말로 할 수 없었다.”(대천록) “홧김에 칼 차고 경희궁에 가서 어떻게 하고 싶다, 하셨다. 온전한 정신이면 어찌 부왕을 죽이고 싶다는 극언을 하리오.”(한중록)
결국 두 사람의 편벽과 광기는 격렬하게 충돌하였고 그 종착역은 아버지를 죽이려 한 아들에게 책임을 묻는 ‘대처분’이었다. “신의 목소리를 들었느냐? 정성왕후가 변란이 호흡지간에 있다고 하였다.”(영조실록) “임금의 전교는 더욱 엄해지고 영빈이 고한 바를 대략 진술하였는데, 영빈은 바로 세자의 생모 이씨로서 임금에게 밀고한 자였다.”(영조실록)
그렇다면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을까? <경국대전>, <대명률> 등 당시의 법전 어디에도 이런 형벌은 금시초문이었다. 앞뒤 정황을 고려하면 그것이 영조의 노림수였을 가능성이 크다. 법전에 나오는 형벌은 반드시 죄목과 연동된다. 예컨대 역모죄를 지으면 목을 베거나 사지를 찢거나 사약을 내리는 식이다. 반면 법전에 나오지 않는 ‘처분’은 죄목으로부터 자유롭다. 영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도세자의 역모죄를 피하려 한 것이다. 그래야만 세손에게 ‘역적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걸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 역을 맡은 송강호가 임오화변을 집안일이라고 강변하는 연기는 뒤주의 진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면 숨 막히는 설득력을 갖는다. 사실 세자가 부왕을 죽이겠다는 말을 발설한 것만으로도 역모요, 중대한 나랏일이었다. 하지만 영조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 한 집안일로 처분함으로써 세손을 지켜냈다. 그로부터 14년 후 세손이 왕위에 오르니 그이가 바로 정조다. 자식을 가슴에 묻으며 나랏일을 집안일로 만든 영조의 안배가 없었다면 그날은 오지 않았을 터. 영조와 정조 사이의 ‘의리(義理)’는 그래서 더 애틋하다.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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