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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파-연합적군-에 의해 일어난 인질 사건]아사마 산장 사건

Bawoo 2015. 9. 30. 00:22

 

 

아사마 산장 사건

아사마 산장 (2009년)
참가자 연합 적군
일본 경찰청
장소 일본 나가노 현 가루이자와 정
날짜 1972년 2월 19일 - 28일
사망자 경찰관 2명
민간인 1명
부상자 경찰관 26명
보도관계자 1명
결과 연합 적군 조직원 5명 체포
인질 1명 구출

 

아사마 산장 사건(일본어: 浅間山荘事件 (あさまさんそうじけん)

아사마 산소 지켄[*]

1972년 2월 19일 일본 나가노 현 기타사쿠 군 가루이자와 정에 있는 가와이 악기 소유의 사원용 휴양 시설인 아사마 산장에서 일본 적군의 일부 세력인 연합 적군이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일본 연합 적군의 간부급 다섯 조직원(사카구치 히로시, 반도 구니오, 요시노 마사쿠니, 가토 미치노리, 가토 모토히사)과 나머지 10명의 조직원이 아사마 산장 관리인의 배우자를 인질로 하여 10일 간 산장에서 경찰과 대치하였는데 인질은 약 219시간 정도 감금되었다가 모두 무사히 풀려났으며, 일본에서 경찰과 대치 중에 일어난 인질 사건으로 인해 인질이 감금된 시간 기록에서는 가장 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시 상황은 모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다. 당일 일본 내 총 세대 시청률은 조사 개시 이래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여 JST 오후 6시 26분 경에는 NHK와 기타 민방을 합쳐 간토 기준 89.7%를 기록하였다.[1] 같은 날 NHK의 특보 프로그램 (9시 40분부터 10시간 40분 동안 방송)은 평균 50.8%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진압 후 일본 경찰이 아사마 산장을 조사하면서 아사마 산장을 점거했었던 연합 적군이 사상 단결을 목적으로 29명의 적군파 대원중 12명을 구타를 포함한 잔학한 방법으로 살해한 것이 드러났으며, 이는 일본 전 국민들에게 매우 끔찍한 소식이었고, 전국에서 활동하던 적군파 대다수가 회의감을 느끼게하여 일본 적군파가 해체되는 제일 큰 원인이 되었다.

 

각주

  1. 이동 히키다 소야 (2004년), 《전기록 텔레비전 시청률 50년 전쟁-그 때 1억 명이 감동하였다》 , 고단샤, 118쪽

같이 보기

  • 연합 적군
  • 요도호 사건
  • 안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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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나지 않은 日 ‘아사마산장 사건’
  •  
  • |도쿄 박홍기특파원|지난 1972년 2월19일부터 10일간 일본 연합적군파에 의해 일어난 ‘아사마산장 사건’은 일본을 충격과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사건은 전국에 생중계돼 89.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건을 계기로 일본내의 적군파 활동은 종지부를 찍었다. 적군파들은 도피과정에서 조직원 29명 가운데 14명을 조직 이탈을 명분으로 ‘처형’한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당시 연합적군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핵심 간부로 활동,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나가타 히로코(63·여)가 위독하다고 12일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   앞서 1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 사형폐지 기념행사에 나가타의 건강상태가 발표됐다.  나가타는 지난 71년 8월부터 72년 2월 아사마산장사건 때까지 조직원 14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93년 대법원격인 최고재판소에서 살인 및 상해치사죄 등으로 사형이 확정됐다.2차대전 이후 6번째 여성 사형수로 기록됐다.
  •   당시 적군파 16명이 기소돼 나가타와 중앙위위원장 사카구치 히로시(61) 등 2명에게 사형, 나머지에게는 무기·유기 등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나가타는 지난 84년 뇌종양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가타는 지난 2001년 ‘빛의 비’, 올해 ‘실록 연합적군 아사마 산장의 도정(道程)’ 등 많은 영화에서 모델로 다뤄졌다.  또 ‘16명의 표석, 연합적군 패배로부터 17년’,‘옥중으로부터의 편지’ 등 6권의 책을 직접 써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hkpark@seoul.co.kr >

* 출처: 정보-책

 283쪽/ 수집- 위키백과,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