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대치 상황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많은 한국인 친구는 새로운 사태 전개가 한국의 전략적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중국은 간척사업을 가속화하고 활주로를 건설했다. 1주일 전 미 해군 구축함 라센은 항행의 자유를 위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중국의 ‘영토’에 침입한다면 군사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국방부는 훈련이 계속될 것이며 중국이 융수자오(永暑礁)라고 부르는 피어리 크로스 암초섬은 국제법상으로 영토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워싱턴은 중국이 항행의 자유나 작은 나라들을 위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중국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10여 년 동안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은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다.
한국 독자들은 사람이 살지 않았던 산호섬들이 한반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둔감할 수 있다. 실제로는 남중국해의 미·중 대치는 한국의 국가 이익과 직결돼 있다.
첫째는 항행의 자유다. 한국은 대륙 국가일 뿐만 아니라 해상무역 국가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송량의 반 이상이 남중국해를 지나간다. 중국 또한 해상 교통로가 필요하다. 베이징은 중국의 해상 교통로를 차단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통제하게 된다면 중국 해군은 선택적으로 해상 운송을 중단시킬 수 있다. 중국은 과거에도 일본에 희토류(稀土類) 수출과 필리핀 바나나 수입을 중단했다.
둘째, 현재의 개방적인 규칙기반(rule-based)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는 한국도 이해당사자다.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여러 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들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같은 다자기구에서 합의 도출을 시도했으나 중국은 이를 묵살하거나 의사 진행을 방해했다. 중국은 작은 나라들을 따로따로 떼어내어 다루는 것을 선호한다.
셋째, 한국의 생존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체제의 신뢰성에 달려 있다. 한·미 동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난 50여 년 동안 미국의 동맹체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안정을 가져왔다. 명백히 말하자면 한국이 동남아 지역에 대한 어떤 안보상의 의무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의도적으로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작은 나라들, 특히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억압을 저지하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봄에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인에 의한’ 새로운 아시아 안보 질서를 주창했다. 미국의 동맹체제에 대한 은근한 도전이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필리핀에 대한 중국의 직접적인 물리적 위협은 미국의 동북아 동맹국들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해로에서 미국이 신뢰를 상실하는 것을 한국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는 명백한 길이 하나뿐이다. 미국이 중국의 남중국해 지배를 사실상 용인한다면 장래에 동중국해에서 분쟁의 가능성을 키울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은 중국과 역내 국가들 간의 우호관계를 억지하는 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또 기후변화에서 북한 문제까지 미·중 협력이 계속 필요하다. 중국의 강압적인 행위는 역효과만 부를 것이라는 걸 베이징에 설득하는 게 핵심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다른 역내 국가들은 중국이 나쁜 평판을 얻지 않기 위해 자제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항행의 자유를 위한 미군의 훈련은 비정기적이라도 계속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포함된 미국의 동맹국들은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와 같은 국제 무대에서 중국이 작은 나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압력을 넣을 것이다. 미국·일본·호주는 필리핀이나 베트남이 자국 영해에서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경비정·레이더·이중용도(dual-use) 인프라 등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상업적인 차원에서 대응력 강화를 돕고 있다. 한국의 노력은 보다 큰 전략적 동맹의 틀 안으로 통합돼야 한다. 미국·일본·호주는 해상초계 활동과 합동 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또한 이러한 노력에 신중하게 참여해야 한다.
한국은 이러한 새로운 역학관계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아무 일도 없다’는 식으로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지난 9월 중국 전투기가 서해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의 비행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중국은 정찰기가 중국 영토 안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중국과 호혜적인 협력을 증진함과 동시에 중국이 강압적인 행위를 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 국제법을 무시하는 “힘이 곧 정의를 만든다”는 ‘원칙’ 때문에 한국은 국권을 상실하기도 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교훈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출처: 중앙일보] [세상읽기] 남중국해의 미·중 대치 국면과 한국
중국은 간척사업을 가속화하고 활주로를 건설했다. 1주일 전 미 해군 구축함 라센은 항행의 자유를 위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중국의 ‘영토’에 침입한다면 군사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국방부는 훈련이 계속될 것이며 중국이 융수자오(永暑礁)라고 부르는 피어리 크로스 암초섬은 국제법상으로 영토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워싱턴은 중국이 항행의 자유나 작은 나라들을 위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중국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10여 년 동안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은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다.
한국 독자들은 사람이 살지 않았던 산호섬들이 한반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둔감할 수 있다. 실제로는 남중국해의 미·중 대치는 한국의 국가 이익과 직결돼 있다.
첫째는 항행의 자유다. 한국은 대륙 국가일 뿐만 아니라 해상무역 국가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송량의 반 이상이 남중국해를 지나간다. 중국 또한 해상 교통로가 필요하다. 베이징은 중국의 해상 교통로를 차단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통제하게 된다면 중국 해군은 선택적으로 해상 운송을 중단시킬 수 있다. 중국은 과거에도 일본에 희토류(稀土類) 수출과 필리핀 바나나 수입을 중단했다.
둘째, 현재의 개방적인 규칙기반(rule-based)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는 한국도 이해당사자다.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여러 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들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같은 다자기구에서 합의 도출을 시도했으나 중국은 이를 묵살하거나 의사 진행을 방해했다. 중국은 작은 나라들을 따로따로 떼어내어 다루는 것을 선호한다.
셋째, 한국의 생존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체제의 신뢰성에 달려 있다. 한·미 동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난 50여 년 동안 미국의 동맹체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안정을 가져왔다. 명백히 말하자면 한국이 동남아 지역에 대한 어떤 안보상의 의무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의도적으로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작은 나라들, 특히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억압을 저지하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봄에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인에 의한’ 새로운 아시아 안보 질서를 주창했다. 미국의 동맹체제에 대한 은근한 도전이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필리핀에 대한 중국의 직접적인 물리적 위협은 미국의 동북아 동맹국들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해로에서 미국이 신뢰를 상실하는 것을 한국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는 명백한 길이 하나뿐이다. 미국이 중국의 남중국해 지배를 사실상 용인한다면 장래에 동중국해에서 분쟁의 가능성을 키울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은 중국과 역내 국가들 간의 우호관계를 억지하는 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또 기후변화에서 북한 문제까지 미·중 협력이 계속 필요하다. 중국의 강압적인 행위는 역효과만 부를 것이라는 걸 베이징에 설득하는 게 핵심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다른 역내 국가들은 중국이 나쁜 평판을 얻지 않기 위해 자제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항행의 자유를 위한 미군의 훈련은 비정기적이라도 계속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포함된 미국의 동맹국들은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와 같은 국제 무대에서 중국이 작은 나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압력을 넣을 것이다. 미국·일본·호주는 필리핀이나 베트남이 자국 영해에서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경비정·레이더·이중용도(dual-use) 인프라 등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상업적인 차원에서 대응력 강화를 돕고 있다. 한국의 노력은 보다 큰 전략적 동맹의 틀 안으로 통합돼야 한다. 미국·일본·호주는 해상초계 활동과 합동 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또한 이러한 노력에 신중하게 참여해야 한다.
한국은 이러한 새로운 역학관계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아무 일도 없다’는 식으로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지난 9월 중국 전투기가 서해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의 비행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중국은 정찰기가 중국 영토 안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중국과 호혜적인 협력을 증진함과 동시에 중국이 강압적인 행위를 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 국제법을 무시하는 “힘이 곧 정의를 만든다”는 ‘원칙’ 때문에 한국은 국권을 상실하기도 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교훈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출처: 중앙일보] [세상읽기] 남중국해의 미·중 대치 국면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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