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원경왕후 민씨는 총명하고 당돌한 캐릭터로 나온다. 훗날 태종 이방원의 정비가 되는 이 여인의 가슴 속에는 안방 정치로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야심이 가득했다. 이방원의 입장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요긴한 인물이었다. 변방의 무장 가문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그이기에 출세의 발판이 필요했다. 원경왕후의 집안은 고려 후기에 대대로 고위 문신을 배출해온 명문가였다. 따라서 두 사람의 결합은 결혼을 통해 가문의 힘을 배가하는 혼인동맹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원경왕후의 야심은 차례로 실현되었다. 1382년 이방원과 부부의 연을 맺어 역성혁명을 내조했고,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직후에 세자빈이 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마침내 왕비의 자리에 올라 가문의 이름을 빛냈다. 태종 역시 아내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정도전보다 먼저 움직이도록 조언하고, 따로 무기를 숨겨뒀다가 적시에 내놓은 장본인이 원경왕후였다. 또 그녀의 동생들인 민무구, 민무질도 왕자의 난에 적극 가담하며 일등공신에 책훈되었다.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 사람 마음이다. 이방원이 왕좌를 차지하자 상황은 급변한다. 태종은 왕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외척을 뿌리 뽑으리라 마음먹었다. 왕비와 일등공신을 배출한 원경왕후의 집안이야 말로 1호 제거대상이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보란 듯이 후궁들을 대거 들였다. 민씨에 대한 견제의 의미였다. 이를 읽은 원경왕후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불화는 날이 갈수록 커졌고 결국 큰 사달로 이어졌다.
태종 6년(1406) 임금이 갑자기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전위파동’이다. 당시 세자였던 양녕은 난감했다. 나이도 어린데다(13세) 덥석 받았다가는 불효, 불충으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한 마디로 황금 잔에 채운 독주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 독배를 벌컥 들이킨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원경왕후의 동생 민무구, 민무질 형제였다.
조정신료들은 한 목소리로 전위를 만류했지만 민씨 형제만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이참에 세자가 왕위에 올랐으면 하는 게 형제의 속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양녕은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냈다. 두 숙부와는 각별한 정을 쌓았다.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민씨의 세상이 될 것만 같았으리라. 하지만 이 전위 표명은 민씨 형제를 잡기 위한 함정이었다.
왕은 손수 덫을 놓은 다음 몰이꾼들로 하여금 포위망을 좁히게 했다. 민무구, 민무질이 전위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자 탄핵 상소가 빗발쳤다. “세자 이외의 영특한 왕자는 변란의 소지가 있으므로 없는 편이 좋다”는 과거 그들의 발언이 화근이었다. 태종과 원경왕후는 슬하에 양녕, 효령, 충녕, 성녕의 4왕자와 정순 등 4공주를 두었다. 여기서 ‘세자 이외의 영특한 왕자’라 함은 학문이 뛰어난 충녕대군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씨 형제의 말은 임금의 핏줄을 위협했다는 점에서 역심으로 간주되었다. 왕은 일단 두 사람을 여주와 대구로 유배 보냈다. 1408년 장인 민제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독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민씨 형제의 죄를 정식으로 반포했다. 죄목은 협유집권(挾幼執權)! 어린 세자를 끼고 권력을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민무구, 민무질에게 자결하라는 어명이 내려간 것은 1410년이었다. 양녕이 엽색행각을 벌이다 세자 자리를 잃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왕좌의 게임에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민씨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맏아들마저 어긋나자 원경왕후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원경왕후뿐만이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꽃미소를 날리는 낭만왕자 이방원은 왕가로 시집온 여인들에겐 저승사자였다. 아버지 태조의 비 신덕왕후가 죽자 그 자식들을 도륙한 것도, 아들 세종의 비 소헌왕후에게 피붙이를 잃는 아픔을 준 것도 태종이었다. 조선 건국 과정의 혼인동맹은 외척 척결과 함께 슬픈 종말로 치달았다.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 좋은 글 모음♣ > 역사,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응답하라 2015 ‘5류 정치’ (0) | 2015.11.28 |
---|---|
[우리 역사]당 포로된 고구려 무장 묘지명 첫 발견 (0) | 2015.11.24 |
집필(執筆)과 친교(親交) (0) | 2015.11.10 |
남중국해의 미·중 대치 국면과 한국 (0) | 2015.11.06 |
단군이 일본 조상神의 동생이라고? (0) | 2015.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