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화가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한 명 더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제가 출장으로 1년에 한두 번은 꼭 찾게 되는 네덜란드는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유화 물감을 처음 발명하여 그림 그리는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곳이고 하늘에 대한 묘사도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현 방법을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렘브란트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던 주디스 얀스 레이스테르 (Judith Jans Leyster, 1609-1660)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세레나데 The Serenade, 45.5x35cm, oil on panel, 1629
노래가 흐를수록 위로 향한 남자의 눈도 더 커져 가고 있습니다. 류트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에 간절함과 함께 달콤함을 담았지만 아직까지 굳게 닫힌 창문은 열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밤은 깊어 가고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자는 창문이 열리고 환한 얼굴을 보아야, 그것도 아니라면 꽃 한 송이 정도는 받아야 자리를 뜰 수 있을 것 같은데... 얼굴을 보니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틸 모양입니다. 걸려 오는 전화야 전원을 꺼버리면 그만이지만 창밖에서 들리는 노래는 안 들을 수 가 없겠지요. 창문보다는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레이스테르는 네덜란드 하를렘에서 출생했습니다. 아버지는 맥주공장을 운영하면서 옷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가 꽤 많았던 듯 그녀는 여덟째 아이였는데 그녀가 어려서 어떤 미술교육을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레이스테르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을뿐더러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람에 한 가지로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유쾌한 술꾼 Jolly Toper, 89x85cm, oil on canvas, 1629
이제 마지막으로 병을 기울여 남은 술을 다 마실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었습니다. 귀까지 빨갛게 된 것을 보니 마신 양이 제법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뚜껑이 달린 병 모양이 이채롭습니다. 기분이 좋아서도 마시지만 재미로 마시는 사람은 술꾼이라고 불릴 만하죠. 한껏 멋을 낸 그림 속 사내는 술이 주는 재미를 아는 것 같습니다. 술을 앞에 두고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과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보다는 다시 찾아가 앉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 다행입니다.
레이스테르가 10대였을 때 그녀는 유명한 초상화가 프란스 그레베르가 운영하는 하를렘의 공방에서 공부를 합니다. 1629년, 레이스테르는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데, 스무 살 때였지요. 그런데 이미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그녀의 이름은 하를렘에 널리 알려졌던 모양입니다. 1628년에 출간된 사뮈엘 암프장이라는 사람의 시에 그녀에 대해 ‘예술적인 시도는 대담하고 지혜로웠다’라는 대목이 실리는데, 이 책이 수정본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10대 중반에 하를렘에서 그녀의 이름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즐거운 사람들 Merry company, oil on canvas, 1629~1631
제목만큼 그림의 내용도 즐겁습니다. 우선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입 모양이 모두 같습니다. 웃고 있다기보다는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입니다. 악기 반주에 따라 부르는 흥겨운 노래에 몸도 들썩이는 모습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한 발이 들렸는데 가운데 위치한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한 발은 아예 보이지를 않습니다. 술잔을 들고 관객을 보는 붉은 옷의 청년은 살짝 취기가 오른 모습입니다. 얼굴도 모두 닮았습니다. 형제자매처럼 보입니다. 옷차림을 보니 축제가 열리는 중인 것 같은데, 매일 축제일 수는 없지만 간혹 몸과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도 좋은 날이 있어야겠지요.
1633년, 레이스테르는 하를렘의 성 루카 길드의 회원이 됩니다. 길드 회원이 되면 자신의 공방을 가질 수 있었고 견습생을 둘 수 있었으며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그녀가 여성으로는 첫 회원이었다는 기록과 두 번째였다는 기록이 모두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 저는 알 수 없군요. 당시에도 여자 화가들이 있었지만 주로 가족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꼭 길드 회원이 될 필요는 없었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커플 Carousing Couple, 68x54cm, oil on canvas, 1630
잔치에 참석한 커플이 술에 취해 흥이 났습니다. 악기들 들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닌 것 같고 눈도 약간 풀린 모습입니다. 그런 남자를 지긋이 바라보는 여인, 이마가 참 넓습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나이의 여인은 다시 술을 따라 한 잔 마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붉게 달아 오른 뺨과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니 이제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병의 기울기로 봐서는 아직 술이 꽤 남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왕 참가한 잔치, 즐겁게 놀다 가는 것이 주인을 위한 길이겠지요?
레이스테르의 작품은 프란스 할스의 작품과 닮은 것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기록은 1630년부터 1631년까지 프란스 할스의 공방에서 그녀가 견습생으로 공부했고 1631년에는 할스 딸의 대모가 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할스의 제자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고 할스 딸의 대모 이름인 주디스 얀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당시 하를렘에 또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릿광대 The Jester
류트를 켜고 있는 어릿광대의 표정이 참 묘합니다. 웃음을 팔아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기에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보일 수는 없는 직업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가면을 쓰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순간적으로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겠지요. 눈과 입가에는 미소가 담겼지만 어릿광대의 큰 눈에 물기가 느껴집니다. 올려다보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질 것 같습니다. 한참 들여다보다 어릿광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이 슬픈 것은 아니라 순간이 슬픈 것이죠. 그러니 견뎌봅시다.
레이스테르가 할스의 제자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두 사람의 작품의 주제와 표현 방법이 아주 닮았기 때문입니다. 초상화는 물론 노는 아이들, 춤추는 음악가, 술 취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레이스테르의 작품은 빛과 어둠의 효과를 묘사한 부분에서 할스와는 다릅니다. 이것은 카라바조의 영향인데, 카라바조가 체포령을 피해 도망 다닐 때 네덜란드 지역에 머문 적이 있었고 이후 그의 작품을 추종한 일군의 화가들이 생겨났지요. 레이스테르는 그런 화가들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젊은 여인에게 돈을 건네는 남자 Man offering money to a young woman, 30.9x24.2cm, 1631
단정한 옷차림으로 호롱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는 여인에게 남자가 슬며시 돈을 내밀고 있습니다. 두툼한 모자와 옷차림의 그 모습이 넓고 반듯한 이마를 가지 여인의 이미지와 대비됩니다. 느낌이지만 돈으로 여인을 유혹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이 정도 돈이 많은 사람이니 나에게 시집을 오면 어떻겠느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닐까요? 남자 뒤에 있는 벽에 어른거리는 그의 그림자가 더해지면서 여인에게 위협처럼 보입니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요즘 세태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어떤 관계였든 처음 할스와 레이스테르의 사이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불편한 것으로 바뀝니다. 길드에 가입한 레이스테르는 3년도 안 되어 3명의 남자 견습생을 받게 되는데 그중 한 명을 할스가 빼 간 것이죠. 사실이라면 좀 치사한 일이지요. 스물일곱 살이 되던 1635년, 레이스테르는 할스의 공방에서 만난 것으로 생각되는 얀 에인스 몰레나르라는 화가와 결혼합니다.
술 단지를 든 젊은이 A Youth with a Jug, 31x21.5cm, oil on panel, 1633
카, 이 맛이야! 뚜껑을 열고 한 잔을 마신 젊은이의 표정이 예술입니다. 술을 맛있게 즐기려면 술 향기와 맛 그리고 분위기가 중요하지요. 과장 섞인 말로 좋은 술 향기는 천리를 간다고 했는데 요즘 비행기로 술을 나르는 것을 보면 만리도 가는 것 같습니다. 붉은색 복장과 검은색 배경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산뜻한 표현이 감각적입니다. 요즘의 술 광고 포스터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수영복 차림의 여인들보다는 훨씬 술잔을 끌어당기게 할 것 같군요. 혹시 레이스테르도 술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요?
레이스테르의 남편인 몰레나르는 아내보다는 재능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결혼은 재능의 유무와는 다른 것이지요. 두 사람 사이에는 다섯 아이를 두게 되는데 그중 셋은 어려서 죽고 맙니다. 유아 사망률이 높을 때였습니다. 하를렘에 살던 부부는 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이사를 가는데 예상대로 그림 시장은 훨씬 안정적이었습니다.
어린 플루트 연주자 Young Flute Player, 73x62cm, oil on canvas
혹시 눈치 채셨는지요? 오늘 소개한 작품 속 연주가들은 모두 시선을 위로 향하고 있습니다. 당시 소위 모델들의 ‘얼짱 각도’였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관객과 시선을 맞추기보다는 위를 쳐다보거나 눈을 감는 것이 훨씬 더 음악에 심취한 모습으로 표현될 수도 있겠지요. 벽에 걸린 악기들이 보입니다. 어린 소년이 배우는 악기들인 모양입니다. 훗날 근사한 음악가를 만날 수 있겠군요. 화가들 중에는 연주하는 모습만 그린 화가도 있는데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소개해보겠습니다.
레이스테르가 당대의 다른 여자 화가들과 구별되는 것은 그녀의 그림 주제 때문입니다. 다른 여자 화가들은 주로 꽃이 있는 정물이나 거의 실제처럼 곤충들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레이스테르는 시골이 무대가 되는 풍속화와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사실 이런 주제는 1650년 무렵 네덜란드에 중산층이 생기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주제가 되니까 상당히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인 것이 됩니다.
카드 게임 A Game of Cards, 54.1x43.4cm, oil on canvas
마지막 카드를 폈는데, 이런 그만 붉은색 옷을 입은 여인이 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패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상대방의 꼼수에 넘어갔습니다. 여인의 허탈한 표정과 아래로 활짝 핀 손 그리고 카드를 내민 남자의 ‘이건 몰랐지’ 하는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술통 위에서 벌어지는 카드놀이이니 전문가들의 그것은 아니고 그냥 심심풀이 놀이처럼 보입니다. 즐거운 일이지요. 카드놀이를 하다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렇습니까? 자신의 패를 보기도 바쁜데 언제 주변 인물의 속내까지 파악할 수 있는 걸까요? 고수는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레이스테르의 작품은 결혼 1년 전까지 완성된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그린 작품이 두 점이라고 하는데 한 점은 초상화였고 한 점은 튤립을 소개하는 책의 삽화였습니다. 가정생활을 하면서 화가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암스테르담에서 11년을 살다가 쉰 살이 되던 해 헴스테데로 이사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쉰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자화상 Self-Portrait, 72.3x65.3cm, oil on canvas, 1635
레이스테르의 모습입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인상입니다. 넓은 이마는 시원스럽고 눈은 지혜로워 보입니다. 물론 말랑말랑하기보다는 단단한 느낌도 있습니다. 이젤 위에 올려놓은 캔버스 속 인물도 웃고 있고 화가 자신도 웃고 있습니다. 관객을 향해 몸을 비스듬히 돌리고 한 팔을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은 그녀의 모습에서 16세기 길드에 가입할 정도로 자신의 세계를 확실히 구축했던 젊은 여인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레이스테르는 살아생전에는 동료 화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빠르게 사람들로부터 이름과 작품이 잊혀졌습니다. 그녀가 다시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은 1893년이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이 프란스 할스의 작품을 구입했는데 검사한 결과 레이스테르가 사용했던 서명이 발견된 것이지요.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프란스 할스의 것이라고 거래하는 모습을 하늘에서 보았을 레이스테르의 마음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