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그리스 신화
아리아드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인 아리아드네(Ariadne)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Minos)와 왕비 파시파에(Pasiphae)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아리아드네에 관한 일화의 첫 장면들은 대체로 이 섬에 살고 있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죽인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와 관련해 전개된다. 아리아드네가 첫눈에 반한 남자 테세우스, 그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함께 크레타 섬을 빠져나온다. 이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끝나면 좋으련만, 흥미롭게도 신화 기록자들이 전하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저마다 차이를 보인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사랑을 택한 여인
미노타우로스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이다. 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 발굽과 꼬리를 가진 황소 괴물을 이렇게 부른 데에는 애초에 이 괴물이 미노스 왕으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미노스는 통치권을 강화하 위해 포세이돈 신으로부터 지원의 증표로 흰 소를 받았다. 그러나 멋진 소가 탐이 난 미노스 왕은 그것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대신 자신의 가축으로 삼고 말았다. 그러자 이를 괘씸히 여긴 신은 저주를 내려 왕비가 그 소를 사랑하게 만들었고 몇 달 뒤 왕비는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을 낳게 되었다.
[왼쪽] 귀스타보 모로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 19세기경. 유화, 147x111.9cm,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소장 [오른쪽] 장 밥티스트 튀비 <아리아드네의 실뭉치를 감는 에로스>, 1673년경. 조각, 85x65x180cm, 베르사유 트리아농 궁 소장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Daedalus)를 시켜 지은 미로 궁전에 이 괴물을 가두고 그 먹이로 쓸 처녀 총각들을 아테네로부터 조공 삼아 받고 있엇다. 이에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나서서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인질들 틈에 섞여 크레타 섬으로 들어온다. 문제는 이때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그의 계획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알려준 대로 실타래를 풀면서 미궁(迷宮)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그렇게 아리아드네는 아버지와 조국을 등지고 사랑하는 테세우스를 따라 그의 배에 올랐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아리아드네>, 1898년경. 유화, 개인 소장
낙소스 섬에 버려진 아리아드네
이후 테세우스 일행과 아리아드네를 실은 배는 아테네를 향하던 도중 낙소스(혹은 디아) 섬에 잠시 머무른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신화 기록자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를 따른 것으로, 테세우스가 자믄 아리아드네를 섬에 남겨두고 갔다는 설이다. 잠에서 깨어난 아리아드네는 버려진 신세를 한탄하며 슬픔에 잠겨 있는데 바로 그때 술의 신 디오니소스(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가 그녀를 발견하고 도와주었다. 그리고 아내로 맞이했다고 한다.
세바스티아노 리치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1713년경. 유화, 63.2x75.9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이 일화는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많은 영감을 주었다. 화가들은 잠든 아리아드네의 관능적인 여체를 표현하거나 이러한 그녀에게 반한 디오니소스를 한 화면에 등장시키기도 했으며, 오비디우스의 문헌에 따라 잠에서 깨어나 놀란 모습의 아리아드네와 그녀에게 다가가는 술의 신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과는 대조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디오니소스가 한 말로 인해 아르테미스 여신이 디아 섬에서 아리아드네를 죽였다고 짧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의 증언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는 가운데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가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숲에서 동침한 것을 일러바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왼쪽] 안젤리카 카우프만 <테세우스에 의해 낙소스 섬에 버려진 아리아드네>, 1782년경. 유화, 드레스덴 국립회화관 소장. [오른쪽] 안젤리카 카우프만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유화, 개인 소장
디오니소스의 아내, 별자리가 되다
그 밖에도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에서 함께 데리고 온 아리아드네의 여동생 파이드라(Phaedra)와 사랑에 빠져 아리아드네를 배신했다는 설, 또는 디오니소스의 명령에 따라 테세우스가 할 수 없이 아리아드네를 두고 가Teki는 설도 있다. 어쨌든 아리아드네에 관한 일화의 후반부는 대부분 디오니소스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은데, 디오니소스가 죽은 아리아드네의 머리에 씌운 금관을 하늘로 던져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이 금관은 디오니소스가 사랑의 징표로 아리아드네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치마 디 코넬리아노 <바쿠스와 아리아드네의 결혼식>, 1505년경. 패널, 28x70cm,폴디 페촐리 미술관 소장
이처럼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드러난 아리아드네라는 여인의 삶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하고 사랑을 택한 여인, 테세우스의 연인에서 버림받은 여인으로 그리고 신의 아내가 되어 죽어서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자리가 되는 영광을 누린 여인이 바로 아리아드네이다.
툴리오 롬바르도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1520~1525년경. 대리석, 높이 56cm,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디오니소스는 왜 아리아드네를 택했을까? 반대로, 아리아드네는 어떻게 디오니소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관점을 빌리자면, 아마도 그것은 완벽하게 버림받은 그녀의 슬픔, 고통과 좌절 그 자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 툴리오 롬바르드가 묘사한 이들을 보자. 빛과 이성의 신 아폴론과 대비되는 어둠의 신, 감성의 신으로 불리는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는 서로 닮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글 이민수(미술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 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는 데에서 미술사학의 무한한 매력을 느낀다. 현재 문화센터와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