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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흐...좌절과 분노,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

Bawoo 2013. 12. 13. 23:37

 

 

 

고흐...좌절과 분노,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

 

 

 

 

 

간혹 낯선 곳에서 편지를 쓰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래서 자유로우면서도 쓸쓸할 거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느낌이 동시에 오면 어쩔까 하는 상상 말입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막상 나에게 다가온 건 온 몸을 덮는 피곤함뿐입니다.

낯 선 곳과 익숙해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그런 것 일겁니다.

 

 

호텔을 나와 반 고흐 박물관에서 두 시간을 넘게 보냈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여러 번 도판을 통해서 본 작품이었지만 전율이 밀려왔습니다.

작품 옆에는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품 해석에 신화가 끼어 있다는

구절이 해설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보는 사람 마음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푸르고 검은 하늘과 까마귀, 그래서 더욱 선명한 붉은색 길---

그러나 시작과 끝이 없이 영원히 이어진 듯한 길이 조그만 캔버스를

폭발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죽기 전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 그래서 세상을 떠난 후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는

고흐,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고민하는 한 인간의 분노와 좌절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툭툭 던지듯 칠한 물감 자국은 너무 빽빽해서

누구도 그 속을 뚫고 들어 갈 수 없을 정도였고 오히려 그의 붓 놀림은 캔버스를

뚫고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슬픔으로 나를 흔들었습니다.

 

붓 칠 하나 하나에 슬픔과 좌절 하나씩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림에 그려져 있는 밀밭 근처에서 고흐는 자신의 가슴을 쏴 자살을 했고,

그것도 2일이나 지나서야 그의 시신은 발견되었습니다.

고흐는 아마 가슴에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좌절과 슬픔을 한꺼번에 접었을 것입니다.

돌아 나오는 전시관에 평생 그를 지켰던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힌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형이 죽고 6개월 뒤, 형의 뒤를 따른 동생 테오는 나란히 누워 형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하늘이 잔뜩 흐려 있습니다.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시켜 놓았던 커피도 차갑게 식었습니다.

열 몇 시간 뒤면 항상 익숙했던 것들 곁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서 얼마나 지나면 고흐의 좌절과 분노를 잊을 수 있을까요?

설사 고흐가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그림을 보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 고흐 - 인간적인 성모 마리아상 =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은 무엇일까요?

어리석은 질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두가 서로 다른 답을 말할 수는 있겠지요.

슬픔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슴 한 편에 옹이를 박는다는 점에서

슬픔은 모두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흔히 ‘단장 (斷腸)의 슬픔’이라고 할 때 단장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 중국에서 원숭이 모자를 갈라 놓았더니 자식을 찾는 엄마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결국 울다가 죽고 말았는데 입에서 끊어진 창자의

토막이 나왔다고 합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창자마저 끊어 놓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은 ‘피에타’에서 잘 나타납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아들 그리스도를 무릎에 눕히고 비탄에 빠져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수 많은 그림과 조각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 상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고흐 박물관에서 저를 잡아 당긴 그림 중 하나가 고흐가 그린 ‘피에타’ 였습니다.

원래는 들라쿠루아가 그린 피에타를 기초로 고흐가 그린 것입니다.

원본과 고흐의 작품을 비교 해보시기 바랍니다.

 

 

들라쿠루아의 피에타 (사진클릭 크게보임)

고흐의 피에타 (사진클릭 크게보임)

 

 

제가 고흐의 피에타에서 쉽게 눈을 돌리지 못했던 것은

성모 마리아 눈 빛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듯한 눈은 푸른 색 옷과 배경이 되는 노란색 하늘빛에

사이에서 너무나 깊은 슬픔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그 눈 빛은 강인하지도 않았고 슬픔을 참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자식을 잃고 난, 망연자실한 한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고흐의 서툰듯한 붓 터치가 오히려 깨끗하게 그려진 것 보다 더 마음 깊은 곳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놓아버린 두 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쓸쓸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고흐를 통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를 보았습니다.

이 그림과 관련해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그가 병으로

아픈 동안 발생한 사고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 골고타 앞에 텅빈 공간 =

 

고흐 미술관 1층에 걸려 있는 프랑스의 장 레옹 제롬의 ‘골고타’라는 작품입니다.

처음 이 작품을 볼 때 저는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기분이들었습니다.

‘골고타’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그림들은 여러 편이 있지만

대부분 그림의 주제는 십자가를, 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린 경우가 많았고

이처럼 중앙을 빈 공간으로 처리한 작품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림을 보는 동안 오히려 빈 공간과 그림자 때문에 처연함과

 안타까움이 더 크게 다가 왔습니다.

 

 

출처 : 장계인의 그림 이야기
글쓴이 : 아산갤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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