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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얼 출신으로 출사한 인물]성대중[ 成大中]

Bawoo 2016. 2. 24. 00:14

 

성대중[ 成大中] 사집(士執), 청성(靑城)

 

 

요약 테이블
출생 1732(영조 8)
사망 1812(순조 12)
국적 조선, 한국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성대중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본관은 창녕. 자는 사집(士執), 호는 청성(靑城). 아버지는 찰방 효기(孝基)이며, 해응(海應)이 그의 아들이다. 노론 성리학파 중 낙론계(洛論系)인 김준(金焌)에게서 배웠다.

1756년(영조 32) 정시문과에 급제했다. 서얼이었기 때문에 순조로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할 처지였으나, 영조의 탕평책에 따른 서얼들의 신분상승운동인 서얼통청운동(庶孼通淸運動)에 힘입어 1765년 청직(淸職)에 임명되었다. 1763년 서기관으로 통신사 조엄(趙曮)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으며, 1784년(정조 8)에 흥해군수가 되었다.

 

그는 문장이 뛰어나 정조의 사랑을 받았으나 신분적인 한계에 묶여 북청부사에 오르는 데 그쳤다. 특히 역학에 뛰어났으며, 역의 원리를 도(圖)를 그려 설명했다. 그의 〈전의후록 傳義後錄〉에서는 〈주역〉을 모든 경서의 근본이라 하여 유교 경전들과의 관련성을 밝히고 있다.

그는 홍대용·박지원·박제가·유득공 등 북학파 인물들과 교우관계를 가져 사상 형성에도 도움을 주었으나 이들과 달리 정조대에 추진된 문체반정(文體反正) 정책에 적극 호응하여 성리학에 바탕을 둔 순정문학(醇正文學)을 주장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낙론계 성리학자인 그의 학문적 경향과 신분적 약점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저서로 〈청성집〉이 있다.[다음백과]

 

[정보 - 책 백정, 외면당한 역사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