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러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self portrait, c. 1872), Detroit Institute of Arts
(July 10, 1834– July 17, 1903)
was an American-born, British-based artist active during the American Gilded Age
런던의 밤 풍경을 주제로 한 그림들과 진보적인 양식으로 그린 인상적인 전신 초상화 및 뛰어난 에칭 판화와 석판화들로 유명하다.
명석한 미술 이론가인 그는 영국에 프랑스의 현대회화를 소개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 제1번 : 미술가의 어머니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 : The Artist's Mother〉(1871~72, 보통 〈휘슬러의 어머니 Whistler's Mother〉라고 함)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1 (1871), popularly known as Whistler's Mother, Musée d'Orsay, Paris이다.
그의 '야경화'로는 〈낡은 배터시 다리 : 파랑과 금빛의 야상곡 Old Battersea Bridge : Nocturne─Blue and Gold〉(1872~75경) 등이 있다.
초기
휘슬러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 그는 아버지가 토목기사로 있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동안 지냈으며, 도중에 잠깐 영국에 머문 뒤 1849년경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다가 곧 화가가 되기 위해 그 학교를 그만두었다. 동시대의 많은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파리에 매혹되어 1855년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는 미국을 떠나기 전에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들의 생활 정경 Scènes de la vie de bohème〉(1847~49)을 읽고는 곧 보헤미안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였다.
그는 파리에서 공부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학생들을 사귀었으며, 조르주 뒤 모리에의 소설인 〈트릴비 Trilby〉에 나오는 '게으른 견습생 조 세들리'처럼 지냈다. 그는 귀스타브 쿠르베, 앙리 팡탱 라투르, 프랑수아 봉뱅 등의 화가들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사실주의에 호응해 프랑스의 현대 미술운동에 참여했다. 〈자화상〉과 〈자연을 주제로 한 12점의 에칭 판화 Twelve Etchings from Nature〉 등의 초기 작품들은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1860년대에는 영국과 파리를 오갔으며, 또한 브르타뉴(1861)와 비아리츠 근처의 해안(1862)을 여행했다.
그곳에서는 쿠르베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여기에서는 후기 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바다에 대한 애정을 명백히 볼 수 있다. 1863년 런던에 정착해서 특히 템스 강을 즐겨 다루었고 이 주제의 에칭 판화들은 파리에 전시되었을 때 샤를 보들레르의 호평을 받았다.
런던으로의 이주
휘슬러는 1863년 낙선전에 〈흰색 교향곡 1번 : 하얀 소녀 Symphony in White No. 1 : The White Girl〉
이 그림은 그가 사실주의의 주창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1848년 영국에서 시작된 라파엘 전파 운동에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의 절충적인 성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그는 점점 이상주의적인 그림을 추구했다.
그는 동양 미술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의 도기인 타나그라 입상(立像)도 높이 평가했는데 그 우아한 형태들은 그의 인물화와 소묘에 영향을 미쳤다. 선명한 색조로 그린 일련의 스케치들인 〈6점의 습작 Six Projects〉(워싱턴 프리어 미술관)에는 동양 미술의 요소와 헬레니즘 미술의 요소가 뒤섞여 있다. 고전 미술에 대한 그의 애착은 그가 가까이 지냈던 영국의 화가 앨버트 무어와의 우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휘슬러는 1860, 1870년대에 특히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교향곡'이나 '화성'과 같은 음악적인 제목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여기에서 그는 음악을 예술의 가장 추상적인 분야로 평가하는 예술지상주의 이론과 프랑스 시인인 보들레르와 테오필 고티에가 주장한 예술간의 '교감' 이론에 기초를 두었다. 그러나 휘슬러는 음악 그 자체의 애호가는 아니었다. 이 시기에 그는 런던, 특히 첼시의 밤풍경을 소재로 시적인 강렬함과 세기말적인 정취를 띠고 있는 야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휘슬러는 당대의 미술 사업에 다방면으로 참여했다.
1878년의 파리 박람회를 위해 만든 스탠드(건축가인 E. W. 고드윈과 공동제작)나 그뒤 런던의 그로스버너 미술관을 위해 만든 프리즈와 같은 장식사업에 참여했으며, 특히 런던 프린스가 49번지에 있는 리버풀의 대해운업자인 R. R. 레일런드의 집을 위해 유명한 공작실(1876 착공)을 장식했다.
1877년 유명한 미술 평론가인 존 러스킨이 그의 〈검정과 금빛 야상곡 : 추락하는 로켓 Nocturne in Black and Gold : The Falling Rocket〉을 비판하자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면서 그의 생애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In 1877 Whistler sued the critic John Ruskin for libel after the critic condemned his painting Nocturne in Black and Gold: The Falling Rocket. ]그는 그 소송에서 이겼지만 겨우 1파딩(당시의 영국에서 가장 적은 화폐단위)의 손해배상금을 받았다. 1879년 그는 상당한 소송비용을 지불하는 바람에 파산하게 되었으며, 그결과 첼시에 있는 그의 아름다운 집인 '화이트 하우스'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연인인 모드 프랭클린과 함께 베네치아로 갔으며 거기에서 14개월 동안 머물면서, 그 도시에 모여든 많은 외국 미술가들 사이에서 곧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유화는 거의 그리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채색이 아주 뛰어난 파스텔화와 수채화를 그리는 데 보냈다.
그는 '미술협회'로부터 동판화 연작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고는 베네치아를 주제로 50여 점의 동판화를 만들었는데, 이것들은 당대의 가장 인상적인 판화 작품에 속한다. 그는 런던에 돌아오자 1880, 1883년에 그의 동판화들을 전시하면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계속해서 초상화(그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파블로 데 사라사테, 아치볼드 캠벨 부인, 테오도르 뒤레, 몽테스키외,페장사크의 백작인 로베르 등의 초상화들이 있음)를 그렸지만, 완전의 경지에 이르려는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렸기 때문에 점점 어려움에 부딪히고 말았다.
마지막 도전
휘슬러는 말년에 많은 문제에 직면했다.
그는 자신이 현대미술운동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예를 들면 1890년대경에는 인상주의가 지배적인 양식이었는데, 그 자신은 자연을 모방하는 그림에 열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주의 화가들의 밝은 색이나 기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19세기의 프랑스 화가인 카미유 코로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는 도시나 바다 풍경 습작들을 그리는 데서 가장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많은 동판화와 석판화를 만들었지만, 다색 석판화가 인기를 끌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단지 3~4점에만 채색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흑백 석판화들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1889년 네덜란드의 풍경을 묘사한 몇몇 동판화들은 그의 미술발전의 일면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수를 놓은 커튼 Embroidered-Curtain〉에서는 평면적인 공간 배치가 사용되었으며, 그리하여 시선이 세부보다는 전체 장면에 이끌리게 되는데, 이 점에서 그것은 당시의 프랑스 화가들의 그룹인 나비파의 미술 개념과 비슷했다. 휘슬러는 베네치아에서 돌아온 뒤 런던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으며, 논쟁에서 오스카 와일드를 누르고 널리 명성을 얻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가 되었다. 1888년 그는 예전에 파리 박람회를 위해 그와 공동으로 작업한 E.W. 고드윈의 미망인인 비어트릭스 고드윈과 결혼했다. 휘슬러와 그의 아내는 파리의 센 강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896년 아내가 죽자 휘슬러는 깊은 좌절에 빠져 말년을 슬프게 보냈다. 그는 계속 동시대의 화가들과 교제하고 파리에서 미술학교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작품활동은 하지 않았다.
[자료 출처: 정보- 책/우리말 자료-다음백과/ 그림 및 영문해설-영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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