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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 Piano Concerto No.5 in E flat major, Op.73 'Emperor'

Bawoo 2016. 3. 5. 11:57

 

Beethoven

Portrait by Joseph Karl Stieler, 1820
(17 December 1770 -- 26 March 1827)

 Piano Concerto No.5 in E flat major, Op.73 'Emperor'

 

 

Krystian Zimerman, piano

Leonard Bernstei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Grosser Saal, Musikverein, Wien

1989.09

 

Krystian Zimerman/Leonard Bernstein/WPh -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The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Op. 73, by Ludwig van Beethoven, popularly known as the Emperor Concerto, was his last piano concerto. It was written between 1809 and 1811 in Vienna, and was dedicated to Archduke Rudolf, Beethoven's patron and pupil. The first performance took place on 28 November 1811 at the Gewandhaus in Leipzig under conductor Johann Philipp Christian Schulz, the soloist being Friedrich Schneider.  On 12 February 1812, Carl Czerny, another student of Beethoven's, gave the Vienna debut of this work.

The epithet of Emperor for this concerto was not Beethoven's own but was coined by Johann Baptist Cramer, the English publisher of the concerto.[3] Its duration is approximately forty minutes.

1809년 초, 베토벤의 생활은 비로소 든든한 반석 위에 올라선 것처럼 보였다. 일단 3월 1일부터 ‘평생 연금’을 받기 시작했는데, 세 명의 젊은 고위 귀족, 로브코비츠 공작, 킨스키 공작, 루돌프 대공이 그에게 매년 4천 플로린이라는 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다만 베토벤이 ‘빈 혹은 오스트리아 황실 폐하의 다른 세습 영지를 거주지로 하는 대신’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로써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확보한 베토벤은 들뜬 기분에 여행이나 결혼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고, 특히 친구인 글라이헨슈타인 남작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의 신붓감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그 해 5월,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바이에른 침공에 대한 대응에 나선 프랑스군이 에크뮐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다음 내친 김에 빈까지 진격해 왔고, 그러자 오스트리아의 왕족과 귀족, 부유층들은 서둘러 빈을 탈출했다. 뒤에 남은 시민들이 나름대로 도시를 수호하겠다고 나섰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무기가 턱없이 부족해서 극장에 있던 총과 창, 칼 등의 소품들까지 꺼내 왔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빈은 포위된 지 일주일 만인 5월 13일 함락당하고 말았다.

장대한 스케일, 찬란한 색채

빈에 남게 된 베토벤의 상황은 절박했다. 적군의 포탄이 쏟아지는 동안에는 약해진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베개를 머리에 두르고 있어야 했다. 또 프랑스군이 도시를 점령한 뒤에도 한동안 오스트리아군의 반격으로 인한 전투가 계속되어, 그는 사방을 뒤덮은 전쟁의 참화와 진군의 북소리, 군화소리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후원자들이 모두 도시를 떠나면서 경제적 원조가 끊기는 바람에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힘겨웠는데 피난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가까스로 동생의 집에 의탁한 그는 여름에 쓴 한 편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가장 심각한 형태의 비참함을 겪고 있었습니다. 5월 4일 이후 나는 일관성 있는 작품을 거의 하나도 쓰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단편 이것저것뿐입니다. (...) 바로 얼마 전에 내가 쌓아올린 생존의 기반이 불안정해졌습니다. (...) 주위에서는 온통 파괴적이고 무질서한 행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온통 북소리, 대포소리, 모든 형태의 비인간적인 처참함뿐입니다.”

나폴레옹의 빈 함락 시기에 작곡한이 곡은 베토벤의 시대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베토벤의 마지막 협주곡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9월에 베토벤은 자선 연주회에서 ‘영웅 교향곡’을 지휘했고, 전황이 정리되어 감에 따라 빈의 질서와 생활도 점차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아갔다. 일련의 상황은 10월 14일 쇤브룬 궁전에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강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단락되었고, 베토벤도 다시금 기지개를 켰다. 그 전란의 와중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피아노 협주곡 제번 E플랫장조는 베토벤 최고의 역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의 장대한 스케일, 왕성한 추진력, 찬란한 색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 베토벤 자신조차도 이 정도로 대담하고 격렬한 협주곡은 쓴 적이 없었다. 그는 이 곡에서 특유의 강력한 피아니즘을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하게 펼쳐 보였고, 그 결과 이전의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에 이어 다시 한 번 피아노 협주곡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Edwin Fischer/W. Furtwängler/Philharmonia Orch. -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dwin Fischer, piano

Wilhelm Furtwängler, conductor

Philharmonia Orchestra

No.1 Studio, Abbey Road, London

1951.02.20

영웅적인 기개와 경이로운 조성 전개

이 협주곡은 베토벤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훗날 슈만과 브람스가 계승하게 되는 ‘교향적 협주곡’(Symphonic Concerto)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이 곡은 분명 협주곡이지만 관현악부가 독주부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니며, 두 파트가 긴밀하게 어우러져 더없이 절묘하고 역동적인 음악세계를 펼쳐 보인다. 발터 리츨러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작품은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서 영웅적인 기개를 과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로운 조성 전개의 극치를 보여준다. 강렬한 개시 화음들은 경이로운 조성 전개의 건물 안으로 이끄는 웅장한 입구와도 같다.”  클림트가 그린 <베토벤 프리즈>의 한 장면. '황제'라는 별칭은 영웅적인 기개가 돋보여 붙여졌다.

The concerto is scored for a solo piano, two flutes, two oboes, two clarinets in B-flat (clarinet I playing clarinet in A in movement 2; flute II, clarinet II, both trumpets, and timpani are tacet during this movement), two bassoons, two horns, two trumpets, timpani in E-flat and B-flat, and strings.

 

The concerto is divided into three movements:

  1. Allegro in E-flat major
  2. Adagio un poco mosso in B major
  3. Rondo: Allegro ma non troppo in E-flat major

As with Beethoven's other concertos from this time period, this work has a relatively long first movement. (At twenty-five minutes, the Violin Concerto has the longest; Piano Concerto Nos. 4 and 5 each have opening movements of about twenty minutes.)

 

Conductor : Chung Myung-Whun
Piano : Cho Seong-Jin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1악장: 알레그로

약 20분간에 걸친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첫 악장은 시작부터 특별하다. 관현악의 힘찬 화음에 이어 피아노가 곧바로 등장하여 화려하고 당당한 카덴차를 연주해 보이며 출발하는 것. 협주곡의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난 이런 시작은 이후 슈만, 그리그, 차이코프스키 등 수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혁신적인 개시부에 이어 관현악이 강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제1주제와 스타카토 리듬에 실려 등장한 후 유려하게 펼쳐지는 제2주제를 제시한다. 이후 피아노가 다시 등장하고 음악은 때로는 충만한 열기와 긴장감 속에서 강력하게, 때로는 섬세하고 유연하면서도 멋스럽게 진행된다. 이 악장은 두 차례의 장쾌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후 힘차게 마무리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통상 재현부와 종결부 사이에 놓이는 독주자 임의의 카덴차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베토벤은 ‘카덴차는 필요 없음. 그대로 계속해서 연주할 것’이라고 지시하는 대신 카덴차에 상당하는 독주부를 직접 채워 넣었다. 즉, 자신이 의도한 흐름이 독주자의 기교 과시에 의해서 단절되거나 왜곡될 위험을 차단했던 것이다. 이 역시 슈만과 브람스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부분이다.

아울러 이 악장에서는 트럼펫과 팀파니의 활약을 통해서 팡파르 풍의 울림과 행진곡 풍 리듬이 유난히 부각된다. 또한 전편의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흐름은 다분히 전투적이다. 그래서인지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 협주곡을 ‘군대 개념의 변증론’이라고 불렀는데, 혹시 베토벤은 이 곡에서 나폴레옹 군대, 혹은 그로 상징되는 ‘적군’에 대한 자기 나름의 투쟁을 전개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했던 시절, 베토벤은 프랑스군 장교와 마주친 자리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대위법만큼 병법에 정통했더라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도처에서 포탄이 터지는 듯한 장면마저 연출하는 이 곡을 들으며 (물론 비유적인 견지에서) 관현악을 병사들로, 피아노를 그들을 이끄는 장수로 상정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Despite its use of simple chords, including a second theme constructed almost entirely out of tonic and dominant notes and chords, the first movement is full of complex thematic transformations. When the piano enters with the first theme, the expository material is repeated with variations, virtuoso figurations, and modified harmonies. The second theme enters in the unusual key of B minor before moving to B major and at last to the expected key of B-flat major several bars later.

Following the opening flourish, the movement follows Beethoven's trademark three-theme sonata structure for a concerto. The orchestral exposition is a typical two-theme sonata exposition, but the second exposition with the piano has a triumphant virtuoso third theme at the end that belongs solely to the solo instrument (Beethoven does this in many of his concertos). The coda at the end of the movement is quite long, and, again typical of Beethoven, uses the open-ended first theme and gives it closure to create a satisfying conclusion.

 

2악장: 아다지오 운 포코 모소

앞선 악장과 사뭇 대조적인 완서악장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온화하게 이어지는 흐름, 그리고 그 위에 신중하게 얹히는 독주 피아노의 선율. 이 명상적인 악장에는 숭고하고 성스러운 기운마저 서려 있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에 따르면 찬미가 풍의 주제는 오스트리아의 순례의 노래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이 빈에서 물러간 얼마 후인 11월 22일에 베토벤이 라이프치히의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격렬한 파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난을 겪은 뒤에 우리는 약간의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몇 주 연속해서 작업했지만 불멸성보다는 죽음을 위한 작업으로 여겨집니다. (...) 이 죽어버린 평화에 대해 당신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나는 이 시대에 더 이상의 안정을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확실성은 우연한 기회뿐입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다시 한 번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 이 악장은 그 극복의 통로가 아니었을까? 여기서 그는 반추하고, 기도하고, 음미한다. 그리고 새 희망을 꿈꾼다. 그의 후기 음악에 나타나는 영적인 차원의 환상적인 음률이 이미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악장은 베토벤이 남긴 가장 심오하고 감동적인 음악 가운데 하나이다.[The second movement in B major is calmly paced and delicate, being a standard contrast to the first movement. It moves into the third movement without interruption when a lone bassoon note B drops a semitone to B-flat, the dominant note to the tonic key E-flat.]

3악장: 론도. 알레그로

앞선 악장의 끝부분에서 중단 없이 이어지는 이 악장에서 음악은 다시금 첫 악장의 기세와 분위기로 복귀한다. 이 ‘승리’를 향한 행진곡에서, 춤곡 풍의 주제는 마치 곡예를 펼치는 듯하며, 피아노와 관현악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술래잡기를 하는 듯하다. 협주곡 고유의 경쟁의 묘미와 돌파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박진감 만점의 멋진 피날레이다.[The final movement of the concerto is a seven-part rondo form (ABACABA), a typical concerto finale form. The piano begins the movement by playing its main theme, then followed by the full orchestra. The rondo's B-section begins with piano scales, before the orchestra again responds. The C-section is much longer, presenting the theme from the A-section in three different keys before the piano performs a cadenza. Rather than finishing with a strong entrance from the orchestra, however, the trill ending the cadenza dies away until the introductory theme reappears, played first by the piano and then the orchestra. In the last section, the theme undergoes variation before the concerto ends with a short cadenza and robust orchestral response.]

흔히 이 곡의 제목처럼 통용되는 ‘황제’라는 별명은 정작 베토벤 자신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베토벤이 한때 존경하던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서 격노하여 ‘영웅 교향곡’의 원래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일화를 떠올리자면, 베토벤의 가장 돋보이는 걸작 중 하나에 '황제'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은 심히 불경스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별명을 누가 붙였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설에는 크라머라는 영국의 출판업자가 거론된다. 그는 이 작품이야말로 모든 피아노 협주곡들 가운데 황제의 자리에 놓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꽤나 그럴듯한 발상 아닌가? 더구나 젊은 시절에는 혈기왕성했던 베토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보수적인 성향으로 변해 갔으며 한때 황실 악장의 직함을 원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굳이 거부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닌가 싶다.

 

추천음반

1. 다른 어떤 곡보다도 이 곡에 있어서만큼은 근래의 음반들보다 왕년의 거장들이 남긴 음반들이 먼저 떠오른다. 모노 시절의 명반으로는 역시 에트빈 피셔를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것이고, 이후에도 빌헬름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루돌프 제르킨, 클라우디오 아라우, 프리드리히 굴다, 알프레트 브렌델, 에밀 길렐스, 레온 플라이셔, 아르투로 미켈란젤리 등등이 남긴 기라성 같은 명연들이 즐비하다.

2. 그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낸다는 건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 후대의 음반들 중에서 피아노와 관현악의 조화, 독주 스타일의 다양성, 그리고 음질적인 측면 등을 고려하여 입문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권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음반들로 마우리치오 폴리니, 크리스티안 치머만, 머레이 페라이어 등이 있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말 해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3.30]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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