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 손기섭(1928∼ )
언제부턴가 내 등에
점점 커가는 콩알만 한 혹 하나가 생겼는데
손이 닿지 않아 만질 수도 없고
거울로 비쳐봐도 잘 보이지도 않고
가끔 가려운 듯하면서 신경을 긁는다
손수 칼 잡을 때 같으면
친구 이리 와 그까짓 것 문제없어
하고 손쉽게 떼어내 줄 것 같은 것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렇게 해줄 만한 친구 하나 없다
나온 지 오래 됐어도 근무했던 병원에 가면
마음 써줄 후배나 제자도 있겠지만
그 까다로운 수속이며 절차며
어쩔 수 없이 번호가 되어 기다려야 하고
그 밖의 처지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번지도 잘 모르는 곳에서 눈물이 난다
시인은 직업이 되지 못한다. 원고료를 가지고는 먹고살 수 없다. 물론 받기는 하지만 원고료는 몹시 적고 대개는 돈 말고 시가 실린 잡지로 받으려고 한다. 시인들도 잡지사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대개의 시인은 별개의 생업을 가지고 있다. 아니, 계속 시인이고 싶어서 직장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손기섭 시인의 경우에도 직업은 따로 있다. 그는 의사다. 의사 중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외과의사이고, 아주 큰 대학병원 원장을 하던 분이다. 한때 ‘메스의 신’으로 날렸다. 그리고 그는, 메스만 잡은 것이 아니라 펜도 함께 잡았다. 회진이다 수술이다 엄청나게 바빴을 텐데도 시인이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바쁜 짬을 쪼개 시의 자리를 마련했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게다가 어렵고 가난한 시인들이 아프면 열일 제쳐 놓고 치료해 주시던 분이기도 하다.
그랬던 시인 의사는 나이를 먹었고 이제 퇴직하여 외로이 지낸다. 그런데 등에 혹이 하나 자라기 시작했단다. 예전 같으면 그까짓 게 무슨 대수랴. 쉽게 떼어줄 친구며 동료가 허다하게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근무하던 병원에 가도 번호표를 뽑아든 노인이 되어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과거 가장 반짝거렸던 장소에서 가장 초라하게 앉아 있으려니 목이 멜 수밖에.
공원에, 벤치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모든 노인들은 한때 역전의 용사였고 푸른 젊은이였고 훌륭했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오래 사는 것이 왜 슬퍼야 할까. 그들은 아름다웠기에 이미 아름답다. 그러니 “열심히 시를 쓰고 열심히 생명을 구해 주어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저 노인의 손을 꼭 잡아줄 필요가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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