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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에 반역 혐의로 사형당한 노론의 핵심 인물]구선복[具善復 ]

Bawoo 2016. 7. 17. 20:59

구선복[具善復 ]

1718(숙종 44)∼1786(정조 10).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사초(士初).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성필(聖弼)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는데 1748년(영조 24)에는 황해도수군절도사에 취임하였으며, 2년 후에는 충청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757년 포도대장에 올라 치안유지에 노력하였다. 그 뒤 병조판서를 거쳐 의금부판사가 되었다.

은언군(恩彦君)의 아들인 상계군(常溪君)을 지지하여 당시 유력한 인사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벼슬이 점차로 높아짐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방자하게 구는 경향까지 보여 인심을 잃다가 1786년에 죄를 입어 조카인 명겸(明謙)과 같이 처벌되었다.


『정조실록(正祖實錄) 16년 윤4월 27일』에 묘사된  구선복에 대한 부분

"역적 구선복으로 말하면 홍인한보다 더 심하여 손으로 찢어 죽이고 입으로 그 살점을 씹어 먹는다는 것도 오히려 헐후(歇後)한 말에 속한다. 매번 경연(經筵)에 오를 적마다 심장과 뼈가 모두 떨리니, 어찌 차마 하루라도 그 얼굴을 대하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그가 병권을 손수 쥐고 있고 그 무리가 갑자기 처치할 수 없었으므로 다년간 괴로움을 참고 있다가 끝내 사단으로 인하여 법을 적용하였다"


1. 개요[편집]

조선 후기 군인으로 정조 치세 당시 역모를 꾀하다 죽었다.

2. 생애[편집]

본관 능성 구씨(綾城 具氏). 자 사초(士初). 1718년(숙종 44년)에 태어났다. 1738년(영조 14년)에 진사가 되고 총융사훈련대장 등을 역임하고, 최고 군사실력자로 병조판서·판의금부사가 되었으나, 1786년(정조 10년) 반란을 일으켜 아들 구이겸, 조카 구명겸과 함께 처형당했다.

죄명은 문효세자가 죽자 상계군 담을 추대하려 하였다는 이유였으나, 원래 성격이 잔인무도하여 재직기간 중, 하인에서 조정 고관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욕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인심을 잃었던 까닭도 있었다. 심지어 임오화변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있는데 세자를 능멸하고 희롱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장차 후세에 망할 거라고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구선복은 정조 때 정부 전복을 시도하다가 적발되어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인해서 대대로 조선초기 이래 고위직 무신을 도맡아 한 능성 구씨 일가는 몰락하고 말았다.



[출처: 정보-책칼날 위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