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뿔싸
오탁번1943~ )
까치설날 아침
두 돌잡이 외손녀가
두 손을 배꼽에 대고
하버지 하버지 하며
배꼽세배를 한다
5만원이 날아갔다
외손녀가
스무 살이 되어
멍게빛 배꼽 다 보이는
배꼽티 입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세배를 하면
5만원이 또 몇 장?
아니, 그때까지 내가 산다고?
하뿔싸!
두 살 손녀의 재롱 앞에서 백기 투항한 할아버지가 스무 살의 손녀를 상상한다. “배꼽세배”는 “배꼽티”로, “하버지”라는 옹알이는 “할아버지”라는 성인의 언어로 바뀔 것이다. 5만원의 세뱃돈은 그 몇 배로 뛸 것이다. 그래도 즐거울 텐데, 문득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하뿔싸”는 ‘아뿔싸’보다 훨씬 강력한 할아버지만의 감탄사다. 5만원권을 5만 개 줘야 해도 그날이 이 할아버지와 함께하기를.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하뿔싸
두 돌잡이 외손녀가
두 손을 배꼽에 대고
하버지 하버지 하며
배꼽세배를 한다
5만원이 날아갔다
외손녀가
스무 살이 되어
멍게빛 배꼽 다 보이는
배꼽티 입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세배를 하면
5만원이 또 몇 장?
아니, 그때까지 내가 산다고?
하뿔싸!
두 살 손녀의 재롱 앞에서 백기 투항한 할아버지가 스무 살의 손녀를 상상한다. “배꼽세배”는 “배꼽티”로, “하버지”라는 옹알이는 “할아버지”라는 성인의 언어로 바뀔 것이다. 5만원의 세뱃돈은 그 몇 배로 뛸 것이다. 그래도 즐거울 텐데, 문득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하뿔싸”는 ‘아뿔싸’보다 훨씬 강력한 할아버지만의 감탄사다. 5만원권을 5만 개 줘야 해도 그날이 이 할아버지와 함께하기를.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하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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