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허공에 거미줄을 쳐 놓고 날아다니는 것들을 잡아먹으려고 기다렸다. 작은 놈으로는 모기, 파리에서부터 큰 놈으로는 매미, 제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대로 잡아먹어 배를 채우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벌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거미는 재빨리 거미줄로 벌을 칭칭 감다가 갑자기 땅에 떨어지더니 배가 터져 죽었다. 벌의 독침에 쏘여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어떤 아이가 거미줄에 감겨 벗어나지 못하는 벌을 보고는 손을 뻗어 풀어주려고 하다가 또 벌의 독침에 쏘였다. 아이는 화가 나서 벌을 발로 밟아 짓이겨버렸다.
조선 후기의 학자 윤기(尹/·1741∼1826) 선생의 ‘무명자집(無名子集)’에 실린 ‘잡설(雜說)’ 중 한 편입니다. 우화 형식의 작품이라 과학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우화가 그렇듯 인간세태를 절묘하게 그려내어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얼핏 보면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거미, 벌, 아이가 죽고 죽이는 게 무슨 의미인데? 고민하는 독자를 위해 선생께서 거미, 벌, 아이가 놓친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해 주십니다.
거미는 그저 자기의 재주로 모든 날아다니는 것들을 얽어맬 수 있다는 것만 믿었지 벌이 독침으로 자기를 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不知). 벌은 그저 독침만 쏘면 다 되는 줄 알아서, 자기를 해치는 자와 자기를 구해주는 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不擇) 쏘아대는 바람에 자기를 구해주려던 자가 도리어 자기를 해치도록 만들었다.
상대의 실력을 모르고, 상대의 선의를 구별 못 하고, 상대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아서 우리는 종종 세상살이에서 낭패를 겪나 봅니다. 모르는 것도 분명 잘못입니다. 선생의 마무리입니다.
“천하의 모든 일이 어찌 다만 이와 같기만 할 뿐이랴(天下之事奚但如斯而已也).”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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