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고전신화와 그리스 신화의 비교
— 몇 가지 특성을 통해서 본 공통점과 차이점 —
宣 釘 奎
<목 차>
1. 서언
2. 중국과 그리스 신화의 공통점
3. 중국과 그리스 신화의 차이점
(1) 신화의 체계
1) 신의 계보 중심의 그리스 신화
2) 제왕 계보 중심의 중국 신화
(2) 신과 인간의 관계
1) 신의 인격화, 그리스 신화
2) 인간의 신격화, 중국 신화
(3) 영웅의 형상과 성격
1) 무력과 자유의 화신, 그리스 신화 영웅
2) 문화와 덕의 전범, 중국 신화 영웅
(4) 민족정신의 구현
1) 운명 중심의 그리스 신화
2) 천명 중심의 중국 신화
4. 신화의 발전 방향
(1) 그리스 신화의 예술화
(2) 중국 신화의 역사화
5. 결론
*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중국학부 교수.
1. 서언
중국과 그리스의 고대 문화는 동서양의 문화를 대표하는 양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는 문화복합체로, 문화의 생성 배경에 따라서 서로 다른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그리스의 고대 신화의 특성을 상호 비교하는 것은 동서 문화의 특성을 파악하는 첩경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고는 양국의 고대 신화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 및 그러한 특성의 유래와 발생의 원인에 대해서 고찰함으로써 동서 문화의 근저에 놓여있는 서로 다른 우주관 내지 세계관, 그리고 자연관과 사회관 및 인생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서술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중국과 그리스의 고대 신화는 우주 형성 이전의 상태, 인류 창조의 방법, 근친 결합, 자연계의 형성과 운행, 위민제해(爲民除害)의 영웅 행적 등에 대해서 대단히 유사하거나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화의 체계, 신과 인간과의 관계, 영웅의 형상과 성격, 민족정신의 구현, 그리고 신화의 발전방향 등에 있어서는 서로 커다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양국의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은 양국의 고대 문화가 기본적으로 인류적 보편의식의 바탕에서 형성되었지만, 자연지리 조건을 위시한 역사경험, 경제수단 및 사회발전 단계 등에서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기에 생긴 것이다.
2. 중국과 그리스 신화의 공통점
중국과 그리스의 창세신화가 말하는 창세의 과정에 나타난 사유체계는 여러 부분에서 매우 커다란 유사성 내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창세 신화는 모든 신화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신화이고, 민족의 원형적 사고를 가장 깊이 있게 반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중국과 그리스 신화의 이러한 공통성은 양국이 비록 공간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신화에 내재된 정신만은 인류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중국과 그리스 신화는 모두 우주 생성 이전, 태초의 상태를 혼돈(Chaos)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창세신화라고 할 수 있는 반고 신화는 혼돈 속에서 반고가 태어나서 1만 8천년이 지나 천지가 개벽되었다고 말한다.1) 또 하나의 대표적인 창세신화라고 할 수 있는 여와신화에서는 인류의 탄생은 여와가 진흙을 빚어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설명한다.2)
그리스 신화에서도 천지창조 이전, 세계의 원소들에 질서가 부여되기 전에 있었던 태초의 공허를 혼돈으로 설정하고 있다. 카오스에서 에레보스(흑암)와 닉스(밤), 헤메라(낮), 아이테르(영기)가 태어났다.3)
그리고 인류의 탄생은 지상으로 추방된 프로메테우스가 흙속에 숨겨진 천신의 씨를 찾아내어서 흙과 물을 섞어서 신의 형상을 본뜬 결과이다.4)
또한 그리스와 중국 신화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근친 결합에 관한 신화소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의주신 제우스의 세 번째 아내이자 최고의 여신인 헤라는 제우스의 누이동생이다. 중국신화도 복희(伏羲) 여와(女媧) 남매의 결합에 의한 인류탄생을 말하고 있다.5)
중국과 그리스 신화에는 자연현상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많은 자연신화가 있다. 자연신화는 자연현상의 존재와 사계의 변화, 홍수와 한해, 지세의 형태 등에 대한 원시인류의 환상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6)
지세의 형성과 고착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대표적인 중국신화는 공공(共工)과 전욱(顓頊)의 이야기이다. 둘은 천제의 지위를 두고 서로 다투다가, 공공이 패배하여 그 분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을 받치고 있던 천주인 부주산(不周山)에 머리를 부딪치자 땅과 하늘을 매어 놓았던 밧줄이 끊어지면서, 하늘이 서북쪽으로 기울어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모두 서북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대지는 동남쪽이 무너져내려 강물과 유사(流沙)가 모두 동남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는 것이다.7)
기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치우(蚩尤)와 응룡(應龍)의 이야기가 있다. 황제와 치우의 전쟁 중에, 황제의 딸인 가뭄의 여신 천녀 발(魃)이 아버지를 도와서 치우를 물리쳤으나, 정작 본인은 적수 이북으로 추방당함으로써 북방이 건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8) 또 황제의 신하였던 축수(畜水) 응룡이 치우와 과보를 주살하였지만,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방에 거주함으로써 남방이 비가 많이 내리게 되었다고 설명한다.9)
1) 天地混沌如鷄子。 盤古生在其中。 萬八千歲。 天地開闢。 陽清爲天。 陰濁爲地。 盤古在其中。 一日九變。 神於天。 聖於地。 天日高一丈。 地日厚一丈。 盤古日長一丈。 如此萬八千歲。 天数極高。 地数極深。 盤古極長。 故天去地九萬里。 (≪三五歷記≫)
2) 天地開闢, 未有人民, 女娲摶黄土作人。 劇務力不暇供, 乃引绳於絙泥中, 擧以爲人。 故富貴者, 黄土人也: 貧賤凡庸者, 絙人也。 (≪太平御览≫卷七八引 漢 應应劭≪風俗通≫)
3) 피에르 그리말(Pierre Grimal) 지음 / 최애리 책임번역,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서울:열린 책들, 2009) p.443.
4) 피에르 그리말(Pierre Grimal) 지음 / 최애리 책임번역, 앞의 책, p.613
5) 昔混沌初開之时, 有娲兄妹二人于崑崙昆咒曰: ‘天若遣我兄妹二人爲夫妻, 而烟悉合。 若不, 使烟散。’于是烟即合, 其妹即来就兄。 (唐末 李元≪讀異志≫)
6) 李燕, <中國與希臘神話異同性探析>, ≪涪陵師範學院學報第22卷第6期≫(2006年11月),p.133.
7) 昔者, 共工與顓頊爭爲帝, 怒而觸不周之山, 天柱折, 地维绝。 天倾西北, 故日月星辰移焉: 地不满東南, 故水潦尘埃歸焉。 (≪淮南子⋅天文訓≫)
8) 蚩尤作兵伐黃帝, 黃帝乃令應龍攻之冀州之野。 응룡축수, 치우청풍백우사, 종대풍우。 黃帝乃下天女曰魃, 雨止, 遂殺蚩尤。 魃不得復上, 所居不雨。 (≪山海經⋅大荒北經≫)
9) 應龍已殺蚩尤, 又殺夸父, 乃去南方處之, 故南方多雨。 (≪山海經⋅大荒北經≫)
그리스 신화에서 홍수의 발생은 제우스가 인류를 처벌하기 위해 내린 징벌의 결과이고, 유럽(Europe) 대륙의 명칭은 제우스가 사랑했던 인간 여인 에우로페(Europe)에서 유래한 것이다.10)
계절의 변화 역시 저승의 왕인 하데스(Hades)가 그의 질녀인 농업의 여신, 특히 밀의 여신인 데메테르(Demeter)의 딸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납치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여신이 딸을 찾아 헤매는 동안 대지는 불모의 땅이 되어 버렸고, 제우스의 중재로 페르세포네는 한 해를 나누어 어머니와도 지내고 저승에서도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매년 봄 들판에 첫 새싹이 돋아나면 페르세포네는 지하 세계를 벗어나 하늘을 향해 올라갔고, 가을이 되면 다시 어둠 속에 묻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데메테르가 딸과 헤어져 있는 동안 대지는 불모지로 변하는데, 이것이 황량한 계절 겨울이다.11)
이상의 신화에서 보듯이 중국과 그리스의 신화에서 말하는 자연계는 사회형식이 부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의 형성이 결코 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일정한 행위의 결과로 인식되고 있다. 또 양국의 신화에 나타난 자연계는 모두 인격화된 자연계이다. 이는 원시인류의 자연관이 그들의 사회관과 융합되어서 사회의 가치체계를 자연의 질서체계에 그대로 적용시킴으로 써 인간의 이성이 자연의 감성에 집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12)
중국과 그리스 고대 신화는 위민제해(爲民除害)의 영웅의 행적에서도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지혜와 광명을 상징하는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전해준 대가로 제우스로부터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당한다.
중국신화에서 예(羿)는 아홉 개의 해를 쏘아서 백성의 재난을 구제하였으나, 정작 본인은 천제의 노여움을 사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또 곤(鯀)은 천제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식양(息壤)을 훔쳐서 황하의 홍수를 물리쳤으나, 그로 인해 우산의 들에 갇혀서 죽임을 당한다.
중국과 그리스 신화가 이처럼 태초 이전의 혼돈, 흙으로부터의 인류의 탄생, 근친 결합, 사회 체계와 자연 질서의 융합, 영웅의 위민제해(爲民除害) 행적 등, 일정 부분에서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양국의 고대 인민들이 인류적보편 의식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두 민족이 겪어온 사회발전의 단계 역시 일부 공통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는 문화적 복합체이자 이념이나 관념의 집합체이다. 신화를 통해서 원시의 가치관이나 우주관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념과 관념은 사회발전의 단계에 따라 그 내용과 형태를 달리한다.
따라서 신화의 생성은 사회발전의 단계와 일정부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시 사회형태가 동일하다면 사회생활이나 이념에 있어서도 동일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과 그리스의 신화가 상당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두 민족이 동일한 사회발전의 단계를 겪어왔다고 볼 수 있다.
10)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2≫(서울: 웅진 지식하우스, 2006) p.47.
11) 피에르 그리말(Pierre Grimal) 지음 / 최애리 책임번역, 앞의 책, p.82.
12) 李燕, 앞의 글, p.134.
3. 중국과 그리스 신화의 차이점
(1) 신화의 체계
1) 신의 계보 중심의 그리스 신화
그리스나 인도 등의 민족에게는 신화의 성전(聖典)과 같은 고적들이 존재한다. 그리스의 ≪신통기≫⋅≪일리아드≫⋅≪오디세이아≫나 인도의 ≪리그베다≫⋅≪스리마드 바가바탐≫등은 모두 자민족의 신화를 체계적으로 보존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고적들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매우 분명한 신들의 계통이 확립되어 있음과 동시에 이들 신들은 상호 긴밀하게 서로 관련되어 있다.
헤시오도스(Hesiodos, B.C.740?∼B.C.670?)의 ≪신통기(神統記, Theogoniā≫에 의하면, 태초에 카오스(Chaos, 혼돈)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넓은 젖가슴을 지닌 가이아(Gaia, 대지의 여신)가 있었고, 그 다음에 에로스(Eros, 사랑의 신)가 생겼다. 카오스에서 에레보스(Erebus, 태초의 암흑)와 어두운 밤의 신 닉스(Nyx)가 나왔으며, 닉스와 에레보스의 사랑으로 하늘의 상층부인 아이테르(Aether)와 낮의 빛인 헤메라(Hemera)가 태어났다.
가이아가 하늘과 산 그리고 바다를 낳았다.
가이아는 다시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와 관계하여 12명의 티탄과 독안(獨眼) 거인 키클로페스(Kyklopes) 삼형제와 백 개의 팔을 가진 거인 헤카톤케이르(Hekatoncheir) 삼형제를 낳았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그들을 모두 대지의 자궁 속에 가두어 빛을 보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를 견디지 못한 가이아는 크로노스(Kronos)를 사주하여 우라노스의 남근을 거세해 버린다.
바다에 버려진 우라노스의 남근에서 미의 신 아프로디테(Aphrodite: Venus)가 생겨난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하늘의 신이 된 크로노스는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을 차례로 삼켜버렸다.
아내이자 누이인 레이아(Rhea)는 크레타 섬으로 도망을 가서 제우스(Zeus)를 낳았고,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함으로써 제우스가 살아남게 되었다. 제우스는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하고 자신을 우두머리로 하는 올림포스 신보(神譜)를 건립하게 된다.13)
올림포스 신보는 전승에 따라서 그 구성이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제우스를 위시한 모두 열두 명의 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열두 신은 서로 대립하고 보완하는 관계로, 크건 작건 모두 제우스와 관련이 있으며, 제우스를 주신으로 수많은 신화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제우스와 여신들과의 연정, 신들과 인간과의 왕래, 신들 사이의 질투와 분쟁 등등 모든 것이 제우스를 중심으로 하여 서로 이어진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편리한 항해조건은 그리스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해외 문명을 접촉할 수 있게 하여서 자신이 처한 도시의 문명과 문화가 결코 세계의 중심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이 지식을 탐구하고 외래문화와 문명을 흡수하는 그리스인들의 의식을 자극하게 되었다. 수많은 지식에 직면하여 그리스인들은 선택, 분석, 가설, 추리, 연계의 능력을 배양하였으며 지식을 체계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의 완미(完美)한 체현자이다. 그리스인들은 인류가 추구하는 모든 것을 신의 창조에 귀속시켰다. 신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와 인생관을 반영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아주 자연스럽게 신의 이야기, 신들의 관계 등을 체계적으로 편성하여 그리스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 신화는 분명한 체계적 특징이 나타나게 되었다.14)
사회 역사 상황이 서로 다르면 신화의 체계 역시 차이를 보인다. 모든 민족은 발전의 과정에서 하나같이 씨족사회의 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민족의 사회역사 조건이 다르게 되면 씨족사회의 변화의 양상이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또 민족 생활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친다.
씨족사회가 가장 철저하게 개조되거나 방기된 예를 우리는 아테네의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테네는 기원전 6세기 초의 소론(Solon)의 개혁을 통해서 민주정치의 기초를 확립하고 다시 기원전 6세기 말의 크리스티나
(Cleisthenes)의 개혁을 통해서 민주정치를 확립하며 그리고 기원전 5세기 말의 페리클레스(Pericles)의 개혁으로 마침내 민주정치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독립된 민주정치를 확립하게 된다.15)
민주정치는 수공업의 발전에 매우 유리하여서 경제의 번영을 촉진하였고, 문학이나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번성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또한 이러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음유시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전승된 신화를 토대로 삼아서 희극에 시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하였다.
나아가 건축가나 조각가, 그리고 화가들 역시 자신들의 작품에 신화를 용이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때문에 그리스 신화는 이들에 의해서 그 체계와 전모가 쉽게 보존될 수 있었다.16)
올림포스 신들의 계보는 그리스 세계의 인간 백태(百態)를 반영한 것이자, 민족정신의 각인(刻印)이다. 그리스인들은 다양성과 함께 일치성을 동시에 구현하였다. 각기 다른 수많은 신들을 숭배함과 동시에 공동의 신을 숭배함으로써 그리스인들의 귀속감과 동질감을 증진시킨 것이다. 그리스가 수많은 도시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신계(神界) 만은 하나로 통일되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13) 헤시도、 오스 / 김원익 옮김, ≪신통기- 그리스 신들의 계보≫(민음사, 2003) pp.27-58.
14) 黃冬敏, <淺析中希古代神話的差異>, ≪沙洋師範高等專科學校學報2004年第6期≫, p.10.
15) 張啓成, ≪中外神話與文明硏究≫(北京: 學苑出版社, 2004), p.352.
16) 黃冬敏, 앞의 글, p.10.
2) 제왕의 계보 중심의 중국신화
중국에는 중화민족 전체에 영향을 미친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신화의 역사화와도 상당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전문적으로 신화를 기록한 문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임의대로 신화를 재단(裁斷)하거나 조합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원시신화가 가지고 있었던 상호 연계와 정체성이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통치자나 사상가들이 적극적으로 성왕의 형상을 빚어내어서, 사회적 전장과 규범이나 윤리가치의 표준을 제시하여 민중에 주입시켰다.
때문에 중국의 민중들은 이러한 교화에 점점 습관이 되어서 신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는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중국의 신화체계는 제왕의 계보로 그 면목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중국신화에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같은 뭇 신들을 통수하는 주신(主神)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신화의 계통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여와(女媧), 복희(伏羲), 황제(黃帝), 제준(帝俊), 염제(炎帝), 전욱(顓頊) 등과 같은 여러 명의 제(帝), 혹은 상제(上帝)가 각 지역을 독립적으로 관장하고, 이들 신들은 상하존비의 차이가 없이 소위 중제(衆帝)나 군제(群帝)가 상호 공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중국신화는 그 서사의 체계가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모두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서 신의 계보가 나타나지 않는다. 신과 신들 사이에 어떠한 연관 관계가 없다. 반고의 천지개벽과 여와의 인류창조 사이에 어떤 연계도 없이 각각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중화민족의 시조신으로 숭앙되는 황제(黃帝)도 그를 중심으로 하는 신보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또한 중국 고대신화에는 혼란스럽고 서로 모순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신의 계보를 구성하는 일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였다.
예를 들어, ≪한비자⋅십과(韓非子⋅十過)≫에서는 “옛날 황제가 태산의 정상에서 귀신들을 회합시켰는데 상아로 장식한 수레를 몰고서 여섯 마리 용이 수레를 끌었으며, 목신 필방(毕方)이 수레의 양쪽에서 호위를 섰고, 치우가 앞에서 길을 열었으며, 풍신이 앞으로 나가며 먼지를 청소하였고, 우신이 이어서 길을 깨끗하게 청소하였다. 호랑이와 늑대가 앞에 있고, 귀신이 뒤에 있으며, 등사는 지하에서 기어 다니고, 봉황은 하늘에서 날면서, 대규모로 귀신들을 한 데 모이게 하였다. 이 때문에 청각(清角)의 악조를 제작하였다.”17)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이해할 수 없는 신화 기록이다. 왜냐하면 치우와 황제와의 관계를 기록한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치우와 황제는 탁록(涿鹿)의 대전을 치렀고, 실패한 치우가 황제에 의해서 살해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비자(韓非子)≫에서는 치우가 황제의 시위(侍衛)로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하여 이처럼 신분이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거나 해석할 수 있는 어떤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중국신화는 신의 계보도 불확실하고 또한 신들 사이의 관계 역시 명확하지 않으며, 신의 신격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혼란과 모순을 조성하고 있는 관계로, 신화의 내용이나 서사적 특징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규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는 고대 중국이 지리환경이 광활한 영토를 배경으로, 수많은 종족들이 각자 독립된 문화를 영위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묵자⋅상동(墨子⋅尙同)≫에는 풍속과 인정이 다른 먼 나라의 기이한 사람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수많은 제후국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18)
광활한 지역에 다양한 종족이 존재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생활 풍속과 습관, 그리고 언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종교적 숭배의 대상도 서로 달랐다. 그 결과 지역 마다 부족의 시조신이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각자 일정한 지역범위를 관장하였다. 이러한 신의 왕국은 그들이 수호하는 부족의 영역을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 이 경계선 밖에서는 별개의 신이 아무런 대립이나 갈등 없이 통치한다. 부족이 존재하는 한 신들은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계속 생존해 있으며, 부족이 몰락하면 이들 신들도 사망한다. 말하자면 지역의 각기 다른 특성이 제각기 다른 신화를 만들어 내었고, 각기 다른 신화와 종교 신앙이 또 사람들의 향토색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적 갈등과 이질성은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 수 백 년에 걸친 전쟁을 거치면서 대일통(大一統)의 중화사상으로 포장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신의 계보가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것에 비해서 황제의 부친인 소전씨(小典氏)로부터 요(堯), 순(舜), 우(禹) 및 하상주(夏商周)의 소위 제왕의 계보라고 할 수 있는 역사계보는 이상할 만큼 유구하고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분명한 신의 계보가 등장하며, 중국 신화에는 선명한 제왕의 계보가 등장하는가? 민족의 사상이나 사유방식의 형성은 특정한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서로 다른 지리환경, 생존방식, 생활습속 등이 서로 다른 민족문화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신화 체계의 수립에도 역시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중국은 유사 이래로 농업 국가였다. 농업민족은 하늘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그리고 하늘(天)은 제(帝)를 통해서 구현된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생활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명에 복종하여 안락하게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도록 하였다. 독특한 지리환경과 생산방식은 독특한 민족성격을 배양한다. 경작과 수확을 반복하는 농경생활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무실(務實) 정신을 사회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농업을 생산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던 중국인들은 요행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노력한 만큼 수확이 있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현실생활로부터 자연스럽게 터득하였다.
때문에 중국인들의 관심은 언제나 정치와 민생과 같은 실용에 있었고, 경험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특성은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엄밀한 논리로 추리와 논증을 통해서 그것을 해결하기 보다는, 직각돈오(直覺頓悟)식으로 문제를 인지하는데 치중하도록 하였다.19)
17) 昔者黄帝合鬼神于泰山之上, 駕象車而六蛟龍, 畢方并轄, 蚩尤居前, 風伯進掃, 雨師洒道, 虎狼在前, 鬼神在後, 螣蛇伏地, 鳳凰覆上, 大合鬼神, 作爲清角。 (≪韩非子⋅十過≫)
18) 天子立, 以其力爲未足, 又選天下之賢可者, 置立之爲三公, 天子三公旣以立, 以天下爲博大, 遠國異士之民, 是非利害之辯, 不可一二明之, 故劃分萬國, 立諸侯國君, 諸侯國君旣而立, 以其力爲未足, 又選擇其國之賢可者, 置立之爲正長。 (≪墨子⋅尙同≫)
19) 陳秋紅, <遠古神話與民族文化情神 — 希臘神話、 希伯萊神話與中國神話之比較>, ≪東方論壇 2001年 第2期≫, p.28.
또한 상대적으로 폐쇄된 중국의 지리환경이 외래지식을 비교하고 귀감으로 삼으며 흡수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지식의 습득과정이 비교적 단일하여 다른 민족의 문명이나 문화와 연계나 비교, 또는 분석을 하는데 불리하였다. 중국은 또 대일통의 제국이 끊임없이 이어져 오면서 지속되었다. 역대의 통치자들은 사상과 학술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통일된 표준을 제정함으로써 고대인들의 환상(幻想)⋅회의(懷疑)⋅비판(批判)하는 능력을 심각하게 속박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중국신화가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체계가 결핍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원시사회에서 노예사회로 진입하면서 원시의 씨족사회에 대한 개조가 철저하지 못하여, 씨족의 수령이 노예사회의 군주로 직접 전화되었다.20)
“씨족혈연으로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었던 원시의 종법사회가 노예제 국가로 대체되지 못하고, 가족이 국가로 확대 발전된 것이 중국 고대사의 발전 맥락이다. 따라서 혈연을 기본으로 하는 노예제도와 굳게 연결됨으로써 국가는 바로 황제 소유의 국가라고 생각하여 국가와 황실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생각하는 가국일체(家國一體)의 관념이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씨족사회가 완전하게 해체되지 못하였고, 씨족사회의 종법제도 및 그 의식형태도 대량으로 잔존되어 전승되었다.”21)
군주는 사회의 가장으로서 국가를 관리하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중국인은 농업민족이었기에 하늘(天)에 대한 숭배는 원고시대로부터 존재하였다.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재하는 씨족수령은 바로 사람과 하늘의 중개자였다. 서주(西周)부터 춘추 이후까지의 계급사회에서는22) 군주가 이러한 중개를 담당하였다. 중국 고대의 군주들이 진행하는 국가 대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늘과 조상에 대한 융숭한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사 활동을 통해서 민중들은 군주가 바로 하늘과 인간의 중개자라는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천자(天子)’의 개념이 용이하게 사람들에게 주입되었다.
또한 통치자들은 자신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확보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하늘에 대한 숭배와 전통의 조상들에 대한 숭배를 결합시켰다. 이는 통치자들이 국가를 통치하는 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왕의 체계(帝系)가 중국 신화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역사 조건 때문이다.
은주(殷周) 시대는 중국신화에서 제왕의 계보가 형성된 중요한 시기이다.
은(殷)의 군주들은 자신들이 상제(上帝)의 적자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은의 마지막 군주 주(紂)가 그의 실정을 간언하는 조이(祖伊)의 말을 반박하면서, “내가 태어나서 국왕이 된 것은 천명이 있어서가 아닌가?”23)라고 말한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주는 낙후된 변방의 소국으로 열악한 지리 자연적 환경을 극복하고 상을 무너뜨리고 천하를 차지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경험상 하늘(天) 보다는 사람의 작용이 훨씬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동시에 은을 정벌하였던 합리적이고 정당한 근거를 찾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했던 것이 은인(殷人)들이 자신들을 상제의 적손(嫡孫)이라고 생각하는 심리적 우월감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늘은 덕이 있는 사람에게만 천하를 통치하는 천명을 부여하며, 일단 통치자가 실덕(失德)을 하게 되면 하늘의 비호를 잃어버리게 되어서 새로운 유덕자가 그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이른바 ‘경천보민’(敬天保民)이라고 하는 새로운 사상체계를 구축하였다.
전통적인 천명관(天命觀)에 덕의 요소를 포함시켜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 바로 주대 초기의 경천보민의 관념이었다.
그런데 주(周)가 비록 혁명을 통해서 상을 무너뜨렸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상의 영향을 하루아침에 걷어낼 수도 없었고, 또한 실제로는 상(商)의 통치를 계승하였다. 때문에 천명을 계승한 천자국으로서의 주의 위신과 영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원고의 신령들이었고, 그것을 제왕과 성현들의 일련의 계보로 개조하여 그 교화와 모범작용이 기능적으로 발휘되도록 한 것이다. 주의 통치자들은 자신이 천자이자 성인의 후대임을 자랑하였다. 그래서 주대부터 역대의 군주들은 모두 자신의 제계의 족보(族譜)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스와 중국은 모두 동서 고대 문명을 대표하는 민족이다. 서로 다른 환경과 역사조건으로 그리스 신화는 선택성이 강하고 자유공간이 크며, 이성이 강하였기 때문에 완벽한 신령의 계보를 형성하게 되었다. 반면에 중국신화는 자유공간이 그리스만큼 크지도 않았거니와 주로 질서를 유지하는 안정성에 치중하고 감성이 비교적 강하였기 때문에 대단히 체계적인 제왕의 계보를 만들어내었다.
20) 중국의 노예사회는 주로 주대(周代) 부터라고 본다. 구오모루(郭沫若)는 주(周)가 은(殷)을 멸망시킨 원동력은 다수의 노예를 이용하여 토목사업을 전개하고 토지를 개간하여 전쟁의 물자를 공급한 것이었다고 보았다. 郭沫若, ≪中國古代社會硏究≫(香港: 生活⋅讀書⋅知識三聯書店, 1978) p.13.
21) 馮天瑜⋅周積明, ≪中國古代史的奧秘≫(武漢: 湖北人民出版社, 1986), pp.66-67.
22) 郭沫若, 앞의 책, p.18.
23) 紂曰, 我生不有命在天乎!(≪史記⋅殷本紀≫)
(2) 신과 인간의 관계
1) 신의 인격화, 그리스 신화
고대 그리스 신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신과 인간이 동일한 모습 동일한 본성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속의 신들은 철저하게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있고 인간과 하나도 차이가 없는 의지, 성격, 욕망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들은 모두 세속화되어 눈앞의 향락과 현세적 쾌락에 탐닉하며, 신의 위엄이나 위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들 신들이 인간과 구별되는 것은 단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서 결코 죽지 않으며, 초인적 능력을 지님으로써 그들만의 독특한 생식방식을 통해서 이러한 특성을 계속해서 전달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술도 마시고 연애에 몰입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신들이 거처하는 장소인 올림포스 산에는 어떤 신비함이나 공포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걸핏하면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여, 마침내 다시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을 것처럼 죽자 살자 싸우기도 하고, 멋대로 세상을 희롱하며 신들과 인간을 놀리고 조롱하기도 한다.24)
그리스 신화속의 신들은 활발하고 귀여우며 인간과 서로 유희를 즐기기도 하고, 어깨를 나란히 전쟁을 치루기도 하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즐거워하고, 또 다른 신이나 인간을 질투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신력(神力)을 가진 세속의 남녀이지, 엄숙하고 공포로 가득한 신성한 신령들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는 땅이 좁고 산이 많으며 해안의 굴곡이 심하고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과 같은 하계의 더위와 한발도 없으며, 또한 유럽 대륙과 같이 혹한의 겨울도 없다. 대해가 그리스의 기후를 주재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연히 야외 운동을 좋아하게 되고 주민들의 성격은 활달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숭상하며 낙관적이고 명랑한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는 훌륭한 항만을 가지고 있어서 항해에 적합하였기에 그리스인들의 해외 식민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근 지중해 동안의 소아시아(Asia Minor), 페니키아(Phoenicia), 이집트(Egypt), 그리고 지중해 동부의 이태리(Italy), 시칠리아(Sicilia), 갈리아(Gallia), 스페인(Spain) 등지의 문명과 문화와 쉽게 접촉할 수 있었다.25)
그리스인들은 동쪽으로 항해하여 시리아(Syrian)를 거쳐 바빌로니아(Babylonia) 문명과 접촉하였고, 크레타(Crete)로부터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쉽게 이집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양대 문명의 성과를 쉽게 흡수하여 자신의 문명을 충실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그리스 신화의 특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아울러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계 도처로 항해를 하였기에 그 시야가 한 나라나 한 지역의 경계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접촉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개조하여서 자신들에게 적합한 신을 창조하였다. 신과 인간의 동일한 본성의 핵심적 측면은 바로 신을 인간화시킨 것으로, 실제로는 종교 신화의 아름다운 외투 아래서 인간의 이상, 바로 자유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올림포스 신전의 신들은 이상화된 그리스인, 바로 가장 자유인인 것이다.26) 그리스인들은 그러한 완미한 신을 통해서 인생의 이상과 바람을 기탁하였던 것이다.
24) 謝逸駿, ≪神話與民族英雄≫(湖南: 山東文藝出版社, 1986), p.6.
25) 黃冬敏, 앞의 글, p.8.
26) 王森洋⋅範明生, ≪東西哲學比較硏究≫(上海: 上海敎育出版社, 1994), p.513.
2) 인간의 신격화, 중국 신화
중국신화의 신들은 위엄으로 가득하며 장중하고 신비로우며 초세속적이다.
신들의 모습은 대부분 인간과 동물의 합체이고, 동식물의 요소가 그리스 신화보다 훨씬 많다. 죽음을 관장하는 서왕모(西王母)는 호랑이 이빨에 표범의 꼬리(虎齒豹尾)를 하고 있다.27)
인류의 창조자라고 하는 여와와 복희는 사람의 머리에 몸뚱이는 뱀(人首蛇身)이다.28) ≪산해경≫에 등장하는 하신(河神) 빙이(氷夷)는 사람의 얼굴에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고,29) 수신(水神) 천오(天吳)는 여덟 개의 사람의 머리가 얼굴이며, 여덟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30)
또 동해의 신 우호(禺䝞)는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이고 누런 뱀 두 마리를 귀에 걸고 누런 뱀 두 마리를 밟고 서 있다.31) 또 소택의 신 상류씨(相柳氏)는 아홉개의 머리에 뱀의 몸뚱이를 하고 있다.32)
또한 신들은 모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인간 세상에서 머물기를 좋아하거나 인간과 유희를 즐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국의 고적에서 신은 인간과는 근접될 수 없는 높고 높은 존재로 하층의 인간과의 왕래는 매우 드물다. 일반 민중들의 신에 대한 감각은 경외와 공포이지 결코 친근하고 사랑하는 존재는 아니다.
중국신화의 생성 토양은 그리스와는 전혀 다르다. 중국의 고대인들은 고립된 온대 대륙의 대하를 중심으로 하는 환경 속에서 살았다. 중국 대륙은 동쪽으로는 황해에, 서북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에, 서남쪽으로는 청장고원(青藏高原)에 가로막혀 외부세계와 상대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이리한 지리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외부와의 왕래가 적을 수밖에 없었고 외부의 지식을 흡수하는 것도 그리스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로 인해서 고대 중국신화의 신들은 모두 자발적인 창조로 형성되었으며, 외래의 요소를 빌린 것이 거의 없다.33)
또한 “중국신화는 그리스 신화에 비해서 그 생성연대가 훨씬 이르다. 따라서 원시의 토템숭배와 모계씨족사회의 여성숭배의 영향력이 훨씬 컸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였고, 그에 비해 각종 동물을 비롯한 야수는 강대한 존재였다.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인간에 의해 신성시되어 숭배되었고, 신령의 숭배와 야수의 숭배가 일체가 되어서 신화 속에 인수합체(人獸合體)의 형상이 다수 출현한 것이다.”34) 바꾸어 말하자면 원시 사람들이 통치자의 권능을 인식하여 신에게 통치자의 요소를 주입한 것이 바로 인수합체의 신으로, 이는 <비인간(非人間)의 힘에 대한 의탁>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35)
더욱이 중국 신화는 전승의 과정에서 전통적인 통치사상이 녹아 들어갔고, 또 통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서 대다수가 객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특성을 갖게 되었다. 자연히 신의 형상을 빚어내거나 인성을 체현하는 데 있어 지극히 이상화되고 또 신앙화되었다. 때문에 신들은 사람들과 더욱 멀어져서 높고 높은 자리에 위치하여,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과 인간에게는 없는 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인간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의 진정한 신이 되었다. 그러나 신의 형상을 지나치게 완전무결하게 만들다 보니 진실성과 인격적 매력은 전혀 없이 개성을 상실하고, 단지 도덕의 표상과 우상이 되었을 따름이다.36)
한 마디로 중국 신화의 신은 언제나 높은 곳에 존재하면서, 신성하고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로 말미암아 중국의 신들은 세속의 분위기가 거의 없는 것이다.
27) 西王母其狀如人, 豹尾虎齒而善嘯, 蓬髮戴勝, 是司天地厲及五殘。 (≪山海經⋅西山經≫)
28) 傳言女媧人頭蛇身, 一日七十化。 (王逸≪楚辞⋅天問≫), 伏羲鳞身, 女娲蛇躯。 (王延壽≪鲁靈光殿賦≫, 蛇身人首(≪帝王世纪≫), 女媧氏蛇身人面。 (≪帝王世纪≫), 伏羲女媧人首蛇形。(曹植≪女媧畵贊≫)
29) 氷夷人面, 乘兩龍。 (≪山海經⋅海內北經≫)
30) 朝陽之谷, 神曰天吳, 是爲水伯。 …… 其爲獸也, 八首人面, 八足八尾, 皆靑黃。 (山海經⋅海外東經)
31) 東海之渚中, 有神, 人面鳥身, 珥兩黃蛇, 踐兩黃蛇, 名曰禺䝞。 (≪山海經⋅大荒東經≫)
32) 相柳者, 九首人面, 蛇身而靑。 (≪山海經⋅海外北經≫)
33) 黃冬敏, 앞의 글, p.9.
34) 張沁文, <遠古神話與民族文化精神 - 現代視野下中國神話和希臘神話之比較>, ≪陝西理工學院學報(社會科學版)≫(2007年2月 第25卷第1期), p.13-14.
35) 謝逸駿, 앞의 책, p.102.
36) 田慶軒⋅張建强, <“善”與“美”的對話 -中國神話和希臘神話比較->, ≪河北北方學院學報≫ (第22卷第1期, 2006年2月), p.17
(3) 영웅의 형상과 성격
1) 무력과 자유의 화신, 그리스 신화 영웅
그리스 신화의 주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영웅에 대한 열애와 칭송이다. 이들 영웅들은 하나같이 용감무쌍하며 대부분 반신반인(半神半人)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모험과 정복을 좋아하여 용맹한 무공(武功)을 자랑으로 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헤라클레스(Herakles)이다.
헤라클레스는 주신 제우스와 인간 여인, 즉 암피트리온(Amphitryon)의 아내 알크메네(Alkmene)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를 질투한 헤라 여신의 간계에 빠져 아내와 자식들을 제 손으로 죽인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저지른 끔직한 죄를 씻기 위해 신탁을 받아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Eurystheus)의 명령으로 열두 가지 과업37)을 수행한다.
헤라클레스가 수행한 이 열두 가지 과업은 하나같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중국신화의 영웅들이 인류나 사회를 위한 문화적 업적을 쌓아가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헤라클레스는 여신 헤라의 박해로 인해 평생 고난과 역경에 시달리면서도 수호여신 아테나의 원조에 의해서 수많은 무훈을 세우고, 사후에는 제우스의 제안으로 그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신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헤라의 허락으로 그녀의 딸이자 청춘의 여신 헤베와 혼인하여 올림포스 신전에 살면서 그리스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황금양모(黃金羊毛)를 찾기 위한 이아손(Iason)과 아르고호 원정대,38) 테베(Thebes)를 공
격한 일곱 영웅들, 트로이(Troy)를 공격한 오디세우스 등의 영웅모험담도 모두 헤라클레스의 모험담과 유사하다.
37) ① 주민의 가축을 잡아먹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드는 네메아의 골짜기에 사는 사자 퇴치,
② 머리가 5개, 6개 혹은 100개가 달렸으며 누구라도 그 입김에 쏘이게 되면 즉사하고, 농작물과 가축에 큰 피해를 입히는 레르네의 물뱀 히드라 퇴치,
③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에리만토스산의 멧돼지를 산 채로 잡는 일,
④ 처녀신 아르테미스 소유의 사슴을 산채로 잡아다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보여주는 일,
⑤ 날카로운 청동 깃털을 가지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적들에게 화살처럼 쏘며 사람을 작아먹는 스팀팔로스 호수의 괴조 퇴치,
⑥ 토지가 비옥함을 잃고 불모의 땅이 되어버릴 정도로 가축의 배설물이 쌓여있는 엘리스 왕인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알페이오스 페네이오스 두 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단 하루 만에 깨끗이 청소하는 일,
⑦ 크레타 섬의 황소를 산 채로 잡는 일,
⑧ 트라케의 디오메데스왕이 인육을 먹여 키운 네 마리의 암말을 산 채로 데려오는 일,
⑨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탈취하는 일,
⑩ 크리사오르의 아들인 게리오네우스의 소떼를 산 채로 몰아오는 일,
⑪ 저승에 있는 스틱스 강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산 채로 데려오는 일,
⑫ 머리가 백 개가 달린 불사의 용이 지키고 있고, 님프(妖精) 헤스페리데스가 돌보는 동산의 황금 사과를 따오는 일. 피에르 그리말(Pierre Grimal) 지음 / 최애리 책임번역, 앞의 책, pp.657-665.
38) 이올코스의 통치권의 정당한 계승자인 이아손은 성인이 되어서 숙부 펠리아스에게 맡겨 두었던 통치권을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대해 펠리아스는 프릭소스를 싣고 날아갔던 숫양의 털을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명했다. 이 양털은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가 아레스에게 바친 황금 양털로, 용이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으러 간다는 소문을 듣고 그리스 전역에서 50 명 내지 55명 정도의 용사들이 모여 들었고 이들을 아르고나우타이(Argonautes)라고 한다. 이들을 싣고 가기 위해 건조하였던 배가 아르고호이다. 아르고나우타이는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한 모험의 과정에서 돌이오네스 족들과 의 전쟁, 베브리케스 족들과의 전면전, 푸른 바위들이 서로 부딪치며 떠도는 암초를 빠져 나가기, 이아손 혼자 코로 불을 내뿜는 황소 두 마리에게 굴레 씌우기, 거인 탈고소와의 결투 등을 벌인다.
그리스 신화가 숭상하고 찬미하는 것은 고난을 구제하고 엄숙하게 자신을 극기하는, 덕이 있는 영웅인물이 아니다. 비바람을 마음대로 부리고,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힘(力)이나 기술을 보유한 신격들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힘과 기술은 선악과 서로 혼동되어 있으며, 그리스의 기본적인 정신요소는 힘에 대한 숭배와 추구이다. 그리스인들은 누구의 편이든 용감무쌍하여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면 모두 영웅으로서 사랑과 존경을 바쳤다. 적이라고 결코 이유 없이 폄하하지 않았고, 또 자기의 편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칭송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힘에 대한 숭배는 힘의 비밀을 해석하는 지식에 대한 강력한 호기심을 야기 시켰고, 힘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지식에 대한 끝없는 탐구의 정신을 배양하였다.39)
이들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은 결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흠모와 사랑을 받으며 찬미된다. 제우스의 권력도, 절제된 것이 아닌 자의적인 의지의 도구일 따름이다. 인간이 가진 모든 결점을 신들도 가지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보다 더 방탕하고 제멋대로이다.
천신인 제우스는 어떤 풍류 인간보다 더 욕정을 마음대로 발산하며, 도처에서 사랑을 나누고 수많은 염문을 뿌린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대부분이 그의 연애에 관한 것이다. 그의 아내 헤라 역시 천성적으로 질투가 심하여 제우스의 정부나 사생아들에 대해서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보복을 한다. 때문에 전체 그리스 신화에는 동양적 안목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윤리적 분위기로 뒤덮여 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단지 인간보다 빼어난 능력을 가졌을 뿐, 감정적으로는 세속의 범인일 따름이다.
고대 그리스는 크고 작은 2백여 개의 완전 독립된 도시국가로 이루어졌으며, 그 역사는 투쟁의 역사이다. 기원전 6세기 초부터 동방 페르시아와 반세기에 걸친 전쟁 끝에 승리하였고, 이후 다시 10년 동안이나 아테나와 스파르타가 소위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이라고 불리는 내부전쟁을 벌였다.
결과는 그리스가 승리하였지만 쌍방이 모두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소모하였기 때문에 전체 그리스가 총체적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그 결과 기원전 337년 이후 마케도니아의 통치를 받았다. 그리스의 스파르타식 상무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기원전 776년부터 올림포스 산상에서 거행된 올림픽도 그 최종적인 목적은 체육을 통해 대외 전쟁에 대비하는 무력훈련이었다. 그리스 신화가 이처럼 영웅과 미녀에 대한 편애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스파르타를 대표로 하는 그리스의 상무정신(尙武情神)이 신화에 반영된 결과이자, 그리스가 수십 년에 거쳐 내외전쟁을 벌였던 역사적 경험의 귀결이다. 영웅의 투지와 그리스의 성쇠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40)
39) 謝選駿, 앞의 책, pp.218-219.
40) 張啓成, 앞의 책, p.358.
2) 문화와 덕의 전범, 중국 신화 영웅
중국신화의 영웅의 주류는 대부분 문화형(文化型)이고 그리스 신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무력형(武力型)은 아니다. ‘문화영웅’이란 신성을 갖춘 인물로, 인류를 위해 불의 사용, 식물의 재배, 공구의 발명 등과 같은 각종 문화기물을 획득하거나 처음으로 창조한 사람을 말한다.41)
문화영웅은 대지를 횡행하는 요마와 괴물들을 퇴치하고, 인간에게 생활의 각종 기예를 가르치며, 인류를 위해 사회조직, 혼상습속, 예의절령 등을 제정한다. 때로는 세계의 창조와 자연질서의 제정에도 참여한다.42)
한 마디로 각종 ‘문화업적’을 창조하여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성인을 말한다. ‘문화업적’이란 불의 취득, 각종 기예(技藝)와 농경의 창시, 혼인제도나 습속, 그리고 예의와 같은 특정한 사회제도를 창조한 것을 말한다. 중국신화에서 이러한 문화업적은 하나같이 모두 문화영웅의 위대한 업적으로 귀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황제(黃帝)는 ≪산해경≫이나 ≪사기⋅오제본기≫에서는 염제(炎帝)와의 판천지전(阪泉之戰), 치우(蚩尤)와의 탁록지전(涿鹿之戰)을 승리로 이끈 무력의 영웅이지만, 훗날의 기록에서는 정복자나 전쟁영웅의 특성보다는 오히려 문화영웅으로서의 면모가 훨씬 더 강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역⋅계사전하(易⋅繫辭傳下)≫에서 “황제와 요순이 최초로 관민의 신분의 차이에 따른 의복을 제정하여 질서를 바로 잡음으로써 천하를 다스렸고, 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서 노를 만들고, 소에 멍에를 매어 수레를 끌게 하고, 또 말을 타게 하여 무거운 것을 끌어 먼 곳에 운반하게 함으로써 천하를 이롭게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43)
유가의 성군인 우(禹) 역시 정복형 영웅에서 문화형 영웅으로 전화된다. 그는 황하(黃河)와 목숨을 건 투쟁을 벌였고, 공공씨(共工氏)의 대신 상류(相柳)를 죽여 공공국(共工國)을 멸망시켰다. 또 삼묘(三苗)를 정복하고, 거신 방풍씨(防風氏)를 주살하였다. 이러한 전쟁영웅이 ≪회남자≫에서는 “아버지가 쌓은 성도 허물어버리고 정원과 연못도 모두 들로 만들었으며, 백성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며 무기도 녹여버리고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푸는”44) 성인으로 변모하였다.
또 ≪사기⋅하본기(史記⋅夏本紀)≫에서 우는 “순임금이 죽자 제위를 사양하고 순의 아들 상균(商均)을 피하여 양성(陽城)에 은거하였다. 그러나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상균을 떠나서 우를 알현하러 왔다. 우는 그제야 천자에 즉위하였다.”45)
황제나 우처럼 ‘정복형’에서 ‘문화형’ 영웅으로의 전환은 중국신화가 덕(德)의 숭상을 강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덕(德)의 본래의 뜻은 자연과 사회에 순응하여 인류의 객관적인 수요에 맞추어 사업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발전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발전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며 자신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중국신화에서 영웅을 결정하는 표준이 바로 덕이다. 덕을 갖춘 인물은 영웅으로 크게 칭송되고 숭배된다.
반고와 여와의 죽음으로 인한 인류의 탄생, 복희⋅염제⋅황제의 문화창조, 곤우의 치수 등등, 모두가 인류를 위한 신과 영웅의 고난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러한 영웅에 대항하는 인물은, 그가 어떤 능력이나 재능을 가지고 있든 비난과 질타를 면치 못하며, 영원히 반역자와 패배자의 낙인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또한 덕의 기준은 질서와 위계에 순응하는 것이다. 능력이 있고 없고는 차치하고 오로지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덕의 기본이다. 예를 들어, ≪사기⋅하본기≫에 따르면 우(禹)의 아버지 곤(鲧)은 황하의 홍수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요는 그에게 황하의 홍수를 다스리는 임무를 맡기려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됨이 대단히 강직하고 독선적이어서 명령을 위반한다는 것이었다.
제후들의 강력한 천거에 의해 곤이 황하의 홍수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게 되었지만, 곤은 결국 순에 의해서 처형된다. 처형의 이유는 공적이 없다는 것이었지만,46) 실제로는 그가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허락도 없이 식양(息壤)이라고 하는 천제의 보물을 훔쳐서 홍수를 제어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그리스 신화에 이처럼 영웅에 대한 인식과 표현이 다른 원인은 역사 경험과 사회적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는 전형적인 도시국가(city-state)제 사회였다. 도시국가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오로지 강력한 힘이 있어야 만이 패주(覇主)가 될 수 있었고, 침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힘을 숭상하였고, 항해업은 모험과 정복의 특성을 조장하였다. 이러한 특성이 신화에서는 영웅의 힘에 대한 찬미와 그 정복업적에 대한 찬미로 나타난 것이다. 아르고(Argo)호의 영웅들이든, 아니면 테베(Thebes)와 트로이(Troy)를 공격한 영웅들이든 모두가 정복과 모험, 그리고 재물의 쟁취와 관련이 있다.
이처럼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심리적 태도와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은 전형적인 중앙집권제 국가였다. 모든 제후들이 주(周)나라 천자에 복속되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대일통(大一統)의 관념은, 고대로부터 봉건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중화민족이 가지고 있는 국가정체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사유체계이다. 이러한 대일통의 사상은 중국인이 전형적인 농업민족인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농경 생활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지면 쉬는 경작의 일상이 날마다 반복된다. 근검성실, 조화순종, 평화애호가 숭상되며, 근본적으로 무력에 무관심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덕화(德化)와 문치(文治)가 쉽게 민심을 얻게 된다. 덕은 중국사회의 지도자나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덕은 전범(典範)을 통해서만 비로소 체현된다. 통치계급은 신화속의 신들을 선택하여 자신들의 전범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신화속의 신들이 이미 민간에 광범위한 신앙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통치계급으로서는 약간의 개조만 하면 가장 이상적인 도덕의 전범과 모범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대단히 용이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황제와 우가 정복형 영웅에서 문화형 영웅으로 변화되어 체계적 전장규범을 확립하는 등, 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以德示人) 교화의 작용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신화가 신과 영웅의 헌신과 공덕을 찬양하며, 인류의 도덕적 경지를 숭상하는 것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면, 그리스 신화는 지혜와 무력 그리고 자유의 정신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41) 黃冬敏, 앞의 글, p.9.
42) 陳建憲, ≪神祗與英雄 — 中國古代神話的母題≫(北京: 生活⋅讀書⋅新知三聯書店, 1994),pp. 143-144.
43) 黄帝、 堯、 舜, 垂衣裳而天下治, 盖取諸乾坤。 刳木爲舟, 剡木爲楫, 舟楫之利, 以濟不通, 致遠以利天下, 盖取诸涣。 服牛乘马, 引重致远, 以利天下, 盖取诸随。 (≪易⋅繫辭下傳≫)
44) 昔者夏鲧作三仞之城, 诸侯背之, 海外有狡心。 禹知天下之叛也, 乃坏城平池, 散财物, 焚甲兵, 施之以德, 海外宾服, 四夷纳职, 合诸侯于涂山, 执玉帛者万国。 (≪淮南子⋅原道训≫)
45) 帝舜薦禹于天, 爲嗣。 十七年而帝舜崩。 三年喪畢, 禹辭辟舜之子商均于陽城。 天下諸侯皆去商均而朝禹。 禹于是遂即天子位, 南面朝天下, 国号曰夏后, 姓姒氏。 (≪史記⋅夏本紀≫)
46) 當帝堯之時, 鴻水滔天, 浩浩懷山襄陵, 下民其憂。 堯求能治水者, 群臣四嶽皆曰鯀可。 堯曰: <鯀為人負命毀族, 不可。 四嶽曰: <等之未有賢於鯀者, 願帝試之。>於是堯聽四嶽, 用鯀治水。 九年而水不息, 功用不成。 於是帝堯乃求人, 更得舜。 舜登用, 攝行天子之政, 巡狩。 行視鯀之治水無狀, 乃殛鯀於羽山以死。 天下皆以舜之誅為是。 於是舜舉鯀子禹, 而使續鯀之業。 (≪史記⋅夏本紀≫)
(4) 민족정신의 구현
1) 운명 중심의 그리스 신화
바다는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세계로 향하는 통로였다. 때문에 그들은 바다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바다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를 갈망하면서 자유를 동경하였다. 바다와의 투쟁에서 그리스인들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한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변화막측한 바다에서 선원들은 수시로 좌절과 사망의 공포를 직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운명’이라는 관념을 형성하게 되었다. ‘운명’은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신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헤라클레스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한심하고 불완전한 인물인 에우리스테우스(Eurystheus)와 같은 사람에게 복종하여 12년 동안이나 봉사하였던 것이나, 열두 가지 과업을 완성한 후, 비로소 하늘로 올라가 신의 반열에 들게 되었던 것은 모두가 운명 때문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아주 조심스럽게 신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역시 신탁에 따라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고서야 비로소 거인족인 티탄의 반란을 물리칠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와 폴리페모스가 황금 양모를 찾으러 가는 원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도 운명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운명은 인간과 신이 공유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과 인간이 서로 근접되어 쉽게 소통될 수 있었으며, 모든 그리스 사람들은 특별하게 현세를 중시하고 생명을 향유하였고, 신들은 세속적인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 천명 중심의 중국신화
천명은 하늘의 뜻을 구현한다는 것이나, 천상의 신사(神事)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인사(人事)를 대상으로 한다. 서주(西周)의 천명신학에서 천명은 신성하고 장엄한 종교적 범주이다. 간단히 말하여 천명이란 국가운명에 관한 대사를 하늘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운명은 완전히 천명에 종속되어 있었다. 개인의 운명도 천명과 일치하였다. 하늘은 우주의 최고의 주재로서, 인간의 일체를 결정할 뿐 아니라 인간 도덕의 종극적(終極的) 근원과 시비선악의 최고 중재자이며, 만물을 초월하는 지배력과 도리이다. 이 때문에 하늘은 신성한 정의이며,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힘이며, 도덕 가치의 전범이다. 때문에 하늘이 인사를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도덕적 기준에 의한 시비판단과 권선징악 내지 정의의 원칙이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천명이 결정하는 운명은 도덕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도덕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은 천명은 없다. 이는 그리스의 운명의 신이 시비선악을 불문하고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스의 운명 관념이 이지와 선악, 그리고 사회의 인과관계를 초월한 것이라고 한다면, 중국의 천명 관념은 선악과 시비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47)
중국신화에서 이러한 천명관념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부분이 왕조의 흥망성쇠에 얽힌 신화 전설이다. 하은주(夏殷周) 삼대의 흥성과 멸망의 원인과 결과는 모두 천명과 직결되어 있다.
하(夏)의 개국성군 우(禹), 그리고 망국의 군주 걸(桀), 은(殷)의 개국 군주 탕(湯)과 역시 망국의 군주 주(紂), 주(周)의 무왕(武王)과 서주(西周)의 망국의 군주 유왕(幽王)의 성공과 실패는 천명을 벗어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의 명멸(明滅) 역시 모두 천명과 직결되어 설명된다. 천명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함과 동시에 이러한 역사 변천에 놓여있는 개인의 구체적인 경력과 운명까지도 결정한다.
중국 고대의 사회 계층 구조는 ‘천(天)’, ‘제(帝)’, ‘민(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삼자 중에서 ‘제’는 ‘천’과 ‘민’의 중개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천자라고 말한다. 이는 ‘천’이 ‘민’을 직접 통치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통치자가 천명(天命)을 획득했음을 적극 선양하는 것 역시 오로지 미덕을 구비해야만 비로소 천명을 부여받을 수 있고, 자신의 통치의 정당성과 합법성은 또 천명을 부여 받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와 ‘민’ 사이를 이어주는 주는 것은 바로 덕(德)이다.
통치자가 입덕(立德)을 하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자신의 통치의 근거를 찾기 위한 것이다.
둘째는 정치를 펼침에 편리하도록 사회규범을 확립하여 도덕적 표준으로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셋째는 개인의 품행을 스스로 절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왕에 도덕적 기준으로 백성들을 제약하여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하고, 또 군주 역시 이러한 도덕적 기준으로 제약하여 그가 독단과 전횡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결국 덕은 사회적 윤리로, 천명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행위이다. 제는 덕을 쌓고, 덕을 세워서 민을 통치하는 것으로 천명을 이행하고, 민은 덕을 믿고 제를 받들고 제약하는 것으로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전체 사회의 질서가 확립되어, 상대적인 조화와 안정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국신화에서 덕을 숭상하는 것이 매우 강력하게 표출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천명을 획득했다는 것은 자신의 통치를 위해서 신성의 겉옷을 입는 것이다. 이러한 천명 관념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 의식구조가 중국신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황제(黃帝)와 같은 승자는 덕의 화신임과 동시에 천명의 계승자로 등장하고, 이에 대항하였던 치우나 공공과 같은 패자는 패덕의 원흉이자 천명의 배반자로 낙인되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 신화는 인생의 철리를 표현하는 것이 중심축이며, 그 기본적 특성은 운명이란 관념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의 신화는 주로 사회적 윤리를 표현하는 것이 중심축이 되어 있고, 그 기본적 특성은 천명의 관념이 집중적으로 체현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있으나, 천명은 오로지 한 사람만 향유할 수 있다. 때문에 지고무상의 보편적 운명 관념이 반영하는 것은 다양화된 사회현실이다. 그러나 천명관념은 비교적 단일하며, 집권적인 “하늘 아래 임금의 땅이 아니 곳이 없고, 하늘아래 모든 신하는 임금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48)는 현실을 반영한다.
운명은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되어 있다. 개인의 투쟁과 품성으로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천명은 인간의 도덕이나 재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수시로 변화하여 그 실체를 해석할 수 없는 운명을 파악하기 위해서 인간의 모든 지혜를 동원하였다. 그래서 철학이 일찍 발달한 것이며, 개인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일찍 형성되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집단사회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데 모든 지혜를 모았다. 그래서 윤리와 도덕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49)
47) 趙沛霖, <兩種不同的運命觀念>, ≪曁南學報(哲學社會科學版)≫ 2008年第3期(總第134期), pp.86-87.
48) 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士之賓, 莫非王臣。 (≪詩⋅小雅⋅北山≫)
49) 謝選駿, 앞의 책, pp.227-228.
4. 신화의 발전 방향
(1) 그리스 신화의 예술화
고대 그리스 신화는 주로 헤시오도스(Hesiod)의 ≪신화≫와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같은 서사시를 통해서 보존되었고, 문인의 윤식(潤飾)과 가공을 거친 예술품이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원시사회에서 계급사회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된 과도기적인 의식형태에서 형성된 가치체계로부터 탄생된 것으로, 신화시대의 심미(審美) 예술의 전범은 신화를 통해서 수립되었다. 때문에 신화는 그 자체가 인류유산과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심미적 특징은 총체적인 장엄미에 있다. 이는 신화의 형식에서는 완벽한 계통과 방대한 체계로 나타나고 있고, 신화의 내용에서는 광범위한 사회면과 아울러 중대한 신화의 소재를 망라하고 있으며, 또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강렬한 현세적 인문정신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인 특유의 민족정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리스 신화는 그 유형에서 창세신화를 비롯하여 신화학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신화유형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또한 각양각색의 신에 관한 이야기와 영웅의 모험에 관한 전설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 그리스 신화의 내용은 농업, 어업, 목축업, 수렵, 항해, 전쟁, 풍토, 인정, 천문, 지리, 정치, 경제 그리고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 아울러 신화시대의 중대한 사업은 물론 새로운 신의 등장에 따른 옛 신들의 몰락과 지배권의 교체, 그리고 신의 계보의 형성, 신의 유래, 초인의 출현, 영웅들의 모험과 전쟁등 중대한 신화 소재들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내포된 이러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주제들은 자연스럽게 후세 시인이나 문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창작 소재가 되었다.50)
이는 비극을 비롯한 그리스의 회화, 조각, 건축 등의 예술의 소재가 대부분 신화였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가 예술로 발전해 갈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리스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물에 대한 개방적이고 융합적인 민족정신 내지 민족기질에 있었다. 신화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 요소와 함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요소가 공존한다. 만약 폐쇄적이고 배타적 자세로 신화를 대한다면 신화속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요소는 존속할 수 없게 된다. 중국신화가 춘추전국시대를 기점으로 대부분 역사화 되었던 것은 공자로 대표되는 이성주의에 의해서 신화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부분이 모두 제거되어 버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 부분만 잔존하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중국인들과는 달리 신화의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요소와 공존시킴으로써 신화를 예술창작의 바탕으로 삼았
으며 동시에 신화는 예술을 통해서 후대로 지속적으로 전승될 수 있었다.
그리스는 해양민족에 속하며, 그 문화는 무한한 개방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신화를 대하는 태도와 조건에 있어서 타민족의 영향을 쉽게 흡수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고유의 문화와 겸용하고 병용할 수 있는 자세와 소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리스인들은 신화 속의 불합리한 요소를 예언, 신탁, 운명, 성격 등과 같은 극히 신비한 의미가 내포된 철학적 이념 속에 몰래 감추는 방식을 사용하여 도덕과 윤리, 복수, 이성정신 등과 같은 표층의 합리적 요소와 서로 모순되고 충돌이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구조는 인간의 원시상태의 표현 구조와 합치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수준 높은 구성이 있고, 깊은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의미심장한 철학이 있으며, 기백에 넘치는 웅혼한 정서와 더불어 비극적 원시 의미가 조성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51)
그리스 신화에는 아가멤논(Agamemnon) 가족의 번영과 죄악, 오이디푸스(Oedipus)의 부친 살해와 모친과의 결혼, 메데이아(Medea)의 자식과 동생의 살해 등과 같은 신화의 심층구조 속의 불합리한 요소가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이는 원시 시기의 불안정한 혼인제도와 혈연적으로 혼잡하였던 원시 도덕사유를 반영함과 아울러 그러한 경험이 잠재의식에 축적되어 신화를 통해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시의 집단무의식은 문명시기의 도덕과 윤리, 혈육을 위한 복수 등의 관념과 서로 충돌되지만 또 시종하여 공생과 공존의 융합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충돌과 모순이 개방된 상태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에는 도처에 오이디푸스식의 고통, 아가멤논식의 비극, 메데이아식의 광란, 헤라클레스식의 비장이 도처에 나타나고 이것이 또 풍부한 심미적 가치와 철학적 심도를 형성하였다.52)
그리스인들은 열린 마음으로 심층구조와 표층구조가 신화 속에 공생하도록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강력한 예술적 효과가 무의식적으로 조성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내부적으로 일종의 긴장상태가 활력적으로 작용함과 동시에 또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신화가 예술로 발전해 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이며, 그 특수한 민족적 기질이 문화적으로 발현되어 만들어진 특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50) 楊宇發, <希臘神話的藝術化與中國神話的歷史化>, ≪阿垻師範高等專科學校學報第23卷專輯≫(2006年9月), p.15.
51) 楊宇發, 앞의 글, pp.16-22.
52) 仝上.
(2) 중국 신화의 역사화
중국의 민족정신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강력한 보수성과 배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서 상고 문화를 계승하는데 있어서도 극도의 선택적 기제를 이용하여 그 내향적이고 폐쇄적인 문화의 기본적 본질에 부합되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신화 속의 불합리한 요소인 괴이한 성분은 무실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합리적인 중국의 민족정신과 융합되기 어려웠다.
중국신화의 역사화는 한 마디로 신화 속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함과 동시에 합리적 요소를 봉건 통치체제의 도덕 윤리적 규범에 부합되도록 개조한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신화에 대해서 일종의 역사의식적인 해석으로, 원래 원시사유에 의해서 생성된 신화에 이성의 역사화의 해석을 내리는 것이다.53) 신화의 역사화에 따라 신화 속의 신들이 자연스럽게 현세의 성군으로 탈바꿈되었고, 동시에 그 합법성과 정당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완벽한 성왕과 제왕의 계보를 만들어 내었다. 때문에 중국신화의 역사화는 어떤 측면에서는 신화의 정치화라고도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기,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지자 기본의 질서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에 따라 공자(孔子)를 대표하는 많은 사상가들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고, 자신들의 주장과 방법을 저술로 펼쳐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고대의 신화를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하나의 방증으로 삼기위해 자신의 취향대로 개조하였고, 그에 따라서 신화의 역사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신화의 역사화는 중국신화의 분열과 고사전설의 흥성을 야기하였다. 중국 고대신화 중에서 통치자의 요구에 부합되는 것은 개조되어 묘당에 봉공되었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초야에 매몰됨으로써 중국신화는 뿔뿔이 흩어지고 사라져서 분명하고 완벽한 신의 계보를 형성할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통치자및 사상가들은 통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 고대 신화를 적극적으로 개조하여 선명한 제왕 체계의 신화를 수립하였고, 역대 사가들의 끊임없는 상호 전승을 거쳐 제왕 체계(帝系)의 신화는 마침내 고사전설로 변화 발전하였다.
53) 謝逸駿, 앞의 책, p.135.
5. 결론
중국과 그리스의 고대신화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의 고대신화가 모두 우주 이전의 상태를 혼돈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흙으로부터의 인류 탄생을 말하고 있다. 두 신화는 근친결합의 신화소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양국의 신화에 나타난 자연계는 모두 사회형식이 부여된 것으로, 자연의 형성이 결코 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일정한 행위의 결과로 인식되고 있음과 동시에 모두 인격화된 자연계로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위민제해의 영웅의 공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 그리스 신화가 이처럼 일정부분에서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류적 보편의식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두 민족이 겪어온 사회발전의 단계 역시 일부 공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그리스 신화가 신의 계보에 의한 서사적 체계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어서 횡적인 상호관계가 대단히 활발하다고 한다면, 중국신화는 제왕의 계보에 의한 수직적 관계만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인격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면, 중국신화는 인간의 신격화가 중심이 되어 있다. 그리스의 신화 영웅이 무력과 자유의 화신이라고 한다면 중국신화의 영웅은 문화와 덕의 전범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 ‘무력형’이라고 한다면, 중국신화의 영웅은 ‘문화형’이다. 그리스 신화의 키워드가 ‘운명’이라고 한다면, 중국신화의 키워드는 ‘천명’이다. 그리스 신화가 예술과 문학으로 발전하였다면, 중국신화는 역사로 탈바꿈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와 중국신화가 이러한 몇 가지 차이를 보이는 근본 원인은 서로 다른 지리 자연적 환경에서 중국이 농경문화를, 그리스가 해양문화를 바탕으로 역사를 영위해오면서 신화 생성토양, 생성기제, 생활습관, 민족정신 등, 서로 다른 기질과 생활환경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參考文獻>
[문헌류]
피에르 그리말(Pierre Grimal) 지음 / 최애리 책임번역,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 서울: 열린 책들, 2009.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2≫, 서울: 웅진 지식하우스, 2006.
張啓成, ≪中外神話與文明硏究≫, 北京: 學苑出版社, 2004.
헤시도오스 / 김원익 옮김, ≪신통기- 그리스 신들의 계보≫, 서울: 민음사, 2003.
郭沫若, ≪中國古代社會硏究≫, 香港: 生活⋅讀書⋅知識三聯書店, 1978.
馮天瑜⋅周積明, ≪中國古代史的奧秘≫,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1986.
謝逸駿, ≪神話與民族英雄≫, 湖南: 山東文藝出版社, 1986.
王森洋⋅範明生, ≪東西哲學比較硏究≫, 上海: 上海敎育出版社, 1994.
謝逸駿, ≪神話與民族精神≫, 濟南: 山東文藝出版社, 1997.
[논문류]
陳秋紅, <遠古神話與民族文化情神 — 希臘神話、 希伯萊神話與中國神話之比較>, ≪東方論壇≫ 2001年 第2期.
黃冬敏, <淺析中希古代神話的差異>, ≪沙洋師範高等專科學校學報≫ 2004年第6期.
李燕, <中國與希臘神話異同性探析>, ≪涪陵師範學院學報第22卷第6期≫, 2006年11月.
張沁文, <遠古神話與民族文化精神 — 現代視野下中國神話和希臘神話之比較>, ≪陝西理工學院學報(社會科學版)≫, 2007年2月 第25卷第1期.
田慶軒⋅張建强, <“善”與“美”的對話 — 中國神話和希臘神話比較>, ≪河北北方學院學報≫第22卷第1期, 2006年2月.
楊宇發, <希臘神話的藝術化與中國神話的歷史化>, ≪阿垻師範高等專科學校學報第23卷專輯≫, 2006年9月.
趙沛霖, <兩種不同的運命觀念>, ≪曁南學報(哲學社會科學版)≫ 2008年第3期總第134期.
<ABSTRACT>
Greek and Chinese mythologies reflect the core source of each culture. So called ‘Cultural Complex’, the mythology has unique characteristics depending on how the culture was originated. An easy way to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western and eastern culture, therefore, is to compare two mythologies.
The current research focuses on the uniqueness and similarities of the motifs from the two mythologies in order to analyze the basic trait and origin of the cultures. Similarities in myths will be described first, along with their implications. Structure of the myths, relationships between the god and the human, the figure and personality of the heroes, implementation of universal belief of people, and difference in how those myths evolved will follow. Lastly, fundamental reasons for such difference will be added.
KEYWORDS: Chinese, Greek, mythology, similarities, uniqueness
원고접수일 2013. 3. 27.
심사일정 1차수정 2013. 5. 6. 2013. 5. 18.
게재확정 출간 2013. 5. 24. 2013. 5. 31.
'♣ 인문 관련 ♣ > 세계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남성관련 漢字를 통해 본 고대 중국 남성의 사회적 지위 (0) | 2017.03.16 |
---|---|
그리스 신화의 세계 (0) | 2016.12.09 |
[유튜브 동영상] 전쟁과 권력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해설해 논 영상] (0) | 2016.07.29 |
이데일리TV 스페셜, 강대국의 조건 - 대국굴기 (0) | 2016.06.28 |
[8대 고전읽기] 플라톤의 국가 (0) | 2016.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