傷愚溪 (三首其一)
劉禹錫
溪水悠悠春自來 [계수유유춘자래]시냇물은 졸졸졸 봄 절로 오는데
草堂無主燕飛回 [초당무주연비회]주인 없는 초당엔 제비 날아드네
隔簾惟見中庭草 [격렴유견중정초]발 넘어 뜨락엔 잡초만 보이는데
一樹山榴依舊開 [일수산류의구개]한 그루 진달래만 예전처럼 피어있네
- 愚溪: 당대(唐代) 관리이자 문인인 유종원(柳宗元)이 영주(永州, 현재 湖南성 零陵)로 폄적(貶謫)되었을 때 현지에서 좋은 개울을 발견하고 우계(愚溪)라 이름 지었다.
원래 이름이 염계(?溪), 속칭 염계(染溪)였는데 그가 새로 愚溪로 명명한 것이다. 훗날 劉禹錫이 이곳에 갔다가 마음 아파하며 지은 시가 바로 위의 <傷愚溪>이다.
- 山榴: 진달래(杜鵑花).
* 자료 출처:불로그 청경우독(晴耕雨讀) -계수유유춘자래(溪水悠悠春自來)
[서예 습작]
劉禹錫[唐/772~842]자는 몽득(夢得). 뤄양[洛陽:지금의 허난 성 뤄양 시] 사람이다. 일찍이 왕숙문(王叔文) 개혁단체에 참가하여 환관·번진 세력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에 실패한 후, 낭주사마(郎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후에 연주자사(連州刺史)가 되었다.
이후 배도(裵度)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태자빈객 겸 검교예부상서가 되어 세간에서는 '유빈객'(劉賓客)으로 불렸다. 유종원(柳宗元)과 교분이 매우 두터워서 '유유'(劉柳)라고 병칭되기도 했으며, 항상 백거이(白居易)와 시문(詩文)을 주고받는 등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유백'(劉白)이라고도 병칭되었다. 그의 시는 통속적이면서도 청신하며 〈죽지사 竹枝詞〉가 유명하다. 철학저작인 〈천론 天論〉에서는 천·인(天人)의 구별에 대해 논증했다.
즉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음덕설(陰德說)을 반박하고 '하늘과 인간은 상승(相勝)한다'는 설과 '상용(相用)된다'는 설을 주장하여 하늘이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을 더이상 주재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유신론(有神論)에 대한 근원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즉 법제가 잘 행해져서 상벌이 분명하다면 사람들은 천명(天命)에 바라는 것이 없겠지만, 만일 법제가 흐뜨러져 있어서 상벌이 분명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오로지 천명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말년에 불교에 대해서도 타협적인 자세를 보였다. 저서로는 〈유빈객집 劉賓客集〉(〈유몽득집 劉夢得集〉이라고도 함)이 있다.[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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