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夜
- 虞世南
春苑月徘徊(춘원월배회)봄날 뒤뜰에는 밝은 달이 노닐고
竹堂侵夜開(죽당침야개) 죽당에 점차 밤기운 스며든다.
驚鳥排林度(경조배림도)놀란 새들 숲으로 날아가고,
風花隔水來(풍화격수래)바람에 실린 꽃잎 개울 건너 날아오네.
[서예 습작]
아래의 시와 느낌이 비슷하다 생각되어 위와 같이 해 보았습니다.
우세남은 위진남북조 말기에서 초당까지 산 사람이기에 아마도 왕유가 아이디어를 따른 것이 아닐까 합니다.
鳥鳴澗 王維(唐)
人閒桂花落, 夜靜春山空。
月出驚山鳥, 時鳴春澗中。
산골짝엔 새가 울고 왕유(당)
인적이 드문 곳에 계수 꽃은 떨어지고, 밤은 고요하여 봄 동산이 적막하다.
밝은 달이 떠오르니 산새들이 놀라 깨어, 봄이 오는 산골짝서 여기저기 우는구나.
虞世南(558-638)
당나라 월주(越州) 여요(餘姚) 사람. 자는 백시(伯施)고, 우세기(虞世基)의 동생이다. 고야왕(顧野王)에게서 10여 년 공부했는데,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집중했다. 문장이 화려하여 서릉(徐陵)의 문풍을 얻었다. 왕희지(王羲之)의 7세손인 승려 지영(智永)에게서 왕희지의 서법을 배워 서체를 묘득(妙得)하자 더욱 명성을 떨쳤다. 구양순(歐陽詢), 저수량(褚遂良), 설직(薛稷) 등과 함께 ‘당초사대서예가(唐初四大書藝家)’로 꼽힌다. 6조(六朝) 진(陳)나라 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해 수나라의 양제(煬帝)를 받들어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지만 중용되지는 못했다. 당나라 태종의 신임을 받아 홍문관학사(弘文館學士)가 되어 방현령(房玄齡)과 함께 문한(文翰)을 관장했다. 비서감(秘書監)으로 옮겼고, 영흥현자(永興縣子)에 봉해져 ‘우영흥(虞永興)’으로도 불린다.
정관(貞觀) 12년(638)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가 되었다. 태종이 그의 박식함을 중시해 정무를 보는 여가에 불러 담론을 나누었다. 이때 반드시 시정에 대해 지적했는데, 많이 받아들여졌다. 태종이 일찍이 그에게는 오절(五絶)이 있다면서 덕행과 충직, 박학, 문사(文辭), 서한(書翰)을 들었다. 시호는 문의(文懿)다. 글씨로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가 유명하고, 행서(行書)로는 「여남공주묘지고(汝南公主墓誌稿)」가 있다. 시에서도 당시 궁정시단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시문집 『우비감집(虞秘監集)』과 편저 『북당서초(北堂書鈔)』 등이 있다.(출처 네이버 백과)
출처: 시 정보-책 /수집:[cafe.daum.net/heartwings/RATV/1308 漢詩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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