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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곽희의 임천고치에 있는 내용

Bawoo 2017. 5. 10. 20:39


<임천고치林泉高致>는 곽희郭熙(1020?-1090?)의 산수화에 관한 의견을 아들 곽사郭思가 편찬, 증보한 것입니다. 이 책은 산수화의 주지主旨, 산수화가의 마음가짐, 자연연구의 방법, 그리고자 하는 풍경과 첨경물添景物의 선택, 화면구성의 방법, 산수화의 기법 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임천고치林泉高致>에 있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그림을 배우는 것은 글씨를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령 지금 종요와 왕희지, 우세남, 유공권 중 어느 한 서법을 취해서 오랫동안 익히면 반드시 그와 방불한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도량이 큰 대인이나 사고가 명석한 달인 선비쯤 되면 한 서가에만 얽매이지 않고 반드시 여러 대가들의 서법을 겸해서 취하고 아울러 열람하며, 널리 의논하고 두루 생각함으로써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일가를 이루게 한 후에 비로소 터득하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옛날 제와 노(지금의 산동성) 지방의 선비들은 오로지 이성李成(919-967)만 모방하고, 관섬關陝(지금의 섬서성) 지방의 선비들은 오로지 범관范寬(10세기경 활동)만 모방하고 있다. 자기 혼자 배우는 것도 오히려 답습이라 생각하거늘, 하물며 제, 노와 관, 섬은 그 둘레가 수천 리나 되는데 수많은 주와 현의 사람들이 사람마다 그렇게 제작한다면 되겠는가! 한 사람의 법만 배우는 것을 예부터 병이라고 했던 것은 바로 창의성이 없이 일률적으로 나옴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은 말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듣지 않는 사람은 진부한 필적에 연유해서 그러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사람의 이목은 새 것을 좋아하고 묵은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감정이다. 내가 위에서 대인이나 달인 선비쯤 되면 한 예술가에만 얽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라 초기의 관리이자 서법가書法家, 시인 우세남虞世南(558-638)은 수나라에서 내사시랑內史侍郎을 지낸 우세기虞世基의 아우로 능연각이십사공신淩煙閣二十四功臣 중 한 사람입니다.

수양제隋煬帝 대에 기거사인起居舍人을 지냈고, 당나라에서 비서감秘書監, 홍문관학사弘文館學士 등을 역임했습니다.그는 왕희지王羲之7세손인 승려 지영智永에게서 왕희지의 서법을 배워 서체를 묘득妙得하자 더욱 명성을 떨쳤습니다.


구양순歐陽詢, 저수량褚遂良, 설직薛稷 등과 함께 당초사대서예가唐初四大書藝家로 꼽힙니다.

 

나라 때의 관리이자 서법가書法家 유공권柳公權(778-865)은 해서楷書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안진경顏真卿과 명성을 나란히 하여 사람들이 안유顏柳라 일컬었습니다.

그의 서법은 처음에 왕희지 서체를 배웠다가 뒤에 당나라 때 명가名家들의 서체를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