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슈만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Schumann, Frauenliebe und Leben Op.42)
Bawoo2014. 1. 21. 23:31
Schumann, Frauenliebe und Leben Op.42
슈만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Robert Schumann
1810-1856
Bernarda Fink, mezzo-soprano
Roger Vignoles, piano
Recording, 2002
Bernarda Fink sings Schumann's Lied 'Frauenliebe und Leben' (complete)
독일 가곡에서 메조소프라노의 계보는 그 목소리에 반해 20세기 지휘사의 첫 장을 장식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니키쉬가 반주를 해주던 엘레나 게르하르트의 전설로부터 시작하여,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기념비적인 업적과 자넷 베이커의 기품 있는 고고함, 브리지트 파스밴더가 보여준 극적 표현의 풍성함을 거쳐 안네 소피 폰 오터에 이르러 지적인 절제미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베르나르다 핑크(1955~ )는 이 계보를 이으며 시적인 서정성과 생기 넘치는 발랄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동갑내기 메조소프라노인 오터와 곧잘 비교 감상이 됩니다. 핑크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독일어를 사용하는 슬로바니아인 부모를 두었고 주로 독일어권에서 음악 활동을 하여 딕션은 상당히 정확한 편입니다.
1840년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인생 최고의 해였습니다. 결혼을 반대하던 장인의 동의 없이도 클라라 비크(1819-1896)와 결혼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을 얻어 마침내 갈망하던 결혼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으로 이 한 해 동안 슈만은 하염없이 솟아나는 멜로디를 악보에 옮겨 138편의 리트(Lied, 예술가곡)를 작곡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젊은 시절에는 가곡 분야에 큰 관심이 없었던 슈만이 일 년 내내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오로지 노래 멜로디만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1840년은 슈만의 생애에서 ‘가곡의 해’로 불립니다.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 Dichterliebe>과 <가곡모음집>(Liederkreis) 두 편 역시 이때 완성되었습니다.
결혼해도 좋다는 법원 판결을 받자마자 슈만이 가장 먼저 작곡한 예술가곡이 바로 <여인의 사랑과 생애>였다고 합니다. 한 처녀가 어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남자는 처녀에게 너무나 높고 빛나는 존재여서 처녀는 감히 그 곁을 꿈꾸지 못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거짓말처럼 처녀에게 청혼하고, 처녀는 이 믿을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노래합니다. 드디어 결혼식이 거행되고, 처녀에서 여인으로 변모한 그녀는 아이의 탄생을 경험하며 최고의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고 슬픔에 잠깁니다.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연인에 대한 사랑과 인생을 노래한 모노드라마이다.
이 모노드라마 속의 여인은 슈만보다 아홉 살 아래였던 클라라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부부간의 나이 차는 당시로서는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에서는 막 성년이 된 딸을 사회적으로 성공한 스무 살쯤 연상인 남자와 결혼시키려는 부모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등한 부부관계보다는 어린 신부가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관계가 흔했습니다. 자녀들을 키우며 결혼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클라라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하고 때로 사회 부적응적인 태도를 보였던 슈만을 이끌고 감싸주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결혼할 무렵에는 아홉 살 연상인 슈만을 아마도 <여인의 사랑과 생애>의 여주인공이 그랬듯 우러러보았을 것입니다.
Helen Watts sings Schumann's Lied 'Frauenliebe und Leben' (complete)
Helen Watts, contralto
Geoffrey Parsons, piano
1966
콘트랄토 가수 헬렌 와츠(1923-2009)는 영국 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BBC 합창단에 입단한 후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에서 에우리디케 역을 맡아 오페라 계에 데뷔하였습니다. 이후 헨델의 오페라와 바그너의 악극까지 영역을 넓혀 활약하였고, 브람스와 쇤베르크의 가곡도 불러 고전 콘트랄토 창법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헨델의 종교음악에 정평이 났습니다.
벅찬 흥분과 차분한 관조의 교차
이 연가곡을 구성하고 있는 여덟 곡의 조는 계속 바뀌지만 기본이 되는 조성은 나(B)조입니다. B로 시작해서 B로 끝나죠. 전체적으로 깊고 어두운 분위기여서, 음역뿐만 아니라 음색 면에서도 메조소프라노나 알토에게 적합한 곡입니다. 소프라노 가수들 가운데는 제시 노먼처럼 풍부하고 어두운 음색을 지닌 가수가 잘 부를 수 있습니다.
Magdalena Kožená, mezzo-soprano
Karel Košárek, piano
Tokyo 2006
체코의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1973~ )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손목 부상으로 성악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메조소프라노를 포지셔닝하고 있지만 음역이 거의 소프라노에 가까워 고음에서의 음색이 매우 투명합니다. 표현은 매우 다채롭고 섬세하며 우아합니다. 그레이엄 존슨의 피아노 반주로 내놓은 첫 독창회 음반은 2001년 그라모폰 상 솔로 보컬 부문 수상작이 되었고, 그녀는 2004년에 그라모폰 상에서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곡: 그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내 눈은 멀어버린 듯
추천음반
1. 메조소프라노 자넷 베이커/제프리 파슨즈 피아노, 1968년 녹음, BBC Legends
2. 소프라노 제시 노먼/어윈 게이지 피아노, 1975년 녹음, 필립스
3.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벵크트 포르스베르크 피아노, 1995년 녹음, DG
4. 메조소프라노 베르나르다 핑크/로저 비뇰스 피아노, 2002년 녹음, 하르모니아 문디
글 이용숙(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