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 주제가 있는 미국사]
[소감]
시간 많이 안 들이고 제미있게 읽을 수 있는 미국 이면사.
정사에선 볼 수 없는 내용들이면서 미국이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5장 처세술과 성공학 내용 중 카네기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관심 밖 내용이라 건너 뛰고.
시리즈물인 것 같은데 책 뒤에 소개된 참고 서적들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저작물들이 많았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들.ㅠㅠ. 찾아 읽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저자의 책을 읽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근데 몇 권까지 나왔지? 세 권?
[책소개]
자본주의 국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국을 이분법적 잣대를 버리고 객관적으로 접근한 미국사 파노라마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는 경제와 군사, 라이프 스타일과 언어, 대중문화 등 수많은 나라와 국민을 사로잡은 미국을 친미와 반미라는 이분법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미국을 보고자 제안한 쿨한 미국사 파노라마를 소개한 책이다. 미국이 어떻게 초강대국이 되었는지, 빠른 속도로 ‘거대한 괴수’가 된 미국을 서부개척을 통한 프런티어 문화, 아메리칸 드림, 인종의 문화정치학, 폭력과 범죄, 처세술과 성공학, 자동차 공화국 등의 중요한 주제들이 날카로운 필치로 전개된다.
프런티어는 미국 역사의 중심축이며 서부의 역사로 서부개척의 가능성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가 형성되었다는 사관을 보여준다. 난폭한 카우보이 기질과 인종차별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가 드러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 이면의 특성인 미국의 활력이자 저력인 점을 보여준다. 또한, 20세기 초반의 자동차가 가져다 준 이동성은 전통적인 마을의 성역과 금기를 깨는 혁명을 몰고 왔고, 아메리칸 드림인 동시에 소외되고 왜소해지는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의 모습을 통해 포드가 마르크스를 쫓아낼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였다.
[출판사 서평]
강준만 교수의 ‘쿨’한 미국사 파노라마
“인류 역사에서 미국과 같은 초초강대국은 없었다!”
네이버 [주제가 있는 미국사] 출간!
성 문화까지 바꾼 자동차,
그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 미국인
포드가 마르크스를 쫓아낸 이유는 충분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전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있을까? 이러한 미국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의도적으로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외면하면서 ‘친미’냐 ‘반미’냐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미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미국은 어떻게 ‘초초강대국’이 되었는가?
인류 역사 이래로 지금의 미국과 같은 강대국은 없었다. ‘초강대국’에 이어 ‘초초강대국’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미국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거대한 괴수’가 되었다. 경제와 군사, 라이프 스타일과 언어는 물론 대중문화까지 세계를 제패하며 수많은 나라와 국민을 사로잡은 미국! 강준만 교수는 미국이 오늘날 거대한 제국으로 패권적 지위를 얻게 된 주요 이유를, “미국은 세계인의 마음을 훔쳤다”는 말로 압축한다. 미국이 이룩한 초고속 압축성장의 비밀은 끊임없는 인구의 유입이었고, 미국을 향해 떠나는 거대한 이민의 물결은 각 나라로서는 대규모의 두뇌 유출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하고 발전한 미국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강준만 교수는 친미와 반미라는 이분법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미국을 보자고 제안한다. 이념의 프리즘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볼 때, 미국의 전체 모습과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저지르고 지원하고 용인한 국내외적 범죄를 중시하는 반미적 관점이나, 식민지 일제에서 해방과 강대국에 대한 동경을 중시하는 친미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미국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미국을 실용적이고 ‘쿨’하게 볼 것을 제안하며 집필한 이 책은 한 편의 미국사 파노라마다. 서부개척을 통한 프런티어 문화, 아메리칸 드림, 자동차 공화국, 민주주의의 수사학, 처세술과 성공학, 인종의 문화정치학, 폭력과 범죄 등의 중요한 주제들이 날카로운 필치로 전개된다. 왜 4천만 버펄로는 멸종되었는지, 광란의 20년대에 어떤 저항이 있었는지, 아이비리그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인지, 자동차는 성 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포드는 어떻게 마르크스를 쫓아냈는지, 광고와 PR 전문가들은 대중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 왜 미국에서는 총이 영광의 상징인지 등 28가지 미국사의 적나라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런티어는 미국인의 유전자인가?
프런티어는 미국 역사의 중심축이 서부의 역사이며, 서부개척의 가능성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가 형성되었다는 사관(史觀)이다. 프런티어가 오늘날 미국인의 삶에서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프런티어 사관을 미국인의 문화적 기질과 연관시키는 것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국제적으로 난폭하게 구는 카우보이 기질과 그 바탕이라 할 인종차별주의나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물질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삶, ‘노다지’를 잡으려는 한탕주의 속성은 확실히 미국적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동전의 양면’ 원리처럼 그 이면의 특성이 미국의 활력이자 저력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 미국 부자들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가?
아메리칸 드림의 결과는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을 굳건하게 만들었고, 이는 미국 부자들의 행태에서도 드라마틱하게 표출된다. 카네기에서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부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개같이 돈을 벌어 정승같이 쓰는 두 얼굴을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답은 ‘인정욕구’에 있다. 점잖은 방법으론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없다. 때론 악랄하고 잔인해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최고의 부자가 되는 인정욕구를 충족시킨 뒤엔 그 돈을 남을 위해 정승같이 써서 또 한 번 인정욕구를 충족시킨다. 이게 바로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수많은 결함이 있지만 유지되는 기본 메커니즘이다.
자동차는 성 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나?
20세기 초반 자동차가 가져다준 이동성은 전통적인 마을의 성역과 금기를 깨는 혁명을 몰고 왔다. 자동차는 19세기적 도덕의 강제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도덕적으로 켕기는 일도 자동차를 타고 다른 지역에 가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광고 슬로건으로 그 심리를 사로잡았다. ‘차가 아닙니다. 사랑의 묘약입니다.’ ‘매끄럽고 날렵한, 원피스 몸매의 조각선이 당신을 들어오라고 부릅니다. 그 안에 갖춰진 풍요로움을 만끽해 보세요. 그리고 시동을 걸어 보시죠.’ 자동차는 아메리칸 드림인 동시에 갈수록 소외되고 왜소해지는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운전대를 잡을 때에 비로소 만끽할 수 있는 ‘권력감정’ 하나만으로도 미국인은 자동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포드가 마르크스를 쫓아낼 수 있는 이유는 충분했다.
대중은 속기 위해 태어났나?
P. T. 바넘과 에드워드 버네이스. 그리고 예수를 ‘현대 비즈니스의 창시자이자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으로 규정한 브루스 바턴. 이들은 광고와 PR 전문가들로 선전술의 중요성을 전파시켰지만, ‘야바위’ 등의 부정적 평가도 받는다. 중요한 건, 광고는 대표적인 ‘민주주의의 수사학’이라는 점이다. 설득의 문제가 지식의 문제를 압도하는 대중민주주의, 그 본질이 광고다. 그 어떤 숭고한 목표와 비전이 있다 하더라도, 이론과 실천을 모두 구현해내기 위해선 엔터테인먼트적 수사학이 요구된다. 오늘날 ‘계몽의 종언’이 외쳐지고 있는데, 이는 진실만은 아니다. 누구에게건 어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면 “감히 누굴 가르치냐”고 반발하지만, 교묘하게 이벤트나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을 취해 주입시키면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계몽의 포장술이다.
믿으면 정말 해낼 수 있는가?
데일 카네기의 ‘처세술 혁명’, 나폴레온 힐의 ‘성공 방정식’,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 로버트 슐러의 ‘긍정적 사고방식’. 이들의 저서와 철학은 세계의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지만, 지식인들은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이들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 사회를 강타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기운이 살아 있는 힐링과 멘토 열풍도 마찬가지다. 비판자들은 힐링과 멘토링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이미 자신의 입지를 사회적으로 구축한 사람들이다. 절박한 처지에 놓인 개인에겐 일시적인 위로나마 소중한 것이다. 사회적 약육강식의 논리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는 거라면, 개인 차원에서 강자가 되려고 애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질문이야말로 처세술 연구의 핵심일 것이다.
왜 버락 오바는 혼혈인이 아닌 흑인인가?
100년간 IQ 논쟁을 벌일 정도로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미국. 혼혈인인 버락 오바마를 ‘한 방울 원칙’에 의해 흑인으로 규정하는 미국. 백인 우월주의와 한 방울 원칙은 사라지는 게 옳겠지만, 그 해법은 만만치 않다. 결국 경제적 권력의 집중을 막고 빈부 양극화를 개선하는 게 인종문제 해결의 현실적 해법일 수 있다.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어느 나라에서건 성공한 유색인의 다수가 인종차별에 대해선 비판적 자세를 취하면서도 아내는 백인을 취하는 걸 ‘위선’이라고 비판할 게 아니라, 그 숨은 뜻을 슬기롭게 활용해야 한다. 미국에서 교도소 수감자 중 백인은 백인 인구 106명 당 한 명 꼴인 반면 흑인은 흑인 인구 14명 당 1명 꼴인 이유의 대부분도 ‘경제’에서 찾는 게 옳을 것이다.
왜 미국에서는 총이 ‘영광의 상징’인가?
미국의 국가 발달사는 시민의 무기 소지가 필요할 정도를 넘어서 영광스러운 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특히 서부개척 시절 프런티어 생활에서 총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신성한 보루였다. 미국에서 총기 문제는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 자유로운 총기 소유는 어떤 사람들에겐 악마의 얼굴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천사의 얼굴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악마의 얼굴이요, 과거를 생각하면 천사의 얼굴이다. 총기 규제를 둘러싼 ‘세기의 싸움’은 미래와 과거의 충돌이기도 하다. 미국적 가치라고 하는 좋은 경험과 기억이 다수 미국인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현실에서 총기 소지를 공포와 탐욕의 산물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오히려 총기 소지 옹호론자들의 확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총기 소지 옹호론자들의 선의를 인정하는 선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게 미국의 ‘국가적 폭력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속으로
프런티어는 미국인의 유전자인가? 말도 안 되는 우문(愚問)이지만, 프런티어가 오늘날 미국인의 삶에서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에 비추어본다면 이해할 수도 있는 과장법으로 보는 게 옳으리라. 잠시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프런티어 사관을 미국인의 문화적 기질에 국한시켜본다면 매우 설득력이 높다는 걸 인정하긴 어렵지 않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국제적으로 난폭하게 구는 카우보이 기질과 그 바탕이라 할 인종차별주의나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물질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삶은 확실히 미국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노다지’를 잡으려는 한탕주의 속성이 강하며 그것이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화되어왔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러나 동시에 ‘동전의 양면’ 원리처럼 그 이면의 특성이 미국의 활력이자 저력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프런티어는 미국인의 유전자인가?」(본문 59쪽)
카네기가 세운 자선사업의 전통은 오늘날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 부자들의 왕성한 기부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100년이라는 시차만 있을 뿐 빌 게이츠는 카네기의 환생(還生)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좌파들은 이에 대해 비판적이다. 예컨대, 슬라보이 지제크(Slavoj Zizek)는 빌 게이츠의 기부 활동에 대해 “경제적 착취를 박애주의라는 가면으로 숨기려는 행동”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런 비판보다는 한국 재벌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카네기 예찬론’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왜 미국 부자들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가?” 카네기에서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부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개같이 돈을 벌어 정승같이 쓰는 두 얼굴을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물론 답은 ‘인정욕구’에 있다. 「왜 미국 부자들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가?」(본문 72~73쪽)
‘빅 3’는 구제금융으로 연명하다가 2010년 ‘도요타 리콜 사태’를 계기로 회생하게 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12년 실적 집계 결과 GM은 ‘안방’에서 선전한 것에 힘입어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지만, 순이익 규모는 전년 대비 36퍼센트 감소했고 전반적인 자동차 부문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앞으로 계속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되건 이미 자신들의 영혼이 된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앙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는 ‘아메리칸 드림’인 동시에 그 ‘드림’과는 달리 갈수록 소외되고 왜소해지는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을 때에 비로소 만끽할 수 있는 ‘권력감정’만으로도 미국인들은 자동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왜 미국은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잃었는가?」(본문 146~147쪽)
예수가 광고인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었다면, 기업 CEO들이 예수에게서 배울 게 왜 없겠는가? 오늘날에도 예수를 기업 CEO 리더십의 이상으로 여기는 책이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런 책들은 예수를 ‘섬김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원조로 여기면서 “예수처럼 팀을 꾸려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거나 “모든 걸 버리고 따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등의 처방을 제시한다. 1967년 바턴이 죽자 영국 저널리스트 앨리스터 쿡(Alistair Cooke, 1908~2004)은 바턴에게 ‘광고의 모세(Moses of advertising)’라는 타이틀을 헌납했다지만, 바턴은 더 넓은 맥락에서 광고가 미국 정신의 핵심임을 간파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유럽에서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광고, 그것도 과대 광고에 의존해 건국된 나라가 아닌가. 「예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인가?」(본문 170쪽)
카네기의 주요 상품이 새로운 스타일의 미국식 자본주의라면, 오늘날 유행하는 팝 사이콜로지(pop psychology, 대중심리학)는 그 자본주의에 짓눌려 피폐해진 또는 피폐해질까봐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힐링과 멘토링을 주기 위한 건 아닐까? 날이 갈수록 인맥의 중요성이 더해지면서,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삶의 문법이기에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카네기의 후예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거시적 분석’과 ‘미시적 실천’ 사이의 괴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애쓰는 대중은 여전히 카네기에 열광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그 수많은 카네기 관련 프로그램의 성황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일 것인가?」(본문 204쪽)
‘한 방울 원칙’은 사라지는 게 옳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라질 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종 간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의 인종
'♣ 책 도서관 ♣ > - 역사,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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