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遠浦歸帆 - 姜碩德

Bawoo 2018. 8. 1. 21:19


                                   遠浦歸帆


                                                                          -姜碩德


淸秋極浦逈連天(청추극포형련천) 맑은 가을 먼 포구 아득히 하늘에 이어져 있고

款乃一聲若箇邊(관애일성약개변) 노 젓는 소리 강가에서 들리는 듯 하다

日落風輕蘋滿水(일락풍경빈만수) 해 지자 바람 살랑이고 마름풀 물에 가득한데

片帆飛過碧山前(편범비과벽산전) 돛단배 푸른 산 앞을 나는 듯이 지나간다


:멀다.

款:두드리다. 드림.이르다. 도달함.

이에 내(다른 표현: 노 젓는 소리 애)

낱 개 ① 낱 ② 대나무를 셀 때 붙이는 말 ③ 물건이나 장소를 가리킬 때 붙이는 말 ④ 어조(語調)를 고르는 말

가 변① 가 ② 변방 ③ 곁 ④ 변두리 

마름 빈(다른 표현: 네가래 빈, 개구리밥 평)




                             소상팔경도유송진종신한2(瀟湘八景圖有宋眞宗宸翰2)


강석덕[姜碩德] (자명(子明), 완역재(玩易齋))


1395(태조 4)∼1459(세조 5). 조선 전기의 문신.

|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완역재(玩易齋). 아버지는 동북면도순문사 강회백(姜淮伯)이며, 심온(沈溫)의 사위이고, 아들이 강희맹(姜希孟)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태종 초에 음사(蔭仕)로 계성전직(啓聖殿直)이 되었으며, 공조좌랑으로 재직 중이던 1416년(태종 16)에 천추사(千秋使)가 가지고 간 무역품 중에서 공조가 납품한 은이 가짜로 판명됨에 따라 파직되었다가 곧 복직되었다.

세종 초에 지양근군사(知楊根郡事)로 발탁되어 선정을 베풀면서 인수부소윤(仁壽府少尹)에 승진되어 집의를 역임하였고, 일시 면직되었다가 1441년(세종 23) 우부승지로 복직되었다.

그 뒤 좌부승지와 좌승지를 역임하고, 1444년에 호조참판으로 승진, 이듬해에 대사헌, 1446년에는 산릉도감제조(山陵都監提調)가 되어 세종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국상에 참여하였다.

1447년 개성부유수로 출사했다가 1449년 중추원사로 입조하였고, 1450년(문종 1) 동지중추원사, 이어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1455년(세조 1)에는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으로 책록되면서 가자(加資)되었다.

일생 동안 학문에 힘쓰고 청렴강개하였으며, 효우(孝友)가 지극하여 명망이 높았다. 시호는 대민(戴敏)이다.

저서로는 『완역재집(玩易齋集)』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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