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동유럽은 ‘사이에 끼인 유럽’으로 일컬어지곤 한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이 만나는 3중의 문명 교차로인 이 지역은 한반도가 그렇듯이 그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동유럽과 우리의 근현대사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이 책은 동유럽 근현대사를 핵심과 주요 흐름으로 간명하게 정리했다. 굴곡진 근현대사의 전초가 된 오스만제국 및 합스부르크제국 지배(19세기 이전)에서부터 시작해, 19세기 서유럽 열강들의 간섭과 침략, 1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가들의 수립이 다민족 지역인 동유럽에 끼친 영향,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이식받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 등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오늘날 동유럽에서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개혁의 바람이 활발히 불고 있다. 민주화는 한 나라 차원만이 아니라 동?서유럽 국가 간, 동유럽 국가와 유럽연합 간 관계 등에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목표다.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역사의 결과로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안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들의 행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목차
동유럽 지도
서문: 낯선 동유럽 역사
1. 동유럽 역사라는 공백
2. ‘후진’ 동유럽?
선행연구: 서구 중심 역사관 극복으로서의 포스트식민주의
1. 서구 보편적 역사주의의 문제점
2. 포스트식민주의 역사 서술과 서발턴 동유럽
3. 민족주의와 동유럽: 민족국가와 종족성의 관계
1장. 제국의 각축장이 된 문명의 교차로(6~19세기)
1. 동유럽은 어디인가?
2. 동ㆍ서 기독교의 각축 사이에서(6~15세기)
- 동ㆍ서 기독교의 개종 경쟁과 키릴문자의 탄생
3. 가톨릭 제국과 이슬람 제국의 대결(16~19세기)
- 합스부르크 제국의 중동부 유럽 지배
- 절대주의 제국의 통치와 중동부 유럽의 보수화
- 오스만 제국의 발칸 유럽 지배
- 민족종교 공동체 통치
4. 제국 지배의 지속적인 영향
2장. 열강의 4파전과 민족 투쟁(19세기)
1. 열강들의 각축과 동유럽 민족운동의 태동
2. ‘동방 문제’와 발칸 민족운동의 성공
- 동방문제
- 4파전
3. 중동부 유럽의 1848년 혁명과 실패
- 귀족 민족운동의 한계
- 실패한 1848년 혁명
4. 제국 지배의 유산과 민족국가
3장. 혼돈의 첫 번째 민족국가 건설과 ‘3중’의 2차 세계대전(1919~1944)
1. 1차 세계대전 종전과 무기력한 독립
2. 베르사유 협정의 결함과 만성적 민족 갈등
3. 먹구름 드리운 출발
- 영토 분쟁
-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민족들의 공동 국가
4. 폭풍우의 도래: 나치 독일과 ‘패자 민족’의 결탁
- 독일의 재부상과 뮌헨 협정
- ‘패자 민족’의 복수전이 일으킨 3중의 전쟁
4장. 무기력한 좌회전: 사회주의민족국가 건설과 붕괴(1945~1993)
1. 사회주의, 민족주의, 국제주의
2. 사회주의민족주의와 사회주의국제주의의 충돌
- 스탈린주의 통치(1945~1953)
- 탈스탈린화를 향하여(1956~1968)
- 탈스탈린주의 개혁 시도
- 스탈린주의 고수
3. 사회주의 정체기(1968~1989): 실패로 끝난 사회주의 사회계약
4.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분열
결론: 세 번째 민족국가 건설(1989~)과 극우 민족주의의 도전
1. 체제이행이라는 사기극
- 서유럽에 의한 신식민 지배
2.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
3. DiEM25: 유럽의 민주화와 서유럽 중심의 역사주의 극복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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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생소한 이란성 쌍둥이, ‘사이에 끼인 땅’ 동유럽
-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이 낳은 무지와 왜곡을 넘어
지금껏 우리에게 동유럽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여행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정도다. 국내에 출간된 동유럽 역사서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물’이나 ‘유럽의 화약고’ 같은 피상적인 이미지들만 주로 소비된다.
이러한 무지와 피상적 이미지는 동유럽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낳곤 한다. ‘서유럽보다 100년, 50년 혹은 20년 뒤떨어졌’고 ‘유럽연합을 통해 이제야 낙후성을 극복하고 번영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지역’인 ‘후진적 2등 유럽’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서유럽 중심의 세계관과 역사관이 우리에게 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서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시각에서 서유럽 역사를 ‘세계사’라고 칭하듯, ‘서양사’ 역시 동유럽의 역사는 배제되어 있다. 동유럽을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은 곧 반쪽짜리 서양사를 온전히 채워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동유럽사 전공자인 저자 오승은은 이처럼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왜곡된 동유럽과 동유럽 역사를 제대로 소개하고자 이 책 《동유럽 근현대사》를 썼다. 저자가 보기에 우리가 동유럽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더 있다. 바로 그 질곡의 역사가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국사가 강대국 사이에 끼여 살아남고자 투쟁한 역사였듯, 동유럽사도 대제국과 강대국 사이에 끼여 생존권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생존투쟁의 역사다. 동유럽을 부르는 독일어 별명 ‘사이에 끼인 유럽(Zwischen Europa)’은 그런 동유럽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 표현해준다.
내게 동유럽은 한반도의 ‘이란성 쌍둥이’ 같은 곳이다. …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겪어온 동유럽 사람들에게 ‘2등 유럽’이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그것은 ‘잘사는’ 서쪽 이웃 편을 들어,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형제를 ‘못산다’고 비웃는 왜곡된 자화상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나는 동유럽 역사의 모든 것이 정당하고 옳기만 하다는 얘기를 하거나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외세의 침략 속에서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을지 헤아려보았으면 한다. … 세계에서 한국만큼 동유럽의 역사적 질곡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 〈서문〉에서(26~27쪽)
제국 지배에서 민족국가로, 그 굴곡진 발자취를 좇다
- 핵심과 주요 흐름으로 간명하게 정리한 동유럽 근현대사
비교적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은 주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동유럽 근현대사를 다룬다(2~4장 및 결론). 그전에 동유럽사가 생소한 독자를 위해 먼저 기존 동유럽사 연구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을 소개하고 비판한(선행연구) 뒤, 전사(前事)로서 19세기 이전의 역사를 소개한다(1장).
역사적으로 동유럽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이 만나는 ‘3중의 문명 교차로’였다. 그만큼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동유럽은 항상 주변 열강들의 격돌무대가 되었다. 1장에서는 이처럼 ‘사이에 끼인’ 굴곡진 역사의 시초인 동로마와 서로마의 분리, 그리고 동ㆍ서 기독교의 분리와 대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23년간 지속되던 비잔틴 제국(동로마)이 1453년에 오스만 제국의 침공으로 무너질 때까지 동유럽 정세는 동ㆍ서 기독교의 대립 구도 속에서 전개되었다. 동ㆍ서 기독교의 대립은 동유럽 내에 가톨릭 문화와 정교 문화를 발전시키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피해도 컸다. 15세기부터 19세기 이전까지는 주로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으로 양분되어 지배를 받았다. 이는 가톨릭과 이슬람으로 나뉜 것이기도 했다. 19세기 이전의 이러한 역사 흐름은 곧 복잡하고 굴곡진 동유럽 근현대사의 바탕이 되었다(1장 ‘4. 제국 지배의 지속적인 영향’(99~107쪽) 참조).
2장에서 다루는 19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이 약화되면서 발칸 반도에 권력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발칸의 엘리트들은 독립을 이루기 위한 민족운동을 일으켰고, 한편으로 유럽 열강들은 발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지배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열강들은 발칸 사람들의 독립 열망은 안중에도 없었다. 열강들은 ‘통치 능력 없는’ 발칸 사람들에게 발칸을 맡길 수 없으며, 러시아나 합스부르크 같은 다른 제국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20세기 초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한반도가 자연스레 겹쳐진다. 아무튼 이러한 독립 전쟁과 외교적 간섭과 침략, 그리고 합스부르크 지배하의 중동부 유럽에서 독립의 열망으로 일어났지만 결국 실패한 1848년 혁명 등 동유럽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3~4장에서 다루는 20세기 역사 흐름의 핵심은 ‘민족국가’ 건설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동유럽 사람들은 꿈꾸던 독립을 이루었고 여러 신생 국가들이 생겨났지만, 이는 외부에 의한 것이었다.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하여 다민족ㆍ다종교ㆍ다문화ㆍ다언어의 공간으로 발전해온 동유럽의 특수성을 고려치 않은 채 그어진 국경선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했다. 민족주의를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민족국가’ 수립이라는 목표는 자국 영토라 인식되는 공간에 사는 다른 민족에게는 ‘동화’나 ‘절멸’을 의미했고, 이는 곧 ‘민족청소’라는 집단학살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위성국이 된 동유럽은 사회주의를 받아들여야만 했는데, 이 역시 민족주의로 포섭ㆍ변형되어 이식되었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는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여러 나라로 쪼개지는 등, 20세기 내내 한 국가 내 민족들 사이에, 그리고 민족국가들 사이에 갈등과 차별, 대립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굴곡진 근현대사는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 중인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열강의 각축장이 아닌 민주주의와 평화의 장으로
- 지금, 동유럽에서 부는 개혁의 바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동유럽은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과 이후 두 번의 체제이행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거쳤다. 현재 동유럽은 체제이행의 부작용,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 등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진정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개혁의 바람 또한 거세게 불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젊은 철학자 스레츠코 호르밧이 주도하는 ‘유럽민주화운동25(DiEM25)’이 대표적이다.
동유럽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동유럽 민주주의 발달만이 아닌, 16세기 이후 지속된 동ㆍ서유럽 국가 간의 불평등한 관계라는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현재 동유럽이 겪는 문제는 서유럽 주도의 불평등한 근대화가 낳은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동유럽에 불고 있는 개혁의 바람은 기존 서구의 ‘후진적인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차별적 시선과 역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극복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민주화는 한 나라 차원에서 국민주권의 완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ㆍ서유럽 국가 간의 관계, 동유럽 국가와 유럽연합과의 관계 등에서도 다면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목표라 할 수 있다. 동유럽은 지금껏 자신들을 옭아맸던 서유럽 중심의 인식에서 벗어나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인 서유럽과의 진정한 민주화를 꾀하고 있다.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아닌 민주주의와 평화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역사의 결과로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안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들의 행보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다.
[책속으로 추가]
… 이들 패자 민족은 독일의 침략전쟁에 가담하여, 주변국에 빼앗긴 영토 되찾기에 나섰다. 헝가리는 전쟁 전부터 나치 독일에 편승했고, 독일은 독일대로 헝가리의 영토 회복 열망을 이용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 불가리아도 헝가리와 함께 1941년 4월 독일의 침공에 가담하여, 유고슬라비아 해체와 영토 분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이렇듯 동유럽 국가들에게 2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군사적 승리만이 아닌 치열한 영토 전쟁이었다. ‘패자 민족’들이 새로운 영토를 확장하고, 인구를 재정착시켜 자민족 영토로 만들려는 폭력적인 쟁투였다.
셋째, 2차 세계대전은 ‘내전’이기도 했다. 베르사유 협정의 혜택을 받지 못해 민족국가 수립에서 배제된 ‘패자 민족’들에게 2차 세계대전은 전쟁이라는 혼란한 국면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좌절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했다. 슬로바키아와 크로아티아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독립국가를 선포하면서 오랜 갈등관계에 있던 다수민족, 각기 체코 민족과 세르비아 민족과의 결별을 꾀했다. 물론 그것은 독일의 괴뢰정부 또는 위성국가 형태로 가능한 극히 제한적인 독립이었다.
4장. 무기력한 좌회전: 사회주의-민족국가의 건설과 붕괴(1945~1993) / 212~217쪽
동유럽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 동유럽 공산당 지도부가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첫째,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은 대내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선 민족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동유럽사 맥락에서 보면, 사회주의 체제로 급작스레 전환했다지만, 19~20세기 초에 형성된 민족국가의 전통을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었다.
… 동유럽 공산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익숙한 ‘민족’의 어법으로 소통해야 수월하게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필요성에서 출발하여, 동유럽 공산당 지도부는 자신들을 ‘민족의 대변자’ 또는 ‘수호자’로 내세우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동유럽 공산당은 처음부터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사회주의-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동시에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은 정치적 성공을 위해 소련의 제국주의적 지배 욕구도 충족시켜야 했다. … 소련은 스탈린이 제시한 “형식은 민족주의, 내용은 사회주의”라는 틀 안에서, 각 민족들의 문화와 언어를 장려하는 토착화 정책을 실행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동유럽 국가들도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살리는 정책을 펼 수 있었다. … 그러나 1956년 10월 헝가리 봉기, 1968년 프라하의 봄에 대한 진압이 보여주듯이, 소련은 동유럽의 개혁을 두려워했고, 무력으로 진압했다.
… 민족 정체성을 내세우면서도, 민족 정체성에 내포된 이해관계를 외세의 압력 때문에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와 지도부를 국민들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은 국정 장악력을 차츰 상실하며 깊은 정체기에 빠지게 되었고, 안으로부터 붕괴하고 말았다.
결론: 세 번째 민족구가 건설(1989~)과 극우 민족주의의 도전 / 275~277쪽
1989년 이후 지난 27년에 대한 중간평가는 불행히도 기대보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1990년대 내내 자본주의 체제이행에 따른 다수의 빈곤화와 피폐화가 우려를 자아냈다면, 2000년대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거세지는 우파 포퓰리즘의 높은 파고가 우려를 자아낸다.
동유럽 사람들은 1990년대를 서구가 기획하고 강요한 ‘충격요법’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로의 급격한 이행을 추진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부’를 약속했던 체제이행이 다수에게 가져다준 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더 빈곤한 삶’이었고, 그에 따른 실존적 공포는 엄청났다. 이에 대한 환멸과 반동으로 2000년대 이후 다수의 유권자는 포퓰리즘으로 돌아섰고, 그들의 분노는 국수주의와 제노포비아로 표출되고 있다.
…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잔인한 삶의 빈곤화가 민주화를 명분으로 실행되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실상은 민영화를 통해 자본을 소수 특권층에게 집중시키는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이었음에도, 동유럽에서 이는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이제 동유럽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자유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업, 가난, 경제적 계층화’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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