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ořák, Violin Concerto in A minor Op.53
드보르자크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Antonín Dvořák
1841-1904
David Oistrakh, violin
Kyrill Kondrashin, conductor
State Symphony Orchestra of the USSR
1949.09.07
드보르자크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각 한 곡씩 남겼다. 시기적으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Op.53)는 초기의 피아노 협주곡 G단조(Op.33)와 후기의 첼로 협주곡 B단조(Op.104)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선율이 풍부한 이 작품은 ‘자연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은 드보르자크답게 자연에서 발상을 얻고 그 영감에 따라 작곡했다는 느낌이 짙게 배어 있다. 이 작품에는 슬라브 춤곡의 리듬과 보헤미아 민요의 기본적인 형태가 들어 있는데, 민족적 색채와 고전적 구성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랄로, 차이콥스키, 버르토크 등이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바이올린 거장 요제프 요아힘의 권유로 작곡
드보르자크의 현악 6중주 Op.48(1878)과 현악 4중주 Op.51(1879)을 연주했던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은 드보르자크의 재능에 주목하고 바이올린 협주곡 작곡을 권유했다. 드보르자크는 고향에서 곧바로 작곡에 착수해서 1879년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두 달여에 걸쳐 이 곡을 완성했다. 그리고 베를린의 요아힘에게 작품을 보내 그의 의견과 평을 기다렸다. 드보르자크는 1880년 5월, 요아힘의 조언을 받아들여 곡을 수정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으로 위대한 거장 요제프 요아힘에게’라고 쓴 헌서와 함께 이 곡의 총보를 요아힘에게 보냈다. 그러나 요아힘이 이 곡을 공개 장소에서 연주한 적은 없었다. 사연은 이렇다. ▶요제프 요하임(1831-1907)
드보르자크는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개작하는 데 힘썼다. 작곡가로서 원숙의 경지에 올랐을 때에도 드보르자크는 한편으로 출판업자들의 요청에 의해, 또 한편으로는 음악의 풍부함을 더하기 위해 이전에 작업한 작품의 개작에 적극적이었다. 드보르자크는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를 작곡하는 과정에서도 개작을 거듭했다. 그는 브람스의 우정 어린 소개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던 독일의 출판업자 짐로크를 소개받았는데, 짐로크의 조언자인 로버트 켈러는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악보를 보고 첫 번째 악장에서 두 번째 악장으로 바로 진행되는 것보다는 첫 번째 악장에서 일단 종지하는 게 어떠냐고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평소 개작에 열심이었던 드보르자크가 뜻밖에도 이를 거부했다. 아마도 첫 번째 악장과 두 번째 악장을 이어주는 패시지가 이 협주곡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작용하였으리라 짐작된다. 결국 짐로크는 로버트 켈러의 의견을 물리치고 작곡가의 판단을 받아들였으며, 1883년에 작품은 최종적으로 출판되었다. 요제프 요아힘은 작품의 변경에 대해 이미 로버트 켈러와 모종의 합의를 했으리라 짐작되는데, 그가 작품을 헌정 받았음에도 대중 앞에서 이 작품을 연주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1883년 10월 드보르자크의 친구인 체코의 바이올리니스트 프란티셰크 온드리체크의 연주로 프라하에서 초연되었다.
Kyung-Wha Chung - Dvořák, Violin Concerto in A minor
Kyung-Wha Chung, violin
Riccardo Muti, conductor
The Philadelphia Orchestra
Memorial Hall, Fairmount Park, Philadelphia
1988.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