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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林亭十詠(東嶺霽月)- 金昌協

Bawoo 2019. 1. 28. 21:30


                        竹林亭十詠 - 東嶺霽月

                                                                      -金昌協


夕霽臥遙帷(석제와요유) 저녁 비 갤 제 기다란 장막에 누워있노라니

東峰綠煙歇(동봉록연헐) 동쪽 산봉우리에 푸른 안개 걷혔구나

開簾滿地霜(개렴만지상) 주렴 걷고 내바보니 땅에 서리 가득 내렸고

竹上已明月(죽상이명월) 대나무 숲 위로는 밝은 달 떠있구나



죽림정(竹林):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 [개설] 죽림정(竹林)은 현징(玄徵)[1629~1702]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머물면서 지은 정자이다. ‘죽림(竹林)’이라는 이름은 현징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갤 제 ① 개다 ② 날씨가 화창하다 ③ 명랑하다 ④ 비가 개다
멀 요① 멀다 ② 서성거리다 ③ 길다 ④ 빨리 가다
휘장 유 ① 휘장(揮帳) ② 널에 치는 덮개 ③ 수레에 치는 덮개 ④ 장막

 

조선 후기 포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해주 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인 안정 나씨(安定羅氏)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이 형이고, 성리학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김창흡(金昌翕)이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 문과에 전시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에 출사하였다. 이어서 병조 좌랑·사헌부 지평·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이조 좌랑·함경북도 병마평사·이조 정랑·사헌집의·동부승지·대사성·병조 참지·예조 참의·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송시열(宋時烈)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교정하였다.
청풍 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김수항이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1692년(숙종 18) 영평(永平)[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농암 서옥(農巖書屋)을 완성하고 농암 수옥(農巖樹屋)이라 당호를 썼다.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甲戌獄事)가 일어나 남인이 축출되고 소론이 득세할 때 아버지도 신원(伸冤)되고 그도 호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그 후 잇따라 대제학, 예조 판서, 지돈령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모두 사퇴하였다. 만년에 양주의 삼호(三湖)에 서실을 짓고 이거하여 그곳을 삼주(三洲)라 명명하고 자호로 삼은 뒤 경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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