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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편소설] 북성로의 밤 - 조두진

Bawoo 2019. 6. 15. 23:56

북성로의 밤

북성로의 밤

[소감]

책 "소설이 머문 풍경" 을 통해서 알게 되어 읽은 작품. 일제 강점기 시절 대구 북성로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된다. 식민지 조선에서 살고 있는 조선인 3형제 -노태영, 치형, 사촌 정주-와 과 일본에서 건너와 백화점 기업군을 일군 나카에 도미주로와 그의 딸 아나코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조선인의 삶이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일이고. 한 가지, 소학교만 겨우 나온 백화점 배달꾼 노정주를 백화점 사장 딸이 사랑하는 설정은 좀 억지스럽다. 형 태영이 친일파 순사가 되는 계기가 조선인 지주의 아들에게 억울한 일- 성적이 제일 좋은데도 상을 뺏기는 데 여기에는 조선인 지주와 일본인 교장의 농간이 작용하고 담임 선생은 이에 반대하는 설정- 당하는때문인데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도 지주의 횡포가 심했다는 내용이 읽힌다. 태영은 순사부장이 되지만 집은 단간 셋방에서 임신한 아내와 아이 한명이 있는 가난한 설정인데 해방후 친일파로 몰려 살해당한다. 동생 치형은 죄익 계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데 해방후 혼란기에 살해당하는 설정인데 20연 년이 지난 뒤 중년이 된 아나코가 한국에 와서 남편이었던 노정주를 만나- 너무 우연스러운 설정이다-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온다. 본인도 한국전쟁에 끌려갔다가 다리를 절게 되고 자식이 둘 있는 설정.  
작품은 일제 강점기 치하에 식민지인으로 살아가는 세 형제의 삶과 한반도로 이주해와 부를 일궜으나 전쟁에 패하면서 빈손으로 귀국하는 일본인의 실상을 보여주는데 백화점주와 그 주면 인물 몇 명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작품성면에서는 별로 점수가 안 주어진다. 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이고 주요 사건의 전개가 해설조로 끝나는 것도 불만이어서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대구 북성로 주변에서 살아간
조선인과 일본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작품에 대한 해설 능력 부족이 아쉽다.ㅠㅠ]


책소개-인터넷 교보문고

식민 지배의 광기와 탐욕으로 얼룩진 근대의 풍경을 그린 조두진의 장편소설 『북성로의 밤』. 1940년대 대구 북성로의 ‘미나카이 백화점’을 배경으로 근대의 속살을 파고든 또 하나의 ‘전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배달부 노정주와 백화점 사장의 딸 나카에 아나코의 사랑, 노정주의 사촌형인 순사 노태영과 독립운동을 하는 노치영 형제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정주와 아나코를 통해서는 잔잔한 사랑을 보여주고, 노태영과 노치영 형제를 통해서는 전쟁으로 인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지는 인간의 밑바닥 모습을 담아냈다. 또한 당시 대구의 근대화 모습을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을 겪어야만 했고, 살아남기 위해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전한다.


저자 : 조두진
저자 조두진은 1967년생. 10년 넘게 신문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2001년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은 단편소설 <게임>을 썼으며, 일본군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마지막 1년’의 이야기를 담은 《도모유키》로 2005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능소화》,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몽혼夢魂》. 소설집 《마라토너의 흡연》, 《끝까지 이럴래?》(공저) 등이 있다. 현직기자로서 보고 느낀 사회의 이면 또는 단면을 날카로운 시선과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소설들을 써나가고 있으며, 꾸준히 역사소설을 출간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1부
2부
3부
4부
에필로그
작가의 말



책 속으로


고향을 버렸으므로 그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이름을 지웠으므로 누구든 될 수 있었다. 진실로 그렇게 살고 싶었다. (58p)

"정주야, 늘 하는 소리다만 그저 금 그어진 대로 살아라. 치영이 놈은 세상의 금이 잘못 그어졌다고 말한다. 치영이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이란 게 어디로 그어져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세월에 따라 이렇게도 그어지고 저렇게도 그어진다. 누구 한 사람이 금을 긋는 게 아니다. 세상은 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저 금 그어진 대로 살면, 가시에 찔릴 일이 없고, 불구덩이에 빠질 일도 없을 것이다. 내 말 알겠니?"(69p)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세월 따라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이다. 너는 어디에도 구애되지 마라. 부디 살아서 마땅히 네가 죽어야 할 때, 죽어야 할 곳에서 죽어라. 어쭙잖은 짓으로 객사하지는 마라."(70p)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만나는 사람은 없다. 그리워하지 않았는데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없다.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은 오래 기다렸으며, 오래 그리워한 사람들이다. 노정주가 오늘 처음 자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낯설지 않은 까닭은 그 전에도 그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일 것이라고 아나코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 목소리에 자신의 귀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긴 세월을 기다려 만난 사람들은 서로를 금방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는 법이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스쳐갈 뿐 만나지 못한다. 노정주를 처음 보았을 때 그토록 낯이 익던 까닭은 언젠가 두 사람이 만났으며,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임을 아나코는 알았다. 자전거에서 내린 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밤공기는 포근하고 향기로웠다. (102p)


그러니 조선과 대구는 내 고향이나 다름없다. 아나코를 낳고 기르고 공부시킨 곳이다. 내 청춘의 피와 땀을 쥐어짜서 건설한 내 백화점이다. 지금이라도 처분하고 살길을 찾자고 조선을 떠나는 순간, 백화점 문을 닫는 순간, 나는 죽는다. 나는 살아도 조선에서 살고, 죽어도 조선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미나카이는 무너지지 않는다. 미나카이가 무너지지 않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내 몸의 물리적 삶과 죽음은 문제가 아니다. 미나카이가 곧 내 청춘이요, 육신이요, 피요, 땀이요, 영혼이다. (242p)

이름을 새로 짓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삶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아나코와 함께하는 삶은 이전과 확실히 다른 생이었고, 달라야 했다. 새로 태어나자면 마땅히 새 이름이 필요했다. 어떤 이름을 지을까 고민하던 정주는 기왕이면 사촌 형의 성씨를 따르라는 아나코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형의 성인 야마모토와 광주 노씨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지만, 형이 이미 야마모토라는 성을 쓰고 있는 마당에, 사촌 동생이 다른 성을 쓴다면 이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성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야마모토로 정해졌다.


거기에... 정주의 정(靜) 자를 뜻으로 새겨 시즈라고 지었다. (260~261p)

"어머니의 마른 손목을 볼 때마다 나는 힘이 센 농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배불리 드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의 손톱에 시커먼 흙 때가 아니라 붉은 봉숭아물을 들여드리고 싶었다.
치영아, 나는 부지깽이처럼 가느다란 우리 어머니의 손에 하얀 살이 오르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나를 뱄을 때 우리 집 광이 쌀로 넘쳐나는 꿈을 꾸셨다고 하더라. 나는 어머니께 논밭을 사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우리 논밭에서 일하시고 쌀로 광을 가득 채우기를 바랐다. 나는 어머니와 더불어 아침 일찍 소를 끌고 밭으로 나가서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종일 일한 착한 우리 소를 위해 쇠죽을 끓이고 싶었다."(325~326p)

"나는 일본 사람한테 무시당했고, 해방 뒤에는 일본 사람 밑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한국 사람들한테 배척받았소. 사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소. 일본 사람 편도, 조선 사람 편도 아니었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았는지,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도 모르겠소."
"사람은 꼭 무엇을 위해 살지는 않아요. 세상에 났으니 그냥 사는 거지요."
"그냥……."
"그래요, 그냥."
아나코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일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일본 사람으로 살아야 했고, 당신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것뿐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348p)



출판사서평


그들 모두는 북성로의 나그네였고, 세상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혹은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제 삶의 주인이고자 했으며, 다만 살기 위해 살았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근대의 속살을 파고든 또 하나의 ‘전쟁’을 생생히 묘파하다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도모유키》로 이름을 알린 작가 조두진. 《능소화》,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몽혼夢魂》 등의 장편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던 그가 2012년 신작 장편소설 《북성로의 밤》을 출간했다. 《북성로의 밤》에서 작가는 1940년대 대구 북성로에 있는 ‘미나카이 백화점’을 배경으로, 배달부 노정주와 백화점 사장의 딸 나카에 아나코의 사랑, 노정주의 사촌형인 순사일을 하는 노태영과 독립운동을 하는 노치영 형제의 갈등을 두 축으로 근대의 속살을 파고든 ‘전쟁’을 생생히 그려낸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대구 북성로 거리를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지난했던 삶과 그들을 통해 세월의 흐름과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정주, 아나코, 노태영, 노치영, 나카에 도미주로 등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구 북성로의 나그네였고, 세상의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다른 누구를 위해, 어떤 목표나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아왔고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전쟁을 겪어야만 했고, 전쟁 중에 살아남기 위해, 어느 쪽이든 선택해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식민 지배의 광기와 탐욕의 ‘랜드마크’, 대구 북성로 ‘미나카이 백화점’

《북성로의 밤》은, 우선 노정주와 아나코의 잔잔한 사랑을 보여준다. 백화점 배달부 노정주에게 ‘미나카이 백화점’ 사장(나카에 도미주로)의 딸 아나코는 쳐다볼 수 없는 존재였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 한두 마디 얘기를 나누고, 배달하느라고 고생했다며 땀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건네주는 아나코. 노정주는 밤에 북성로에서 아나코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다.

정주는 밤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낮이라면 아나코가 그처럼 용감하게 허리를 껴안을 수 있었을까. 낮이라면 이렇게 아나코를 태우고 보란 듯이 자전거를 타고 대구를 달릴 수 있었을까. 어둠은 청년의 상기된 얼굴과 대구 사람 누구나 아는 처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가려주었다. 어둠 덕분에 두 사람은 질투를 받지 않았다. 힘차게 페달을 밟던 정주가 불렀다. “아나코상.” (101p)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게 살아서 공부를 잘해도 일등이 될 수 없었던, 항상 지주의 아들에게 일등을 내주고 이등을 해야만 했던, 그렇기에 일본 선생의 양자가 되고 이름을 바꿔 일본 순사가 된 노태영(야마모토 쇼시).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혈육인 형마저 죽여야 하는 동...생 노치영. ‘전쟁’이라는 괴물이 사람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두게 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인물들의 밑바닥 모습까지 담아낸다.

"쓸모가 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밥숟가락 하나까지 모조리 전장으로 쓸어가는 세월이다. 사람은 오죽하겠느냐? 있는 듯 없는 듯 살아라. 지금은 살아남는 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70p)

그것은 조선 민족의 배신자 야마모토 쇼시를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희망이자 삶을 짓밟아버리는 행위였다. 얼마든지 형을 욕하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일 수는 없다. 어머니가 형을 버리면서까지 조선 독립을 염원할 것인가. 조선이 독립하지 못하더라도 어머니는 형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85p)

대구의 북쪽 성벽을 허물고 일본인 나카에 도미주로가 세운 ‘미나카이 백화점’은 근대화의 물결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전쟁에 승리하는 일본 군대를 따라 철도를 따라 움직이던 상인들은 상품을 소비하는 군인들 덕분에 성장하게 되는데, ‘미나카이 백화점‘은 1945년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까지 조선 전국과 만주, 중국에 18개 지점, 4천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한 백화점 그룹이었다. 그 당시 대구의 근대화 모습을 소설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작가는, 1940년대의 대구 북성로와 서성로의 모습을 그려내며, 현재 대구의 북성로 거리는 어떻게 변했나 궁금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미나카이 백화점은 가장 놀랍고 화려한 곳이었다. 백화점은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실내인데도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놀라운 것은 수많은 인파가 신발을 신고 들어와도 안이 늘 깨끗하다는 사실이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은 잔치에 가는 사람들보다 더 멋을 부리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그들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 ……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 규모의 미나카이 백화점은 경이였다. 백화점 북쪽 벽면에는 30개의 장방형 유리창이 붙어 있었다. 마치 얇은 유리가 그 거대한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보일러실과 정화조, 옥상의 물탱크와 피뢰침은 그 쓰임을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건물뿐이 아니었다. 백화점 점원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종일 방긋방긋 웃었다. (35p)

북성로의 밤은 아름다웠다. 길 양옆에 조경 회사인 스기하라 합자회사, 구로가와 재목점, 목욕탕인 조일탕, 대구 곡물 회사, 마쓰노 석유 회사를 비롯해 철물점과 채소 가게와 생선 가게, 식료품 가게, 약국, 도기점 등 크고 작은 점포가 즐비했다. 북성로의 점포들을 한 바퀴 순례하는 것만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밤 10시가 가까웠지만 아직 불을 밝히고 영업 중인 점포도 많았다. 점원들이 점포 입구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80~81p)

■ 주요 내용

1940년 대구 미나카이 백화점에서 배달부로 일하던 노정주는 우연히 백화점 사장 나카에 도미주로의 딸 아나코를 길에서 만난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했더니 아나코는 직접 자전거를 가르쳐주겠다며 밤에 북성로에서 만나자고 한다. 자전거가 없는 노정주는 밤에 북성로에서 아나코와 만나, 아나코에게 자전거를 배우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열게 된다. 노정주를 백화점에 취직시켜준 노정주의 사촌형인 야마모토 쇼시(노태영) 순사는 어릴 적부터 수재였다. 소작농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후 어머니는 힘겹게 소작을 하면서 노태영과 동생 노치영을 키웠고, 노태영은 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었다. 담임이던 일본인 선생을 따라 공부를 하러 떠났다가 그의 양자가 되고, 순사학교를 졸업해서 순사가 된다. 노태영은 어머니의 땅을 되찾아주고, 동생 노치영을 대구의 양화점에 취직시키지만, 노치영은 곧 일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을 한다. 일본인들을 돕는 조선 상인들을 협박하며 독립운동을 하던 노치영은, 순사 일을 하는 형 노태영을 죽이라는 지시를 받고는 고민하다가 사촌동생 노정주를 통해서 선물로 위장한 폭탄을 형에게 전달한다. 직감적으로 폭탄임을 알게 된 노태영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밤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노정주와 아나코를 본 구로카와 소좌는, 나카에 사장에게 얘기해서 아나코를 만나고, 아나코에게 노정주와 헤어지라고 협박한다. 갑작스레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백화점을 빼앗기게 될 지경에 이른, 나카에 도미주로 사장은 노정주와 아나코를 급히 결혼시키는데…….

■ 추천의 글

내륙의 분지 대구의 읍성은 외침으로 두 번 허물어졌다. 처음의 토성은 무력에 의해 무너졌으나 이후 석성을 허문 것은 금력, 즉 돈이었다. 돈을 둘러싼 싸움은 권력 다툼 못지않았다. 어쩌면 더 집요하고 맹렬했다. 돈, 돈의 힘, 돈의 싸움만큼 인간의 욕망, 인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는 없다. 그리하여 대구 읍성의 북쪽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 일본인 나카에가 세운 미나카이 백화점은 식민 지배의 광기와 탐욕과 복마전의 ‘랜드마크’가 된다. 소설은 노태영, 노치영 형제의 갈등과 사촌 노정주의 사랑을 숨 가쁘게 좇으며 근대의 속살을 파고든 또 하나의 ‘전쟁’을 생생히 묘파한다. ‘이식된 근대’의 풍경은 화려한 비극이자 고통스러운 소극이다. 그럼에도 쉬이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각자 다른 ‘살길’을 찾아 발버둥질하는 그들의 모습이 오늘날의 우리와 고스란히 겹쳐지기 때문이다. -김별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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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소설의 배경이 된 북성로에 있는 백화점은 실제로는 생활용품 잡화점인 미나카이 상점이다 ]


미나카이 백화점은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최초이자 최대의 백화점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를 타기 위해 백화점에 가기도 하였다. 해방 후까지도 부산 사람들은 백화점에 간다는 말을 ‘미나카이 간다’로 표현할 만큼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설립 목적]
1930년대 미나카이 경성본점이 면모를 일신하면서 각지에 지점을 설치하는 등 백화점 사업을 본격화하였는데, 부산지점 역시 그 일환으로 개설되었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의 소비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로, 백화점 사업은 일본인 기업가들에게 이윤을 확대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 업종 가운데 하나였다.


[변천]
미나카이 백화점의 대표이자 중역들인 나카에 가쓰지로[中江勝次郞], 규지로[久治郞], 도미주로[富十郞], 준고로[準五郞] 형제는 일본 시가 현 출신으로 러일 전쟁 당시 일확천금을 꿈꾸며 조선에 들어왔다. 처음 조선에 진출할 당시에는 이미 많은 일본인들이 선점하고 있던 부산이 아닌 경부선이 지나는 대구의 시장성을 보고 1905년 생활용품 잡화점인 미나카이 상점을 창업하였다. 미나카이 상점은 대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지에 포목점을 개설하였는데, 부산지점은 1917년 문을 열었다. 그 후 미쓰코시 백화점, 조지야 백화점이 경성에 개설되자, 미나카이도 1919년 경성에 미나카이 포목점 경성본점을 개점하여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백화점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1933년 경성본점을 지상 6층 지하 1층의 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증축하면서 미나카이도 본격적인 백화점 반열에 올랐다. 이어 각 지역에 지점을 개설하였는데, 부산을 비롯한 대구, 대전 등에 12개 점포를 두고 만주의 신경, 하얼빈, 중국의 북경과 남경에도 진출하는 등 거대 백화점으로 성장하였다. 그중 미나카이 백화점 부산지점은 1937년 9월 부지 2,310㎡[700평]에 5층 건물로 신축되었으며, 부지는 부산부청 인근의 일등지였다. 당시 부산지점장은 오쿠이 와이치로(奧井和一郞), 부점장은 나카에 마사요시(中江將悌)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미나카이 백화점의 취급 종목은 오복(吳服)[기모노]·양복과 식료품, 서양 가구 등 여러 잡화와 주방 및 철물 용구, 완구, 문방구, 운동구, 서적, 귀금속, 악기, 시계, 미술품 등이었고, 약의 조제와 판매, 관청 및 회사에의 납품 등을 행하였다. 또 맨 위층인 5층에는 유원 시설인 목마, 요지경 등 각종 놀이 시설이 있었다.


[현황]
6·25 전쟁 시기 부산의 미나카이 백화점 건물은 야전 군병원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1967년 10월 25일 부산상공회의소가 이 건물을 인수하여 상공회의소 회관 등으로 사용하였다. 1976년 5층 건물에 2층을 더 올려 7층 건물로 증축하였다. 1987년 부산상공회의소가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범천동 신청사로 이전한 이후 부산시청 별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98년 1월 부산광역시청이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으로 옮길 때까지 엘리베이터가 사용되었다. 이후 건물은 롯데 백화점 광복동점 신축으로 1998년 10월 철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2009년 12월 그 자리에 역시 백화점이 들어서서 옛 미나카이와 같이 성업 중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