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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파울 루벤스:〈파리스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Bawoo 2019. 7. 3. 22:50


페터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페터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2-1635, 오크에 유채, 144.8×193.7cm


주노, 비너스,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의 세 여신이 미를 겨루는 가운데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황금 사과를 들고 세 여신을 번갈아 쳐다보다 결국 비너스에게 사과를 건네는 장면이 펼쳐진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이 유명한 신화 속 이야기, ‘세계 최초의 미인 대회’ 격인 이 장면은 고전파 시대까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주제이기도 하다. 루벤스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이 그림이 걸려 있는 내셔널 갤러리 29번 방에는 똑같은 주제를 그린 루벤스의 초기작이 또 하나 전시되어 있다.

〈파리스의 심판〉에서 단연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누드로 서 있는 세 여신의 존재감이다. 하나같이 풍성하고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250년 후에 등장할 또 다른 누드의 대가 르누아르를 떠올리게끔 한다(실제로 르누아르 역시 67세 때인 1908년에 〈파리스의 심판〉을 그린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왜 옛날 화가들이 그토록 그리스 신화라는 주제에 천착했는지도 이해가 간다. 그리스 신화는 화가들이 눈치 보지 않고 ‘여성 누드’라는 주제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실제로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에 그려진 그림들, 특히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등장하는 그림들을 보면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깜짝 놀랄 만큼 에로틱한 그림들이 적지 않다. 〈파리스의 심판〉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소유주는 루벤스가 죽은 후, 다른 화가에게 ‘여신들의 몸에 옷을 그려 넣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세 여신의 누드가 너무 적나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루벤스는 이 그림을 완성한 지 5년 후인 1640년에 63세로 고향 안트베르펜에서 타계했다.

루벤스의 그림을 볼 때마다 늘 맨 먼저 느끼는 감정은 ‘이 화가가 그림을 참 잘 그리는구나’ 하는 감탄이다. 정말로 루벤스는 어떤 주제를 택하든, 어떤 크기의 캔버스를 대하든 간에 거침없이 그림을 그려 나간다. 그림의 구도는 늘 드라마틱하며, 색채는 풍성하고 표현력도 능수능란하다. 그의 특징 중 하나가 ‘윤곽선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인데 이는 화가가 미리 밑그림을 그려 넣지 않고 붓질을 하면서 등장인물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뛰어난 솜씨 때문에 루벤스는 수많은 유럽 왕실과 귀족들을 후원자로 거느렸고 많은 제자를 키웠다. 반 다이크 역시 그의 안트베르펜 공방에서 일했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누드화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17세기에 어떤 여성이 루벤스의 모델이 되어 주었을까? 루벤스는 자신의 아내를 모델 삼아 이 세 여신의 누드를 그렸다. 풍만하고 당당한 몸매의 세 여성은 각각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을 관객에게 자랑하듯 과시하고 있다. 이 ‘각도의 장난’ 때문에 세 여신은 동일 인물을 모델로 해서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제각기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나란히 선 세 여신 중 누가 비너스이고, 누가 주노일까? 맨 왼쪽의 여신부터 한번 보자. 그녀의 몸 옆에 있는 커다란 방패에 메두사의 얼굴이 보인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여신은 미네르바다. 그녀는 파리스의 선택에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막 돌리고 있다. 가운데 선 여신, 파리스에게 막 사과를 받으려는 여신이 오늘의 승리자인 비너스다. 그림 왼쪽 하단에는 그녀의 아들인 사랑의 신 큐피드가 앉은 채 악동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 표정은 다가올 비극, 즉 트로이 전쟁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 여신, 맨 오른편의 여신은 몸에 화려한 망토를 두르고 공작을 거느린 모양새다. 여신 중의 여신인 주노다. 암소와 공작은 주노의 상징인데, 이 두 동물이 주노의 상징이 된 데에는 주피터(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지치지 않는 애정 행각과 그를 질투하는 주노의 길고 긴 뒷이야기가 있다.

목동의 모습을 한 파리스 뒤편에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쓴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가 나무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 메르쿠리우스 뒤편의 하늘에서는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선택으로 말미암은 트로이 전쟁이라는 재난을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왜 파리스의 선택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일까? 세 여신은 각각 파리스에게 ‘나를 최고의 미녀로 선택해 주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내걸었다. 미네르바는 최고의 힘을, 주노는 소아시아를 다스릴 권력을 약속했고, 비너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노라고 했다. 파리스는 현명한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비너스에게 사과를 건넸다.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그리스의 헬레네였는데,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비너스는 약속을 지키고자 헬레네를 빼앗아 파리스에게 주었고, 졸지에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그리스 연합군을 구성해 파리스가 도망친 트로이를 공격한다. 이것이 길고 긴 트로이 전쟁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전쟁이 단순히 그리스-트로이 간의 전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과 미인 경연 대회’에서 떨어진 주노와 미네르바는 그리스 편을 들었고, 비너스는 당연히 파리스의 나라인 트로이 편에 섰다. 이처럼 신들이 제각기의 이해 관계에 따라 양국의 편에 서서 대리전을 벌였기 때문에 트로이 전쟁은 질질 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 속에 숨어서 트로이 성 안에 진입했고, 그날 밤 일시에 목마 속에서 뛰어나와 성을 불 질러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했다. 파리스는 전쟁 중 전사하고, 헬레네는 원래 남편인 메넬라오스에게 돌아가게 된다.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헥토르 등 수많은 영웅들의 목숨을 앗아 간 이 10년간의 전쟁은 결국 ‘한 개의 사과’와 여신들 간의 질투라는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전쟁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무대가 되었고,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루벤스를 비롯해 다비드, 로랭, 앵그르, 르누아르 등 수많은 화가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는 〈트로이〉라는 영화로까지 재생되었으니 역사적으로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다는 트로이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 간다.



[글- 전원경 /출처- 런던 미술관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