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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위베르 드루에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 at her Tambour Frame

Bawoo 2019. 6. 10. 21:50



프랑수아위베르 드루에

〈퐁파두르 부인〉

Madame de Pompadour at her Tambour Frame


프랑수아위베르 드루에 〈퐁파두르 부인〉

1763-1764, 캔버스에 유채, 217×156.8cm


한 장의 초상화, 내셔널 갤러리 33번 방에 걸린 이 우아한 여인의 초상화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무심코 작품 해설을 읽어 보니, 어라?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의 초상화다. 화가는 프랑수아위베르 드루에(Francois-Hubert Drouais, 1727-1775). 처음 듣는 이름이다. 초상화 속의 여인은 꼿꼿하게 앉은 채 책상 위에 놓은 수틀을 붙잡고 있다(그래서 작품의 정식 명칭은 〈수틀 앞에 앉은 퐁파두르 부인〉이다). 이 여자가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이자 외교관, 사교계의 꽃, 사실상 프랑스 여왕이었던 여자다. 영국의

역사와는 큰 관련이 없지만, 잠시 이 그림을 따라 영국의 숙적, 18세기의 프랑스로 건너가 보자.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국왕들은 대부분 ‘메트레상티트르(maitresse-en-titre)’라고 불리는 공인된 정부, 즉 애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국왕의 결혼은 대부분 국가 간의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에 왕비를 진실로 사랑했던 왕은 국가를 막론하고 거의 없었다. 결혼은 사랑 없이 했지만 진짜 사랑하는 여자는 포기하기 싫은 왕들은 왕비 외에 수많은 애첩들을 거느렸고, 그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메트레상티트르’라는 정부의 지위를 주었다. 물론 이 정부들이 낳은 국왕의 사생아는 수도 없이 많았다. 범위를 좀 넓혀서 보면 현재 영국의 찰스 왕세자의 오랜 연인이었다가, 지금은 결국 왕세자의 아내가 된 카밀라 파커 볼스 역시 찰스의 메트레상티트르였던 셈이다. 그녀 역시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살아 있을 때부터 찰스와 공공연히 불륜 관계를 유지했으니 말이다.

다이애나는 남편의 불륜을 참지 못하고 이혼해 영국 왕실을 떠났지만, 이것은 20세기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왕비는 국가 간의 결혼으로 데려온 여자이기 때문에 헨리 8세처럼 어지간한 왕이 아니고서는 밉든 곱든 내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메트레상티트르는 말 그대로 왕의 첩이었기 때문에 사랑이 식으면 언제든 내칠 수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애첩들은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면 국왕 품을 떠나야 했다. 지나친 사치 때문에 쫓겨난 여자도 있었고, 더 젊고 새로운 애첩의 등장으로 궁정을 나가야 했던 여자도 있었다. 메트레상티트르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낭비벽이 있었는데, 이것은 이들이 ‘왕의 곁에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챙기자’는 정신으로 국고를 긁어모아 보석과 성(城) 등을 사 모았기 때문이다. 메트레상티트르의 사치와 낭비로 파탄에 이른 유럽 왕가는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공식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죽을 때까지 국왕의 애첩’으로 살아남은 여자가 퐁파두르 후작부인이다. 그녀는 스물넷에 루이 15세의 눈에 들어 그의 정부가 된 후, 마흔셋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장장 19년간 왕의 품에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왕의 사랑을 받은 정부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볼테르, 부셰, 샤르댕 등 당대의 문인과 화가들을 후원했고 프랑스의 패션과 와인 산업을 키웠으며 루이 15세가 전쟁에 나갔을 때는 국정까지 담당했던, 국왕 이상 가는 교양과 지성을 가진 메트레상티트르였다. 그녀를 미의 여신처럼 묘사한 부셰의 로코코풍 초상화가 많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실물보다 더 젊고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드루에가 그린 이 초상화는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하다. 우선 화려한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퐁파두르 부인이 좀 뚱뚱하고, 나이 들어 보인다. 그리고 그림에 쓰인 ‘1763년’이라는 숫자도 수상하다. 1763년은 퐁파두르 부인이 마흔셋으로 사망하기 한 해 전이다. 퐁파두르 부인은 평생 병약했으며 말년에는 폐렴으로 오래 앓다가 죽었다. 그러니 이 그림 속의 홍조 띤 통통한 볼은 분명 가짜일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은 퐁파두르 부인의 죽기 전 마지막 초상화다. 그녀의 병색이 짙어지자 왕은 급히 화가를 불러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드루에의 눈에 부인의 병세는 매우 위중해 보였고,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부인이 사망할 것도 분명해 보였다. 드루에는 일단 빈 캔버스 한가운데에 부인의 얼굴 부분만 먼저 그려 넣었다. 그래서 부셰나 라 투르 등의 초상화와는 달리, 이 초상화 속의 퐁파두르 부인은 프랑스 여왕 같은 위엄이 넘치는 중년 여성이다. 패션의 선두 주자답게 꽃무늬가 수놓인 드레스를 입었지만 그녀의 차림새는 다른 메트레상티트르들과 달리 결코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림 배경으로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것도 퐁파두르 부인을 여왕처럼 보이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림의 서명인 ‘1763년’ 역시 그림을 완성한 해가 아니라 그리기 시작한 해다. 드루에의 예상대로 부인은 1764년 봄에 세상을 떠났고, 이 초상화는 그녀가 죽은 지 한 달 뒤에야 완성되었다.
[글= 전원경 /런던 미술관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