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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편소설] 황토 - 조정래

Bawoo 2019. 10. 23. 20:49

 

황토(양장본 HardCover)

황토 - 조정래
 
[소감]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지서주임의 첩, 해방 후에는 큰이모의 도움으로 자식이 있다는 걸 속인 좌익운동을 한 남자와 정식 결혼하여 두 자식을 두었으나 좌익 활동을 한 남편은 전쟁때 내려왔다가 북으로 도망가 행방묘연, 공산 활동을 한 남편 때문에 군에 잡혀갔으나 한 미군 대위가 신원보증을 서주어 풀려나고 대신 위안부와 같은 생활을 하는 동거녀로 산 점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본인 스스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스피디하게 펼쳐져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이 세 남자와의 사이에서 일본계 큰아들, 한국인 두 딸, 미국계 막내 아들을 두지만 딸 한 명은 이질이 악화되어 죽고 셋을 혼자 키운다. 밑천은 미군이 갖다 준 미제 군수품. 그러나 세 자식 중 딸만이 효녀일 뿐 혼혈인 두 아들은 제 각각이면서 서로 반목하는 사이이다.  어머니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제 갈길을 간다. 그 와중에 월남한 홀아비가 끈질기게 구혼을 하는데 이를 거절하기로 하고 딸에게 재산 분할을 겸한 유서 형식으로  살아온 지난날 기록하는 형식의 작품. 주인공이 혼자 이야기하는 형식이라서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최대한 간단하게 서술되어 초스피드로 읽힌다. 주인공이 살아낸 기간으로 치면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뒤까지이니 주인공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입체화시킨다면 대하소설로도 가능한 소재일 듯 싶다.

 

책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통해 왜곡된 민족사에서 개인이 처한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활동을 펼쳐온 작가 조정래. 그가 1974년에 발표한 중편 『황토』가 37년 만에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장편으로 써야 할 이야기를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중편으로 발표했는데, 200여 매에 이르는 내용을 새롭게 추가하고 문장을 다듬어 장편으로 전면 개작했다. 일제 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자식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굴곡진 인생을 담았다. 험하고 고달프게 살아온 세월 속에서 여인에게 남은 것이라곤 세 자식뿐. 그녀는 어머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왔지만 자식들마저 바람대로 되지 않는데….

 

목차

 

작가의 말

탄생의 비밀
안보이는 흠
짧은 사랑, 긴 정
드러나는 흠
인생, 그 굽이굽이

작가 연보

 

책 속으로

 

“어쩐 일이세요?”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아들의 음성이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동익이가 말이다, 동익이가…….”
그녀는 그만 목이 메었다.
“그 자식, 또 일 저질렀어요?”
짜증난 아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끊으려 하다가 놀라며 송수화기를 다시 잡았다.
“글쎄 동익이가…….”
“빨리 결론부터 말하세요. 지금 바빠요.”
아들의 거친 말에 쫓기듯 그네는 한달음에 쏟아놓았다.
“동익이가 조난을 당했다는구나…….”
“조난을 당해요? 거 멋지게 됐군요.”
태순이는 코방귀까지 뀌었다. 그녀는 왈칵 울음이 솟구쳤다.
“…….”
“피는 못 속여요. 인디안을 개 잡듯 한 그 살인자들의 피가 동해서 그 자식이 그따위예요.”
큰아들 태순이는 느글느글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빈정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송수화기를 놓고 말았다.
이제 그녀에겐 경찰서를 혼자 가야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은 깨끗이 없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용기가 생긴 것이 아니다. 악이 받친 것이다. 아니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말한다 해도 풀릴 길 없는 한의 피멍이 터진 것이었다. _「탄생의 비밀」 중에서

왜 조선 사람들이 몇 년 전부터 줄기차게 징용이며 징병을 끌려가야 하는 것인지 점례는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답은 간단하고, 자명했다. 나라 없는 백성이라서. 나라 없는 백성……. 그럼 어째서 나라가 없어지게 되었는가……. 힘이 약해서 빼앗긴 것이라고 했다. 그럼 왜 힘이 약해진 것인가. 나라를 다스린 임금이며 양반들은 무엇을 어찌 했길래 나라를 뺏길 정도로 힘이 약한 나라가 되게 했다는 것인가. 그 답을 알고 싶었다. 오래 전부터 속시원히 그 내막을 알고 싶었지만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치 보아가며 아버지에게 어렵게 물었지만, 이 애비가 무식한 데다가 저 머나먼 한양에서 높으신 대감 양반들께서 하신 일이니 그 깊은 속을 어찌 알겠냐. 또, 그런 것 시시콜콜이 알려고 해서 신상에 좋을 것 하나도 없느니라. 그 켯속 다 알아낸다고 해서 나라 찾아지는 것도 아니니 다 팔자소관이거니 하고 그냥 살아라. 그게 신간 편한 일이다, 아버지는 쓸쓸하게 웃었다.
_「안 보이는 흠」 중에서

 

“오늘 사랑에 오신 손님은 누구였지? 아는 사람이던?”
점례는 마른침을 삼켰다. 뜸을 다 들인 것이다. 이제 대답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피할 필요도 없었다.
“며칠 전에 왔던 그 젊은 사람이었어요.”
“그래? 한 번 보고 나서 얼굴을 알아보겠던? 연분은 연분이로구나. 그러기가 어려운데, 천생연분이야.”
이모는 이렇게 휘감아들었다. 점례는 그만 얼떨떨하고 아리송해졌다. 술상을 들여다 놓으며 아무런 관심 없이 얼핏 보았을 뿐인 남자를 다음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정말 연분 때문인가? 정말 그런가……? 연분……, 천생연분……,... 그게 뭐지? 그런 게 정말 있기는 있을까…….
“그 남자 생김새가 어떻더냐? 내 눈엔 미남이던데, 어디 당사자인 점예 얘기 좀 들어보자.”
“…….”

할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큰이모 눈에 미남이면, 미남인 것이다.
“사람 하나 똑똑하지. 얼굴만 잘 생긴 게 아니라 실하고 속이 찬 사내야. 머잖아 크게 될 사람이다. 눈에 총기가 들었어. 그 눈이 보배야.”
점례는 눈을 감았다. 그럼 그 매섭던 눈초리는 건달기나 시건방져서 그런 게 아니란 것인가.
“이모부가 그러는데, 그 사람이 네가 맘에 든다고 하더란다. 얼마나 다행이냐. 아니지, 그 눈이 여자도 고를 줄 아는 게지. 우리 점예라고 어디 나무랄 데 있나. 오냐, 오냐, 그만 주무르고 이리 와 앉아라.”
그러지 않아도 점례는 더 이상 주무를 수가 없었다. 나무랄 데가 없다니, 점례는 팔다리의 힘이 쑥 빠졌던 것이다. 이미 남자가 범해버린 몸이었다. 2백 리 밖에는 멀쩡하게 아들이 살아 있었다. 이보다 더 큰 탈, 이보다 더 큰 흠이 어디 또 있을까.
_「짧은 사랑, 긴 정」 중에서

 

출판사서평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일지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밖에 길이 없다!

등 기댈 만한 바람벽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선 채
시대의 비극과 모순을 온몸으로 견뎌낸 우리들 모두의 아픈 자화상


40년이 넘는 작가생활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된 대하소설 『태백산맥』『아리랑』『한강』 32권을 집필하며 문학사에 기념비를 세운 조정래 작가. 그에게 오랫동안 마음속에 미안함과 께름칙함을 품게 작품은 무엇이며, 그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1974년에 발표한 중편 「황토」는 또다른 중편 「비탈진 음지」와 함께 조정래 문학의 총화인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의 문학적 지향을 압축한 소설이자 작가가 장편으로의 비약을 모색하던 시기의 산물로 일컬어진다. 이 작품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장편으로 써야 할 이야기를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저 옛날, 중국에서 여자들에게 전족을 하듯이’ 마지못해 중편으로 발표해, 작가에게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았다. 1999년도에〈조정래문학전집〉(전9권) 네 번째 책 『비탈진 음지』에 수록 출간되었던 이 작품은, 2011년 5월 200여 매에 이르는 내용을 새롭게 추가 집필하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처음 쓰듯 다듬어 장편으로 전면 개작해 선보인다.
『황토』는 일제 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아비가 각기 다른 세 자식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굴곡진 인생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어느 날 작은아들의 조난 소식 앞에 자신 역시 일본 순사의 씨이면서 파란 눈을 한 동생을 “인디언을 개 잡듯 한 살인자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멸시하는 큰아들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낀 주인공이 지나온 삶을 회상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모를 위해 죽기보다 싫은 일본순사의 제안을 수락하여 아이까지 낳았고, 여자로서의 평범한 행복을 누리려는 찰나 좌(左)와 우(右)라는 이념의 덫에 쓰러졌으며, 선의를 가장한 미군에게 겁탈을 당하고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은 결국 모두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머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삶을 개척했지만, 자식들마저 그녀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외세와 이념에 짓밟혔던 현대사의 자화상”(임규찬, 문학평론가)이라고 평가받는 『황토』는 비극적인 역사가 가한 고통을 오롯이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소시민들의 역사로, 우리의 근현대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주인공의 삶에 투영된 모순과 부조리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작가는 이번 개작의 과정에서 우리 역사의 모순을 좀더 극명하게 드러냈다.

 

‘왜 조선은 나라를 빼앗겼는가’ 하는 의문에, ‘남자들이 못나서’ 죄 없는 여자들까지 화를 입는다는 것과, 여기서 남자들이란 일부 지도층임을 분명히 하면서 통한의 식민시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내부의 문제를 통렬히 꼬집는다. 한편 해방 후 권력을 잡은 자들이 좌우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처럼 나섰지만 민족 간의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했다는 점은 그들이 “딴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주인공이 프랜더스라는 미군에게 겁탈 당한 뒤 “프랜더스는 또 하나의 야마다였던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해방 후 등장한 미국 역시 본질적으로는 일제와 다르지 않았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세 자식들이 화해에 이르지 못하고 불화하는 모습은 여전히 모순덩어리의 역사를 올바로 정립하지 못하고 반목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여전히 얼굴만 달리 했을 뿐, 이 소설 속에서 폭로하는 한국 사회가 가졌던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의 압력 속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새삼 국가와 역사란 무엇이며, 그 앞에 선 개인과 생(生)은 무엇인지, 그리고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