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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 - 최진영

Bawoo 2019. 11. 1. 22:28


끝나지 않는 노래

끝나지 않는 노래 - 최진영

[소감] 이 작품은 일단 손에 잡으니 단숨에 읽어내려 가게 됐다. 그만큼 가독성이 뛰어나다. 우리 현대사를 살아낸 여인의 수난사란 점에서 조정래 작가의 "황토"란 작품과 느낌이 비슷하지만 이 작품은 3대에 걸친 이야기이고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한 여인의 이야기란 점이 다르다.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점은 같다. 

내용은 지나 다름없는 봉화의 산골짜기 마을에서 여자로 태어난 두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젠 죽을 때를 바라보는 나이가 된 여인과 이 여인이 낳은 애비가 누군지 모르는 쌍동이 딸 그리고 그 중 수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의 딸 은하의 이야기이다. 봉선의 아들 동하를 통해 학교 폭력 이야기도 잠깐 비춘다. 3대 째인 은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불을 지르는 원룸에서 사는 바람에 죽음을 맞게되는 설정이다. 은하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가씨이고 엄마와 할머니는 지지리 복도 없는 삶을 살아온 여인들이다.  할머니 엄마는 어려운 시절을 잘 살아냈는데,힘들긴 하지만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삶을 산 것도 아닌 은하라는 아가씨는 타인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설정인데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아픔? 글쎄 그게 엄마, 할머니 세대 여인들만큼 힘든 삶인 건가? 원치 않는 죽음을 타인 때문에 맞아야 할 만큼. 그 불을 저지르고 살인을 하는 인간은 어떤 이유에서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낙오자일 텐데 이런 인간 때문에 어이없이 죽어야 하는 살이라니. 프롤로그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자기의 두 친구 이야기가 이를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진짜 힘들게 살아온 할머니,엄마 세대는 꿋꿋이 살아남아 있건만...

책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최진영이 들려주는 3대 여인들의 수난사 『끝나지 않는 노래』. 100년 동안 이어온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를 마술적인 사실주의로 그려냈다. 두자를 시작으로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낳은 쌍둥이 수선과 봉선, 수선의 딸인 대학생 은하와 군대에 간 봉선의 아들 동하까지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를 아름다우면서 쓸쓸하게 풀어놓았다. 역사와 맞물리며 펼쳐지는 각 인물들의 삶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바뀐 게 없다는 것을 여성들의 삶을 통해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가슴이 아련해지는 여자들의 삶 이야기를, 엄마와 딸들의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자

최진영

최진영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태어났다. 유년기에 이사를 자주 다녀서 어딜 가도 내 집, 내 고향 같았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2년 후부터 낮엔 글 쓰고 밤엔 푹 잤다. 다음 생엔 적은 돈으로도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 혹은 행성에 태어나고 싶다. 은근히 열정적으로, 다음 생의 우주를 치밀하게 준비 중이다.


목차


프롤로그

1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노래
2부 너와 내가 한 소절씩 나눠 부르던
3부 영영 끝나지 않을 이 노래

에필로그

작가의 말


책 속으로


복순은 옛날이야기나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자주 말했다. 두자는 언니들에게 ‘나중에’라던가 ‘이다음에’로 시작되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니들은 늘 지금 해야 할 것, 내일 아침에 해야 할 것,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루 좀 훔쳐라. 옥수수 좀 빻아라. 요강 좀 부셔라. 내일 새벽 일찍 산에 가야 해. 나물 삶은 건 절대 아버지 밥그릇에 담으면 안 돼. 장수 좀 업어라. 할머니 좀 모셔 와라. 두자는 언니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지만, 좋아하는 마음 곳곳엔 원망과 미움도 숨어 있었다. 그런 감정이 도대체 왜 생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언니들이 할머니처럼 무조건 아버지와 장수 것을 먼저 챙기는 것을 볼 때마다, 속 깊은 곳에서 눈물로 똘똘 뭉쳐진 잿더미가 울컥 올라와 목구멍을 꾹 누르는 것 같았다. 자기는 아무에게도 특별하지도 귀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볼품없이 만들곤 했는데, 그건 언니들 역시 마찬가지니까 그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기도 싫었다. 그 때문인지 좋아하는 티 한 번 내지 못하고 살다가 언니들을 보내버렸다. (p.25)


나는 현모양처가 되어야 해. 복순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자기 엄마가 아침마다 니는 꼭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랬다. 자기 언니들도 결혼해서 모두들 현모양처가 되었다고 했다. 두자는 현모양처가 뭔지 몰랐다. 그저 결혼만 하면 저절로 되는 건가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그럼 우리 언니들도 모두 현모양처가 되었나? 두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복순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게 쉬운 게 아냐. 일단 좋은 집에 시집을 가야 돼. 그리고 꼭 아들을 낳아야 돼. 안 먹어도 배부르고 마른 땅에서도 곡식을 뽑아낼 줄 알아야 해. 절대 큰소리를 내어선 안 돼. 울고 싶으면 부엌에서 불 피울 때나 혼자 몰래 울어야 돼. 세상이 망해도 가족들 밥상은 삼시 세끼 차려낼 줄 알아야 하고. 복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자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게 어디 사람이나. 무당을 불러내 때려잡아야 할 귀신이지. 우리 언니들은 절대 그거 되면 안 되겄다. (p.25-26)

손님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왔고, 수십 종의 담배와 술과 삼각김밥과 컵라면과 생수를 파는 동안 나는 내가 첫사랑의 이름을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말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 철렁, 하던 그물.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골대 위를 제외한 모든 하늘이 찬란하게 붉었던 그 여름의 저녁. 책상 밑 누런 박스 안에 포장된 그대로 들어 있을 전람회 앨범 역시, 머지않아 형체 없는 재가 되고 말 것이다. 숨이 막힌다. 삼만 초에 한 번 숨을 쉬는 블루 플라이처럼. 후웁. 후웁. 후웁. 그 애는 잘 살고 있을까? 군대는 다녀왔을까? 나를 기억할까? 내 이름을, 알고나 있을까? (p.53-54)


두자는 변소 뒤에 쭈그려 앉아 날마다 질질 울었다. 시어머니의 심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두릉골에서 그랬듯 일만 열심히 했다. 시어머니는 두릉골의 엄마들처...럼 제 아들과 남편만 떠받들고 며느리는 도둑놈 취급이다. 시집오는 날, 엄마는 나더러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새 인생을 살라고 했다. 좋아진 세상도 없고 새 인생 따위도 없다. 좀 덜 힘든 날과 좀 더 힘든 날이 있을 뿐이다. 딸도, 며느리도, 엄마도 되어본 엄마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괜히 더 서럽게. 정말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헛된 기대만 잔뜩 하게. (p.61-62)

두자는 공비나 빨갱이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먹고살기 힘든 만큼 나 역시 그렇다. 안 그런 시절이 어디 하루라도 있었나. 두자의 생각은 거기서 끝났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 같고 지어낸 이야기 같았다. 가장 두렵고도 간절한 건 언제나 눈앞에 떨어진 오늘이었다. 오늘은 얼마나 일을 해야 되나. 또 치도곤을 먹지 않을까. 저 많은 빨래를 어찌 다 하나. 땔감이 또 떨어졌구나. 시어머니는 감자 한 알, 옥수수 한 톨, 김장독의 배추 한 포기, 무 하나까지 다 세고 사는 것 같았다. 도끼눈을 하고 두자를 감시하다가, 두자가 광에서 나오면 쪼르르 달려가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자기가 기억하는 것과 솥단지 속의 감자 개수가 반 조각이라도 차이 나면 두자를 잡아먹을 듯 족쳤다. 그런 와중에 본 적도 없고 소문으로만 겨우 들어본 공비를 무서워하고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총칼을 들고 사람을 해치는 공비가 천지 사방에 깔려 있다 하더라도 시어머니만큼 무섭진 않았다.(p.61-62)

<책속으로 추가>
두자는 울다 한숨 쉬다 훌쩍이길 반복하며 분녀를 따라 걸었다. 문득 제 인생이 간장 종지에 담긴 까만 간장처럼 여겨졌다. 좁은 세상에 갇혀 그 바깥은 꿈도 꾸지 못하고, 짜고 어둡고 독한 맛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살아야만 하는,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고 감히 어떤 다짐을 내세울 수도 없는 존재. 남자와 처음 몸을 섞던 밤이 떠올랐다. 공장 창고 안에서였다. 어딘가에서 귀뚜라미가 울어댔다. 추위에 잔털이 와륵, 돋아났다. 청개구리 울던 밤도 있었다. 끈적끈적한 살갗 너머로 남자의 심장 소리가 전해졌다. 꽃이 지던 날도, 있었다. 그땐 남자를 안고 태철을 생각했다. 남자를 사랑한 건 아니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가슴 뛰는 게 사랑이라면, 몸을 섞을 때마다 그 남자를 사랑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노랗고 커다란 달이 뜨거나, 어느 집에선가 잔치가 벌어지는 날이면 유독 외로웠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고 즐기는 밤.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몸 주위에 동그란 막이 둘러쳐지던 그런 날들. (p.100)

살아 있는 게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지도 않았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원치 않는 상태. 오늘도 살았으니 내일도 살겠지. 눈뜨면 일할 것이고 배고프면 먹겠지. 숨소리처럼 떨어지지 않는 허기가 두자를 계속 살게 했다. 쌍둥이는 삶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끔찍하게 귀하지도, 사랑스럽지도, 목숨 같지도 않았다. 사는 게 너무 원망스러울 땐 쌍둥이를 때리며 소리 질렀다. 내가 니들 가졌을 때 확 죽었어야 했어! 니들 품고 못 죽은 게 천추의 한이다, 한! 쌍둥이는 두자의 말을 다 알아듣는 것처럼 숨넘어가게 울면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자기들은 절대 죽기 싫다는 듯. 자기들을 죽이지 말라는 듯. 기분이 괜찮을 땐 쌍둥이를 안아도 주고 씻겨도 주고 가만히 앉아 그 생김새와 목소리를 보고 듣다가, 많이도 컸네, 하고 한두 마디쯤 던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쌍둥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인생살이 어떤 건지, 굳이 안 살아봐도 다 알 만하다는 표정으로. (p.117-118)

시끄럽지만 평화로운 소리였다. 그 방에서 봉선의 편지를 읽거나 두서없는 생각을 마구잡이로 하다가 선잠에 빠져들곤 했다. 꽃씨처럼 세상을 둥둥 떠다니는 꿈을 꿨다.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딸도 아니고 수선이란 이름도 없이, 몸속엔 심장이나 내장이나 똥 대신 고운 봄바람만 가득 차서, 가고자 하는 곳도 가야만 하는 곳도 없이, 되는 대로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꿈. 선잠에서 깨면 천장과 벽면의 모서리에 눈이 갔다. 서서히 자라나는 가느다란 균열과 누런 자국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다시금, 여기가 어디더라. 나는 누구더라. 지금이 언제더라. 거짓말처럼 까맣게 지워진 지난날의 광야를 길 잃은 여자처럼 헤매고 다녔다.(p.230-231)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말을 혼자 지껄이면서 봉선은 눈물을 훔쳤다. 지긋지긋하다고 도망친 집. 채워지지 않는 마음. 남자의 침묵이 그리웠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리 되었나 싶다가도, 아니, 나보다 좋은 인생이 어디 있나 싶기도 하고. 엄마 사랑은 못 받았어도 남자 사랑은 많이 받았지 싶다가도,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 사랑 아닌 줄 알았던 그게 진짜 사랑 아니었을까 싶고. 사랑은 그냥 말이고 글자지. 좋고, 애틋하고, 흥분되고, 미안하고, 원망스럽고, 밉고, 부끄럽고, 샘나고, 보고 싶고, 그런 것의 다른 말. 보고 싶은 수선이, 우리 엄마. 엄마를 떠올리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고. 무섭고 불쌍하고 미운데 자꾸 생각나고. 이기적인 것보다 더 나쁜 건 이중적인 거야. 이기적인 건 최소한 정직하거든. 우리 엄만 단 한 번도 이중적이지 않았어. 엄마 때문에 이해하는 방법 대신 인정하고 체념하는 법을 배웠지. 그거, 어마어마한 재산이야. 좋은 사람 되는 것보다 나쁜 사람 되는 데 더 많은 용기와 외로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지. 내가 나쁜 년 해보니까 그거 하난 알겠더라. 안 그래? 다들 착한 척만 하면 나쁜 말은 누가 해? 누가 화내고 누가 야단치고 누가 관계를 끝장내지? 엄마는 늘 나빴어. 난 엄마 이해 안 해. 그래 난 썩을 년에 미친년이야. 나쁜 년. 헤픈 년이야. 나는 엄마 따위 절대 안 해. 자식새끼 있어 뭐해. 그딴 거 있어봤자 고생밖에 더 해? 이러나저러나 듣는 건 원망뿐이지……. 에이씨. 지랄 맞게 보고 싶네. 엄마, 수선이, 우리 엄마. (p.236-237)


출판사서평


“이것은 나의 이야기고 당신들의 이야기다”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의 작가 최진영의 두 번째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거의 100년 동안 대를 물려 이어가는 3대 여인들의 수난사다. 제 인생을 간장 종지에 담긴 까만 간장처럼 여기는 여인들, 좁은 그릇에 갇혀 짜고 어둡고 독한 맛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다음 생의 딸들은 꽃처럼 살기를 바라는, 아무한테도 미움 받지 않고 봄마다 활짝 피어나라고 염원하는 슬픈 여인들의 이야기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사라진 과거에서 시작된 두자의 이야기, 쌍둥이 엄마인 수선과 봉선의 이야기는, 지금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은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소설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노래.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했던,” 그러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마음에 담아둔 채 하지 못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정갈하면서도 단정한 문장으로 편하게 들려준다. 하나하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아련해지는 여자들의 삶 이야기를, 엄마들과 딸들의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삶 자체가 계속 변주되며 끝없이 지속된다는 이야기를, 엄마와 딸들의 상처 많고 굴곡진 삶을 통해 세밀하고도 내밀하게 그려낸다.
소설을 읽다보면, 각 시대를 대변하는 두자, 수선, 봉선, 은하에 대한 삶이나 시대적 배경, 심리묘사, 그리고 그 시대를 아우르는 분위기와 짧지만 툭툭 뱉는 것 같은 리얼한 대사들을 통한 작가의 입담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삼십대 초반이라는 그녀의 나이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몇 편의 단편 등을 통해 2011년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현대문학상 우수작에 선정된 그녀는, 동년배 작가들과 구별되는, 그녀의 스타일로 무게감 있는 소설을 쓰고 있는 유일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삼대를 통한 깊이 있는 여성 이야기를 담아낸 그녀는, 이번 소설로 그녀가 그릴 수 있는 최대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더 넓게 그리고 더 깊은 소설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100년 동안 이어온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려내다


이 소설은 1927년에 내성면 두릉골에서 태어난 두자를 시작으로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낳은 쌍둥이 수선과 봉선, 수선의 딸인 고시원에 사는 대학생 은하와 군대에 가 있는 봉선의 아들 동하까지의 이야기를 1930년대부터 2011년 현재까지 현실적으로, 아름다우면서 쓸쓸하게 담아낸다. 전근대시대부터 산업화 시대, 그리고 현대까지 각각 인물들의 삶의 역사와 맞물리며 전개되는 이야기들 속 작가의 시선은 때론 놀랄 만큼 정교하고, 놀랄 만큼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그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정확하게 그려내며, 100년 전의 세계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게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여성의 삶들을 통해 리얼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두자이기도 하고,... 수선과 봉선이기도 하고, 은하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열심히 개척하며 살아가지만, 사실 그들은 자기 속마음의 일부도 말하기 어렵고, 자신의 삶 자체를 자신의 몫으로 꾸려갈 수도 없으며,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고 또한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인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이야기고 당신들의 이야기다.”


■ 주요 내용

은하는 친구와 친구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날부터 계절이 변할 때마다 유서를 썼고 그것을 늘 지니고 다녔다.
은하의 할머니 두자는 1927년 내성면 두릉골에서 장씨 집안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두자 엄마는 두자를 낳은 다음 해에 아들을 낳다가 죽고, 할머니는 남동생 장수만이 최고라며 애지중지 아끼며 키운다. 오 년 후 손자 하나로는 불안하다며 작은며느리를 들인다. 동생 장수는 열일곱 살에 일본군에 징집되어 갔다가 일 년도 되지 않아 재가 되어 돌아온다. 두자는 새엄마가 소개해준 사람과 얼굴 한 번 보고 시집을 간다. 두자는 시어머니의 괄시를 받으며 묵묵히 일을 하고, 밤에는 마실을 다니며 남편 태철과 몰래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전쟁으로 시아버지와 시동생, 아들 만석까지 잃는다. 휴전 후 반년이 지나 살아 돌아온 남편은, 아이를 가진 둘째부인을 데리고 온다.
남편의 손을 물어뜯고 집을 나온 두자는, 아랫동네 직물공장에서 베 짜는 일을 시작하고, 이 년 후 쌍둥이 수선과 봉선을 낳는다. 공장생활도 아이 키우는 것도 제대로 못하던 두자는, 씨받이로 창락골로 들어가고, 큰집에서 내준 움막집에 산다. 둘째부인이 돈을 갖고 도망간 후 폐인이 된 태철이 두자를 찾아오고, 큰집 형님이 아들을 낳은데다가 태철과의 일이 알려지면서, 큰집에서 쫓겨난 두자는 쌍둥이와 불을 내서 죽으려 한다.
태철의 집에 들어가 같이 살게 된 두자와 쌍둥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며 집안 살림을 돕는다. 봉선이는 내 인생은 내 몫이라며, 월급을 받은 날 대구로 도망가고, 수선이는 공장에 다니다가 엄마가 소개해준 남자를 세 번 만나고 결혼한다. 결혼 후 수선의 남편 명호는 사우디로 돈을 벌러 가고, 시집에서 사는 3년 동안 수선은 자신이 다른 사람 자리에 대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돌아와 모은 돈으로 산 집이 부실공사로 망가지고, 아이를 낳은 수선은 홀로 아이를 데리고 두자네 집으로 내려온다.
공장에 다니며 은하를 키우게 된 수선과 동하라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수선의 집으로 찾아온 봉선. 은하에게는 쌍둥이 엄마가 생긴다. 혼자 먹는 밥보다 같이 먹는 밥이 맛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엄마들. 은하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시원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살아간다. 어느 날 은하가 사는 고시원에 불이 나는데…….


■ 추천의 글

최진영의 첫 번째 소설을 읽었을 때 참 독하다, 했다. 제 몸에 돋은 가시를 숨길 줄도 모르고, 제 몸에 돋은 가시로 저 스스로가 찔린 상처를 감출 줄도 몰랐다. 실은 알았으나 숨기고 감출 생각이 없었던 것일 터이다. 최진영은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만큼의 목소리를 내 아프다 했고, 슬프다 했고, 세상이 부당하다 했다. 머뭇거림이 없었다. 최진영의 두 번째 소설을 기다리고 기대했다. 이 소설은 대를 물려 이어가는 여인들의 수난사다. 제 인생을 간장 종지에 담긴 까만 간장처럼 여기는 여인들의 이야기다. 그 좁은 그릇에 갇혀 짜고 어둡고 독한 맛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다음 생의 딸들은 꽃처럼 살기를 바라는, 아무한테도 미움 받지 않고 봄마다 활짝 피어나라고 염원하는 슬픈 여인들의 이야기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이야기고 당신들의 이야기다. 나의 역사이고 당신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책을 덮으며, 어쩔 수 없이 탄식하게 되는 말. 나의 딸들아……. 내 딸의 연인들과 나의 연인들아……. 사랑이 아픈 것은 세상이 슬프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김인숙(소설가)

난 이 소설을 누워서 읽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버렸다. 그래, 이야기다! 결국,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로 이야기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사라진 과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져온다. 그 연속성 속에서 지금의 20대와 20세기 초 20대를 보냈던 그들의 삶이 중첩된다. 그래서 “두자”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종의 상징이 된다. 세대 간 놓인 몰이해의 벽은 할머니, 딸, 손녀의 삶을 통해 무너져 내린다. 문제는 세대 간의 격차가 아니라 그들을 몰아 부친 세상에 있다. 최진영이 이렇게 놀랍도록 마술적인 사실주의를 그려내리라고는, 차마, 짐작치 못했다. 예기치 못했던 이야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준 감동에 대해,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다. -강유정(문학평론가)

■ 작가의 말 중에서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언제나 ‘행복하다’는 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
동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두려웠다. 섣불리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걱정과 불안만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내 감각의 끝은 끈질기게 그 세계만 가리켰다. 지금, 여기, 이곳만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었으나 자꾸 눈이 감겼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데, 고인 물에서나 풍기는 썩은 내가 났다. 그 냄새에 익숙해지긴 싫은데, 그것 아닌 냄새는 기억할 수 없었다. 글을 쓸 때면 내 손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나를 형성하는 감각이 죄다 이 모양인데,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