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인터넷 교보문고
민족문학연구소에서 선정한 젊은 작가 8인의 소설집 『포맷하시겠습니까?』. 김미월, 김사과, 김애란, 손아람, 손홍규, 염승숙, 조해진, 최진영 등 20대~30대 초반의 작가들은 동세대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도 각자의 언어로 현실 너머에 대한 가능성을 던진다. 소설가 지망생이지만 앙케트 조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을 지녔다고 생각하지만 늘 조금씩 모자란 느낌이 들고, 신춘문예 심사를 둘러싼 신경전 속에서 문학의 새로운 세대를 꿈꾸고, 불면의 밤을 AV배우에게 위로받는 이들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민족문학연구소 문학평론가들이 나눈 좌담에서는 20대 사회 초년생들이 느끼는 상실감, 불안감을 바탕으로 이 소설집에서 접한 ‘동시대의 해석공동체’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목차
기획의 말 | 동세대의 삶을 말하다
질문들 - 김미월
더 나쁜 쪽으로 - 김사과
큐티클 - 김애란
문학의 새로운 세대 - 손아람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 - 손홍규
완전한 불면 - 염승숙
이보나와 춤을 추었다 - 조해진
창 - 최진영
좌담 | 사소하고 위대한 오늘의 질문들
책 속으로
내가 사회에 나와 깨달은 것들 중 하나는 이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질문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고 또 질문 받아야 한다.
면접을 보러 가면 왜 이 회사를 지원했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고, 식당에서는 이 쇠고기가 미국산인지 아닌지 질문해야 하고, 번화가를 혼자 걷노라면 도를 믿으시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며, 소개팅을 할 때는 그 여자가 예쁜지 그 남자의 ‘스펙’이 좋은지 주선자에게 미리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하기야 쪽지시험을 포함해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학창 시절에 우리가 치른 모든 시험에는 아예 질문밖에 없었으니, 사회에 나오기 전에도 이 세상이 수많은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영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받아치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주눅 들지 않고 무엇이든 잘 받아친다는 것을 목격했으니 삶에서 질문에 대처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끔은 이 세상이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질문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 그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가 사람을 살아가게 하고 세상을 지탱해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pp.17-18)
-〈질문들〉, 김미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모여 있는 우리들이 아무것도 나누지 않는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거리를 유지한다 손잡지 않는다 껴안지 않는다 각자의 춤에 몰두한다 그렇게 우리들은 개인주의자들의 천국으로 간다 예의 바르고 겸손한 개인주의자들의 천국으로 간다 그곳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텅 비어 있다 나 자신조차 없다(p.59)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어쩌면 오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인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곁눈질과 시행착오 끝에 가까스로 얻게 된 한 줌의 취향. 안도할 만한 기준을 얻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던지. 상품 사이를 산책할 때 나는 엄격한 동시에 부드러운 사람이 됐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여유.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식의 까다로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버리자 쇼핑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원하는 게 많아졌다. 변화는 단순했다. 과거, 장식이나 색상 위주로 물건을 골랐다면 이제는 질감이나 선(線)을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선, 흔히 ‘잘 빠졌다’고 말하는 상품의 전체적인 맵시를. 좋은 옷을 입는 건 그것의 가격이나 옷감뿐 아니라 좋은 실루엣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는 걸 깨달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명품은 아니어도 상품(上品)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할까.(p.72)
-〈큐티클〉, 김애란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문학을 전공하는 젊은 학생들이라면 추와 정의 개인사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어렵사리 문학이 뿌리내린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들쑤셔 얻을게 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객관적인, 공식적인, 점잖은, 이런... 표현들은 비슷한 어법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말해두고 싶다. 인물이 곧 역사인 이 작은 판에서 일어난 투쟁과 반목이 객관적인, 공식적인, 점잖은 기록으로 축소되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려 한다.(p.110)
-〈문학의 새로운 세대〉, 손아람
그는 고가도로 아래를 떠나지 않았다. 시위대의 후미마저 그에게서 멀어졌다. 시위대가 빠져나간 자리를 재빠르게 자동차들이 채웠다. 그는 중앙분리대가 없는 횡단보도 가운데 쭈그리고 앉았다. 마르께스라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그는 ㄱ에서 ㅅ까지의 낱말들 가운데 적당한 걸 찾아보려 애썼다. 머릿속 낱말들은 뒤엉킨 채로 그의 사고의 촉수를 피해 달아났다. 고가도로를 지붕으로 이고 앉은 그는 평온하다고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다락방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다.((pp.150-151)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 손홍규
출판사서평
지금,
여기,
우리를 말하는
젊은 작가 8인의 소설집
한국문단에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민족문학연구소((사)한국작가회의 산하 문학평론가들의 모임)에서 선정한 젊은 작가 8인의 소설집 《포맷하시겠습니까?》가 한겨레출판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담담한 어조로 현실을 추적하며 이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하는 김미월, 세계에 대한 분노의 파토스를 텍스트에 전면화하는 김사과, 구체적인 동세대의 삶의 결로부터 소설의 실감을 확보하는 김애란, 발랄한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모든 권위에 도전하는 손아람, 역사적 맥락에서 자신의 세대적 정체성과 미학적 지향점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수행하는 손홍규, 환상과 현실을 뒤섞으며 우리가 발 딛고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염승숙, 마이너리티로서 세계 시민 간의 관계 맺음에 대해 숙고하는 조해진, 독기 어린 언어로 타락한 세상과 대면하는 최진영 등의 작품들을 실었다.
그간 문단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사회나 현실에 무관심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문학이 동세대의 독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포맷하시겠습니까?》에는 20~30대 초반 세대인 작가들이 동세대의 삶을 실감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각자의 언어로 현실과 대결하며 현실 ‘너머’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한다. 민족문학연구소는 기획의 말을 통해 “이들 작가들의 모색이 곧 한국문학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민족문학연구소 문학평론가들이 나눈 좌담에서는 전반적으로 20대 사회 초년생들이 느낄 만한 상실감, 불안감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집을 통해 느낀 ‘동시대의 해석공동체’로서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록작품들을 통해 본 우리 사회는 ‘인풋input은 매우 치열하고 정상적인데 결과로서의 아웃풋output은 매우 허망하고 허무하고 비정상적’이다. 또 작품들 속 등장인물들은 ‘비정규직, 비혼자, 비정상인’으로 ‘죽도록 노력해도 비정상인으로서 외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젊은 작가들은 매력적이고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시대에 앞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윤리를 제시하던 기존의 소설 역할과 달라진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평소에 경험하는 일상적인 현실과 다를 바 없는 텍스트의 현실
질문들-김미월
아직 등단하지 못한 서른 살의 소설가 지망생인 나. 앙케트 조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장가가는 오빠를 위해 방 보증금을 빼주기로 했지만 앞으로의 날이 막막하기만 하다. 아르바이트로 온갖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지만 나 역시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질문에 시달린다.
“나는 종이컵 속의 식은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사람들은 내게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으나 기실 그것들은 질문이라기보다 명령이나 권유에 가까웠다. 컵 바닥에 채 녹지 않은 설탕이 남아 있었나.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이 몹시 달았다.”
...더 나쁜 쪽으로-김사과
꿈꾸듯 거리를 헤매고 있다. 거리에 매혹되었지만 그 거리는 나의 거리가 아니다. 이미 그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노래를 하고, 책을 쓴, 나이 많은 나의 연인의 것이다. 그로부터 도망치고도 싶고 그 속에 남고 싶은 두 가지 욕망이 동시에 공존하는 혼란을 그린다.
“…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삶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아주 빌어먹게도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 느낌, 내가 아주 잘못된 장소에서 아주 잘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그 느낌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어서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큐티클-김애란
친구의 결혼식에 맞춰 길을 나섰지만 어느새 네일아트 숍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 만난 선배의 깨끗한 손톱을 본 뒤로 ‘손톱’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3년 차,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을 지녔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늘 조금씩 모자라는 느낌은 채워지지 않는다.
“월급날에 대한 확신과 기대는 조금 더 예쁜 것, 조금 더 세련된 것, 조금 더 안전한 것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그러니까 딱 한 뼘만……. 9센티미터만큼이라도 삶의 질이 향상되길 바랐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많은 물건 중 내게 ‘딱 맞는 한 뼘’은 없었다는 거다.”
문학의 새로운 세대-손아람
신춘문예 심사를 위해 소설가 넷, 평론가 셋이 모였다. 여느 때의 심사위원 모임과 다른 것은, 오랜 세월 누적된 소설가 추와 평론가 정의 악연이 모두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는 것일 뿐이다. 신춘문예 심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경전 속에 문학의 새로운 세대는 탄생할까.
“본심 회의에서 추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니 약국에서 산 기미테를 붙여 간신히 진정시킨 위장이 다시 쏠릴 것만 같았다. 인구 오천만의 나라에서 겨우 이보다 나은 작품을 찾기 어렵다니. 겨우, 겨우,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문학은 정말로 끝장이 나려는가!”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손홍규
마르께스주의자라 아무리 말을 해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버리던 시절. 뚜렷한 의지도 없이 그저 너를 찾으러 시위대의 한복판으로 흘러들어갔다. 몸을 숨기기 위해 들어선 한 연구실, 그리고 그곳에서 쥐 죽은 듯 숨어 지내며 마주한 시간들…….
“시간이 정지된, 아니 어쩌면 시간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한 그곳에서 그는 바깥 세계를 눈이 아닌 귀로 관람했다. 그는 바깥을 거대한 수족관으로 혹은 바다로 상상했다. 그에게 헬리콥터는 한 마리 고래상어였다. 백골단은 은갈치 떼였고 전투경찰은 벵에돔 떼였다. 이학관이라는 어초에 몰려든 학생들은 고등어 떼였고 사방을 자욱하게 메우는 최루 연기는 한류에 섞여든 난류였다.”
완전한 불면-염승숙
불면에 시달린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대학을 졸업한 뒤 3년 가까이 꼬박 취업 준비에 매달렸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유소 안내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마저도 마네킹에게 빼앗겨버렸다. 불면의 밤은 오로지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AV배우 유키가 위로해줄 뿐이다.
“세상에 제대로 된 것은 마네킹뿐일지도 몰라. 마네킹은 잠을 필요로 하지 않을 테니, 24시간 내내 깨어 제대로 웃고, 제대로 허리를 굽히고, 제대로 일할 것이다. 쓸데없는 동작이라곤 전혀 없는, 220볼트의 전력만이 소요되는, 매월 단돈 몇 만 원의 전기료만으로 가동되는 그 완벽한 노동이야말로 사장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래 그것은 마땅하다. 너무나 정당하다.”
이보나와 춤을 추었다-조해진
‘들판의 나라’ 폴란드에서 온 친구 미하우와 요안나는 내게 그들 식으로 ‘이보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내 책상에서 태어난 다른 친구에게 그 이름을 선물했다. 완벽한 소통보다 어색한 침묵, 불안한 유대감, 언어로는 채워지지 않는 연약한 마음이 위로가 되던 한 시절……. 지금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면접이 있는 날마다 구멍이 나지 않은 스타킹을 골라 신고, 면접이 끝나면 값싼 분식집에서 허겁지겁 늦은 끼니를 때우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조금씩 아껴 울며 화장을 지우게 될 내 미래의 어느 하루처럼 혼잣말로나 가까스로 소모되어야 할 테두리 없는 언어. 너무도 선명하게 상상이 되지만 고백하지 않는다면 실체가 될 수 없다고, 스물한 살이었던 나에겐 그것만이 신념이었다.”
창-최진영
눈치라는 것 없이 태어난 천생 왕따 기질의 소심한 주인공, 이 나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이 모든 일들이 억울할 뿐이다. 텅텅, 끊임없는 기침을 뱉어도 누구 하나 말 걸어오지 않는다. 누구도 밥을 같이 먹자고 말하지 않는다. 왜 나한테만 그래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평소에도 눈치가 없다는 말을 꽤 들었는데 정말, 어디 가서 사거나 배울 수도 없는, 태생적으로 없는 그것 때문에 나는 자주 야단맞고 무시당하고 따돌려졌다. 눈치 없는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다 보니, 상대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커다란 손아귀가 머릿속으로 푹 들어와 뇌를 꽉꽉 움켜쥐는 것 같았다.”
책속으로 추가
뜨거운 수증기가 분무되는 사우나 바닥에 앉아 몸을 한껏 웅크린 채로 정인은 맥없이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동시에, 쉼 없이 뒤집어지고 있을 무수한 모래시계들을 상상했다. 그것은 철저히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만 뒤집힌다. 모래알을 떨어뜨리는 것은 모래시계의 의지가 아니다. 어디에든, 어디서든 존재하지만 타인이 손대지 않으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시간을 움직일 수 없는 것. 제대로 뒤집히지 않고 모로 쓰러져도 시간은 멈춘다. 그래서 그것은 보편적이고 동시적인 성질을 지녔지만 한편 개별적이고 특수적인 성질로 시간성을 추동한다. 정인은 모래시계처럼 누군가 자신의 몸도 뒤집어 빨갛거나 혹은 파란 빛깔의 모래알을 떨어뜨릴 수 있기를 소망했다. 부디 잠들어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규칙적으로 흘려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했다.(pp.194-195)
-〈완전한 불면〉, 염승숙
면접이 있는 날마다 구멍이 나지 않은 스타킹을 골라 신고, 면접이 끝나면 값싼 분식집에서 허겁지겁 늦은 끼니를 때우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조금씩 아껴 울며 화장을 지우게 될 내 미래의 어느 하루처럼 혼잣말로나 가까스로 소모되어야 할 테두리 없는 언어. 너무도 선명하게 상상이 되지만 고백하지 않는다면 실체가 될 수 없다고, 스물한 살이었던 나에겐 그것만이 신념이었다. 바다가 없는 신비로운 섬에서 진짜 인생에는 포함되지 않는 여분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그에게 당연하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그저 운이 없는 부류나 감당해야 하는 지극히 재미없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내 멋대로 들려줄 수는 없었다.(p.227)
-〈이보나와 춤을 추었다〉, 조해진
솔직히, 무섭다.
입술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섭다. 따지기 전에 엉엉 울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다가 지각이라도 하게 되면 정말……. 입술을 꽉 깨물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으며 자리를 옮긴다.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온다. 당한 건 난데 왜 내가 도망치고 있나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그게 바로 내 인생의 본질 아닌가 싶다. 당하고 도망치고 억울해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지각만큼은 절대 해선 안 되는.
기침이 터져 나온다. 좁은 지하철 안에서도 슬금슬금, 사람들은 나를 피한다.(p.251)
-〈창〉,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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