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임머바르(Clara Immerwahr, 1870년 6월 21일 ~ 1915년 5월 2일)는 독일물리학자이다.

1 생애

클라라는 독일의 폴켄도르프 농장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Miss Knittel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뒤,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브레슬라우 대학 입학 자격을 얻기위하여 투쟁하였다. 1896년에 여성으로서 강의 참석을 허용받았고, 1898년에 화학 협회 시험(Verbandsexamen)을 여성으로서 최초로 통과하였다. 1900년에 '금속염의 용해도'에 관한 논문을 제출하여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독일 최초의 여성 화학박사가 되었다. Abegg 교수의 실험실 조교로 일하면서, '가정에서의 물리학과 화학' 강연을 하고 박사 학위 논문의 발표 자리에 토론자로 초청받았다.

1901년에 프리츠 하버와 결혼하면서 연구보다 집안일을 우선시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1902년 6월 1일에 헤르만(Hermann)을 낳고, 1905년에 출판된 가스 반응의 열역학을 프리츠 하버와 공동작업하였으나, 프리츠 하버에게조차 '조용한 협동(quiet collaboration)'으로 치부되며 홀대받았다.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프리츠 하버는 전쟁참모로 자원하여 일하면서 독가스를 개발하였다. 이에 대해 클라라는 그의 작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지만 프리츠 하버는 오히려 클라라의 행동을 반역행위로 치부하며 분노하였다. 1915년도 초에 프리츠 하버는 염소가스 개발에 성공하여 전쟁에 투입시키는 작전을 내었고, 1915년 4월 22일 벨기에의 이프르(Ypres) 지역 서부 전선에서 5천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이후로도 염소가스는 작전에 사용되었고, 최소 10만 명의 군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프리츠 하버는 이 공적으로 장교로 승진하였다.

클라라는 1915년 5월 2일 아들 헤르만의 팔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5월 1일 밤에 파티에 참석하기위해 집에 돌아왔다가 추가 가스 공격을 위하여 떠나는 프리츠 하버와 다투다가 클라라가 5월 2일 새벽에 프리츠 하버의 권총으로 권총자살을 가슴에 시도하였다,고 프리츠 하버는 아들 헤르만에게 설명하였다. 그후 프리츠 하버는 클라라 임머바르의 죽음에 관하여 어떤 답변도 하지않았다.

클라라의 연구는 1970년대에 재주목받아, 1991년에 국제핵전쟁예방 의사연맹의 독일지부에서 클라라 임머바르 상을 만들어 독일의 여성 과학자들에게 수여하였다. [ 페미위키]

2 출처

  • 니콜라 비트코프스키 (2015). 딴짓의 재발견 두번째 이야기. 애플북스. ISBN 978-89-94353-95-1
  • “CLARAIMMERWAHR”. 《Jewish Women's Archive》. 
  • “Clara Immerwahr”. 《Wikipedia》. 
  1. “IMMERWAHR KLARA”. 《Virtual Shte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