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Richard Strauss, Ein Heldenleben Op.40)
Bawoo2014. 2. 19. 13:00
Richard Strauss, Ein Heldenleben Op.40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
Richard Strauss
1864-1949
Thomas Dausgaard, conductor
DR SymfoniOrkestret
Copenhagen Concert Hall
2010
Thomas Dausgaard/DRSO - Richard Strauss, Ein Heldenleben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지휘자 토마스 다우스고르(1963~ )는 2004년부터 덴마크 국립교향악단(DRSO)을 맡아 왔으며 2010-2011 시즌을 마치고 상임에서 물러나고 명예지휘자 칭호를 받았습니다.
클래식 음악, 그 중에서도 독일음악의 관점에서 보자면 19세기를 ‘영웅의 세기’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베토벤이 1804년에 ‘영웅 교향곡’을 발표한 이래, 독일의 작곡가들은 ‘영웅’을 가장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형상화했다. 교향곡의 경우에는 슈만과 브람스가 대표적이고, 오페라 계에는 바그너가 있었다. 그리고 교향시 장르에서는 역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꼽아야 할 것이다.
‘영웅의 세기’에 마침표를 찍은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는 1899년에 <영웅의 생애>를 발표함으로써 ‘영웅의 세기’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슈트라우스는 작품 속 영웅의 이미지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투사했다. 물론 영웅을 테마로 한 작품들에는 어떤 식으로든 자전적인 성격이 개입되게 마련이었지만, 슈트라우스만큼 그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는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이 곡은 슈트라우스의 자서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즉 ‘영웅’이란 슈트라우스 자신인 것이다.
전체 6부로 구성된 교향시 <영웅의 생애>의 제5부에는 이전까지 슈트라우스 자신이 발표했던 작품들의 단편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그 흐름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이 곡의 표제가 가리키는 ‘영웅’이 바로 슈트라우스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칼 대신 펜을, 방패 대신 악보를 든 영웅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실제로 슈트라우스는 로맹 롤랑에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왜 자신에 관한 교향곡을 쓰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못지않게 나 자신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고 있다.”
어떤 이는 이 대목에서 슈트라우스의 나르시시즘을 거론하며 조소를 보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그 특유의 유머를 음미하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사실 슈트라우스는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어서, 이 곡을 스케치하고 있을 무렵인 1898년 7월에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베토벤의 ‘에로이카’(영웅 교향곡)는 우리 지휘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품으로, 드물게 연주되고 있네. 그래서 나는 절박한 필요에 의해 지금 ‘영웅의 생애’라는 제목을 붙인 교향시를 작곡하고 있지. 장송 행진곡은 없지만, 역시 E플랫장조이며 많은 호른이 들어간다네.”
물론 당시 지휘자들이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농담이다. 슈트라우스가 이 곡을 작곡하면서 베토벤을 의식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아울러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 자신의 관점을 강하게 반영하여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며 궁극의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한 영웅, 즉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작품 정도로 간주하면 적당할 듯싶다.
장대한 피날레
1899년 3월 3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슈트라우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영웅의 생애>는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교향시(음시)이다. 다만 이후의 <가정 교향곡>이나 <알프스 교향곡>도 넓은 의미에서 교향시로 간주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이 곡이 그때까지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창작을 결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으로 ‘영웅의 세기’의 피날레와 더불어 자신의 교향시 창작 여정의 피날레도 장식했던 것이다.
슈트라우스와 친분이 두터웠던 네덜란드의 지휘자 빌럼 멩엘베르흐(Willem Mengelberg)에게 헌정된 이 장대한 교향시는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체는 자유롭게 확대된 소나타 형식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Rudolf Kempe/RPO - Richard Strauss, Ein Heldenleben
Rudolf Kempe, conductor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Royal Albert Hall, London
1974.08.28
1. 영웅
칼과 방패를 든 기사’가 등장한다. 젊고 순수한 사나이의 야망으로 충만한 가슴과 고결한 신념, 성스러운 의지로 빛나는 얼굴을 가진 그가 확신에 찬 걸음걸이로 당당하게 행진한다. 이 부분은 소나타 형식의 제1주제부에 해당한다.
2. 영웅의 적들
영웅과 대립하는 적들이 등장한다. 질투와 몰이해로 무장한 그들은 오로지 비난하고 트집 잡는 것밖에 모른다. 조소하고 희화화하는 그들의 끈질긴 공격에 영웅은 상처를 입고 낙담한 나머지 잠시 비관적인 상태에 빠진다. 그의 분노와 항거. 경과부에 해당하며, 일종의 스케르초로 볼 수 있다.
3. 영웅의 반려
영웅에게 사랑이 찾아든다. 영웅을 유혹하고, 달래고, 재촉하는 연인의 모습이 바이올린 솔로의 선율로 그려지고, 영웅은 그런 그녀와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 결국 영웅은 연인을 포옹하고, 그녀에게서 휴식과 위로를 얻는다. 제2주제부에 해당하며, 느린악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쟁과 승리, 그리고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친 영웅의 화려한 일대기가 펼쳐진다.
4. 영웅의 전장
갑자기 무대 밖에서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신념과 의지는 다만 생명의 영예로운 투쟁 속에서만 살아 있는 법. 영웅은 이제 보다 성숙해진 모습으로 전장에 나선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적들의 공격 속에서도 영웅은 연인의 격려를 받으며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다(금관의 힘찬 팡파르). 영웅은 연인과 팔짱을 끼고 행진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발전부에 해당하며, 이제까지의 주요 주제들이 모두 나와 한꺼번에 어우러진다.
5. 영웅의 업적
차분해진 가운데 영웅이 업적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슈트라우스의 기존 작품들에서 취한 단편들의 메들리로, <돈 후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변용> <돈키호테>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생애> <군트람> <맥베스>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리고 거기에 <영웅의 생애>에서 나온 주제들이 섞인다.
6. 영웅의 은퇴와 완성
적들이 영웅에게서 멀어져 가고 비난과 조소도 사라진다. 영웅은 마지막 의욕을 발휘해보지만, 이내 그것도 가라앉고 차츰 체관의 정조에 빠져든다. 이제 그는 전원에서 휴식을 취한다. 목동의 피리소리가 들려오고, 자연이 그에게 속삭인다. 영웅은 회상에 젖는다, 과거의 치열했던 투쟁, 연인과의 사랑. 그리고 마지막 빛이 서서히 상승하며 힘을 더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정점에 이른 후 은은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간다.
추천음반
1.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2. 루돌프 켐페(지휘)/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EMI
3. 파비오 루이지(지휘)/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Sony
4. 마리스 얀손스(지휘)/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RCO Live/DVD
우선 고전적인 명반으로 카라얀과 켐페를 꼽을 수 있다. 카라얀의 녹음들 중에서는 오리지널스 시리즈와 마스터 레코딩 시리즈로 재발매된 1959년 레코딩이 가장 유명하지만, 음질 면에서 1970년대의 EMI 레코딩이나 DG의 카라얀 골드 시리즈로 나온 1980년대 레코딩이 보다 안전한 선택이다. 루돌프 켐페의 레코딩은 그가 EMI에 남긴 슈트라우스 관현악곡 전집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고유의 사운드와 앙상블을 바탕으로 격조 높은 연주를 들려준다.
한편 역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한 파비오 루이지의 음반(Sony)에서는 금관의 팡파르로 마무리되는 통상의 엔딩이 아니라 슈트라우스의 자필악보에 기초하여 바이올린 솔로로 조용히 마무리되는 오리지널 엔딩을 들을 수 있다. 아울러 근래의 음반들 중에서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빈 필을 지휘한 음반(DG)도 추천할 만하다.
작품의 피헌정자인 멩엘베르흐도 레코딩을 남겼지만 낡은 음질 때문에 보편적인 추천음반이 될 수는 없다. 대신 그의 악단을 이어받은 후배 지휘자들이 남긴 훌륭한 음반들을 선택하면 되는데, 베르나르드 하이팅크(Philips)와 마리스 얀손스(RCO Live) 모두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에서 탁월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특히 얀손스가 지휘한 공연실황은 영상물로도 나와 있는데 음반보다 만족도가 더 크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