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mann, Kreisleriana Op.16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Robert Schumann
1810-1856
Vladimir Horowitz, piano
30th Street Studio, New York
1969.12.01
Vladimir Horowitz - Schumann, Kreisleriana Op.16
작곡가 슈베르트는 사춘기 시절부터 음울한 주제에 탐닉했고, 어둡고 기괴한 이야기와 소재는 발라드 양식과 결합하여 슈베르트 특유의 어둡고 음울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슈베르트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슈만 역시 독특한 세계관과 환상, 마법이라는 주제에 심취하였으며, 독특한 소재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그가 작곡했던 수많은 작품들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이기도 하다. 슈베르트가 시와 음악의 연계를 통하여 예술가곡의 문을 열었다면, 슈만은 음악과 문학과의 결합을 끊임없이 시도해 성격소품(character piece)을 창조해낸 셈이다.
성격소품은 19세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주로 A-B-A의 3부 형식의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고 독일 가곡처럼 표현적인 선율과 화성을 강조했다. <크라이슬레리아나> 역시 3부 형식을 가진,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슈만에게 영향을 미친 영감의 근원은 독일의 시인 하이네, 바이런, 리히터의 작품이었지만, 환상적인 세계를 다루었던 작가 호프만(E.T.A Hoffmann, 1776-1822)의 예술 역시 죽을 때까지 슈만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호프만은 그로테스크한 환상, 광기와 풍자가 넘치는 단편소설을 발표해 독일 낭만주의의 꽃을 피운 작가였다.
두 개의 음악적 주제를 교차시켜 이중적 자아를 표현
독일의 작가 호프만의 작품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과 우연히 삽입된 갈피지의, 악장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단편적 전기>(1822)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크라이슬레리아나>는 1838년 단 4일 만에 작곡되어 쇼팽에게 헌정된 곡이다. 총 8개의 소품으로 나누어진 이 환상적인 작품에는 두 개의 자아가 등장한다. 하나는 작가 호프만의 자아가 투영된 ‘카펠마이스터 크라이슬러’이고 또 하나는 슈만 자신의 자아를 투영시킨 ‘크라이슬러’다. <크라이슬레리아나>의 기본적인 조성 역시 두 개의 분리된 자아를 대변하고 있다. ▶호프만 작품의 주인공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캐리커처.
크게 나누어 보면 2곡과 4곡, 6곡은 B플랫장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3곡과 5곡, 7곡은 G단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개별 곡 내에서도 각각 ‘플로레스탄’(Florestan)과 ‘오이제비우스’(Eusebius)를 연상시키는 음악적 주제를 교차시킴으로서 조울증적인 기질을 지닌 ‘이중적 크라이슬러’ 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는 슈만 자신의 또 다른 내적 자아이다. 슈만은 명랑하고 열정적인 ‘플로레스탄’과 내성적이고 명상적인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개의 상반된 캐릭터가 자기 안에 공존한다고 생각했고, 음악을 통해 변덕스런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곤 했다.
호프만의 문학작품 속에서도 이중성과 모호함이라는 두 개의 주제는 작품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단편적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도중, 문장 중간에서 이야기가 시작하거나 끝난다든지 혹은 이야기 전개가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돌연히 다른 소재의 이야기로 바뀌어버리는 문학적 장치가 사용되고 있다. 호프만이 의도한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문학적 효과는 <크라이슬레리아나>에서도 음악적 효과로 변환되어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8곡에서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ppp(아주 여리게, pianississimo)로 인하여 음악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느낌은, 소설 속에서 크라이슬러가 사모하는 율리아 공주와 이그나티우스 왕자의 결혼을 알리는 편지의 급작스러운 끝맺음처럼 음악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
Martha Argerich - Schumann, Kreisleriana Op.16
Martha Argerich, Piano
Akademie d.W, Plenarsaal, Residenz, Munich
1983.04
추천음반
1. 외향적 연주와 내밀한 연주 두 장씩을 골라 보았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Sony)는 다채로운 감수성과 초절적인 기교가 발휘된 격정적인 연주를 들려주며 대표적인 명연으로 자리 잡고 있다.
2. 마르타 아르헤리치(DG)의 연주는 두 개의 자아가 충돌하는 이야기를 시원스러운 흐름과 박진감 넘치는 표현으로 그려냈다.
3. 애니 피셔의 실황연주(BBC)는 내밀하고 정적인 감수성과 역동성을 대조시켜 이중적 구조를 완벽하게 드러낸다.
4. 미츠코 우치다(Phillips)의 연주는 절제된 음색으로 균형적 연주를 들려주며 작품이 지닌 따스함에 주목하고 있다.
글 노태헌(음악 칼럼니스트) 노태헌은 클래식음악 전문지 <라 뮤지카>, <그라모폰 코리아>, <코다>,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안단테> 등에 클래식 음반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