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Paganini, 24 Caprices for Solo Violin Op.1)
Bawoo2014. 2. 23. 14:55
Paganini, 24 Caprices for Solo Violin Op.1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Niccolò Paganini
1782-1840
Alexander Markov, violin
Bruno Monsaingeon, film director
DVD Release, 2006.09.26
Alexander Markov plays Paganini 24 Caprices
변화무쌍한 운궁과 압도적인 폭발력으로 청중들을 사로잡는 알렉산더 마르코프(1963~ )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며,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시민권자가 된 1982년 19세의 나이로 파가니니 콩쿠르를 석권했습니다.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우리 시대 바이올린 거장들의 연대기와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에게 뚜렷한 마크를 찍을 것이다.” 예후디 메뉴인의 말입니다. 이른 나이에 바이올린 비르투오소가 된 마르코프는 클래식뿐 아니라 크로스오버 뮤직에도 관심이 깊어 직접 밴드를 조직하여 록 콘서트를 열기도 하는 괴짜인데 이때는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사용합니다.~~
“창백한 얼굴에 깡마른 체구, 빛나는 눈빛의 사나이가 바이올린을 들고 무대 위에 등장한다. 그가 바이올린을 켜는 자세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악기는 땅을 향해 축 처져 있고 오른손목이 심하게 구부러졌으며 팔꿈치는 너무 높이 올라가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바이올린 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화려하며 놀라운 기교로 가득하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악기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몸에서 나오는 것인지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다.”
파가니니에 대한 연주회 기록과 전기 작가들의 묘사를 종합해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 모습을 떠올려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소리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파가니니가 남긴 작품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독특한 바이올리니스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파가니니의 악마적인 연주 기교가 총망라된 작품
휘파람소리 같은 하모닉스의 연속, 손에 쥐가 날 정도로 계속되는 트릴과 중음주법(두세 음을 화음으로 한 번에 연주하는 연주법), 활 털에 불이 날 정도로 튀겨대는 괴상한 운궁법 등 파가니니가 남긴 바이올린 악보를 보면 연주 불능에 가까운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파가니니 이전에 그 누구도 이런 바이올린 음악을 작곡한 일이 없었다. 남들보다 팔과 손가락이 긴데다 손가락 뼈마디가 부드러웠다는 파가니니에게 이런 연주법은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이 땅의 평범한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겐 일종의 고문이나 다름없다.▶‘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린 파가니니.
파가니니는 워낙 독특하고 까다로운 연주법을 구사했기에 자신만을 위해 특별한 작품을 작곡하지 않고서는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기 어려웠다. 그가 연주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즐겨 연주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파가니니의 작품들 가운데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라 캄파넬라’(종)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이 유명하다. 하지만 파가니니의 진면목을 알고자 한다면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24개의 카프리스>야말로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파가니니의 작품번호 1번에 해당하는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는 파가니니가 생전에 어떤 바이올리니스트였는지 짐작케 하는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이다. 이 곡에는 파가니니가 구사했던 거의 모든 바이올린 주법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일종의 바이올린 경전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난해한 곡이기도 하다. <24개의 카프리스>를 이루는 한 곡 한 곡의 길이는 길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손가락의 근육이 견뎌내지 못할 정도의 고난도 기교가 펼쳐진다. 이토록 바이올리니스트를 긴장시키는 곡도 없을 것이다.
Ruggiero Ricci plays Paganini 24 Caprices
1987.01.10
루지에로 리치(1918~2012)는 파가니니 음악 해석의 권위자였습니다. 대단한 기교파였던 그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24곡 하나하나에 자신의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전곡을 최초로 연주한 연주자, 루지에로 리치. 어느 바이올리니스트든 리치의 화려한 연주를 자랑스럽게 여기리라. 그는 카프리스 연주에 매우 특별한 특성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대한 오랜 연주 경력은 그가 채택한 속도에서 증명된다. 리치의 스피드는 음악의 특질을 최대화한다. 두 개의 대조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각각의 카프리스에서 리치는 각 요소를 통합시키는 스피드를 채택해 가장 설득력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DVD(그라모폰) 해설 중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해야 하는 고난도의 기교
악보의 첫 페이지를 열면 카프리스 1번의 악보를 가득 메운 32분음표의 물결에 압도될 것이다. 이 곡은 바이올린의 네 줄을 넘나들며 숨 가쁘게 움직여야 하는 곡이다. 오른팔의 민첩한 활 놀림과 왼손의 정확한 코드 진행에 중점을 둔 이 곡은, 활의 탄력을 잘 조절해 얼마나 일정하면서도 또렷하게 튀어 오르게 하느냐 하는 점이 연주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럼 자주 연주되는 카프리스 5번은 또 어떤가? 빠른 아르페지오와 스케일의 전주와 후주가 붙어 있는 이 곡에선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 스피카토를 구사하느냐가 관건이다. 바이올리니스트들 사이에 ‘빨리 켜기’의 경쟁을 유발하는 고약한 곡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빠른 템포로 연주하면 ‘왕벌의 비행’처럼 웅웅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파가니니가 아꼈던 바이올린 ‘과르네리 델 제수’. 음이 대포소리 같다고 하여 파가니니는 이 바이올린을 ‘캐논’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9번은 마치 종소리 같은 3도 화음으로 시작한다. 마치 두 사람이 2중주를 하듯 고음역과 저음역의 음색과 성격을 구별하는 묘사 능력이 요구되는 곡이다. 슬러 스타카토와 트릴의 연속인 10번의 무시무시한 기교 또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두려움을 준다. 한 방향으로 활을 쓰면서 여러 음을 빠르게 끊어 연주해야 하는 슬러 스타카토는 아무리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라도 깨끗하게 연주해내기가 무척 어렵다.
‘악마의 미소’라는 별명이 붙은 13번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중 24번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곡으로, 13이란 숫자가 주는 악마적인 느낌 외에 3도 화음을 유지하며 쭉 내려오는 음형이 마치 악마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연상시켜 흥미롭다. 마치 트럼펫의 팡파르와도 같은 14번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바이올린의 두 줄은 물론 세 줄도 한꺼번에 그어 연주해야 하는 이 곡에서 트럼펫 주자들의 명쾌한 화음을 닮은 깨끗한 음색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파가니니로 분장해 출연한 영화 <애수의 트로이메라이>(원제: Spring Symphony)에서 그가 연주한 카프리스 17번은 멋진 팡파르에 이어 빠른 반음계와 옥타브 화음의 연속으로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작품이다. 옥타브 화음을 꽤 빠르게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마치 기계체조 선수처럼 왼손가락을 유연하면서도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쉽지 않은 곡이다. 물론 영화 속의 크레머는 압도적인 기교로 이 곡을 완벽하면서도 악마적으로 소화해냈다.
Julia Fischer plays Paganini Caprice No.24
2009.04
파가니니의 음악을 ‘천상의 음악’처럼 들려주는 율리아 피셔. 연주하는 모습도 천사 같습니다.~ 파가니니 24곡 카프리스 중에서 24번이 가장 유명합니다. 5분 남짓한 24번은 주제와 11개의 변주, 피날레로 이루어졌습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24번은 길이도 가장 길고 주제와 변주 형식을 취하고 있어 바이올린의 각종 기교를 다채롭게 펼쳐 보일 수 있는 작품이다. 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익숙한 주제에 이어 11곡의 변주와 종결부가 펼쳐지는 동안, 바이올리니스트는 왼손으로 줄을 퉁기는 왼손 피치카토 주법을 비롯해 옥타브와 10도, 중음주법 등 각종 기교를 선보이며 주제 선율을 장식해간다.
추천음반
‘파가니니 카프리스’는 바이올린 콩쿠르와 오디션, 실기시험에 거의 빠지는 일이 없는 음악이기에 바이올리니스트라면 항상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곡을 연주용으로 무대에 올리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많지 않다. 간혹 앙코르곡으로 한두 곡 정도 연주하는 일은 있지만, 파가니니 카프리스를 기술적으로 완벽하면서도 음악적으로도 훌륭하게 소화해내기는 무척 어렵기 때문에 감히 전곡 연주를 시도하는 연주자는 드물다. 전곡 연주 못지않게 전곡 녹음 역시 드물다. 연주회에서는 실황연주라는 이유로 사소한 실수가 용서되기도 하지만 녹음에선 그렇지 않기에 더욱 부담스럽다.
그런 점에서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연주 실황을 담은 알렉산더 마르코프의 음반(Wea)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실황연주임에도 흠 잡을 데 없는 테크닉과 악마적인 표현은 강렬한 인상을 전해준다. 그는 파가니니의 음악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괴한 음악으로 재현해낸다. 반면 율리아 피셔의 파가니니 연주(Decca)는 파가니니의 음악이 천상의 음악처럼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대조적이다. 파가니니 음악 해석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루지에로 리치의 음반(Alto)에선 카프리스 24곡 하나하나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1996년 파가니니 콩쿠르의 우승자인 김수빈의 음반(EMI)은 기교와 표현력이 어우러진 연주로 각별한 감흥을 준다.
글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