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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번 10대 번주, 사가 7현인(佐賀の七賢人) 중 1인. ]나베시마 나오마사(일본어: 鍋島 直正)

Bawoo 2020. 10. 25. 22:38


나베시마 나오마사

 

나베시마 나오마사(일본어: 鍋島 直正)는 에도 시대 말기의 다이묘이다. 히젠 사가번 제10대 번주. 사가 전 선대 번주 나베시마 나리나오의 17남으로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나리마사( 斉正 (なりまさ))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사가 7현인(佐賀の七賢人) 중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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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혁명을 이끈 히젠의 요괴(肥前の妖怪), 나베시마나오마사(鍋島直正)

 

막부시대말기 메이지유신을 추진하는데 공을 세운 네 지방을 하나로 묶어 흔히 삿쬬도히(薩長土肥(さっちょうどひ)라고 한다. 현재의 카고시마현인 사쯔마와 야마구치현인 쬬슈, 코치(高知)현을 이르는 도사(土佐), 그리고 사가(佐賀)현인 히젠(肥前)을 이르는 것인데 이 가운데 사가히젠은 좀 특이한 사례다.

 

사가번은 마지막 순간까지 막부타도에 가담하지 않았다, 일본 최고의 서양식 군대를 갖춘 사가번이었지만 사쯔마 쬬슈가 중심이 된 신정부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서양으로부터 나가사키를 지켜야 한다는 구실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가번은 도바 후시미전투가 벌어지고 조적(朝敵)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토쿠가와요시노부(徳川慶喜)가 도망치듯 물러난 이후에야 신정부군에 가담했다.

 

사가번 번주인 나베시마나오마사(鍋島直正)는 다른 번과는 달리 반막부와 친막부의 색채를 가지지 않았다. 존왕양이나 막부타도같은 직접적인 정치행동에 나서기 보다는 오로지 대포주조와 증기기관개발, 근대무기로 무장한 서양식 군대양성에 주력하며 때가 오면 나선다는 한 차원 높은 생각을 한 것이다. 나베시마나오마사가 이끈 사가번은 풍운의 막말시대에 일본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의 기적을 이룬 지역이다. 아주 탁월한 정치적 리더쉽인데 후세 사가들은 나베시마를 히젠의 요괴(肥前の妖怪)라고 부른다.

 

나베시마나오마사는 1830년 17세에 사가번의 10대 영주가 되자마자 재정개혁과 근대화를 추진한다. 나오마사의 부친시절 사가번은 기근과 자연재난에 번행정의 낭비로 재정이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 그가 영주로 취임하는 날, 번에 돈을 빌려준 상인과 간장가게 술집주인들이 돈을 갚으라면서 행렬을 가로막을 정도였다.

 

나오마사는 번주가 되자 관리의 3분의 1인 420명을 감축하고 상인대신 이자가 싼 막부로부터 2만량을 융통한다. 그리고 해방(海防)의 거점인 나가사키를 시찰하고 정박 중이던 네덜란드의 상선에 올라 선박을 견학했다. 신변위험도 있는 번주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는데 아편전쟁이후 일본의 개국을 권고하기 위해 일본에 온 네덜란드 군함 ‘팔렘방’호에도 직접 올라 선박 여기저기를 살핀다. 일본과 서양의 기술차이를 피부로 느끼고 중국처럼 서구열강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철제대포와 증기선를 개발하기로 마음먹는다.

 

일본에도 소형 청동대포는 있었지만 그는 서양 근대기술에 주목한다. 그는 네덜란드 육군소장이 저술한 서적을 구했다. 대포뿐만 아니라 대포주조에 필요한 용해로인 반사로의 도면도 있었다. 사가에서 만들어진 네덜란드의 암스트롱포는 보신전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가시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철제대포주조에 성공한 쯔키지반사로(築地反射炉)와 증기기관(蒸気機関), 사진(写真), 유리 등을 연구한 이화학연구소인 세이렌카타(精煉方せいれんかた)등 막부말기 산업혁명의 거점이 된 유적들이 있다.

 

서양의 선박기술도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일본최초의 드라이도크인 미에쯔카이군쇼(三重津海軍所みえつかいぐんしょ)를 설치하는데 여기서 일본최초의 실용 증기선 료후마루(凌風丸りょうふうまる)호가 탄생한다.

나베시마나오마사의 근대화 업적은 다방면에서 이뤄졌다. 불치병이었던 천연두 백신을 네덜란드로부터 수입해 먼저 자신의 아들을 대상으로 시험하고 이를 보급한다. 의학발전도 중요시해 일본에서 가장 먼저 의사면허제도를 도입한다.

 

교육에도 힘써 제후들의 자제를 교육하는 학교인 코도칸(弘道館こうどうかん)을 설립하는데 여기서 메이지정부의 사법대신이 된 에도 신페이, 메이지의 중신으로 와세다대를 창립한 오쿠마 시게노부 같은 쟁쟁한 인물이 배출된다.

 

나베시마나오마사는 일본남단의 사가번 번주였지만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한 에조치(홋카이도)개척에도 앞장섰다. 사가번에서 630명을 집단이주시키는 한편 보신전쟁 승리로 받은 포상금의 상당부분을 에조치개척에 쓰라고 보낸다.

 

나베시마나오마사의 사가번 근대화는 사쯔마번도 자극했다. 사쯔마번의 번주로 역시 부국강병의 명군으로 꼽히는 시마즈나리아키라(島津 斉彬しまづ なりあきら)는 1852년 사가현의 반사로 축조를 본받아 사쯔마도 철제대포를 만들 반사로를 만들자며 기술자들을 모아 격려했다.

 

“西洋人も人なり, 佐賀人も人なり, 薩摩人も同じく人なり, 退屈せず ますます研究すべし”

<서양인도 사람이다. 사가인도 사람이다. 사쯔마인도 같은 사람이니 싫증내지 말고 더욱 더 연구할 지어다.>

 

나베시마나오마사는 에도시대 일본의 산업혁명을 이룬 인물로 평가되는 지도자다.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郎)는 “사가만큼 모던한 번은 없다”(佐賀ほどモダンな藩はない)는 말로 나베시마가 이룬 사가의 근대화를 칭송한 바 있다.

 

 

 

 

 

 

 

 

 

 

 

[출처]blog.daum.net/su7743/17428064 송수용의 블로그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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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낮췄다. 개방의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히젠의 요괴 나베시마 나오마사1830년 열일곱 먹은 나베시마 나오마사(鍋島直正)가 사가번(佐賀藩) 10대 번주에 취임했다...

 

[정보] 책- 메이지유신을 이끈 카게무샤:박상후 지음 | 프리덤앤위즈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