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이름으로- 리샹란과 야마구치 요시코
[소감]책-한일공동정부: 조용준 지음 |를 통해 알게 된 인물인데 자서전이 최근에 나온 걸 알게 되어 무슨 내용일까 내용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늘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구매 신청해서.^^
내용은 중국 만주국 시절인 1920년에 태어나 1945년 종전으로 자국-일본-으로 돌아가기까지 25년 중 사춘기 시절 배우, 가수로 데뷔해서 활동한 이야기가 주이고 자국 일본으로 돌아가 2014년 타계할 때까지의 70년간 일본에서의 삶 중 주요한 부분은 부록으로 가볍게 다룬다. 자서전이라곤 하지만 리샹난이란 중국 이름으로 산 중국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 쓴 느낌. 그러나 개인사에 치우쳐 중일 전쟁기를 민간으로서 보낸 삶이 어떠했는가가 궁금해서 읽어보려고 한 내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쳤다. 저자는 민간인 신분이긴 하지만 상류층 삶을 산 탓인지 평범한 중국인의 고통이라든가 중일 갈등 문제는 비교적 가볍게 다뤄진 느낌이 들어 실망스러웠다. 그저 자신이 산 삶을 축약해서 쓴-나쁜 점은 최대한 축소한 느낌을 받았다-정도. 글의 행간을 통해 중일전쟁기 연예인으로 산 삶이 어떠했으리라는 건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저자는 일본에 돌아가서도 배우 생활을 계속하고 은퇴한 뒤에는 국회의원까지 한, 나처럼 평범한 삶을 산 사람들의 입장에선 성공한 삶을 산 인물이다. 무척.
책소개-인터넷 교보문고
“야래향을 안고서 야래향에 입 맞추고……”
한국인에게 익숙한 〈야래향〉은 덩리쥔이 부른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노래의 원곡을 부른 사람이 리샹란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 그녀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자 다른 이름으로는 야마구치 요시코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일본의 침략으로 동아시아가 격전에 휩싸였던 시기, 식민지 조선에서 ‘내선일체’를 주장했듯이 만주를 점령한 일본은 ‘일만친선’ ‘오족협화’를 선전하며 정신적 이데올로기를 점령하고자 했다. 그때 눈에 띈 야마구치 요시코는 일본이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중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서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 유창한 중국 표준어를 사용하는 야마구치 요시코는 ‘리샹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 여배우로 데뷔하여 이후 일본의 수많은 전쟁 선전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아 오족협화 이데올로기의 선두에 섰다.
“나는 베이징 성벽 위에 서 있겠습니다.”
‘가짜 중국인’으로 살아가던 중 의도치 않게 항일집회에 참가해야 했던 리샹란은 “일본군이 침입해 온다면 어쩔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성벽 위에 서있으면 밖에서 공격하는 일본인의 총탄이나 성벽 안에서 쏘는 중국의 총탄 어느 총탄이든 제일 먼저 맞아서 죽을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선택임을 알았다.”
일본과 중국 양쪽에서 사랑받는 화려한 여배우였던 동시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모순된 존재로서 격동의 시기를 보낸 야마구치 요시코 혹은 리샹란, 그녀의 일생은 어떠했을까. 이 책은 야마구치 요시코 본인이 직접 집필에 참여한 자서전으로, 모국인 일본이 태어나 자란 중국을 침략하는 것을 바라보고, 때로는 거기에 동참하고 뒤늦게 후회했던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배우 리샹란을 용서할 수 없다”
일본 국가 정책에 희생된 여배우의 인생을 담아내고자 했던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 야마구치 요시코의 인생 후반기, 그녀는 베트남전쟁을 취재하거나 팔레스타인 여성해방운동가를 인터뷰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세계 분쟁 지역에서 외교 문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애썼다. 참의원 의원을 거쳐 환경청 정무차관까지 지낸 후에는 위안부 문제의 일본 측 대표 단체인 ‘아시아여성기금’의 부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화려한 시절을 돌아보며 “배우 리샹란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공저자 후지와라 사쿠야의 도움을 얻어 최대한 진솔한 심정으로 이 책을 펴냈다. 이는 개인의 추억이나 회고로서가 아닌, 일본 국가 정책이 만들어낸 여배우로서 격동의 쇼와기를 살아간 한 사람의 여성이 남기는 시대적 증언으로서 독자의 가슴에 스며들 것이다.
목차
01_푸순
02_펑톈에서
03_베이징에서
04_톈진에서
05_리샹란의 탄생
06_신징 시대
07_〈소주야곡〉을 부르면서
08_니치게키를 일곱 바퀴 반 늘어선 인파
09_나의 청춘 이야기
10_두 명의 요시코
11_신기루 속 영화
12_〈만세유방〉
13_야래향 랩소디
14_상하이 1945년
15_안녕, 리샹란!
부록_리샹란과 헤어진 뒤
맺음말_야마구치 요시코
맺음말_후지와라 사쿠야
역자 후기
책 속으로
또 다른 청년은 “일본군은 괴뢰국 만주를 세워서 동북 지방에서 베이징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다. 만일 일본군이 베이징의 성벽을 넘어 침입한다면 제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의 물음에 학생들은 일어서서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성벽 안으로 단 한 명의 일본인도 들이지 않겠다”, “죽을 때까지 싸우자” 등. (…중략…) 내가 말할 차례가 왔다. 계속 답을 생각했지만,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정리될 턱이 없었다. 조국과 고국이 싸우고 있는데 두 나라와 그곳의 사람을 사랑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자의 시선은 답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베이징 성벽 위에 서 있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별다른 의미 없이 순간적으로 생각난 말이었다. 당시의 심경으로는 그 말이 최선이었다. 성벽 위에 서있으면 밖에서 공격하는 일본인의 총탄이나 성벽 안에서 쏘는 중국의 총탄 어느 총탄이든 제일 먼저 맞아서 죽을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선택임을 알았다.
03_베이징에서
“신쿄역 홈에서 정말 당황했어. 고급차가 멈추는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리샹란 같은 여성이 내리지 않는 거야.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좀 떨어진 홈에 혼자 서 있는 작은 아가씨가 보였어. 바가지 머리에 파란 목면으로 만든 중국옷을 입은 소박한 모습이었지. 너는 일반석 창문으로 몸을 내민 중국인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하고 있었어. 네가 일본인이 타는 고급차를 타지 않고 심지어 중국인들과 섞여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감동했지. 바로 중국 서민에게 사랑받는 만에이의 리샹란. 일만친선, 오족협화의 국책이 실현된 스타 탄생이라고.”
05_리샹란의 탄생
집필을 시작하고 리샹란 시대에 내가 찍은 영화 몇 편을 몇십 년 만에 볼 기회가 있었다.(심지어 처음 보는 영화도 있었다) 도쿄의 필름센터에 보관되어 있던 〈백란의 노래〉, 〈지나의 밤〉, 〈사막의 맹세〉 등의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왜 이런 영화에 출연하면서 ‘중국인 여배우 리샹란’으로 살아야 했을까? 나는 너무 늦게 찾아온 자책감에 며칠 동안 잠들지 못했다.
(…중략…)
독자 중에서는 이 책에 내가 중국에서 한 일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과거에 찍은 ‘죄 많은’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가 한 일을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다. 사과만으로 과거를 미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05_맺음말
저자 : 야마구치 요시코
1920년 중국 동북구(東北區) 푸순(撫順) 출생. 어린시절 중국 풍습에 따라 친일 군벌 리지에춘(李際春), 판유구이(潘毓桂)의 형식상 양녀가 되었다. 1933년 펑톈(泰天, 지금의 선양瀋陽으로 이사해, 허약한 호흡기를 단련하기 위해 러시아 오페라 가수에게 성악을 배웠다. 처음에는 펑톈 방송국 가수로 데뷔했다가 나중에는 만주영화협회로 스카웃되었다.
‘노래하는 중국인 여배우 리샹란’으로 인기를 얻고 열린 1941년 첫 일본 공연인 닛가츠(日劇) 공연은 엄청난 관중을 모은 사회적 사건이 되었다. 일본 패전 뒤에는 상하이 일본인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46년 4월 일본으로 돌아와서 본명인 야마구치 요시코로 활동했다. 1950년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나 뮤지컬에 출연하였고, 1951년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와 결혼했다가 5년 후 이혼했다. 1958년에는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외교관인 오타케 히로시(大鷹弘)와 결혼했다. 1969년 와이드 쇼 프로그램 사회자가 되어 여러 나라를 오가며 취재 활동을 했다. 1974년 참의원 의원이 되었고 1978년 환경청 정무차관으로 32년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저자 : 후지와라 사쿠야
1937년 센다이 출생. 1942년 언어민속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북한 청진으로 이주, 2년 후에는 중국 동북부(與安街)로 이주했다. 패전 5일 전 탈출하여 안동(安東, 지금의 단둥丹東)까지 왔다가 발이 묶여 1946년 10월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1962년 도쿄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 후 시사통신사 경영부에서 대장성을 담당했다. 1967년 캐나다 오타와, 1968년 워싱턴에서 근무했으며, 1972년 귀국 이후 일본은행, 경단련, 외무성, 통산성 등을 담당했다. 현재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1983년에 출판한 『성모병원의 친구들(聖母病院の友だち)』(新潮社)로 일본에세이클럽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만주, 소국민의 전기(?州, 小?民の?記)』(新潮社), 『죽음을 지켜보는 마음(死を看取るこころ)』(講談社) 등이 있다.
역자 : 장윤선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일본문화사와 미술사를 전공했다. 저서로 『도쿄 미술관 산책』, 역서로 『아웃사이더 아트』, 『책벌레 이야기』, 『그림 속 고양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죽은 자들의 웅성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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