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조완선 장편소설 『코뿔소를 보여주마』. 어느 날 공안부 검사 출신의 늙은 변호사 장기국이 실종되고 알몸의 그를 담은 엽기적인 동영상이 배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육 척이 넘는 거구에 낚시광, 후배 수사관들을 잘 챙겨주는 잔정 많은 베테랑 경찰 반장 두식은 이 사건이 단순한 실종사건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안양 여대생 살인사건을 해결한 범죄심리학 교수 수연과 수사팀을 이뤄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여기에 이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검사 준혁과 구린 냄새를 맡는 데 선수인 수도일보 8년차 기자 형진이 합류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는데….
저자: 조완선
인천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에 건국대, 단국대, 영남대, 관동대 등 전국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반달곰은 없다」가 당선되어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교양 문화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장르 문학과 본격 문학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을 받았다. ‘일본 안국사 초조대장경 도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천년을 훔치다』에 이어 조선 최고의 예언서를 다룬 『비취록』을 발표해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비운의 천재 허균과 민중의 영웅 홍길동의 만남을 상상력으로 풀어낸 『걸작의 탄생』으로 제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을 수상했다.
목차
프롤로그 … 009
실종 … 013
미궁의 늪 속으로 … 073
죽음을 기억하라 … 165
유토피아는 없다 … 257
코뿔소는 뿔이 하나다 … 367
에필로그 … 459
작가의 말 … 465
책 속으로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돌이켜보니 불길한 전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이 섬뜩한 불씨가 야금야금 모여들어 불벼락을 내릴 줄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 빈틈을 찾으려고 석 달 가까이 눈에 불을 켜고 쏘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매번 헛손질이었다. 그 후 내내 원인을 알 수 없는 살의와 맞섰다. 그들을 감당하기에는 무리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으로 맞불을 놓았다. 패배를 인정하기에는 너무 일렀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기에는 너무 늦었다.
- 본문 10페이지
카메라는 서너 발치 뒤로 물러나 백민찬 앞에 놓인 물체에 앵글을 맞추었다. 양팔저울이었다. 가운데 추를 중심으로 양옆에 접시가 놓여 있었다. 한쪽 접시에는 붉은 고깃덩이가, 다른 접시 위에는 하얀 깃털이 놓여 있었다. 저울은 어느 곳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평행을 유지했다. 이윽고 백민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저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저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카메라는 백민찬의 무표정한 얼굴과 양팔저울을 번갈아 비추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본문 166페이지
무시무시한 고문의 맛, 고문의 발명…… 이 영화에는 아누비스라는 아이디로 온 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화는 고문기술자에게 초점이 잡혀 있지만, 고문을 당하는 자의 고통도 뼛속 깊숙이 느낄 수 있었다. 먹잇감을 다루는 그의 몸짓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험한 발명’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압권은 고문기술자의 대화 내용이었다. 고문기술자는 피투성이의 얼굴에 깃털을 들이대고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이게 뭔 줄 아나? 깃털이지. 이 깃털로 말이야, 자네 심장을 꺼내서 저울에 달면 어떤 게 더 무거울 것 같나? 하하하.”
- 본문 252페이지
그는 왜 이번 사건을 소설로 남기려고 한 것일까? 「코뿔소」가 그랬고, 오교수가 찾아낸「코뿔소를 위하여」가 그랬다. 그의 소설은 한 편의 각본처럼 치밀하게 그려졌다. 소설을 먼저 쓴 후 소설에 나타난 대로 행동에 옮겼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윤수의 다음 소설이 있다면, 이번엔 권영욱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결코 허튼 추측이 아니었다. 두 번에 걸친 그들의 행로가 그런 추측을 이끌어냈다.
- 본문 377페이지
두식은 탁자 위에 있는 단체사진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들 뒤에 바위로 만든 암문이 마치 지옥의 문을 연상시켰다. 그들 스스로 영혼의 조련사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사진 속의 얼굴들은 하나같이 먼저 간 영혼을 품고 있었다. 넉넉히 품고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 본문 464페이지
출판사 서평
나라가 우리를 죽였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추리소설계에 돌풍을 몰고 온
조완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이 소설이야말로 진정한 ‘복수 문학’이다!
한국 현대사의 광기와 폭력 속에 상처 입은 존재들의
역사적 복수를 다룬 최고의 화제작!
충격적인 소재,
치밀한 구성과 경탄할 만한 흡인력
송곳 같은 문장으로 파고드는 그날의 진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교양 문화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장르 문학과 본격 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받은 조완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출간 전부터 “경탄할 만한 흡인력” “놀라운 추리 기법” “생생한 리얼리티”라는 평을 받으며 영화화 판권 문의가 쇄도한 작품으로, 1986년 공안 정국 당시 일어난 ‘샛별회 사건’과 그로부터 26년 뒤인 2012년에 벌어지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복수극을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송곳 같은 문장으로 빚어낸 소설이다.
“그날 이후 시계추는 멈춰 있었다.
1986년 4월에서 2012년 9월 현재까지, 그들에겐 언제나 한결같은 시간이었다.”
…
시간이라는 것, 뜨내기 바람처럼 마냥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저 어둡고 음습한 날의 기억이 멈춰 있는 시간을 불러냈다. 불러내서, 한바탕 살풀이 굿판을 벌였다.
그들이 남긴 소설과 영화, 그리고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시간은 기억하고 몸부림치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용서나 화해는 그다음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26년 전의 고문, 의문의 죽음…
마침내 시작된 복수!
“살인사건에는 시효가 있지만, 복수에는 시효가 없다.”
어느 날 공안부 검사 출신의 늙은 변호사 장기국이 실종되고 알몸의 그를 담은 엽기적인 동영상이 배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육 척이 넘는 거구에 낚시광, 후배 수사관들을 잘 챙겨주는 잔정 많은 베테랑 경찰 반장 두식은 이 사건이 단순한 실종사건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안양 여대생 살인사건을 해결한 범죄심리학 교수 수연과 수사팀을 이뤄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여기에 이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검사 준혁과 구린 냄새를 맡는 데 선수인 수도일보 8년차 기자 형진이 합류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장기국을 납치한 범인은 지옥의 신을 뜻하는 ‘카론’이라는 아이디로 동영상을 보내고,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백성이다. … 권력을 가진 자들은 백성들을 모질게 부리기만 할 뿐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박지원의 『허생전』을 인용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
뒤이어 진보 인사의 정치 생활에 치명상을 입히기로 유명한 보수 신문의 유력 시사평론가 백민찬이 실종되는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은 이집트 사자死者의 신을 뜻하는 ‘아누비스’라는 아이디로 “고문을 하거나 고문을 지시하는 자에게 고문의 무시무시한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온다.
“그들은 뛰어난 전사였고, 과묵한 저승사자였으며, 냉철한 심판관이었다.”
- 본문 중에서
실종 피해자들의 면면을 살피던 수사팀은 범인이 한 명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이내 사건의 실마리가 1986년 공안 정국 당시 반국가 단체를 결성했다는 혐의로 지목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세 명의 피해자와 관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전 그들의 행동이 단순한 복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그들은 청소부가 아닐까요? 이 땅의 쓰레기들을 쓸어담는 청소부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거예요.”
- 본문 중에서
사건을 캐면 캘수록 두식, 수연, 준혁은 저마다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노점상인이었던 아버지가 사복경찰 백골단의 곤봉에 맞아 죽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두식,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대학 시절 가슴 깊이 사랑했던 황 선배의 죽음을 기억하는 수연, 그리고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과 어머니의 자살로 외롭게 친척집을 떠돌며 살았던 준혁.
“복수는 정의를 빙자해 짜릿한 전율을 원하는 대중의 금지된 욕망”일 뿐이라고 냉소했던 이성적인 범죄심리학자 수연조차 1980년대 일어난 용공 조작 사건들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잔혹한 고문 사실을 목도하고 혀를 내두르면서 점점 범인들의 복수에 동화되어 간다. 여기에 범인들의 조력자로 추정되는 비밀스러운 인물 ‘비오 신부’가 등장하고, 범인들이 남긴 단편소설 「코뿔소」 연작이 발견되면서 수사팀은 점점 미궁의 늪에 빠지는데…….
“코뿔소는 태어나자마자 뿔이 자라기 시작한다. 코뿔소의 뿔은 죽기 전까지 자라는 걸 멈추지 않는다. 싸우다가 부러져도 다시 돋아나 평생을 자란다. 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는다. 코뿔소는 새끼든 어미든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
- 본문 중에서
‘코뿔소 신드롬’의 장대한 서막이 시작되었다
복수극의 짜릿한 카타르시스 끝에 독자를 맞이하는 것은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의 광기와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들의 면면, 그리고 이들의 울분과 분노가 코뿔소의 뿔처럼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채 드러나지 않은 1980년대 그날들의 추악한 비밀이 여전히 구린 냄새를 풍기고, 그 아래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입막음 당한 죄 없는 시민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래서 범인들의 ‘복수’는 정의로운 ‘진실 찾기’의 다른 이름이 된다. 장대한 진혼곡이 울려 퍼지는 광장에서 진실은 촛불처럼 끊임없이 타오른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이 시대에 우리가 찾아 헤매던 진정한 ‘복수 문학’이자 ‘코뿔소 신드롬’의 장대한 서막이라 할 수 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들의 몸부림은 가히 결사적이다. 이삼십 년 후, 또 이런 진실을 밝히려는 전사들이 봉기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침묵 당하는 모든 진실은 독이 된다.’ 니체의 명언이 가슴에 팍팍 꽂히는 봄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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