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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시기- 남인 숙청을 주도한 인물]김익훈(金益勳)

Bawoo 2021. 5. 1. 22:00

김익훈[金益勳, 1619년(광해군 11) ~ 1689년 3월 11일(숙종 15)]은 충청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낸 조선의 외척이며 문신이다.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의 종조부이다. 본관은 광산, 자(字)는 무숙(懋叔)이고 호는 광남(光南)이다.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부총관 등을 거쳐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고 보사공신 2등으로 광남군(光南君)에 봉군되었다. 서인 중진이자 척신 계열의 정치인으로 남인을 공격하였으며, 1680년(숙종 6) 복창군·복선군(福善君)·복평군(福平君) 등이 허견(許堅)과 모역을 꾀한다는 고변으로 경신대출척을 일으켜 김석주와 더불어 남인들을 몰아내는 데 적극 가담하였다. 허견의 비리와 부패행위 정보를 입수하여 사건을 확대, 숙종의 외당숙 김석주와 함께 역모 사건을 날조하여 남인들을 일망 타진하려다가 서인이 노론소론으로 분당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김장생의 손자이자 김집의 조카이며, 송시열의 문인이다.

김익훈의 묘소[경기 광주시 퇴촌면 무수리]

 

 

목차

음보로 의금부도사가 되고, 현종 때 사복시첨정·수원부사 등을 지낸 김익훈은 조카인 만기의 딸이 숙종비였으므로, 숙종이 즉위한 뒤에 어영대장 등 군권의 요직을 맡았다. 1682년 김석주와 함께 남인의 허새·허영·유명견 등으로 하여금 반역하도록 계략을 꾸며 남인을 뿌리 뽑으려 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자 공신호를 빼앗기고 강계에 유배되었다가,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죄명으로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죽었다.

서인으로 경신대출척을 일으키는 데 적극 참여했다. 본관은 광산. 자는 무숙(懋叔), 호는 광남(光南). 할아버지는 장생(長生)이며, 아버지는 참판 반(槃), 어머니는 첨중추 김진려(金進礪)의 딸이다.

음보로 의금부도사가 되고, 현종 때 사복시첨정·수원부사 등을 지냈다. 조카인 만기의 딸이 숙종비였으므로, 숙종이 즉위한 뒤에 어영대장 등 군권의 요직을 맡았다. 1680년(숙종 6) 복창군(福昌君)·복희군·복평군(福平君) 등이 허견(許堅)과 모역을 꾀한다는 고변으로 경신대출척을 일으켜 김석주(金錫胄)와 더불어 남인들을 몰아내는 데 주동 역할을 했다(→ 삼복의 옥). 그 공으로 보사공신 2등에 광남군에 봉해졌다.

1682년 김석주(金錫胄)와 함께 남인의 허새(許璽)·허영(許瑛)·유명견 등으로 하여금 반역하도록 계략을 꾸며 남인을 뿌리뽑으려 했다. 그러나 서인 내부의 소장파인 한태동·조지겸 등이 이를 반대함으로써, 노론과 소론이 분열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자 공신호를 빼앗기고 강계에 유배되었다가,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죄명으로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다음백과]

 

 

[정보] 책:대한민국 징비록

저자 박종인 | 와이즈맵 | 2019.10.5.

류성룡의 《징비록》은 미래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하기 위해 처참했던 임진왜란의 상처를 돌이켜보며 잘못을 징계하고자 쓴 책이다. 『대한민국 징비록』은 21세기의 징비록으로, 우리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