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도서관 ♣/- 역사, 정치

도해 타이완사-선사시대부터 차이잉원 시대까지: 궈팅위, 왕핀한 외

Bawoo 2022. 1. 10. 19:16

도해 타이완사:저자 궈팅위, 왕핀한 외 | 역자 신효정 외 | 글항아리 | 2021.9.28.

[소감] 대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이 우리나라보다 15년이나 더 긴 50년(1895년~1945년)이나 되는데도 친일성향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알고 나서 아닌가 싶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때문에 그 이전 역사에 대해 읽는 건 일부러 피했다. 굳이 그 역사까지 깊이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그런데 이 책에서 내가 가진 의문에 직접 답하는 내용은 없었다. 일본의 대만 식민통치방식은 우리나라와 거의 같았던 거로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짐작이 가능한 내용은 있었다. 대만은 우리나라처럼 독립된 국가가 아닌 중국의 일부여서 주인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한 데다가 본토에서 쫓겨온 장개석 국민당 정부의 독재통치 시절이 일본 식민통치 시절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는 점. 그저 통치자만 달라졌을 뿐이었다는 점 때문 아닐까 싶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일본의 식민통치가 발전을 가져왔다는 내용은 없지만 대만도 우리나라처럼 일제가 만든 기반시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기에 이를 활용할 수 있었던 좋은 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가 남긴 공업시설이 대부분 북에 있었고 이 시설도 소련이 가져가고 전쟁 중에 파괴되어 활용이 불가능했지만 대만은 고스란히 남았을 테니까. 거기에다가 장개석 정부에 실망하여 대만을 포기했던 미국이 우리나라 전쟁-6. 25-을 계기로 보호하기로 계획을 바꾸면서 적지 않은 금액 ㅡ15억 불 ㅡ 이 지원되었고 장개석 정부는 비록 독재정치를 했을 망정 이 원조를 잘 활용하여 경제를 발전시켰는데 여기에 일본의 기술 이전이 큰 역할을 했다고 이 책은 기술하고 있다. 일본에서 원자재 및 기술을 들여와 제품을 생산해서 이를 미국에 수출하는 삼각무역 시스템이 작동하여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호의적이 되었을 수 있겠다는 추측을 해봤다.  또 대만은 긴 독재시대- 계엄기간이 87년까지 무려 40여 년이다 ㅡ를 장제스의 아들 장경국이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의 길을 연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ㅡ 장융의 "아이링칭링메이링"이란 책에 그리 나온다. ㅡ 실상은 그 뒤로도 오랜 기간 독재에 준하는 정치체제가 계속되었던 것으로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대만은 묘하게도 우리나라와 같은 길 ㅡ피식민 지배, 독재를 통한 경제발전 ㅡ 을 걸어왔는데 이의 배후에는 미국, 일본이 작용한 것까지도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에 대한 감정이 우리나라는 친일보다는 반일감정이 더 강한 편인데 이는 대만과 달리 긴 역사 기간동안 피해를 입은 때문 아닐까 싶다. 삼국 시대부터 시작해서 고려말, 조선 초 왜구 침탈, 임진왜란 그리고 식민통치까지. 내가 알고자 했던 대만의 친일성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대만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할 만한 양서이다. 아쉬운 점은 활자 크기가 작아 나 같은 노년층은 읽는데 좀 힘겹다는 점이었다. 지질이 고급인데 이를 좀 낮추고 활자 크기를 크게 했으면 오히려 제작비 면에서 절약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2022. 01. 12

 

[덧붙임] 우리나라가 대만과 달리 일본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멀리 16세기 말 임진왜란(1592년~ 1598년)은 제쳐주고라도 35년간의 식민통치를 통해 남북 분단 나아가 한국전쟁의 원인을 일본이 제공한 때문 아닐까 싶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전쟁을 치르는 3년(1950년~1953년) 동안 전쟁 특수를 누려 중일,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초토화되었던 자국 경제를 다시 일으키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에  불행을 안겨주면서 자국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된 억세게 운이 좋은 나라인 것이다. 이 모두 식민통치를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든 우리나라 지도층의 잘못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반일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는가. 만약에 대만도 우리나라처럼 일본에게 수백 년에 걸쳐 핍박을 받았다면? 장담하건대 절대로 친일 감정이 생길 리 없을 것이다. 

 

출판사서평:인터넷 교보문고 [자세한 서평은 책제목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한때 공산 중국과 대조되어 ‘자유중국’이라 불렸던 나라, 대사관이 아니라 영사관(대표부)을 두는 나라, 한국 젊은 층 사이에 여행 붐을 일으킨 나라, 중국의 활기와 일본의 깔끔함을 겸비한 나라, 작지만 자연 풍광이 볼만한 나라, 반도체로 한국과 경쟁하는 나라, 미국을 뒷배로 시진핑 중국과 각을 세우며 일촉즉발의 국제정치적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나라.
바로 타이완이다. 인구가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토는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에 불과하지만, 타이완의 존재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실현했으며, 해커 출신의 30대 여성을 디지털 특임장관으로 임명한 나라, 해바라기 운동 등으로 시민민주주의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인 타이완은 미·중 패권 경쟁이 남중국해로 옮겨지면서 미국 중심 세계질서의 리트머스 시험지로도 점점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타이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고 보면 한국과 비슷한 현대사 경로를 밟아온 타이완은 일본 식민지를 겪었으며, 독재정부의 압권을 경험하며 저항적인 자생적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 갖는 태도가 한국과는 다르고, 여러 측면에서 비교해볼 점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타이완의 역사와 현실을 한권으로 꿴 책이 출간되었다. 타이완의 젊은 역사학자들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한눈에 읽을 수 있게 풍부한 도판과 함께 해설한 『도해 타이완사』가 그것이다. 2016년 출간돼 타이완 문화부 ‘우수 추천 도서’로 선정된 이 책은 이데올로기로 인해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타이완 역사의 베일을 벗기고 그 실체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2016년은 타이완에서 의미가 남다른 해다. 오랜 국민당 집권에서 벗어나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총통이 되면서 새 시대가 열렸다. 이해에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청년을 위한 새로운 타이완 역사 강의’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출간된 『도해 타이완사』는 명실상부 새 시대에 발맞춰 타이완의 역사를 새롭게 파헤치고 해석한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부터 특정 이데올로기에 편중되는 것을 경계했으며, 역사적 사건의 나열보다는 그 안에 숨은 맥락을 공정하게 밝히는 데 주안을 두었다. 이번에 한국에 번역된 이 책은 그간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던 타이완의 역사를 대중적으로 폭넓게 다룬 첫 번째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채로운 도판과 한눈에 알아보는 설명
이 책은 통사다. 선사시대부터 수천 년의 역사를 한 권에 녹여낼 수 있었던 비결은 사료, 지도, 그림을 시각적 정보로 인포그래픽화 하여 구현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대인 저자들은 지도나 사진뿐만 아니라 주요 시대, 사건, 인물, 장소를 키워드화 하여 따로 정리함으로써 타이완 역사를 폭넓게 구석구석 정리하고, 역사 상식을 유기적으로 축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섬, 포르모사
타이완은 16세기 중반 우연히 지나가던 포르투갈 선원이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일랴 포르모사Ilha Formosa’라고 외친 경우를 제외하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다.
15세기 무렵 베네치아공화국과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전쟁으로 육상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서양은 이를 대체할 루트를 찾아야 했다. 원거리 항해에 관한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던 유럽은 그렇게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한편 당시 명나라는 일곱 차례에 걸친 대원정을 떠날 정도로 충분히 원거리 항해가 가능했다. 하지만 북방의 강적인 몽골과 대적하는 데 주력해야 했기에 항해 금지령인 해금 정책을 내릴 정도로 정작 타이완에는 눈길을 줄 틈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훗날 명나라의 조정이 해이해지면서 해금 정책도 덩달아 유명무실해지면서 일본의 해적과 상인들이 남쪽 연안 지역에서 무역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타이완은 명나라가 사려 깊게 보살핀 섬은 아니었지만 동시에 그런 이유로 많은 국가가 거쳐갈 수 있는 섬이 된 것이다. 태평양 가운데의 외딴섬에 불과했던 타이완은 해상 각축의 시대에 자연스럽게 동서양 열강의 주요 지점으로 부상하게 된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스페인의 상업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1662년까지 39년간 타이완을 통치한다. 짧은 통치기간 동안 네덜란드가 남기고 간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도 타이완 곳곳에서 재배되는 벼와 사탕수수가 대표적인 지배의 흔적이다.

3년에 한 번 반란, 5년에 한 번 대란
청나라가 타이완을 통치하는 212년간 타이완에서는 크고 작은 난이 154차례나 일어났다. 3년에 한 번 반란이 일어나고, 5년에 한 번 대란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혼란의 시기였다. 베이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다 거친 해류와 풍랑으로 인해 접근성마저 떨어져 청나라에게 타이완은 변방일 뿐이었다. 중앙 조정의 시야 밖에 있던 타이완의 반란은 이익 집단 간의 다툼과 반정부 대립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를 한족의 반청복명反淸復明 행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부분이 정부의 부적절한 조치에 불만을 품고 민란을 일으키는 경우였으며 또한 모든 민란이 청나라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대규모 민란으로 ‘의민義民(민란을 평정하는 데 도움을 준 자들의 신분)’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의민의 대표 주자는 객가인(고향을 떠나 이주한 한족을 지칭)인데, 한편 객가인을 반청복명을 위한 정의로운 행동을 한 집단, 혹은 청나라 정부를 도와 민란을 평정한 의롭지 못한 백성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객가인은 민난인에 비해 인구가 적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불리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견해는 적절치 않다. 이들은 안팎으로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단결력을 보여주며 강한 생존본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부의 부름에 묵묵히 따르면서 정부로부터 의민이라는 봉호를 하사받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 끝에 ‘의민=객가인’이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된 것이다.

이주민과 개항의 시대
17세기 후반부터 중국 남부의 푸젠과 광둥성의 급격한 인구 증가로 그��의 많은 사람들이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타이완의 기후는 논농사에 적합했기 때문에 이주민들은 18세기부터 논농사를 지었다. 그러면서 더불어 쌀 생산량이 크게 증가해 인구도 늘었다.
청나라 시기에 타이완은 농경지가 개간되고 항구의 운송 네트워크도 정비되어 농업 자재와 일용품을 교환하는 체제가 형성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대외 무역이 발달했다면 청나라 시대에는 청나라 대륙 지역이 주요 무역 대상으로 바뀌면서 타이완 해협을 왕래하는 화물 범선들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타이완에 여러 항구가 개발되었는데 예를 들면 하천항인 중부의 루강과 북부의 멍자?? 인근 지역에서는 쌀ㆍ장뇌ㆍ찻잎이 생산되어 ‘이푸얼루싼멍자一府二鹿三??’(1푸청, 2루강, 3멍자) 라 불리는 항구 거리가 생겨났다. 뒤이어 1842년 청나라가 무역항을 개방하면서 차, 설탕, 장뇌(녹나무를 증류하여 얻는 고체 물질로서 화약과 방충제의 원료)가 타이완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근현대 최대의 비극
이 책은 1장부터 3장까지 각각 ‘선사 시대’ ‘해상 각축의 시대’ ‘청나라 시대’로 이뤄져 있다. 뒤이어 4, 5장에서는 1895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 이후의 일본 시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차이잉원 시대를 전후 시대로 구성해 각 장으로 나눴다. 우리나라의 4ㆍ3 사건과 비슷하다고 보기도 하는 타이완의 2ㆍ28 사건은 타이완의 근현대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만끽하기도 전에 국민정부의 횡포로 타이완의 사회가 극심하게 곪은 것이다. 실제로 일본과 중국을 짐승에 빗대 ‘개가 지나가니 돼지가 왔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는데, 개는 사나워도 대문을 지키는데 돼지는 먹기만 좋아할 뿐 게으르다는 말이다. 그만큼 국민정부의 외성인과 본래 타이완에서 살고 있던 타이완인과의 갈등이 극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으로 타이완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하지만 중국 내부의 국공내전은 끝나지 않았고 이로 인해 국민정부는 타이완의 쌀을 걷어 타이완의 물가가 폭등했다. 또한 관료의 부정부패, 형편없는 행정 능력, 외성인(중국에서 타이완 섬으로 이주한 사람)의 본성인 차별 등의 문제로 아수라장인 타이완이었다. 결국 이 모든 갈등이 1947년 2월 28일, 2ㆍ28 사건으로 터진 것이다.
2월 27일 타이베이시 난징시로南京西路 톈마天馬 찻집 앞에서 담배를 판매하던 여성 린장마이林江邁의 폭력적인 단속이 2ㆍ28 사건의 도화선이다. 타이완성 전매국에 소속된 단속원들이 린장마이를 구타했을 뿐만 아니라 총을 쏘며 시민이 사망하게 되자 사람들이 격분한 것이다. 잇달아 벌어진 시민들의 행진에 경비병들이 총을 발포했고 그러면서 더 큰 시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뒤이어 무장한 군대와 경찰의 무력 진압이 시작됐고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타이완 현대사의 최대 비극 사건이 된 것이다.

일본의 식민 통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이러한 일본의 행정을 치적으로 평가하면서 그들의 식민 통치가 타이완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노력은 타이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식민 통치가 잘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식민지의 자원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_182쪽

그동안 한국에서 타이완에 대한 역사는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기 이전에는 타이완 여행 열풍이 불 정도로 친근한 국가였지만 정작 타이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도해 타이완사』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친절한 역사서이자 또 가장 객관적인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백, 수십 년이 지난 현재 타이완 내에서 어떤 견해가 혼재하는지까지 함께 설명해주면서 교과서적인 차원을 뛰어넘는 사유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