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늘 다니는 동네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발견하여 읽은 단편소설 모음집. 원래 단편소설은 호흡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는 탓에 잘 안 읽는 편인데 제목에 끌려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이젠 글자 크기까지 신경써서 책을 골라야 하는 나이인지라 당연히 글자 크기도 고려했다. 읽기 부담스러운 크기라면 가차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나이. ㅠㅠ.
읽으면서 빌려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보다는 젊으나 이젠 노년에 접어들었을 작가가 어떤 소재를 선택해서 썼을까가 궁금했는데 친구한테 퇴직금 사기를 당하고 삶이 망가진 후 코로나에 걸려 죽고마는 어두운 내용인 "목련 꽃 필 무렵"을 빼면 전체적으로 읽기 편하면서 가슴에 와닿는 내용이 많아 좋았다. 특히 작가 본인의 이야기일 "지난 여름날의 환타지"는 자신의 일에 긍정적인 두 여인- 이사 도우미를 하며 자식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 해 일하는 몽골 여인, 가사 도우미 일에 보람을 느끼는 여인-과 작가 본인의 삶을 대비한 내용인데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2022. 3. 5]
책소개:인터넷 교보문고
이 소설은
그동안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성찰을 계속해온 강명희 소설가가 세 번째로 펴내는 작품집이다. 『65세』에는 떠난 여인을 찾아다니는 중장비 기사, 어머니 덕분에 살면서도 어머니를 칼로 찌른 아들, 베이비부머 맏세대 65세 여성, 헤어졌다 다시 합친 노년의 부부, 구두 수선공, 살림 도우미 여자와 이삿짐 도우미 몽골 언니, 70대 택시기사와 그의 형, 히말라야 현지 가이드 만루와 운동권 친구, 유고집으로 남은 소설가 등의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안의 타인이자 소외된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는 누구는 열악한 노동과 주거환경으로, 누구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서도 배제된 불안한 삶을 산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거나,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바닥을 보아버린 이도 있다.
이들의 삶은 단순한 이해와 분노로 나타나기에는 말할 것이 무수히 남겨져 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그들에 대한 충분한 사유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아픈 현장을 통해 우리가 경계하던 대상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65세』이다. 그동안 타인의 고통에 천착해온 강명희 작가는 이 소설에서 한층 불행하고 다양해진 그들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읽어주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 위치를 확인시키고 있다.
「첫 추위」의 중장비 기사는 서영이와 연애할 때는 세상의 주인인 줄 알았던 자신이 버려진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무리 사랑하고 궁합이 좋다고 해도 스펙 앞에서 나는 그저 구질구질하고 초라한 루저일 뿐’이라는 각성을 한다. 「긴 하루」의 아들은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그동안 살아온 게 모두 어머니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기에 ‘막상 어머니가 가셨다는 생각을 하자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두렵고’ 점점 더 서러워진다. 「65세」의 여인은 ‘어느 날 할머니가 사라졌듯이 아버지가 사라지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지. 그리고 어느 날 나도 사라지겠지’ 생각하면서도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65세의 노년을 시작하는 날 ‘나 역시 평생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할머니인 이 자리를 퇴직할 것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 살 것이다.’ 다짐하면서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노년을 기대한다. 「그녀가 세상을 건너는 법」의 여인은 헤어졌던 남편과 다시 만나면서 자신이 예쁘지 않고 많이 배우지도 않았고 음치에 몸치에 약에 쓰려고 찾아봐도 재주가 없지만 ‘떠난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한 밥상. 이것을 무기로’ 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기로 한다. 「아픈 손가락」의 구두 수선공은 자신은 시골 농가 주택에 딸린 조립식 방에 살고, 딸은 도시의 변두리 연립주택 지하방에서 살아가는 것이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은 사람들의 숙명이라 생각하면서도 ‘부엌에서 아내의 도마질하는 소리가 ���리고, 딸은 방에서 공부하고, 자신은 구두 가게 안에서 신나게 구두를 만드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지난 여름날의 판타지」에서 소설가는 놀러 가는 것보다 하찮게 여겨지는 소설 쓰기를 접고 손자를 돌보며 만난 살림 도우미와 이사 도우미를 통해 비록 막일이지만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 받는다. 그러면서 소설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감동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살림을 하든지, 이삿짐을 나르든지, 소설을 쓰든지, 그 속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목련꽃 필 무렵」의 오갈 데 없어 시골집에 세든 70대 택시기사의 형은 동생이 밖에서 걸어 잠근 방문을 열지 못하고 코로나19로 사망하지만, 감금되었기에 ‘철저한 거리두기로 대면자 없는’ 확진자가 된다. 「랑탕에서 너를 보내다」의 화자는 ‘소설도 정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슬프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라’고 한 친구를 히말라야의 랑탕 꼭대기에서 떠나보낸다. 「갓길에서 부르는 노래2」에서 삶이 막막해 결국 죽어야 해결되는 소설을 쓰다 죽은 소설가의 유고집을 읽으면서 ‘대신 K샘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선하잖아요. 뭘 탐하여 쟁취하고자 하지 않고 묵묵히 순응하는 선한 사람들’이라고 주고받는 사람들은 결국 산 자들이다.
이처럼 소설 『65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잠재된 타인의 고통을 깨닫는 과정과 운명의 동질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 과정은 스스로에 대해 상상했던 이미지를 벗고 자신이 서있는 현실을 발견하는 과정과도 동일하다. 그래서 고통에 대해 스스로를 대상화시키는 소설 언어를 통해 각성과 성찰이 함께 이루어진다. 타인의 주변화된 정체성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 그래서 소설 『65세』는 강명희 작가가 타인의 고통과 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고유한 언어이면서, 이 세상 모든 65세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책 속으로
어쩜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삶의 한 방식이지 않을까. 어차피 그녀를 잊지는 못할 것이고, 아버지처럼 나를 파괴하지도 못할 것이라면, 도둑처럼 남의 방을 조금 빼앗아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이렇게 사는 것이 그녀와 나의 운명이라면 거역하지 않겠다. 김 씨 아저씨 말처럼 독하게 잊으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방법이 없으면 독하게 죄를 지으면서라도 살아가리라. (「첫 추위」 중에서)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오래된 사진첩이 보인다. 아들 돌 때 찍은 사진이다. 돌잔치에 온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그 옆에 할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기쁜 얼굴로 앉아 있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나와 아들 4대가 앉아 있다. 스마트 폰에서 지난해 손녀 돌 때 찍은 사진을 꺼내 본다. 할머니가 아버지로 바뀌었을 뿐, 아버지와 나와 아들과 손녀 4대의 사진이 똑같다. 할머니가 안 계시니 아버지가 진급을 해 그 자리에 올랐다. 손녀가 나를 밀어 올려 아버지 자리로 진급시켰다. 어느 날 할머니가 사라졌듯이 아버지가 사라지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지. 그리고 어느 날 나도 사라지겠지. 아버지 얼굴 위에 내 얼굴이 겹친다.(「65세」 중에서)
밭 맞은편에는 노부부가 사는 집이 있다. 화단에는 봄부터 온갖 꽃들이 피어났다. 민들레부터 할미꽃 같은 저절로 나는 풀꽃도 화단에 심어 놓았다. 민들레가 피면 겨우내 잠자고 있던 집이 노랑 띠를 두르고 봄맞이를 한다. 그 뒤를 이어 할미꽃이 피고 샤스타데이지가 피고 수레국화와 초롱꽃이 피었다. 얼마 전부터는 백일홍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세상을 건너는 법」 중에서)
아드라. 네가 떠난 다음 에미는 너를 이즌 날이 하루도 업섯다. 에미가 밥 할 때마다 네가 머글 쌀을 한 웅큼씩 모아 두엇다. 에미가 못슬 병에 걸리기 전까지 모응 거시니 사십녀니 되가는구나. 네일 병워네 드러가려고 에미가 이거슬 하르종일 동여맷다.
너는 평새앵 내게 아픈 손가락이엇다. 그레서 못슬병에 걸리지 안안나 십다.
잘 사라라. 사랑한다. 아드라. (「아픈 손가락」 중에서)
살림을 하든지, 이삿짐을 나르든지, 소설을 쓰든지, 그 속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 진정성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그 사람의 일은 성공한 것이다. 이 여름에 도우미 여자와 몽골 언니는 내게 그 큰 것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두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내 소설쓰기를 놀러 다니는 것만도 못하다고 비하하고, 손주들 보는 일을 불평하며 이 뜨거운 여름을 괴롭고 힘겹게 났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내 스승이다. 이 여름에 만난 두 여자에게 감사한다. (「지난 여름날의 판타지」 중에서)
“난 이미 중학교 때 내 꿈을 펼쳤어. 정치… 그거 별거 아냐. 슬프고 외롭고 힘들고 소외당한 사람들 편에 서주는 거야. 그 사람들 편에 서서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정치야. 친구들이 나를 그렇게 추억해 주잖아. 나는 이미 중학교 때 작으나마 내 꿈을 이루었어. 난 괜찮아. 그러니 울지 마.”
진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설도 정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슬프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소설이고 문학이고 예술이야. 넌 그런 소설을 써.”(「랑탕에서 너를 보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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