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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편소설] 걸똘마니들:김경숙

Bawoo 2024. 1. 28. 17:51
저자:김경숙
출간:2023.5.26
 

 

[소감] 1948년에 있었던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6명의 걸똘마니-은어로, 밥을 얻어먹는 아이를 이르는 말-를 중심으로 이야기한 작품. 수작이라는 느낌은 안 들었지만 밤을 새워 읽게 만들었을 만큼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구성상으로는 현실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때문에 내 기준으로 수작에서는 제외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일제강점기시절, 제주 동문시장 뒤편 산지천 다리 아래 움막에는 왕초인 광조를 비롯해 쌍둥이 형제인 해미와 남수, 5살짜리 송이 광조의 똘마니 태수와 덕배가 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이다. 해미와 남수는 지역 유지인 조 회장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이에 대한 암시는 이 둘이 동냥을 가면 푸짐하게 음식을 주는데서 나타난다. 그러나 조 회장이 아무리 데릴사위지만 주변의 눈총을 의식해 자식을 제대로 거두지 않는 설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해미와 남수는 자신의 생모를 찾아 어린 송이를 데리고 셋이 목포로 밀항하는데 정작 생모는 만나지 못하고 재력가인 권 할머니를 만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생모 금자를 만나 생활이 조금 어렵더라도  생모 품 안에서 성장하는 게 현실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동생 해미는 성장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 눈을 뜨는데 동기가 자신들의 은인인 권 할머니가 당시 권세를 쥐고 있는 계층에게 핍박을 받는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정이어서 이는 딱히  뭐라고 하기가 어렵다.

 

왕초 광조는 조 회장의 기사 노릇을 하면서 조 회장의 재산을 빼돌리는 짓을 하고 똘마니 덕배는 그 밑에서 협조하지만 조 회장 편에 서서 해미를 돕는다. 태수는 서북청년단원이 되어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자신의 아이인지도 모를 갓 태어난 아이와 생모 질례를 죽인다. 태수는 북에서 내려온 것도 아닌데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벗어날 기회를 공산세력 때려잡는 서북청년단에 가입함으로써 잡은 것이다. 이 태수는 해미에게 총상을 당하며 팔 한쪽을 잃는데 그 상태로 계속 승승장구하며 지내다가 병으로 죽은 뒤에는 국립묘지에 묻힌다. 이는 친일청산이 안 되고 반공, 친일 세력이 주류가 된 우리 남한의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이해했다.

이 태수가 작품의 서두와 말미에 등장하는 "이강"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이자 금례의 남편인데 여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여자 걸똘마니 송이는 성장하여 간호사가 되는데 이 시기에 해미를 만나 아이를 갖게 되고 금례라는 딸을 낳는다. 이야기 서두에 등장하는 이강이라는 아들의 생모. 한편 해미는 남로당에 가입하여 4. 3 사건의 반정부군 측-좌익-에 서있는데 토벌을 당하게 되면서 송이와 딸 금례를 육지로 빼돌리게 되고 이에 협조하는 게 왕초 광조이다. 조건은 모녀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 결국 해미는 모녀를 광조에게 맡기고 자신은 북으로 가는 길을 택하게 되는데 이는 형 남수와 아버지 조 회장의 희생의 댓가이다. 마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장동건이 동생 원빈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설정. 남수는 토벌군의 통역으로 토벌에 가담하면서 동생 해미가 위험에 빠진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이 동생으로 가장하고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 조 회장을 빼돌려 같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건 당시 병원을 경영하던 곽 원장도 희생되는데 그의 손자-곽명식-가 바로 이강과 같은 대학의  동기이다.  곽명식은 할아버지 병원을 물려받아 병원과 민박을 함께 운영하는데 이때 우연히 찾아온 이강을 만나 이강 가족의 사연을 설명해주는 설정이다. 할아버지 곽 원장이 토벌군에게 희생당한 그 이면에는 이강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태수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원망섞인 말로 하면서. 송이의 딸이자 이강의 어머니인 금례가 태수와 결혼하여 이강을 낳게 된 것은 현실에 저항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인데 여기에는 왕초 광조의 어쩔 수 없는 협력이 있었다는 설정이다. 왕초 광조는 조 회장의 전재산을 차지하고 불려나가는데 여기에는 태수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정부 쪽의 실세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덕을 본 것이다.

전형적인 액자소설 형태를 띄고 있는 작품인데 구성상의 무리-위에 언급-가 약간 있으나 작가의 글쓰는 능력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뛰어난 가독성과 4.3 사건의 비극을 다른 작품들과 달리 부모,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걸똘마니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말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했다.   

 

 

[책소개]국가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유린되고 학살된 자들의 처절한 슬픔과 핏빛 역사가 잠들어 있는 제주의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이념의 폭력에 희생된 민중들의 수난과 아픔을 한 가족사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제주에는 기생충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들의 횡포를 좀 자세히 듣고 싶군요.”
편안한 분위기를 틈타 이명철이 화제를 바꾸었다. 해미는 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시작했다.
“지금 제주에는 서북청년단들이 반공이라는 광기로 무장해 내려와 있소. 5월 10일에 있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 활동을 지원하고 군정 실패로 인한 도민들의 불만을 누르기 위해 광기를 부리고 있소. 서북은 경찰의 권력을 등에 업고 죄 없는 민간인들을 끌어다 고문을 하고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소. 도민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소. 서북은…….”
가정이 있는 부녀자와 젊은 처녀들을 노리개로 삼고 있다고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패거리들에게 끌려가던 질레가 생각나서였다. (73쪽)

평화협상이 있은 지 5일째 되던 날 오라리 방화 사건이 터져 협상은 파기되고 말았다. 김익렬과 남수가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해본 결과 경찰과 우익청년단원의 소행임이 명백했지만, 경찰 측이 오라리 방화사건은 무장대 짓이라고 우겼다. 또한, 김익렬의 보고는 전부 거짓이며 공산당과 한패라고까지 모함했다. 김익렬은 분노했다. 선거를 앞둔 미 군정은 사태를 조기 진압하기 위해 잘잘못을 가리지도 않고 사건을 덮어버렸다. 게다가 최고 수뇌 회의를 통해 미국 딘 장군이 강경 진압 토벌 작전으로 방침을 선포해버렸다. 다음 날 김익렬은 해임되고 박진경 중령이 후임에 앉았다. 연대장이 된 박진경은 취임하자마자 무고한 도민까지 희생시켜가며 중산간 마을을 악랄하게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144쪽)

조선은 해방됐어. 우리는 나라를 되찾은 거라고. 난 되찾은 나라를 식민 교육 노예들에게 맡길 수 없어. 지금 섬에는 식민 교육 노예들이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하고 있어. 노부유키가 한 말처럼 되고 있다고. 노부유키의 말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말인지 나는 이곳에서 실감하고 있어. 헐뜯고, 음모하고, 누명 씌우고, 죽이고 있다고…….
형! 날 설득하려 하지 마. 형은 언제나 그랬지. 할머니가 우리 때문에, 아니, 나 때문에 경찰서에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을 때도 형은 지금처럼 말했어. 이럴 때일수록 법을 지키자고,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하자고. 형! 법은 희망이 없어. 약자의 편이 아니니까. 죄인을 잡아야 할 경찰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죽이고 있으니까. 형! 비록 나를 버린 고향이지만 내 고향이 피로 물들고 있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 (207쪽)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국가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유린되고 학살되었던 자들의 처절한 슬픔이 잠들어 있는 제주.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는 격렬한 이념 갈등으로 혼란에 빠졌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민중들과 그들을 탄압하려는 경찰 및 서북청년단의 충돌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김경숙 작가는 폭력과 희생, 가학과 인고, 핏빛 역사로 얼룩졌던 제주의 그 날을 『걸똘마니들』에 불러낸다. 이 장편소설은 이념의 폭력에 희생된 민중들의 수난과 아픔을 한 가족사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동문시장 뒤편 산지천 다리 아래 움막에는 왕초인 광조를 비롯해 쌍둥이 형제인 해미와 남수, 등 굶주린 걸똘마니들이 살고 있다. 쌍둥이가 아홉 살 되던 해, 거부로 알려진 조 회장이 어쩌면 자신들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동문시장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를 찾아 목포로 향한다. 그곳에서 일련의 사건으로 잘못된 권력에 반감을 느낀 해미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훗날 남로당 공작원이 되어 제주에서 무장대 활동에 가담한 해미, 법학과에 진학하다 해미를 돕기 위해 제주 군부대에 자원한 남수, 제주에서 재회한 걸똘마니들. 뒤바뀐 신분과 파괴된 가족. 각자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쌍둥이들을 따라가며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제주 섬의 비극적인 운명이 이 책에 펼쳐진다.
제주4·3사건에 휘말린 한 가족의 증오와 용서, 희생과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한국 현대사의 참혹한 현장을 기록한 비망록과도 같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국가 폭력에 대한 진실을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수난사의 근원과 끝을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