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도서관 ♣/- 문학(文學)

[일본 장편소설] 아버지와 외사촌:이주인 시즈카

Bawoo 2024. 2. 5. 13:09
저자:이주인 시즈카
출간:2011.6.20.
 
 
[소감]  책 속에 책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된 작품. 재일동포 2세가 쓴 작품이라는 데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 그런데 활자 크기가 너무 작아 읽는 걸 포기하려다가 재일동포가 겪은 해방과 한국전쟁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어냈다. 결과, 가족애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강력 추천작까지는 아닐지라도 한번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보도연맹 관련 내용은 번역의 오류인지 잘못되었고 한국전 발발 동기가 남침유도설 쪽-일본전에 쓰려고 다량으로 준비해 놓은 포탄을 소모할 곳으로 한반도를 택했다-을 긍정하는 쪽으로 읽혔다. 책에 관한 자세한 해설은 아래 책소개와 출판사 서평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책소개

한국전쟁 속 재일교포 가족의 감동과 기적의 이야기『아버지와 외삼촌』. 1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가업을 일군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8.15해방과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처남 ‘고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까지 감수하며 밀항선을 타고 전쟁터로 향한 아버지 ‘소지로’의 실제 이야기를, 소지로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집사로 일하던 겐조 씨가 소지로의 아들 다다하루에게 설명하는 액자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외삼촌의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의 강렬했던 삶을 듣게 된 아들이 아버지의 삶을 돌이켜보고 이해하는 감동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이념보다 소중한 건 가족이야.
살아만 있다면 희망을 찾을 수 있어”
『고민하는 힘』의 강상중 도쿄대 교수가 추천한 화제의 도서

<아버지와 외삼촌> 추천평

“가족의 강한 인연과 사랑, 저돌적이고 용맹한 아버지의 모습이 강렬하다.” _강상중 도쿄대 교수
“살아남는다는 것에서 인간의 자긍심이 탄생한다.”_마이니치신문
“아버지의 호탕함,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순수함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_요미우리신문

<아버지와 외삼촌> 도서 소개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입니까?

“아버지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줄곧 가슴속에 존재했습니다. 작품도 제대로 쓸 수 없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아버지는 뛰어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 인생을 이어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혼돈의 시대를 이겨낸 재일교포들의 삶.
불안과 고통에 휩싸인 가족을 하나로 묶는 아버지의 용기와 결단이 펼쳐진다!

소설가, 작사가로 일본의 문화계에서 명성 높은 작가 ‘이주인 시즈카’가 재일교포 1세인 아버지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 『아버지와 외삼촌』을 펴냈다. 강상중 도쿄대 교수는 이 작품을 ‘가족의 강한 인연과 사랑, 저돌적이고 용맹한 아버지의 모습이 강렬하다’고 평가했다.
『아버지와 외삼촌』은 1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가업을 일군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8.15해방과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처남 ‘고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까지 감수하며 밀항선을 타고 전쟁터로 향한 아버지 ‘소지로’의 실제 이야기를, 소지로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집사로 일하던 겐조 씨가 소지로의 아들 다다하루에게 설명하는 액자형식의 소설이다.

일본 세토나이카이의 작은 항구 마을 미타지리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주인공 ‘소지로(윤종래)’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요코와 가족을 일구고 열심히 살아간다.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아 사업을 확대하던 그에게 한국전쟁 발발이라는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온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일본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처가의 이야기이다. 처남 ‘고로(김오덕)’가 마을사람들에게 북한군 첩자라는 의심을 받고 집 마당의 닭장 아래에 파놓은 구덩이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남은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위기 상황인데다, 장인 장모는 쇠약해져서 더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불행한 소식이 전해졌다.
주인공 소지로는 처가 식구들을 구하려고 밀항선을 타고 한국에 간다. 전쟁의 포탄과 포성을 피해 산의 능선을 따라 걷고, 곳곳에 산재한 게릴라의 눈을 피해 달린다. 목숨을 내건 구출 작전이 수식어를 최대한 생략한 간결한 문체로 표현된다. 소지로에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가득한 이념 전쟁은 문제가 아니다. 오직 목표는 살아남아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굳은 의지로 가족을 지켜내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저자 이주인 시즈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재일교포’ 일가의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품의 시대가 특별할 뿐, 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썼을 뿐입니다. 소지로가 갖추고 있는 용기는 어떤 아버지에게도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_일본 요미우리 신문 서평 중에서

이처럼 『아버지와 외삼촌』은 언제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은 아버지의 결단과 의지를 돋보이게 하는 혼란한 시대 상황일 뿐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 살아가는 용기를 주는 『아버지와 외삼촌』은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추천사 & 언론 서평
1. 강상중 도쿄대 교수
2. 요미우리 신문 서평


1. 가족의 강한 인연과 사랑, 저돌적이고 용맹한 아버지 _강상중 도쿄대 교수
엄숙한 느낌을 주면서도 부드러운 한편, 애수마저 깃들여 있는 이주인 시즈카 씨의 작품을 나는 애독해 왔다. 그 이유는, 김윤규(金胤奎. 다치하라 마사아키=立原正秋) 씨의 작풍과 분위기에 이주인 문학을 투영해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의 생각이 상당히 잘못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대는 한국전쟁이 한창인 일본과 한반도. 바다를 건너 위험이 가득한 전쟁터로 혼자 뛰어들어 처남을 구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소지로에게 풍기는 ‘의협심’은 다치하라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아버지’인 소지로의 대사가 정말 멋지다.
“멀기는 무슨. 날씨만 좋으면 (한국에는)하룻밤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국경? 바다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야기는, 그런 소지로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겐조 씨가 소지로가 목숨을 걸고 구출작전을 감행했던 사실을 소지로의 아들 다다하루에게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해운업을 일구며 재산을 구축한 소지로는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 소지로는 과묵하고 결단력이 넘치며 어떤 난관과 고통이 있더라도 나약한 말을 하지 않는, 장기판의 차(車)처럼 저돌적이면서 의리가 강한 남자다. 그런 소지로가 요코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요코는 잇달아 세 명의 딸을 출산하고 마침내 소지로가 그렇게 원하던 아들 다다하루를 임신한다. 부계 중심 가족의 강한 인연이 어머니 요코의 따뜻한 마음과 인내심 강한 언행을 통하여 수채화처럼 강렬한 인상을 작품에 더해준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비극이 가족을 덮친다. 패전 이후의 혼란과 일본에 대한 실망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간 요코의 부모와 남동생 고로에게 처절한 내전의 참화가 밀어닥친 것이다. 특히 외골수이면서 정직한 성격을 갖추고 있는 고로는 남북통일과 민족해방을 주장하는 북한군에 가담하여 대의명분도, 동포애도 없는 가혹한 전쟁터의 실상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그는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탈출하여 구덩이 안에서 1년 이상 숨어 지내는 비참한 상황에 몰린다.
사랑하는 남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는 요코의 마음을 헤아린 소지로는 무모하게도 직접 처남을 구출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전쟁 상황에 전혀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소지로. 무엇이 소지로를 그렇게까지 강한 남자로 만들었을까.
“나는 어려운 말은 몰라. 하지만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알아.”

이 말에 소지로의, 그리고 작가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사람은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살아만 있으면 희망이 있다. 기원(祈願)과도 같은 이 말에, 작품의 모든 주제가 응축되어 있다.
가부장적 독재자처럼 행동해 온 아버지에게 반발하여 한때는 도쿄로 ‘가출’을 했던 다다하루가 겐조를 통하여 아버지의 감추어진 ‘진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작가 이주인 씨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화해를 암시한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태어난 작가의 새로운 출발을 장식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2.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_ 요미우리 신문 (2010년 7월 5일)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이주인 시즈카의 『아버지와 외삼촌』은 심금을 울리는 장편소설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처남을 구하기 위해 밀항선을 타고 전쟁터로 향한 남자의 이야기는 재일교포 1세인 아버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아버지는 평생, 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네 아버지가 외삼촌을 구해주셨다’는 말씀 밖에 하지 않았지요.”
염전이 펼쳐진 세토나이카이의 작은 항구 마을 미타지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3세 때에 일본으로 건너가 이곳에 정착한 저자의 아버지를 모델로 삼은 주인공 ‘소지로’는 전쟁이 끝난 후에 해운업 등을 통하여 사업을 확대하고 네 명의 아이를 두게 된다.
그러나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해방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간 처가에서 도와달라는 전갈을 받는다. 처남 ‘김오덕’이 북한의 첩자라는 의심을 받고 자택의 닭장 아래에 파 놓은 구덩이 안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는 것. 소지로는 군함과 초계정이 가득 찬 해협을 건너 그를 구출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아버지 밑에서 일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일도 잘 풀리고 가정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왜 아내의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건 위험까지 감수한 것인지. 취재를 하기 위해 한국에도 가 보았습니다. 잡목림과 소나무 숲이 이어져 있는 산들은 중국의 산지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편하게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산의 능선을 따라 달리고 계곡의 물로 마른 목을 축이며 게릴라의 눈길까지 피하면서 목숨을 건 구출작전이 수식어를 최대로 생략한 간결한 문체로 표현된다. 김오덕을 다시 만난 소지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고민하는 처남 김오덕에게 이렇게 말한다.
“살아만 있으면 희망은 있어.”
“사상보다 실천. 일단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30년 이상 작가로 생활해 온 저의 테마이기도 합니다. 대학시절에 바다에서 남동생을 잃었고 전처(나쓰메 마사코)도 일찍 세상을 떴습니다. 인간은 숨이 끊어진 순간, 꿈도 사라집니다. 부모에게도 슬픔을 안겨주지요. 하지만 살아만 있으면 희망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재일교포’ 일가의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품의 시대가 특별할 뿐, 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썼을 뿐입니다. 소지로가 갖추고 있는 용기는 어떤 아버지에게도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2009년 아흔한 살로 세상을 떴다. 일본으로 건너온 이후, 나름대로 사업을 성공시킨 작가의 아버지는 위압적이었다. 학창 시절에 가업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이주인 시즈카와 심한 언쟁도 벌였다.
“아버지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줄곧 가슴속에 존재했습니다. 작품도 제대로 쓸 수 없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뛰어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지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 인생을 이어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작품의 수가 너무 적다는 말을 들었던 작가는, 환갑을 넘으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 던져버리기로 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저의 문체에 완성형은 없습니다.”
그리고 소년용 야구소설 『스코어북』을 출간하고, 시인 마사오키 시키(正岡子規)를 소재로 삼은 ‘노보 씨’를 ‘소설현대’에 연재하는 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온(祇園)의 댄서와 대학생의 사랑을 그린 『시가고에미치』(志賀越みち)는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맹목을 결말 부분에 응축한 주옥같은 작품이다. 그 감상을 전하면.
“35세부터 3년 동안, 교토에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경륜장에 자주 드나들었지요. 택시비가 편도 5천 엔이었으니까 백 회를 다녔다고 치면 왕복 1백만 엔입니다. 언젠가 소설을 통해서 만회하겠다고 생각했지요. 하하하.”
그리고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말을 맺는 작가. 그의 문장에서 기품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호탕함과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와 외삼촌> 상세 줄거리
내가 대여섯 살 무렵, 어머니(요코)는 바다가 보이는 둑으로 나(다다하루)를 종종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바다 건너편 고향을 그리워했다. 아버지(소지로)의 사업 번창으로 우리 집은 상당히 부유했다.
어느 날 외삼촌(고로)이 집에 와 있었다. 도쿄 올림픽(1964년) 응원단으로 19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외삼촌은 한국에서 대령이라고 했다. 동네 요릿집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외삼촌은 제일 상석에 앉았고 마을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외삼촌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작 한번 만났을 뿐이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버지보다 외삼촌이 더 영웅이었다.
17년 후,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내게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편지가 왔다. 어머니는 옛날에 외삼촌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1년 가까이 집 마당에 굴을 파고 숨어 살았다고 했다.
며칠 후 나는 우리 집에서 집사로 일했던 겐조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저씨라면 우리 집 일에 대해 뭐든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외삼촌에 대해 물으러 갔던 것이었다. 나는 외삼촌의 죽음을 알리며 우리 집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입을 열었다.

요코(‘나’의 어머니)는 남편 소지로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8월 15일 라디오에서 천황이 전쟁이 끝났음을 선포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고 연합군이 승리한 것이다.
요코의 아버지는 세토나이카이의 염전에서 일용직을 알선해주는 일을 했다. 조선인이었지만 사업수완이 좋아 돈을 많이 벌었고, 요코와 동생 고로에게 공부를 많이 시켰다. 요코가 열일곱 살이던 해, 요코에게 첫눈에 반한 소지로가 요코의 아버지에게 혼담을 넣었다. 몇 차례 거절 후 아버지는 결혼을 승낙했고, 소지로는 1년 후 요코를 아내로 맞이했다. 둘은 검소하게 생활하며 열심히 살았다.
1945년 9월, 아버지는 조선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염전 소장이 조선인을 반동분자로 몰아 세 명이나 죽여서 아버지가 이 사건을 중재하려고 나서자, 오히려 아버지가 선동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화를 냈고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코는 남편 소지로에게 아버지가 떠날 준비를 마쳤다고 전했지만 소지로는 일본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요코와 소지로에게 아버지는 계속 함께 떠날 것을 권했지만 어머니는 일단 시집을 갔으니 남편 말에 따르는 게 도리라고 했다. 떠나는 날 어머니와 동생 고로가 먼저 배에 탔다. 고로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걸 기뻐했지만 누나와 헤어지는 게 싫었던 모양인지 배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이미 조선은 북쪽은 소련과 중국, 남쪽은 미국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1946년 미국의 도움으로 조선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돌아갔다가 실망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다. 1948년 8월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남쪽에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소지로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넓은 토지를 구입하고 집도 새로 지었고 하인도 두고 살게 되었다. 요코는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고 소지로는 무척 기뻐했다. 그해 6월 25일 라디오에서 조선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며 긴급속보가 흘러나왔다. 요코는 조선에 있는 부모님과 융통성이 부족한 동생 고로를 걱정했다.
전쟁 속보가 나오고 이틀 후에 소지로가 돌아왔다. 소지로는 여기저기에서 일을 하고 다니며 뉴스를 많이 들어 조선의 사정에 밝았는데, 금방이라도 서울이 함락될 것 같다며 북쪽의 군세가 남쪽보다 훨씬 세다고 했다. 어쩌면 이대로 조선은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요코는 일본에 남기로 한 소지로의 선택이 옳았다며 조선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을 걱정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후 나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다. 요코의 남동생 고로는 부산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하고 있을 때 알게 된 백준식에게 전쟁이 발발할 것을 들었다. 준식은 북한에서 보낸 첩보원이었다. 몇 개월 동안 준식을 따라다니던 고로는, 우선 집으로 돌아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들 걱정을 많이 했지만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청년들을 와룡산 동굴에 숨겼다. 동굴에 모여 있던 젊은이 다섯 명은 고로에게 일본 냄새가 난다며 비난했다. 고로는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왔고 그날 처음으로 북한군을 보았다.
고로는 집에 돌아갔다가 진주로 향하고 있던 북한 군인들에게 끌려갔지만 그 무리를 이끌던 채 소위가 다행히 고로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알고 봤더니 채 소위는 백준식과 연락을 해야 했는데 고로가 백준식이 준 편지를 갖고 있어서 살려준 것이었다. 전쟁 초기에 북한군은 기세가 등등했다. 고로는 채 소위의 부대를 따라 진군하면서 폭격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때로는 구토가 밀려왔다. 왜 같은 민족끼리 이런 전쟁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로는 북한군에서 도망쳐 나왔다. 집에 겨우 도착하니 부모님은 고로에게 오는 길에 누구와 마주쳤는지 물으며 걱정했다. 고로가 이 마을을 떠난 뒤, 북한군들이 동굴에 숨어 있던 마을청년 다섯 명을 총살했던 것이다. 고로의 시체만 없어서 마을사람들은, 분명 고로가 북한군에게 밀고하고 자기만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고로에게 우선 마루 밑에 숨어 있으라고 했다.
그날 이후 고로는 닭장 밑에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고로의 어머니가 닭장에 혼잣말을 하며 정신이 나갔다고 소문이 돌았다. 연합군과 한국군의 승리를 확신하며 마당의 굴속에 숨어 있는 고로도 아버지에게 머지않아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곧 서울을 다시 빼앗기며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해가 되면서 소지로의 사업은 더 번창했다.
1951년 1월, 한반도의 전세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일본에서 고로의 집에 조씨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조씨는 요코의 남편 소지로가 보낸 사람으로, 고로의 아버지는 그에게 고로가 마을사람들에게 누명을 쓰고 닭장 밑 굴에 숨어있다고 했다. 또한 조씨 편에 편지를 보내 아들 고로만이라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조씨는 일본으로 돌아와 요코와 소지로에게 소지로의 가족들은 아버지와 큰형은 전쟁으로 죽었고 작은 형도 전쟁터에 끌려가 있다고 전했고 고로 아버지의 편지도 전했다. 오열하는 요코에게 소지로는 걱정말라며 당신의 부모는 내 부모이기도 하고, 당신의 동생은 내 동생이기도 하다며 어떻게든 손을 써보겠노라고 안심시켰다.
소지로의 행동은 빨랐다. 소지로는 중고 선박 한 대를 구입하여 고기잡이배로 꾸몄다. 하지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도항하는 것은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전시 중인 한국의 해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사실을 알게 된 요코는 괜히 자신의 가족들 때문에 남편이 목숨까지 내걸면서 일을 벌이는 것 같아 걱정했다.
소지로는 거제도 장승포 근처에 닻을 내리기로 결정하고 집사 겐조에게 한 달 뒤에 다시 자신을 맞이하러 와 달라고 했다. 육지에 내린 소지로는 서둘러 요코의 고향 쪽으로 향했다. 몇날 며칠을 계속 걷다가 용천사에서 주지스님을 한 분 만났다. 소지로는 공양을 하며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꼭 다시 들러 공양을 더 하겠다고 약속했다. 스님은 소지로를 위해 불경을 읊어주었고 자신에게 ‘박동림’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한국군의 장군이라며 혹시라도 한국군에게 붙잡히면 보여주라며 아들에게 쓴 편지를 건네주었다. 소지로는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6.25가 터진 지 1년하고도 몇 개월이 흘렀다. 소지로는 장인 장모의 집에 드디어 도착했다. 1년 남짓 굴속에 숨어있던 고로는 쇠약해져 있었고 약한 빛에도 눈부셔 했다. 소지로는 장인 장모에게 같이 떠나자고 했지만 그들은 다만 고로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소지로는 밤낮으로 장인 장모를 돌보고 밤에는 고로의 체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소지로는 고로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고로는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소지로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원래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라도 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남의 나라에서 살아갈 땐 더욱더. 그리고 왜 일본으로 떠났는지, 일본이 패망했을 때 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는지를 묻는 고로에게 살기 위해서였다고, 생가는 너무 가난한 농가였고 일이 없었다고 했다. 고로는 매형을 무척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고로는 체력을 조금씩 회복해 갔다. 소지로는 서울에 가서, 용천사 주지스님의 아들인 박동림 장군에게 고로를 맡기려고 생각했다. 한국 땅을 밟은 지 14일째 밤, 소지로는 고로를 데리고 서울을 향해 길을 떠났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고로와 소지로는 서울에 도착했다. 박동림 장군을 만나기 위해 금을 달러로 바꾸고 브랜디도 구했으며 새 옷도 샀다. 소지로는 박동림 장군의 부대로 찾아가 장군 아버지의 편지를 갖고 왔다며 꼭 만나야 한다고 했다. 밤이 깊어 박동림 장군이 탄 차가 부대로 들어섰지만 장군은 만취한 상태여서 만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명동에 있는 술집 사쿠라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소지로는 술집 사쿠라를 찾았다. 소지로는 사쿠라의 사장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했다. 사장에게 남아 있는 금과, 만일을 대비해 갖고 있던 다이아몬드를 보여주니 박동림 장군의 예약은 없지만 오늘 불러 줄 수 있다며, 저녁 6시에 다시 오라고 했다. 소지로는 약속시간에 고로를 데리고 다시 왔다. 소지로와 고로는 박동림 장군을 만날 수 있었다. 장군은 술을 잔뜩 먹고 고로에게 자신과 나라를 위해 죽을 수 있냐며, 대답해보라고 했다. 고로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자 장군은 총구를 겨누며 그럼 여기서 지금 죽으라고 했다. 고로는 벌벌 떨었다. 갑자기 장군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일 자신의 부대로 오라고 했다.
다음날 소지로는 고로를 부대로 들여보내고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소지로는 잘못해서 지뢰밭으로 들어갔지만 다행히 한 꼬마의 도움으로 지뢰밭에서 살아나왔다. 소지로는 전쟁고아인 꼬마에게 서울 명동에 있는 술집 사쿠라를 찾아가서 사장님께 자기 이름을 대면 일자리를 줄 거라고 이야기했다.
소지로는 배를 얻어 타고 운평이라는 항구에서 당진을 거쳐 서산, 태안을 지나 변산반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산길로 임실, 남원, 구례, 하동을 지났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일념 하에 힘을 낼 수가 있었다. 우선 장인 장모의 집에 들러 고로를 무사히 박동림 장군 휘하의 군대에 입대시켰음을 보고했다. 장모는 고맙다며 동네에서도 이제 고로에게 품었던 오해가 풀린 것 같다고 했다. 장인 장모는 소지로에게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당부했다.
소지로는 전쟁이 끝나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하고 길을 떠났다. 거제도 앞바다에서 소지로를 기다리고 있던 겐조는 소지로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소지로를 태우고 무사히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요코에게 전보를 쳤다. 소지로는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겐조 아저씨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참으로 긴 이야기였다. 나는 집으로 향하면서 바다에 대고 “아버지~”하고 불러보았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