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 제비꽃 (Das Veilchen K. 476) / Benjamino Gigli
모짜르트 : 제비꽃
Das Veilchen K. 476
괴테 詩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8.28 ~ 1832.3.22)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오스트리아
Ein Veilchen auf der Wiese stand,
Gebückt in sich und unbekannt;
Es war ein herzigs Veilchen.
Da kam eine junge Schäferin
Mit leichtem Schritt und munterm Sinn
Daher, daher,
Die Wiese her, und sang.
Ach! denkt das Veilchen, wär’ ich nur
Die schönste Blume der Natur,
Ach, nur ein kleines Weilchen,
Bis mich das Liebchen abgepflückt
Und an dem Busen matt gedrückt!
Ach nur, ach nur
Ein Viertelstündchen lang!
Ach! aber ach! das Mädchen kam
Und nicht in acht das Veilchen nahm;
Ertrat das arme Veilchen.
Es sank und starb und freut’ sich noch:
Und sterb’ ich denn, so sterb’ ich doch
Durch sie, durch sie,
Zu ihren Füßen doch.
Das arme Veilchen
Es war ein herzig's Veilchen
초원에 핀 한 송이 제비꽃,
수줍게 작아서 보일듯 말듯
한 송이 사랑스런 제비꽃 피어있네.
애띤 양치기 아가씨 하나
사뿐한 걸음으로, 발랄한 기분으로,
이리로, 이리로,
이 초원으로, 노래하며 오네.
아아, 제비꽃 생각하기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었다면,
아,부디 한 순간만이라도...
사랑하는 내 님이 내게 다가와,
고이 말려 가슴에 간직하도록
아...부디. 오로지!
오직 잠시만이라도...
아, 하지만, 아가씨 다가와서는
제비꽃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 가련한 제비꽃을 밟아버렸다네.
몸을 떨구고, 죽어가도,
여전히 행복한 제비꽃,
나 이렇게, 그래도 이렇게 죽어갑니다.
님에 의해서, 님을 통해서,
그래도 님의 발 아래서
죽을 수 있었답니다.
괴테의 시는 위의 3문단이며, 가장 아래의 두 줄은 모차르트가 첨언한 것이다. 나레이터와 제비꽃의 대사로 이루어진 詩지만 모차르트의 저 두 줄은 작곡가 자신의 심정 그 자체였을 거다. 시 속의 제비꽃에 대한 작곡가의 안쓰러움과 애틋함 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Das arme Veilchen, es war ein herzig's Veilchen : 가여운 제비꽃. 그는 정말 예쁜 제비꽃이었어요.
모차르트(오스트리아)는 오페라 외에도 많은 성악곡을 남겼는데 특히 몇 개의 가곡은 오늘날에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어느 것이나 간결한 형식 속에 청결한 서정을 띤 것으로 슈베르트(오스트리아) 이후에 최성기를 맞는 독일 리트의 선구라고 여겨지고 있다. 1785년 6월 8일 빈에서 쓴 「제비꽃」(성악곡)은 모차르트(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가곡으로 괴테의 시에 작곡한 것이다. ‘목장에 피어난 사랑스런 제비꽃이, 양치는 여자가 그 예쁜 손으로 다가갔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는데, 여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짓밟아 버렸다’는 의미의 노래이다. 유절 가곡이다. 귀엽지만 작고 겸손하고 평범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슬픈 숙명을 가진 제비꽃. 그러한 제비꽃의 운명같은 것에는 깊은 성찰을 해본 적도 없을 듯한 어린 보이 소프라노가 무심하고 천연스럽게 노래할 때, 어쩐지 그 처연함이 역설적으로 더해지는 독특한 파토스를 가진 곡. 제비꽃....
이 노래는 18세기 유럽의 문예사조였던 감상주의의 색채를 띤 로코코 스타일의 시이다. 목가적인 장면, 반복되는 축약형 어미 -chen, 숱하게 나열된 천진한 단어들이 이 시의 로코코적 특성을 보여준다. 절제되지 않은 감탄사로 가득한 이 로코코 양식의 목가적인 시는 1775년 3월, 야코비의 잡지인 <이리스> 2호에 처음 수록된 괴테의 징슈필 <에르빈과 엘미레>에 나오는 노래이다.
<에르빈과 엘미레>
혼담이 많은 아가씨 엘미레는 시인 에르빈과 서로 깊이 사랑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고 자란 탓에 이러한 감정을 부끄럽게 생각한 엘미레는 그 마음을 억누르려 애쓰며, 심술섞인 조롱으로 에르빈에게 상처를 준다. 쓰라린 마음을 달래며 에르빈은 세상을 등진 은자가 되지만, 이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엘미레에게 상처를 받은 직후, 에르빈의 심정을 노래한 시가 바로 이 <제비꽃>이다. 풀숲에서 화려하지 않은 색으로 몸을 낮추고 있는 겸양과 순결의 상징 제비꽃. 그러나 사실 이 제비꽃이라는 소재는 괴테가 독창적으로 사용한 은유는 아니었다. 비스마르크(K.A. von Bismarck)가 쓴 시 <제비꽃에 부쳐>는 이 시와 대단히 유사한 정서를 보여주는데, 괴테는 이 로코코 양식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지없이 진실한 젊은이의 영혼에서 떨구어진
한 방울 눈물을 네 보라빛 꽃받침에 담은...
울면서 삶을 보낸 그 젊은이, 죽음만을 바란다네.
-<제비꽃에 부쳐>의 마지막 3행
제비꽃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당시에 진부했던 양치기 소녀라는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괴테는 애타는 젊은이의 마음이 절절히 드러나도록 이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고, 비스마르크의 작품보다 한 차원 세련된 문학성을 가미하였다. 이러한 점에 매혹된 수많은 작곡가들이 이 시에 곡을 붙였다. 그 당시에만, 앙드레, 안나 아말리에,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제첸도르프 등 사십 명도 넘는 사람들이 작곡을 하였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사람 중에는 클라라 슈만도 있다. 그러나 클라라 슈만의 버전은 귀엽고 작은 제비꽃만 노래하고 있을 뿐, 젊은이의 애타는 사랑과 고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29세의 청년 모차르트 역시 이 시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 시의 내재적 의미를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시의 주제는 원망이나 회한이 아닌 자기 체념의 승화이다. 모차르트는 로코코 풍의 발랄함과 가슴 가득 간직한 사랑이 동시에 울려나오도록 하였다.
괴테는 릴리 쇠네만에 대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를 썼다.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아픔이 있었다. 볼프강이라는
같은 이름을 지닌 이 두 거장은 이러한 깊은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가곡 중 전해지는 것은 29곡, 전체 곡 중 5%도 안 된다. 그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곡 중 하나인 <제비꽃>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리고 모차르트가 노래의 생명을 불어넣은 이 <제비꽃>만이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과는 달리 오늘날까지 살아 숨쉬게 된다. 한편 이 곡은 모차르트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유일한 가곡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모차르트는 이 시의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는 당대의 서정시 모음집 등에 작가의 이름없이 마구 옮겨져 있던 이 시를 발견했던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과 문학의 거인이었던 모차르트와 괴테는 직접적인 교류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알고 있었다. 괴테는 에커만에게 이르기를 문학의 셰익스피어, 미술의 라파엘로, 음악의 모차르트를 일컬어 불멸의 삼대 성인이라 극찬하였다. 그는 자신의 <파우스트>에 곡을 붙이는 것은 <돈 지오반니>와 같이 표현력 있는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작곡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모차르트가 이미 죽고 없음을 한탄하기도 했다. (사진 -괴테)
반면 모차르트는 괴테에 대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모차르트는 분명히 괴테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볼프강 힐데스하이머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아마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도 읽었을 것이라 한다. 이렇듯 서로에 대해 사뭇 상반된 관점을 가졌던 이 두 사람은 <제비꽃>이라는 가곡을 통하여 만나게 된다. 그러나 결국 괴테의 시에 모차르트가 작곡을 한 유일한 곡인 이 <제비꽃>마저 그 작가를 알지 못하고 작곡했으니, 모차르트를 향한 괴테의 짝사랑이 양치기 소녀를 향한 제비꽃의 사랑과 닮아있어 재미있다.
베냐미노 질리 (Beniamino Gigli 1890.3.20 – 1957. 11.30) 이탈리아
Beniamino Gigli (1890.3.20 – 1957. 11.30) was an Italian opera singer. The most famous tenor of his generation, he was renowned internationally for the great beauty of his voice and the soundness of his vocal technique. Music critics sometimes took him to task, however, for what was perceived to be the over-emotionalism of his interpretations. Nevertheless, such was Gigli's talent, he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very finest tenors in the recorded history of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