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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헨델 : 오르간 협주곡 HWV 306 Op.7 No. 1 In B Flat Major (Organ Concerto HWV 306 Op.7 No. 1 In B Flat Major)

Bawoo 2014. 4. 1. 09:29

헨델 : 오르간 협주곡 HWV 306 Op.7 No. 1 In B Flat Major

HANDEL : Organ Concerto HWV 306 Op.7 No. 1 In B Flat Major

 

 

HANDEL - Organ Concerto Op.7 No. 1 _ 1악장 Andante

Munich Bach Orchestra / Karl Richter, organ

                                                                      HANDEL - Organ Concerto Op.7 No. 1.mp3

 

헨델 : 오르간 협주곡 HWV 306 Op.7 No. 1 In B Flat Major

Organ Concerto HWV 306 Op.7 No. 1 In B Flat Major

헨델 (George Frideric Handel) 1735~1751년 독일

 

헨델은 오르간 협주곡을 1707년에 처음으로 작곡했다. 당시에는 독립된 작품이 아니

라 로마에서 작곡한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에 삽입된 형태였다. 그는 활동 무대를 런던으로 옮겨 1732년에 또 한 편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는데, 이번에도 통주저음 악기는 오르간이었다. 헨델은 그 후 오르간 협주곡을 완전히 독립시켜 독주곡으로 작곡하기 시작했다. 1735년 무렵 헨델은 오라토리오의 막간에는 늘 오르간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훗날 열두 곡의 오르간 협주곡에서 몇몇 악장을 추려내 op. 4와 op. 7이라는 표제로 출판했는데, 악보가 완전한 곡이 드문 것으로 보아 헨델이 즉흥 연주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참고] 오라토리오 [oratorio] : 오페라는 성악을 위주로 하여 음악, 문학, 미술 무용 등의 요소가 삽입된 종합예술인 반면,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구성요소가 같지만, 배역에 따른 의상을 입지 않으며 연기를 하지 않는 점, 합창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 해설자(testo 또는 historicus)가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는 시력을 완전히 잃자 악장 전체를 백지로 둔 채 즉흥 연주로 독주를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연주하려면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협주곡 중에는 ‘뻐꾸기와 나이팅게일’처럼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들도 있다. op. 4의 마지막 협주곡은 원래 하프 곡으로 오라토리오 <알렉산더의 향연>에서 막간에 연주된 곡이었다. 이 곡은 “티모테우스는 가볍게 한 손가락으로 리라를 튕기네, 낭랑한 음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천국의 기쁨은 차오르네.”라는 부분 직후에 연주되었다. 헨델의 오르간 협주곡은 명음반이 꽤 많은데 각각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op. 4와 op. 7을 모두 실은 음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 등 다양하다.

 

칼 리히터 (Karl Richter 1926. 10. 15 ) - 1981. 2. 15 독일

 

독일의 작센 주 프라우엔에서 태어난 오르간, 쳄발로 주자 겸 지휘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1세 때에 드레스덴 성십자가 교회의 부속 음악학원에 들어가, 전통 있는 성가대의 멤버가 되어, 일찌기도 이 기간에 바하의 종교곡의 거의 모든 파트를 암보했

다고 한다. 그리고 제2차 대전 후인 1946년부터는 라이프찌히에 옮겨, 여기서 칼 시트라우베, 귄터 라민, 루돌프 마웰스베르거라는 현대의 바하 연주의 기초를 쌓은 명연주가들에게 사사하고, 특히 토마스 칸로르이던 라민이 지휘하는 연주에 쳄발로 주자, 오르간 주자로서 참가하면서 수년간에 걸쳐 그 조수로 있었고, 49년에는 국가 시험에 의해 성 토마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뒤 51년에 뮌헨으로 옮겨, 처음에 성 마르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를 맡음과 동시에 뮌헨 음악대학의 강사가 되어, 차차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53년에는 스스로의 이상이던 바하 연주 실현을 위해 뮌헨 바하 합창단을 창설하여 그 지휘에 임하고 55년에는 뮌헨에 사는 뛰어난 주자를 모아 뮌헨 바하 관현악단을 결성하여 활발한 연주 활동을 행하고, 그 때까지의 쳄발리스트, 오르가니스트로서의 명성과 함께 탁월한 지휘자로서도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1958년에 31세의 젊음으로 매년의 성금요일에 전 독일의 방송국이 협력하여 동시 방송하는 바하 의 《마태 수난곡》의 총지휘자로 선발되고부터는 일약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고, 이래 현대 최고의 바하 지휘자로서, 또 쳄발로와 오르간 주자, 그리고 실내악 주자로서도 일관하여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지휘자로서의 활동이 다망하기 때문에 쳄발리스트, 오르가니스트로서의 리히터는 실제 연주에서는 그 압도적인 표출력을 지닌 연주에 있어서도 자주 기술적인 파탄을 지적 당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연주가 항상 듣는이에게 대해서 놀라울이만큼 강렬한 감명을 주는 것은 그 연주의 배후에 바하 의 모든 작품에 정통하고, 그 음악의 본질에 날카롭게 파고드는 리히터의 흔들림이 없는 확신과 정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만전의 배려를 갖고 행해지는 레코딩에 있어서는, 항상 전혀 빈틈이 없을 만큼 유려하고 충실된 연주에 의해, 실로 스케일이 큰 극적이고 풍부한 표현을 들려준다.

 

 

 

 

 

출처 : 멀뚱박사의 사랑방
글쓴이 : 멀뚱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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