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에 닉 케니(N. Kenny)와 찰스 케니(C. Kenny)가 가사를 쓰고, J. 프레드 쿠츠(J. Fred Coots)가 작곡한 감상적인 러브 발라드 곡이다. 1945년경 새미 케이 악단의 연주로 히트한 적도 있었으나, 그 후 1957년의 20세기 폭스 영화 『버너딘』에서 주연한 팻 분(영화 데뷔)이 리바이벌하면서, 팻 분의 레코드는 순식간에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팻 분, 조지 제임스(George James), 레이 커니프 악단이 좋다.
1950, 60년대를 빛낸 팻 분은 「Love letters in the sand」나 「April love」 같은 스탠더드 팝부터 「Ain't that a shame」과 「Tutti frutti」 같은 흑인이 부른 초기 로큰롤을 소화하며 젊은이들과 기성세대 모두에게 사랑받은 백인 가수인데, 그 때문에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로큰롤 음악의 순수성은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Love letters in the sand」는 1957년에 5주 동안 빌보드 넘버원을 차지했습니다.
팻 분 (Pat Boone) 1934. 6. 1 - (미국)
1934년 6월 1일에 태어나신 팻 분은 ''97년 ''Smoke on The Water'', ''Stairway To Heaven'' 같은 헤비 메탈 넘버들을 리메이크한 앨범 [No More Mr. Nice Guy]를 충격적으로 발매하면서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당시 시상식장에서 그는 검은 가죽 의상에다가 일회용 문신마저 하고 나타났는데, 결국 이 여파로 그가 맡고 있던 가스펠 프로그램에서 해고되었다는 뒷소문이 들렸다. 왜 이런 소동이 벌어졌던가 하면 저 위의 앨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 팻 분은 단정한(?) 흰색 구두에 곱게 빗어넘긴 헤어스타일 그리고 매끈하고 착한 미소와 더불어 건강하고 보수적인 미국인의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영국 음악이 침공을 가해오기 이전에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차트의 왕좌를 다툴 수 있었던 유일한 라이벌이었다. 그도 프레슬리처럼 흑인 R&B 문화를 도용했지만 기존 가치를 위협하지 않는 그의 온화하고 보수적인 이미지는 10대들은 물론 부모들에게도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그의 인기 가도는 ''62년 이후 비틀즈의 폭발로 브레이크가 걸렸고 그 이후로는 가스펠에 전념했다. 팻 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컨트리 스타 레드 폴리(Red Foley)의 딸인 셜리 폴리(Shirley Foley)와 결혼했다.
Pat Boone sings "Love Letters in the Sand" April 2009